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28
729장. 50보와 100보.(3)
회귀의 전설 2부
– 이웃집 새가 어미새 둥지에 도착했다. 딱따구리를 보내라.
“오케이.”
인 이어로 들려오는 지시 사항에 국정원 1차장 직속 첩보국 3팀 소속 여직원이 응답했다.
홀서빙 직원 복장을 착용했다.
고급 한정식 식당은 직원만 해도 수십 명이었다.
평범한 외모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르르륵.
빈 카트를 밀고 둥지를 지나쳐 가는 3팀 소속 여직원.
틱.
현관문 밑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초소형 증폭 마이크를 부착했다.
좁쌀 크기만큼 작지만 성능만은 최상급.
“딱따구리가 새 집에 둥지를 틀었다.”
– 바로 철수해.
그르르르르륵.
카트를 다시 밀며 여직원은 바삐 걸음을 옮겨 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손님인 듯 일상복으로 환복한 그녀.
또각또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구두소리를 내며 유유히 식당 밖으로 사라졌다.
“감도는 어때?”
“이상 없습니다.”
“시작해.”
“넵!”
청음하고 있던 남성이 상사의 지시에 볼륨을 높였다.
– 하하하하하.
도청 장치를 통해 룸 안에서의 웃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대화.
한정식 식당에서 가까운 길가에 선팅이 유난히 진한 차량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차량 안에서 몸을 바짝 세우고 막 도청을 시작한 국정원 직원들이 눈을 빛냈다.
차량 외관을 긴급 전화 복구 차량으로 위장했기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청음된 자료들은 모조리 백업됐다.
나중에 중요하게 사용될 정치적 자료들이었다.
– 장 회장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 일개 사업가일 뿐입니다.
– …… 큰일 한 번 하셔야죠.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새끼들…… 너희들은 끝났어. 흐흐흐.’
팀장은 청음되는 내용을 들으며 만족해했다.
은밀하게 밀실에서 나눠지는 대화 내용.
외부로 알려지면 적잖은 파장이 일 게 뻔했다.
감투를 놓고 기업가와 거래하는 정치인.
누가 되었든 그런 자들은 일단 국정원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취합한 비밀을 슬쩍 풀어 협박하면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물어다줬다.
특히 지금 작업하고 있는 나국찬은 그런 인물들 중에서도 요주의 인물.
특별 지령을 받은 인물 장태산과 함께 궁합이 잘 맞는 요긴한 먹잇감이 돼 주고 있었다.
– 삐이이이이이이잇.
그때 갑자기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귀를 찢을 듯한 고주파음.
“악!”
“헉!”
청음하던 직원과 팀장은 골을 파고드는 고주파에 비명을 지르며 헤드셋을 내던졌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귀는 고막이 터져 나간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티, 팀장님! 공격 받았습니다.”
귀를 감싸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직원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공격! 누가!”
놀라서 되묻는 팀장.
– 오빠들 알 만한 사람들이 이런 장난하는 거 아냐~
도청을 해킹한 듯 요원들을 향해 한 여성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다.
그리고.
펑! 퍼버버벙!
갑자기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와 각종 서브 장치들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터졌다.
***
‘큰일!’
나국찬 의원의 말에 양우석의 얼굴은 미세하게 굳어졌다.
자신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나국찬의 본심.
‘도대체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국찬은 합동민주당에서 가장 큰 계파 수장이었다.
꿋꿋하게 지난 세월 동안 직면한 위기의 순간에도 보란 듯이 의원직을 따냈고 장관까지 지냈다.
지금껏 살아남은 국회의원들 중 가장 큰 어른 축에 들었다.
당대표였던 이가 나국찬과 트러블이 생겨 탈당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특유의 냉칼찬 화법과 강한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확실히 호불호가 나뉘는 지지를 받았다.
그런 나국찬이 양우석에게 당대변인 얘기를 건넸다.
2선 의원에게는 적당한 제안이고 감투였다.
당대변이 되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국민들에게 쉽게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이렇다 할 흠이 없는 양우석은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다.
3선도 무난하리라 점쳐지며 그를 따르는 의원들도 많이 생길 것이었다.
진정한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계파 수장으로 성장할 발판이었다.
나국찬이 직접 뒤에서 밀어주겠다고 나섰다.
