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74
74화
맞댄 입술은 부드럽고, 시원하고 또 좋은 향이 났다. 아무래도 얼굴에 열이 잔뜩 몰린 탓에 그의 입술이 차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시원함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조금 더 깊게 그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익숙하게 풍기는 민트 향은 내가 사심을 담아 준 치약을 그가 잘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씨이…. 어쩌지. 생각보다 더 좋다.’
진하게 키스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입술만 맞댄 뽀뽀인데 이게 이렇게 좋을 일이야?
나는 자연스럽게 붕 뜨는 기분에 꼴깍 침을 삼켰다. 질끈 감은 눈 위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이 풀려 잡고 있던 옷깃을 놓치기를 수 번, 나는 치마를 꾹 그러쥐고는 마지막으로 꾹 그의 입술에 도장을 찍었다. 쪽, 하는 경쾌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하아…….”
그에게서 떨어지자마자 긴장감에 참고 있는 줄도 몰랐던 숨이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다시금 뜨끈하게 눈가를 덥히는 열감이 영 어색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저지를 때는 좋았는데,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한담?’
방금까지만 해도 조용한 줄 몰랐던 공간이 지나치게 고요하게 느껴졌다. 숨 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상황에 나는 그저 머리카락의 끝을 매만지며 허공에서 찬찬히 눈을 굴렸다.
‘아무리 그래도 카르테인 공작이 너무 조용한데? 뭐지? 싫었나? 아니, 내가 너무 진도가 빨랐나?’
…아닌데?
내가 참을성 없이 무턱대고 일을 치르긴 했지만, 진도가 지나치게 빠른 건 절대 아닐 거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무도회장에서 눈 맞고 얼마 뒤에 결혼하는 세상 아닌가!
‘나 정도면 엄청 건전한 축이지!’
게다가 오늘도 뽀뽀만 했다고! 속에서 억울함이 치솟아 올랐지만, 그럼에도 차마 눈을 들어 카르테인 공작을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니, 힐끔 보긴 했는데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왱왱 소리를 내며 크게 울려서 빨리 시선을 내렸다. 턱이 꽉 물려있고 입도 일자로 굳어있더라고.
‘아냐. 당당하게 말하자, 나디아 골드게이트!’
본래 이런 건 배짱이 전부다. 나랑 카르테인 공작이랑 뭐, 분홍색 기류가 전혀 없던 것도 아니고 서로 옆에 누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질투가 날 정도로, 어?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나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용기를 내 나름의 변명을 내뱉었다.
“그, 뭐야. 헷, 헷갈릴 때는 입을 맞춰보면 안다고…….”
입에서 나온 말은 기껏 용기를 낸 의미가 없을 만큼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말을 내뱉은 것과 동시에 클로드 카르테인이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거든. 적어도 침묵이 깨진 게 어디야.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볼 위로 익숙한 온기가 느껴졌다. 카르테인 공작의 손이었다. 내 볼을 손으로 감싼 그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헷갈린다는 건, 무엇이?”
“…어, 감…정의 정도?”
사실 진짜 헷갈려서라기보다는 마음이 앞서서 그런 거긴 한데.
자신 없는 내 말을 들은 클로드가 그대로 볼을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부드럽게 이끌려 가며 눈을 깜박이던 나는 곧이어 허리춤에 닿은 손길을 느끼고 화들짝 놀라 몸을 튕겼다.
당연히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난 지금 소파에 눕듯이 앉아 있었고, 클로드 카르테인은 내 위에 있었으니까.
놀라면서 자연스럽게 마주한 공작의 눈은 여전히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단지 그 안의 감정이 평소보다 짙어 보였을 뿐.
“드디어 바라봐 주시는군.”
“어, 예에?”
“저를 보지도 않으시길래 무언가 감정의 변화라도 있던 건가 해서.”
저게 무슨 뜻인가 싶어 입을 달싹이던 순간, 허리춤을 감싼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다시금 입술이 닿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감정의 변화가 꼭 긍정적인 방향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카르테인 공작의 말을 들은 나는 간질거리는 기분조차 잊고 펄쩍 뛰었다. 아니, 저게 무슨 말이야? 공작님 왜 약한 소리 하세요?
“말도 안 돼! 제가 왜 공작님이랑 멀어지고 싶어 하겠어요! 감정의 변화가 있다면 그건, 그건!”
“그럼 더 깊어졌습니까? 얼마나?”
카르테인 공작은 언제 불쌍한 소리를 했냐는 듯 나지막한 웃음을 머금고 내게 속삭였다. 머릿속에서 다시금 경고음이 울렸다. 직전의 것과는 다른 이유로 울리는 거였다.
‘미치겠네! 이렇게 가까이에서 속삭이기 있기야? 손으로 허리 지분거리면서 목소리 낮게 깐 채 웃으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지? 뽀뽀 백만 번 해달라는 건가?’
두둥실 날아갈 것 같은 정신을 겨우 붙잡은 채, 나는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 집중.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방금 카르테인 공작이 뭐라고 했지? 감정이 깊어졌냐고 했던가?’
