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92
191장. 루브르의 고양이
“300억이 푼돈 같군……. 후훗.”
손대균은 해외 비밀 법인 계좌에 찍힌 달러를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정확히 원화로 300억으로 환산되는 금액이다.
“괴물이야. 괴물.”
이제 대학교 1학년인 후배다.
입학 몇 달 만에 깐깐한 교수들 모두 장태산을 좋아하는 게 보였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엄청난 특혜다.
뿐만 아니라 학과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걸 직접 봤다.
자존심이 강한 한국대 법대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돈 버는 능력도 탁월을 넘어 신의 경지다.
고등학교 때부터 갑자기 엄청난 부를 쌓은 장태산은 약속을 지켰다.
다달이 통장에 투자 이익금을 찍어줬다.
안아를 날리고 안전을 보장하는 금액 치고는 쌨다.
물론 그룹을 넘겨받는 대가치고는 약하다 할 수 있지만 안아 그룹은 밑바닥이 깨진 독이다.
보수하고 다시 물을 채우려면 상당한 자본 유치나 은행 투자가 필요했다.
“어려운 이 시기에 50억 달러 투자라……. 도대체 능력이 어디까지야?”
해외 투자 자본을 끌어와 그룹을 바로 안정시켰다.
지분이 상당수 해외 자본에 넘어갔지만 국민들은 좋아했다.
누가 봐도 파격적인 투자였다.
때도 참 좋았다.
생각지도 못한 촛불 시위로 정권의 위기가 찾아왔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오 회장 비리가 터지며 희석됐다.
언론들을 동원해 오승혁 일가 비리를 확장 발표하게 만들었다.
법무부 장관을 통해 압력을 넣었다.
조직 특수팀을 가동해 오승혁 회장의 장부를 압수해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가족 목숨을 가지고 거래했다.
독한 오승혁도 갓 태어난 서자에 애정을 보였다.
5년 동안 감옥에 가는 걸 합의 봤다.
오승혁 회장 일가의 비리로 국민적 관심사가 전환됐다.
10년 만에 세운 정권의 위기에 일송회 회원들은 식겁했다.
당장 청와대에 시위대가 들이칠 것 같은 엄청난 상황이었다.
그걸 막아냈다.
“장태산 네 덕분이다.”
장태산이 아니었다면 빨리 정국이 안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돈뿐만 아니라 유무형의 이득이 엄청났다.
회주도 만족했다.
“유리가 남자 보는 눈이 있었어……. 아쉽네.”
회주 아들이 곧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와 손유리를 맺어 주기로 얼마 전 회주와 약조가 됐다.
장태산을 포기하는 일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손 씨 일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연의 선택이었다.
“휴우…….”
손대균은 서재에서 술을 마셨다.
딸이 없는 집안은 허전했다.
아들 녀석은 지금 대전에서 판사로 근무했다.
아내는 딸을 유학 보낸 이후부터 밖으로 돌았다.
무언의 시위였다.
그러나 손대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법 고시 합격 통지서를 아버지께 내밀었을 때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대법원장을 지내고 언제나 엄한 가풍과 넉넉한 인품을 보였던 아버지는 손대균의 영웅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대작을 했다.
얼마쯤 술이 돌았을 때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일본 유학 시절과 간도 특설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그리고 해방 후 사법고시 합격 후 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정부와 손을 잡고 승승장구했던 일생을 말이다.
충격에서 손대균은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존경하던 아버지의 과거 친일 행적과 가문의 부와 권력, 명예가 모두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쌓은 탑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변명도 이해가 됐다.
일본 유학 중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다면 일반 병사로 해외 전쟁터에 보내겠다는 학교의 협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럴 바에 차라리 장교로 입대하기로 결정한 뒤 양심을 팔았다고 한다.
죽이지 않으면 의심과 협박을 받는 분노가 잔혹한 손속으로 변했다는 아버지.
손대균은 그런 아버지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송회 회원가입과 부와 명예를 위한 길.
일송회는 과거처럼 일본에 복속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자본과 정보를 받고 도움을 얻지만 철저하게 조직원의 이익을 위해 굴러갔다.
