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0
79장. 전설의 미대 누나
부우우웅 붕.
포르쉐의 날렵한 몸뚱이가 가볍게 움직였다.
한국대 합격하고 처음으로 등교하는 이 기분은……, 정말 특별했다.
이제 한국대라는 조직에 들어갈 정식 자격을 얻었다.
‘하’ 자로 세워진 한국대 정문이 오늘따라 웅장했다.
띠링!
정문을 통과했다.
자동으로 번호판이 인식되었다.
오늘은 신입생 예비 소집일이다.
한 번 가봤던 법학관으로 차를 몰았다.
큰 터에 세워진 학교답게 차가 없다면 골치 아플 것 같았다.
과거 생에 다녔던 지방대도 큰 편이었지만 딱 두 배 정도 더 부지가 넓었다.
“기운이 역시 좋아!”
관악산 산맥과 서기가 학교로 쏟아져 들어왔다.
누군지 몰라도 설립자가 대단한 풍수지리가의 조언을 얻어 터를 잡았음이 분명했다.
칠화(七火) 화기가 넘치는 관악산의 기운은 관악산 십토(十土)와 금(金)의 기운이 합쳐져 화생토, 토생금의 원리로 강력한 힘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금은 도끼와 같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기운의 응축이다.
보아하니 금의 기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구금(九金)의 기세다.
그런 구금의 힘이 모여 관악산 줄기에서 흐르는 육수(六水)의 수기와 합해진다.
한강이나 바다를 의미하는 일수(一水)와 같은 큰물과 엮이면 자칫 가생(假生)의 기운으로 꺾일 수 있지만 기가 막히게 작은 물의 도움을 받았다.
학교에 있는 연못이 구금의 힘을 섞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모인 육수의 기운이 관악산과 학교에 조경된 삼목(三木)의 기운을 받아 통기가 된다.
음양오행의 다섯 기운들이 원활하게 소통되는 천하의 명당이다.
이래서 대한민국 권력 상층부가 태어났다.
그런 기운을 쪽쪽 빨며 법대로 향했다.
게이트 1번에 위치한 규장각을 지나쳐 학교의 중심에 위치한 법학관에 도착했다.
법대가 잘나가는 이유가 또 보였다.
명당 중의 심처가 바로 법학관이다.
상서로운 기운이 법학과 주변에 보호막을 쳤다.
감탄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오늘 모임은 법학 2관 301호 대강의실이다.
주차장에 가볍게 차를 바쳤다.
겨울 방학 기간이었지만 두툼한 점퍼를 착용한 남녀들이 보였다.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며 따뜻한 겨울 볕을 쬐고 있다.
누가 봐도 법대생들 같았다.
고시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낭인이라 불리는 족속들이다.
법학과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모든 시선이 쏠렸다.
가볍게 패스하고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오! 뭐야? 차 죽이네~.”
“포르쉐 맞지?”
“누구야, 아는 애야?”
“우리 과는 아니겠지?”
“어머. 애가 완전 훈훈하네.”
동기들로 보이는 남녀들이 나를 보고 수군거렸다.
한국대 법학과 나왔던 전생 대학교 교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법대생은 태어날 때부터 조직과 친하지 않다고 말이다.
학과라는 타이틀보다 몇몇 친한 동기들 위주로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나도 다녀봤던 법대다.
다들 자존심만 하늘을 찔렀다.
조직에 순응하는 인물들보다 아웃사이더들이 많았다.
굳이 선배라고 먼저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
‘복장 좋고~.’
신입생 티를 좀 냈다.
하얀 운동화에 청바지에 니트, 그 위에 가벼운 오리털 패딩을 착용했다.
엄마가 직접 골라준 백화점 코디다.
2020년을 살다 온 나에게도 무난한 차림이다.
하지만 사람들 패션은 눈에 자꾸 밟혔다.
나에게는 과거라 불리는 2008년은 본격적으로 아웃도어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갭 같은 SPA라 불리는 해외 브랜드들이 인터넷 붐을 타고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2007년과는 또 다른 패션 흐름이다.
