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47
* * *
“지금, 뭐라고?”
한 자 한 자.
말에 힘을 주어 내뱉는다.
그만큼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에 대해 잘 알고, 그 무게감을 잘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넌 그게 뭔지 알고 말을 내뱉는 거냐?”
“안다.”
“탑의 멸망을 일으킬 대재앙. 훗날, 탑에 거주하는 플레이어와 랭커의 절반을 죽음으로 내몬 전쟁.”
“하…….”
오딘이 이마를 짚으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역시 진짜로 벌어졌군.”
잠시 말없이 눈을 감고 있던 오딘이 다시 유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그런 걸 왜 일으켜야 한다는 거지?”
“이미 벌어진 역사는 바꿀 수 없고, 라그나로크는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할 수 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야…….”
유원의 말에 오딘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랫동안 속에 꽁꽁 숨겨 두고 있던 불안감이 발가벗겨져 표정 위로 드러났다.
그 불안감의 정체를, 유원은 알고 있었다.
“넌 싸우고 싶지 않겠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거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거인과 인간.
종족 간의 싸움은 단순히 길드끼리의 싸움과는 다른 문제였다.
이미 양 종족 간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었다. 또한, 그것은 오딘이 쌓아 온 업보이기도 했다.
“수르트의 생각은 다를 거다. 아스가르드와의 싸움으로 잃어버린 자식들이 몇인데. 그를 설득할 자신이 있나?”
“해 낼 거다.”
“해 내고 싶은 거겠지.”
정정된 자신의 말에 오딘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반응에 유원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딱히 위협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방 안이 가득 차, 꽉꽉 막힌 기분이었다.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피를 흘리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반복된 대답.
유원은 그 대답에 이그드라실을 담은 황금으로 번쩍이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부유하고, 평화로운 나라.
아스가르드는 이 나라를 만들었고,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그 안일한 평화주의가 이 나라를 망친 거다.”
그 끝은 결코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곪아 썩어가는 상처를 터트리는 게 무서워, 계속 방치한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나을 거라 기대하고?”
오딘은 입을 열지 않았다.
반면, 유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거인족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 더 많은 힘을 비축하고, 아스가르드 역시 그 싸움을 대비하고 있지.”
“……별 걸 다 알고 있군.”
“네가 말해 준 거다.”
오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직접 한 말이라고 하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더욱이 유원의 말은 지금껏 자신이 걱정하고 있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 내고 있었다.
“싸움의 준비가 더 완벽해질수록 싸움의 판은 더 커지겠지. 그렇게 되면 더 많은 피가 흐를 거다. 막을 수 없는 싸움이라면 최소한의 피해로 끝내야지 않겠어?”
“그래서 지금…… 나 보고 전쟁을 일으키라고?”
오딘의 눈동자에 의심이 떠올랐다.
다짜고짜 찾아와 전쟁을 일으키라니.
그것도 라그나로크처럼 큰 전쟁을, 유원은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두면 싸움은 더 커지기만 할 거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애초에 시작되지 않을 수 있는 싸움이기도…….”
“넌 다 좋은데 그게 문제다. 물러 터진 거.”
유원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뱉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은 부딪쳐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 네 나라가 망가질 뿐이야.”
고개를 돌린 유원의 시야에 시들어져 가는 이그드라실의 나뭇잎 한 줄기가 보였다.
“그러기를 바라는 녀석이 있으니까.”
오딘의 시선이 유원을 따라 움직였다.
이그드라실.
세계를 관통하는, 이 탑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나무.
그 나무의 나뭇잎 하나가 썩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백 년 전의 일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라그나로크를 조종하고 있다는 거냐?”
“그 누군가가 누군지, 너는 알고 있다고 들었다.”
“이름은 몰라. 다만, 놈이 기간토마키아를 계획했다는 건 알고 있지.”
“라그나로크도 마찬가지다.”
긴 고민 끝.
오딘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생각할 게 많을 것이다.
유원이 정말 시계태엽의 주인이 맞는 건지.
맞다면 자신의 편이 맞는 건지.
라그나로크가 일찍 벌어지는 게, 정말 더 나은 선택인 건지.
유원도 지금 당장 오딘이 결단을 내리길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고민을 하게 한 정도면 충분했다.
“마음대로 해라.”
당장 오딘과 해야 할 이야기는 끝났다.
이후부터는 오딘의 결정이 끝나고 해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드륵-.
자리에서 유원이 일어나고.
그런 유원에게 오딘이 입을 열었다.
“생각이 정리될 동안은 여기 있어라. 어디 가지 말고.”
“오래는 못 기다린다.”
어리석은 혼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지금부터 하루하루의 시간은 금보다도 귀했다.
시간이 일분일초가 더 허비될수록 더 많은 피가 흐르게 될 테니까.