그런 만큼 나국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오늘 모임도 일련의 사안들과 연관이 있었다.
예기치 못하게 의원실로부터 호출을 받은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었다.
나국찬은 넌지시 장태산과의 인연을 물어왔다.
감춘다고 감춰왔지만 같은 지역 출신이라 덮어놓고 의심을 받았다.
양우석의 후원 계좌가 장태산과 연관된 그룹 임직원 명의로 채워졌다.
그렇기에 신경 써 관리한다고 관리해 왔던 장태산과의 관계.
어떻게 알았는지 능구렁이처럼 모든 걸 파악한 후 물어오는 나국찬.
양우석은 급한 대로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야만 했다.
계파와 사상이 다르던 당대표와 수십 명 의원들이 나국찬 눈 밖에 나면서 떨어져 나갔다.
새로이 개편되는 당에서의 대변인은 당대표, 원내대표, 당 사무총장과 함께 중요한 보직이었다.
대박 기회였다.
하지만 동시에 위기였다.
거부하면 찍힐게 확실했다.
나국찬이 어느 전말을 파악한 후 제안하는 일이었다.
수락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정치 생활이 골치 아파질 것이다.
장태산 회장에게 SOS를 쳤다.
흔쾌히 응해준 장태산.
그의 배포에 양우석은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최대한 정치권이나 언론의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왔던 장태산 회장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을 위해 직접 걸음해 줬다.
“큰일이라 하심은…….”
장태산 회장이 표정 없이 되물었다.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도 하시고 학벌도 훌륭하고. 게다가 변호사시지 않습니까. 당에서 청년비례대표로 밀기에 아주 적합한 인재입니다. 이 썩어가는 대한민국 정치권에는 장태산 회장님 같은 새 피가 필요합니다. 나 같은 늙은이들이 안심하고 정계를 물러날 수 있도록 큰일 하셔야죠. 그래야 조국과 민족의 앞날이 밝지 않겠습니다.”
노회한 정치인답게 감언이설을 그럴싸하게 내뱉는 나국찬 의원.
‘번지수 잘못 짚었네. 쯧쯧.’
양우석은 속으로 혀를 찼다.
어디서 장태산 회장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게 있는지 아는 체했지만 착각이 아주 대단했다.
나국찬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일개 대한민국 국회의원 자리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도 비례대표.
권력에 눈먼 다른 사람이라면 잔뜩 흥분해 덜컥 물었겠지만 장태산 회장은 아니었다.
노는 물이 달랐다.
장태산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당 사정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권력을 잡은 대통령과 고위 권력자들 모두 장태산 회장 눈치를 볼 정도였다.
양우석 의원이 암암리에 파악하고 있는 장태산 회장의 능력만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힘없는 소시민 한 사람을 이렇게 국회의원까지 만들고 오늘까지 이끌어 주고 있었다.
투자자 신분이었지만 그 수준이 세계적인 급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변했음을 전혀 모르는 듯한 나국찬.
과거의 정치 감각으로 새로운 세상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을 몰라봤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셔야죠. 전 작은 재주로 돈만 벌겠습니다. 그게 제 직업이고 취미입니다. 괜히 골치 아픈 일에 매이는 게 싫습니다.”
겸손하게 거절의 뜻을 밝히는 장태산 회장.
“그래요?”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나국찬 의원.
“…….”
룸의 분위기는 처음과 달리 조금씩 가라앉았다.
‘젊은 놈이 회장이라 불러줬더니…… 겁 대가리를 상실했나.’
나국찬은 내심 기분이 언짢았다.
다음 대 총선을 위해서 화려한 포장지가 필요했다.
청년 비례대표는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포장지의 한 예였다.
비례대표는 국회의원 신분을 갖게 되지만 주어지는 실권은 없었다.
국회에서도 당의 거수기 역할만 담당했다.
괜히 잘난 척하다가는 다음 대 선거에서는 국물도 없었다.
비례대표로 눈도장 찍어 지역 선거구 하나 꿰차면 그것으로 인생이 활짝 폈다.
특히 오늘 자리를 주선한 나국찬은 선거 전략에는 신출귀몰한 존재였다.
비례대표 몇 명 정도는 추천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만큼 자존심도 셌다.
지금은 무관의 야당 국회의원이었지만 여당 시절에는 호랑이 장관으로 불렸다.