좀 더 미래와 가까워지는 코디의 시작이다.
뚜벅뚜벅.
어깨에 가벼운 가죽 가방 달랑 하나 메고 법학 2관으로 향했다.
나를 향한 시선들은 끊이지 않았다.
“진짜 신입이었어?”
“와아! 체교과도 아니고 법대생이 저렇게 체격이 죽여?”
“선배들~ 이제 긴장 좀 해야겠네. 저런 멋진 남자 후배가 들어오면 여자애들 눈 뒤집어지겠는데.”
“미란이 너도 그런 속물은 아니지?”
“선배! 속물이라뇨! 그냥 아름답고 멋진 건 그 자체로 인정하며 즐기는 거죠~.”
쉬고 있던 법대생들이 나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그들을 뒤로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낮 기온도 영하 5도에 머물 정도로 쌀쌀했다.
관악산 자락에 있기에 체감 추위가 더 강했다.
하지만 법학과는 빵빵하게 복도에 히터가 돌아갔다.
최근에 증축한 건물답게 난방이 우수했다.
복도 한쪽에 여러 대의 자판기가 놓여 있다.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가며 커피를 뽑았다.
2008년도에 핫하게 광고시장을 점령했던 빈이 형님이 선전하던 TOP가 보였다.
다른 커피들과 격조가 달랐다.
지이이잉.
기계가 지폐를 삼켰다.
볼 것도 없이 빈이 형님의 따뜻한 커피를 골랐다.
덜컹.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아직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1시간 일찍 나온 것도 법대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 커피 나도 하나 주시면 안 될까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밝은 여자 목소리.
캔커피를 들고 고개를 돌렸다.
‘이 분은 또 누구야?’
처음 보는 여자다.
그런데 느낌이 팍 전해졌다.
전설의 미대 누나???
정말 특이한 여학생이다.
일단 키가……, 175센티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쉽게 볼 수 없는 연예인급 아우라가 그녀에게서 풍겼다.
긴 머리칼은 대충 포니테일로 묶었다.
진회색 모자를 눌러쓴 채 나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도 길고 가늘었다.
남자들이나 착용하는 줄 알았던 국방색 야상점퍼를 걸쳤다.
옷뿐만 아니라 신발까지 그림물감이 묻었다.
겨울 첫눈처럼 피부가 새하얗다.
날 향해 웃는 가지런한 치아가 보기 좋다.
“그 캔커피를 파는 곳이 여기 법대 자판기밖에 없어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그녀는 나에게 알려줬다.
“법대생이세요? 흠, 내가 처음 보는데……, 그쪽 같은 훈남은 법대에는 없어요. 저기 이상한 아저씨들 보이죠? 법대생들은 학교에서도 노티 풀풀 풍겨서 금방 티 나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누가 봐도 아재인 학생들이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나도 그 노티 나는 법대생이다.
“여기요.”
캔커피 하나에 쪼잔한 내가 아니다.
“헤에~. 따뜻하다~.”
그녀는 캔커피를 받아들고 손으로 감쌌다.
“미대 실기실은 난방이 엉망이에요. 법대처럼 투자해주면 어디 덧나나. 이게 바로 차별의 전형적인 행태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름도 모르는 미대생 누나는 대화할 상대가 필요한 것 같다.
“핫팩 쓰세요.”
“그림 그리다 보면 잊어버려서 금방 손이 얼어요. 키에 비해 심장 용량이 딸리나 봐요. 초딩 때는 달리기 선수도 했는데.”
동문서답이 전문인 것 같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놓치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할 말 있으십니까?”
“몇 학번이세요? 체대? 아니면……, 경영?”
그녀의 눈빛은 호기심이 가득 찼다.
“먼저 그쪽부터 밝히는 게 대화의 기본 아닐까요?”
“손유리. 미대 서양화과 06학번이에요. 그쪽은요?”
예상대로 그녀는 미대 누나였다.
“장태산. 법학과 08학번입니다.”
그녀에게 들었던 대로 짧고 간결하게 답했다.