선구자라는 말은 한쪽 가슴속에 또 다른 방처럼 공간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중적인 삶이라 말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를 버릴 수 없었고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수없이 봤던 독재와 탐욕, 권력의 더러운 치부들 속에서 혼자 독야청정 살아갈 수 없었다.
꿀꺽.
손대균은 독한 양주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 시선은 책상 위에 있는 가족사진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마지막 그 길을 걸으마. 너희들은…… 행복하거라.”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손대균은 알고 있다.
이제 거짓을 감출 수 있는 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손대균은 자신이 마지막 총대를 메려고 했다.
긴 세월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비밀의 무게.
자식들에게는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
“아!!!”
인간으로서 뱉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경이로운 감탄이 터져 나왔다.
말로만 들었던 세계 최고의 박물관.
루이 16세 시절부터 궁전을 개조해 1793년 8월 10일 공화국 1주년에 공개된 프랑스를 넘어 지구 제일의 박물관은 웅장하다는 말이 의미 없었다.
센 강 옆에서 수백 년 동안 다단계에 걸쳐 증축된 박물관은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루브르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유리 피라미드는 보는 순간 사람을 압도해 버렸다.
나폴레옹 광장 밑 지하광장은 천장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환희의 연속이었다.
카리아티드의 방에서 말로만 듣던 베르사이유의 아르테미스를 봤다.
살아 꿈틀거리는 그리스 로마 조각품들은 장엄했다.
호화롭기 그지없는 궁전 내부는 경탄을 자아냈다.
돈질로써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프랑스 왕가의 기품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황금빛 천장 장식품들과 가는 길에 서 있는 조각품들에 경의를 표했다.
물론 30만 점이 넘는 소장품들 대다수가 제국 시절 약소국에서 강탈한 문화재라는 게 서글펐다.
대한제국 시절 빼앗긴 한국 보물들도 있었다.
“정말 넓긴 넓다…….”
첫 대학교 여름 방학 휴가를 자동차 배낭여행으로 잡았다.
지난 생에는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시작점은 프랑스 파리.
미술과 음악 신들을 영접해서인지 미술관이 보고 싶었다.
파리 드골 공항에 내려 자동차를 렌트했다.
차종은 작년에 새로 출시된 빨간색 폭스바겐 티구안.
튼튼하고 안전했다.
내비게이션도 달린 최고급 옵션이었다.
디젤 2,000cc급으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 콘셉트는 무난한 여행이었다.
비행기 좌석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했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꾸렸다.
들고 다닐 여행용 백팩에는 노트북, 카메라, 여분의 옷과 양념 소스가 다였다.
유럽 쪽이 워낙 좀도둑이 극성이라 방비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다른 여행자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언어 장벽이 없어 두려움도 없었다.
화타의 침술까지 섭렵해 응급치료도 가능했다.
파리 드골 공항에 내리자마자 차를 몰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직행했다.
물론 도도희는 한국에 떼어놓고 왔다.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여행이었다.
도도희와 함께 온다면 그녀의 유혹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내 연애는 사양이다.
유세라 팀장도 벅찬데 도도희?
그녀들에게 15박짜리 여름휴가를 허락했다.
죽이 잘 맞는 둘은 함께 미국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짝퉁 100개보다 진품 1개가 낫다는 말을 이제 알겠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 신선들의 작품들도 훌륭했지만 묵은 김치 같은 깊은 맛은 《모나리자》가 최고다.
13~15세기 이탈리아 회화들이 걸려 있는 모나리자의 방.
대기 줄에서 기다렸다가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직접 마주한 《모나리자》가 왜 걸작으로 칭송받는지 제대로 알았다.
흐릿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은 특이했다.
시선이 멀어질수록 색깔이 더 옅어지는 공기원근법이 잘 표현됐다.
특히 레오나르도의 독특한 스푸마토 기법으로 신비한 분위기가 더욱 살아났다.
모나리자의 미소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다른 그림들을 압도했다.
그림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심을 엿 볼 수 있었다.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조 콘다의 부인이었던 모나리자.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다빈치는 악사와 광대를 불러 그녀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것도 미완으로 남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뻔했다.