대통령을 만들어낸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이었기에 무서운 게 없었다.
언론사 사주들을 비롯해 다방면으로 쓸 만한 연줄이 많았다.
지금도 야당 국회의원이지만 기업들 대관에서 항상 1순위였다.
그를 따르는 의원들도 그만큼 많았다.
나국찬이 힘을 쓰면 여당과 청와대에서 추진하는 사업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국찬 지역구에는 다른 곳보다 많은 예산이 떨어졌다.
알게 모르게 엮여 있는 공생관계.
꿀꺽.
나국찬 앞에서 편안한 자세로 자음자작하는 장태산.
인상이 좋지 않은 나국찬의 짙은 눈썹이 은근히 치켜 올라갔다.
아무리 봐도 건방졌다.
‘손을 좀 봐?’
과거에 키웠던 검사나 정치인들이 주변에 많이 남아 있었다.
언론사 고위 간부들과도 수시로 골프 모임을 갖고 있는 나국찬.
마음만 먹으면 저런 일개 투자자 대표 따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치워버릴 수 있었다.
“의원님.”
그때 조용히 나국찬을 부르는 장태산 회장.
“말하세요.”
능구렁이 정치 9단답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말하는 나국찬.
‘새끼, 쫄았구나. 흐흐흐.’
대부분 자신의 이런 포커페이스에 말려들어 제안한 바를 승낙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인간치고 정치인들에게 찍혀 좋은 꼴 볼 일이 없었다.
“담배 값 떨어졌습니까?”
“뭐라고! 다, 담배 값?”
***
담배 값이라는 노골적인 말에 나국찬 의원 표정이 가관이 됐다.
과거 시대를 살아온 국회의원이라 바로 알아들었다.
용돈의 다른 속어로 사용돼 왔던 담배 값.
동네 양아치들이 상인들에게 협박을 할 때 사용하던 중요 멘트가 ‘담배 값 보태 달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나국찬 의원 얼굴이 볼 만했다.
붉으락푸르락.
과거 생의 그를 좀 알고 있다.
2020년에도 국회의원이 되어 큰소리를 쳤던 인물.
정권을 잡은 후 더 크게 소리를 냈다.
조용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투를 버리지 못해 밉상이 됐다.
인상이 평범하지 않았다.
이제는 인생을 몇 번 돌아볼 나이임에도 여전히 식지 않은 욕망이 끓고 있었다.
그랬던 나국찬이 좀 일찍 날 찍었다.
티 나지 않게 엿을 먹였다.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는 꼴이 볼만 했다.
물론 양우석 의원 얼굴도 하얗게 질린 건 마찬가지.
조용한 저녁 식사 자리 정도면 참으려고 했다.
정치 자금을 요구했다면 양우석 의원을 위해 어느 정도는 합법적으로 지원해 줄 의사도 있었다.
기업들을 등에 업으면 돈 말고도 지원할 받을 선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감히 날 정치판에 끌어들이려 수작을 부렸다.
친구와 동료, 가족과 애완견까지 이용해 먹는 정치꾼들.
좋은 의도로 정치판에 발을 들였더라도 그 바닥에서 놀다보면 같은 물이 들어 타락해 버리는 자들이 많았다.
민주주의와 약자 보호를 모토로 하는 현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이 선택해 정권을 손에 쥐어줬지만 떡 조각 하나 더 먹겠다고 사분오열이 됐다.
정의의 탈을 쓴 타락한 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였다.
50보 100보라는 말이 제격일 정도다.
그들 중에서 취사선택을 아주 잘해야만 했다.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선 현명함이 필요했다. 100원 훔쳐 먹을 놈과 50원 먹을 자의 차이를 알 수 있어야 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나국찬이 본성을 드러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납게 으르렁거리지만 이제는 이빨이 다 빠져가는 사자.
성격이 불같다더니 사실이었다.
“이런 담배 값이 아니군요. 죄송합니다~. 화내지 마시고 좌정하십시오.”
진정한 강자는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 법.
“너……!”
급기야 손가락으로 삿대질까지 하는 나국찬.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개혁하겠다는 분이…… 치밀한 디자인도 없이 지금 날 만나자고 했습니까? 겨우 야당 국회의원 주제에?”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