“08요? 뭐야? 그럼 신입생이세요?”
“네.”
내 대답에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여자들의 감정 변화는 대부분 눈에서 시작해 눈으로 끝난다.
미대생 손유리 또한 마찬가지다.
갈등의 눈빛이 보였다.
그러나 이내 뭔가 결심한 듯 눈빛이 확고해졌다.
“시간 진짜 빨리 흘러요~ 엊그제 입학한 것 같은데 벌써 08학번 후배들이 들어오네요. 마음은 아직 새내기인데 3학년이라니……, 너무 슬프죠?”
슬퍼? 뭐가?
30대까지 인생 빡시게 살다 회귀한 나에게 그녀의 투정은 귀엽기까지 했다.
3학년이 4학년이 되고, 그 다음에는 거친 세상에서 풍랑을 맞는다.
집안이 빵빵하면 모를까 다들 일엽편주에 몸을 의지한 채 살아가는 거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다.
“슬픈 것보다는 아직 대학 생활이 2년이나 남았다는 게 기뻐할 일 아닌가요? 학교라는 울타리가 주는 혜택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오! 뭐예요? 지금 신입이 선배에게 대학 생활에 대해 강의하는 건가요?”
손유리 학생에게 추가 호감 점수를 줬다.
미모에 더해 반말하지 않는 태도가 괜찮다.
나이와 학번이 높다고 반말하면 여자라도 딱 재수 없을 것이다.
“강의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죠. 허락된 이 짧고 귀한 시간을 미래 인생을 위한 값진 투자 기회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는 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신이 주신 공평한 생존의 시간이지 않습니까.”
“신입생도 법대생은 법대생이네요. 소개팅이나 미팅 가서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얼굴과 다르게 완전……, 노땅 같아요.”
맞다. 노땅.
몸뚱이만 08학번 신입생이면 뭐 하겠는가.
살아왔던 삶의 기억들은 그렇게 쉽게 날 어린애로 만들지 못했다.
“소개팅이나 미팅에 가서 이런 말할 멍청한 놈은 아닙니다.”
내가 바보냐.
흥에 겨운 자리에 가서 재 뿌리는 똘빡은 아니다.
“뭐야? 그럼 저에게만 그렇다는 거예요?”
“네.”
“왜요? 왜 나에게만 그러는데요?”
“슬프다기에 위로에 해당하는 적당한 조언을 던졌을 뿐입니다.”
“헐…….”
손유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날 봤다.
나도 시간 한가해서 그러는 거 아니다.
비록 학교에서는 선배지만 잘해야 두 살 차이다.
그녀는 충분히 호감을 받을 정도로 예뻤다.
말투나 행동거지도 천박하지 않았다.
이렇게 주고받는 대화도 좋았다.
사근사근한 말투가 서양화 화폭 속의 요조숙녀 같았다.
“초면에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무례? 초면? 풋~.”
내 단어 선택에 손유리는 짧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됐어요. 캔커피도 얻어 마시고 인생 조언도 듣고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성격도 쿨내 진동한다.
“미대 얼짱 손유리 아냐?”
“진짜? 오오오오! 맞네! 맞아!”
“흐흐흐. 오늘 계 탔다.”
법대생들이 한쪽에서 다가오더니 손유리에 대해 수군거렸다.
미대 얼짱으로 불릴 만했다.
연예인급 아우라는 아무나 소유하는 게 아니다.
“오늘 원수 갚아줄게요.”
“네?”
“핸드폰 줘 봐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손유리 얼굴을 바라봤다.
“뭐예요. 제 손 부끄럽잖아요.”
볼이 은은히 붉어지면서도 당당하게 그 사실을 말할 줄 알았다.
핸드폰을 건넸다.
띠 띠띠.
빠르게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까지 눌러보는 세심함을 보였다.
따라라 따라♫.
그녀 옷에서 왈츠풍의 경쾌한 벨소리가 들렸다.
“오늘 바빠요?”
“???”
“끝나면 연락해요. 나 오늘 저녁 한가해요~.”
# 8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