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아주 흥미롭게도 우리의 스위트 리틀 키티, 헤겔이 입에 담은 사람은 ‘로드릭 헤링본’이 맞았다. 허물없이 이놈 저놈 그러기에, 정보를 캐내려면 공수가 제법 들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헤겔 갈데온이 두려움 속에서도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 로드릭 헤링본과 관련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은 덕이다.
‘로드릭 헤링본? 지금 로드릭 헤링본이라고 했습니까? 영애가 그 새, 아니 놈을 어떻게 알아요? 그 개 같은 놈이 갑자기 클럽 멤버들을 북부로 초대하더라고요. 자작이 된 이후로 뭐, 대접을 못 했다나?’
‘뭐? 영애가 골드게이트 영애라고요? 하, 씁. 진짜 똥 밟을 뻔했네. 그 새끼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해주는 말인데, 영애도 조심해요.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놈이 영애를 사교계에서 끌어 내리려는 일에 관심이 많더라고. 지저분한 말이나 짓도 안 가려요, 걘.’
근래 로드릭이 자꾸만 내 주위를 알짱거린단 말이지. 그게 제법 내 신경을 건드렸다.
아니, 소피아 일라리아와 사이가 안 좋아진 상황에서 갑자기 내 주위를 맴도는데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갑자기 초콜릿 같은 거나 보내고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말로는 누나의 무례를 사과한다고 그러더니, 뒤에서는 이렇게 나를 끌어 내릴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았나.
소피아 일라리아와 둘이서 짝짜꿍을 한 것인지, 단독으로 벌인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괜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 면에서 헤겔이 준 정보는 단편적이었지만, 꽤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헤겔 갈데온이 한 말을 정리하자면, 로드릭 헤링본이 충성 서약 때 날조된 소문들을 그대에게 끼얹으려 했다는 말이군요. 그걸 구실 삼아 그대와 나의 약혼에 오점을 남길 계획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 거겠죠?”
“다른 이도 아닌 황태자 저하까지 끌어들여서.”
명료하기 그지없는 그의 요약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클로드의 말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다만, 그의 말에 긍정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나는 소파에 몸을 반쯤 묻은 채 시원한 레몬차를 집어 들었다. 물이 찰랑거리며 얼음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제법 청량했다.
“돌고 돌아 다시 ‘왜’예요.”
왜 로드릭 헤링본이 갑자기 이러는가. 내가 그와 무슨 연관이 있다고.
나는 타냐가 아니었다면 로드릭 헤링본이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했을 거다. 소피아 일라리아의 남동생이라는 것 정도는 나중에 알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가 다른 지역에서 사람을 부를 정도로 원망이 쌓일 관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답은 소피아 일라리아라는 건데…….’
헤겔이 술술 불어준 사건과 소피아 일라리아는 분명 어떠한 관련도 없었지만, 정말 그녀가 여기에서 무관할까?
하긴, 지금 이상한 게 그거뿐이겠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이상한 그의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로드릭 헤링본 꽤 잘나가는 사업가라면서요?”
사업이라는 거, 머리도 빨리빨리 굴러가고 눈치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외부에 대한 반응성은 높이되 위험은 최대한 적게 가져가는 게 사업의 기본 아니냐고.
‘그런데 왜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 거야.’
이건 누가 봐도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계획이었다. 길에 지나가는 아이를 앉혀 놓고 설명을 해도 말도 안 된다며 비웃을걸?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그리며 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헤겔 갈데온이 헤링본 자작의 계획을 미리 말해 주지 않았더라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거예요. 이 정도 소문과 방해로 내 평판에 흠집을 낼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특히 황태자 전하와 내가 실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그랬다. 제대로 된 근거도 찾을 수 없을 텐데,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악의적이지 않나.
게다가 황태자 전하께서 관련되어 있다면, 내가 뭘 하기도 전에 황실에서 먼저 발 벗고 나설 거다. 그럼 아주 당연한 순서로 폐하의 진노와 차기 황제의 미움을 사겠지.
‘얻는 건 없고 잃을 것만 잔뜩 있어. 심지어 내가 일을 잘만 수습하면 이번 일로 내 자리를 더 공고하게 다질 수도 있잖아. 그 둘의 영향력은 줄이면서 말이야.’
마치 소피아 일라리아가 일전 꾸렸던 티 파티 때와 엇비슷한 기분이 다시금 들었다. 권력을 쥐기 쉬운 길을 마다하고, 질 게 명백한 싸움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걸어온다는 것.
‘물론, 로맨스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사랑이 만능 치트키니까, 이 모든 게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런 거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아, 묘하게 찝찝하단 말이야.’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혼자 혀를 차고 있을 때쯤, 옆에서 클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디아 그대의 말처럼 의도가 확실하지 않으니,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면으로 차단하기보다는 대비가 더 중요하겠군요. 그 자리에서 상황을 즉각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대비가.”