다빈치는 모델이었던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다만 이룰 수 없는 유부녀 신분으로 환상이었기에 그림의 미소가 더 아름답게 표현된 것이다.
소유하지 못할 금지된 욕망은 본래 더 신비스러운 법이다.
시간 나면 신계에 가서 포인트 넘기고 다빈치에게 묻고 싶었다.
“좀 비켜주시죠…….”
“뒷사람들도 생각해 주세요.”
뒤에서 채근이 심했다.
고개를 숙이고 모나리자를 떠났다.
아름답고 고혹적이지만 과거 속의 그녀다.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며 이동했다.
화가들 방에는 《모나리자》말고도 엄청난 대작들이 많았다.
프랑스 화가들 방도 지나쳤다.
압도적 크기들의 그림들이 기를 질리게 만들었다.
푸생과 외젠 들라쿠루아의 작품도 감상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렸던 누드화 앞에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트러진 누드 중에서 단연 탑을 찍는 《그랑 오달리스크》.
이미 마음속에서는 다음에 만날 신들 중 한 명으로 예약했다.
렘브란트의 작품도 신선했다.
“하아.”
한숨을 나왔다.
《도살된 소》라는 그림에서 잠시 발걸음이 멈췄다.
해체된 소의 몸뚱이에서 거장의 마음이 느껴졌다.
미화 없이 어둠 속에 방치된 소의 마지막 잔해는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삶과 죽음, 죽은 소를 통한 인간의 자화상적 상징이 묻어났다.
전생에 없는 호사였다.
“VIP가 사라졌다.”
“조용히 찾아.”
갑작스럽게 일단의 검은 정장 입은 무리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였다.
그들이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면 분위기는 완벽했다.
타다다닥.
조용히 찾으라면서 발걸음이 시끄럽다.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려다.
그러나 검은 슈트의 사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호랑이 같은 눈으로 사방을 훑었다.
중요한 인물이 사라진 것 같았다.
저런 정신머리로 누굴 보호한다는 거 자체가 난센스다.
고개를 저으며 나머지 그림과 조각품들을 눈에 담았다.
가끔 사방을 둘러보며 나도 한 사람을 찾았다.
날 버리고 프랑스로 떠난 그녀.
친구인 강아린 선배도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이곳에 들렸다.
그림을 사랑하는 미대 선배 손유리.
하룻밤 추억만 남기고 너무 멀리 날아가 버렸다.
“…….”
고개를 저으며 작품에 집중했다.
그렇게 짧게 끝날 인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꼬로록.
기내식을 먹고 하루 종일 상당 시간을 박물관에서 보냈더니 배가 고팠다.
파리에서 저녁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여행 와중에 포도주의 신이 극찬한 와이너리도 많이 보고 싶었다.
시간을 아껴야 했다.
박물관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한 달 예정의 여행이라 대형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 볼 것이 많았다.
길 가다 경치 좋은 곳에서 요리도 해먹을 생각이다.
조그만 텐트도 필요할 것 같았다.
간단하게 섭취할 간식도 필요했다.
“흐흐응~♬”
콧노래를 부르며 주차장에서 차를 찾았다.
삐빅.
빨간 티구안이 깜박이를 반짝이며 나를 반겼다.
“잘 부탁한다. 친구~.”
하루 만에 정이 들었다.
레드빛깔 실루엣이 마음에 쏙 들었다.
드르르릉.
디젤 엔진 특유의 덜덜거림이 기분 좋게 들렸다.
“출발!”
파리 같은 대도시는 자가용 비행기 타고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만의 여행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몰랐다.
기분 좋게 출발하려는 순간.
딸깍.
조수석 차문이 격하게 열렸다.
아직 자동으로 잠기지 않았다.
“!!!”
깜짝 놀라 조수석을 봤다.
말로만 듣던 파리 지하철 강도일 수 있었다.
“쉿!”
모자를 눌러쓴 낯선 이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다.
타다다다닷.
“찾아!”
그때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격한 목소리.
“부탁드려요. 빨리 좀 이동해 주시면 안 돼요?”
자동차에 들어온 깜찍한 고양이 한 마디.
큰 눈을 반짝이며 필살기 애교를 부렸다.
# 19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