그래, 하도 정신을 빼놓고 있던 터라 가물거리지만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에게 대답할 거리를 고민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놓친 게 하나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시겠습니까?”
“…네? 그, 예?”
“그럼 한 번 더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바로 카르테인 공작의 인내심이었다. 뭐라고 답을 하기도 전 다시금 맞닿은 입술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흡, 하고 숨을 삼켰다.
코와 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 민트 향이 목 뒤의 솜털을 쭈뼛 서게 했다.
‘아니, 향 때문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 때문인가?’
알 수 없다. 직전에 내가 부딪쳤던 것과 다르게 이번의 입맞춤은 제법 열렬했으므로.
나는 점점 더 몸이 소파 속으로 깊이 파묻히는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그의 입맞춤에 호응했다. 허리를 감싼 팔이 단단하게 등을 받친 채 부드럽게 나를 옭아맸다.
숨이 찬다는 것은 변명으로 쓸 수도 없었다. 정신 하나 없는 와중에도 카르테인 공작이 틈틈이 숨을 쉴 시간을 마련해 준 탓이다.
“하…….”
얼마나 서로를 붙든 채 쪽쪽거리고 있었던 걸까. 카르테인 공작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촉촉해진 입술을 엄지로 부드럽게 훔친 그는 소파 때문에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내 머리를 살짝 매만지기까지 했다.
“이, 그. 공작님, 공작님 완전, 무슨.”
“음?”
“혹시 그, 안에 다른 자아가 있지는 않으신가요……?”
“예?”
“조금 전이랑 사람이 너무 달라서.”
그렇게 몰아붙이듯이 입을 맞춰놓고는 어떻게 그런 적 없다는 듯 얼굴을 싹 바꿀 수 있지? 머리 만져주는 다정한 손길이랑 표정만 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겠어!
손바닥 뒤집은 듯한 변화에 내가 입만 벙긋거리고 있던 찰나, 공작이 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핏 보면 위험 야릇해 보이는 자세와 달리 청량한 웃음이었다.
나를 잡아당기며 내 위에서 몸을 물린 그가 달게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일전에 그러지 않았습니까. 저는 사냥에 소질이 있다고.”
“으음.”
그랬던가?
머리를 굴려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약혼하기로 한 직후였나? 신의 영역에서 낯을 가렸던 나한테 그런 말을 했었지.
카르테인 공작은 기억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가볍게 마무리 입맞춤을 했다.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은 채 입을 열었다.
“제 앞으로 굴러 들어온 기회도 낚아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기회를 보며 참고 있었거든요, 저도.
귓가에 속삭였다는 말이 더 알맞은 그의 끝말에 얼굴이 재차 붉어졌다. 하, 여자 주인공 되게 어렵네.
나는 여자 주인공의 덕목에 ‘심장이 튼튼할 것’이라는 요건을 하나 더 적고는 슬쩍 그가 들고 있던 약병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거, 입술 부르튼 거에도 효과 있어요? 아무래도 내일 되면 부을 것 같아서.”
내 말을 들은 클로드가 재차 웃기는 했지만, 나는 무사히 그에게서 약병을 받아낼 수 있었다.
웃지 말라고 팔을 찰싹 때리자 웃음을 갈무리한 그가 나지막하게 내게 물었다.
“헷갈린다는 말을 하니 물어보는 건데, 혹시 제가 영애를 불안하게 했습니까?”
“어…….”
“나는 그대와 나의 관계가 제법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 감정적인 관계가 불안했던 건 아니고 자꾸 아슬아슬하게 깨지는 분위기가 영 짜증이 났달까?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냥 아래에서 올려다본 공작님의 입술이 여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바람에 그만.
“…나디아, 지금.”
“아, 세상에! 그……. 혹시 제가 입으로 말을 내뱉었나요?”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닌데! 멋쩍게 웃음을 흘리는 내 모습을 눈에 담고 있던 클로드가 슬쩍 자신의 입술을 엄지로 매만졌다.
“그렇단 말이군요. 자극이라.”
아, 잠깐만. 이런 대사와 분위기는 설마!
“그럼…….”
“공작님, 거기까지!”
나는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막으며 눈을 부릅떴다. 한 번은 이렇게 저렇게 잘 넘긴다 한들 로맨스에서 같은 장면이 두 번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말인즉슨, 지금 분위기를 타서 다시 그와 입을 맞추려고 해봤자 누군가가 방해를 하러 올 거란 뜻이지!
―똑똑!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나디아 님, 일전에 달튼 자작님이 건네주셨던 약을 드실 시간이 되어서요.”
역시.
트레이에 물과 약을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 줄리엔의 모습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카르테인 공작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거 보라는 듯한 믿음직한 미소는 덤이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주인의 모습과 영 수상한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줄리엔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 또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만……. 갈데온 영식 때문에 무산된 일로 타냐와 에이포드가 어쩌면 좋을지 여쭤봐 달라 하던데요. 뭐라고 답을 주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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