“네, 그렇게 하죠. 황태자 전하께도 미리 연락을 넣어드려야겠어요.”
“나는 그대와 관련된 소문들을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레몬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는 사이 옆에서 무언가를 부스럭거린 클로드가 다시금 가볍게 나를 불렀다.
“나디아.”
“네?”
“헤링본 자작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은데…. 그럼 이제 턱을 보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턱? 무슨 턱? 내 턱?
갑작스럽게 바뀐 주제에 내가 멀뚱히 눈만 깜박이고 있자, 클로드가 초록색의 작은 통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손자국이 남지 않았습니까.”
카르테인 공작의 목소리는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일순 내 턱에 아주 심한 멍이라도 들었나 싶어 손으로 턱 부분을 매만지게 될 정도였다.
무의식적으로 턱을 건드린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에이, 누가 보면 진짜 심하게 아픈 줄 알겠어요. 그냥 피부가 약해서 붉은 기가 남은 거지, 자국도 거의 없는걸요? 헤겔이 힘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애초에 줄리엔이 화를 냈던 것도 상황의 탓이 더 컸지, 내가 상처를 입어서는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당장 아이작 달튼을 불러서 내 진료를 맡겼겠지.
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진짜 아무렇지 않다고 하자, 클로드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렇습니까?”
“네, 그럼요! 이젠 붉은 기도 거의 없을걸요? 놔두면 분명 알아서……. 공작님?”
천이 사부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카르테인 공작 모양으로 그림자가 졌다는 말일까요? 잘 읽히지 않아서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꾹 입을 다물고 꼴깍 침을 삼켰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기도 했다. 물론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있었으니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카르테인 공작의 얼굴에 내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어….”
“잠시 보겠습니다.”
나는 아직 쥐고 있는 레몬차를 더 꽉 쥐며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클로드 카르테인이 보겠다고 말한 건 분명 일전에 길거리에서 날 살폈을 때와 같은 의미였다.
그러니까, 성적 의도 따위는 한 톨도 담기지 않은 그런 행동인 건데…….
‘아, 왜 또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난!’
희미하게 들리는 그의 숨소리도, 내 턱과 볼을 부드럽게 감싼 온기도 상당히 신경 쓰였다. 간질거리며 턱을 꼼꼼하게 매만지는 손길조차도 어쩐지 잘 느껴져서 나는 꾹 숨을 참았다.
‘심호흡해, 나디아. 문제는 담백한 의도와 손길도 불순하게 받아들이는 나지, 카르테인 공작이 아니니까.’
봐라! 저 진지함이 가득 담긴 주황색 시선을. 나는 담백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얼굴 곳곳을 훑는 그를 보며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흠.”
“괜찮죠? 아무 문제 없을 텐데요!”
“희미하게 실핏줄이 터진 게 보입니다.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하셨지만, 글쎄. 약은 바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연고가 지금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예에? 그, 그럼 제가 직접……!”
얼핏 다급함까지 느껴지는 내 말에도 클로드는 단호했다.
“이런 건 타인이 발라주는 게 더 확실합니다. 게다가 나디아 그대의 몸에 그런 놈의 자국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합니다.”
“……공작님 지금 저 꼬시는 거예요?”
내 말에 바람 빠진 웃음을 지은 그가 손가락으로 초록 통에서 약을 덜어 냈다. 그러고는 왼손으로 반대편 뺨을 감싼 채 고개를 틀어 턱에 넓게 약을 발랐다.
차가운 약이 피부에 닿았다가 그와 내 피부 온도에 뭉근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 영 오묘했다. 나는 혼자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다 입안의 살을 이로 살짝 물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또 억울해지네!’
저런 말을 하고 혼자 진지하게 약을 바른다고?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이렇게 관계가 진전되나 하면서 혼자 설레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게 몇 번째냐고.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는 이 거리에서 결국 나 혼자 착각하고 매번 상황이 종료되잖아!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방해하러 와서 후다닥 떨어지거나.’
그런 장면이 로맨스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지극히 평범한 상황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 혼자 설렜으면 된 거 아니야?’
설렘도 도가 넘으면 속이 상하기 마련이다. 게임에서도 레벨이 오르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않나.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생각에 내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을 때였다.
“됐습니다. 이 약은 줄리엔에게 넘길 테니, 잊지 말고 매일…….”
“공작님.”
“음?”
나는 유난히 아름다워 보이는 그의 주황색 눈을 똑바로 마주하다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지? 할까? 말까?’
예전에 봤던 말이 하나 있다.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는 하라고.
아니, 그 반대였나? 아무튼. 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옷깃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들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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