“만약…….”
막 방을 벗어나려는 유원에게, 고민이 묻어난 오딘의 말이 이어졌다.
“라그나로크가 벌어진다면, 넌 어쩔 생각이지?”
“싸울 거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려고 왔으니까.”
“라그나로크 속에서 너 한 명 정도는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나 다름없다. 네게 이 거대한 전쟁의 판도를 바꿀 능력이 있나?”
“없다.”
허무하리만치 쉽게 나온 대답.
알고는 있었지만 오딘은 내심 유원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 꺾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아직은 말이지.”
유원의 말은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 판에서 클 거다. 다시 앞에 설 수 있을 만큼.”
끼익-.
문이 열리고, 유원이 밖으로 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방 안.
한참 동안.
정말 한참 오딘은 유원이 나간 방문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다시’라…….”
* * *
웅-.
복도를 걸어가던 유원의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저 멀리 가드와 리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에 걸려 온 번호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왜.”
-오딘은 만났냐?
손오공이었다.
아무래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한 게 많았던 모양.
그렇지 않아도 황금 성에 따라오겠다는 손오공을 떼어 놓고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만났다.”
-어떻게 됐냐?
“고민하는 모양이다. 꽤 많이.”
-하여간 짜식. 쓸데없이 생각만 많아서는.
“없는 것보다는 낫지.”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 거 맞지?
“잘 아네.”
한동안 키트 너머로 성질을 내는 손오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원은 혹시라도 소리가 밖에 새어 나갈까, 유원은 잠시 손으로 플레이어 키트를 틀어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손오공의 난리발광이 끝이 나고.
-그렇게 그 꼬장꼬장한 녀석이 어디 쉽게 결정을 내리겠냐?
이제야 제대로 된 질문을 해 왔다.
유원은 창틀에 몸을 기댄 채 바깥으로 보이는 발할라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쉽지 않겠지.”
-그럼 역시, 아무래도 발두르에게 더 집중하는 게…….
“내가 바꿔야 할 건, 라그나로크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아니다.”
했던 말의 반복.
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반복해 말해야 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었다.
라그나로크를 막을 방법은 없다.
불가능한 최선은 그냥 불가능일 뿐이다.
그렇기에 유원은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승자를 바꾸는 거지.”
라그나로크의 승자를 바꾼다.
싸움에서 패배로 끝나 멸망한 아스가르드.
그 싸움의 결과를, 승리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애초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이었다.
-가능하겠냐?
“어렵겠지. 그래도 뭐, 나 혼자도 아니고.”
제천대성에 평천대성이 있다.
적어도 이 두 사람만은 분명한 자신들의 편이었다.
“방법은 많다. 해 나가 봐야지.”
-또 뭔 수를 쓰려고?
“일단 그쪽이나 신경 써라. 연락 주는 대로 바로 움직일 수 있게.”
-……아, 네.
“끊는다.”
통화는 필요한 만큼만 짧게.
이야기를 마친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를 다시 집어넣었다.
기다리고 있던 가드와 리드에게 다가가자, 두 사람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지, 진짜 오딘 왕을 만나고 오셨어요?”
아무래도 유원이 정말 오딘을 만났는지가 궁금한 모양.
오딘은 플레이어는 물론, 랭커들조차 한 번 만나 보기를 소원할 만큼 이 탑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한동안은 여기서 머물 거다.”
유원의 대답에 리드가 물었다.
“황금 성예요?”
“허락은 받았다. 아마 오래는 안 있을 거다.”
“와…….”
허락을 받았다는 건, 오딘을 만났다는 뜻.
두 사람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유원은 고개를 돌렸다. 괜히 마주쳐 봤자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곳에.
스윽-.
복도를 지나다니던 랭커들과 유원의 눈이 마주쳤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게 아니었다.
지나다니던 랭커들이 모두 유원을 보고 있던 것뿐이지.
“너도 봤지?”
“어. 봤어.”
“눈으로 사람 죽일 기세던데?”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 어느새 가드와 리드 역시 유원을 노려보던 랭커들의 시선을 발견했다.
만약, 조금의 시빗거리만 있다면 금방이라도 무기를 빼 들고 덤벼들 것 같은 눈빛이었다.
‘꽤 정신없겠군.’
앞으로 유원은 며칠 동안 이 성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유원은 저런 랭커들과 계속해서 마주치며 지내야 했다.
한동안 황금 성에 머물러야 한다는 건, 그동안 계속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잘됐나.’
그렇지 않아도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뭘 계속 봐?”
유원이 시선이 피하지 않자, 한참 동안이나 유원을 노려보던 랭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얼굴에 흉터가 잔뜩 난, 험상궂게 생긴 여전사였다.
쇄골 위쪽에 새긴 날개 문양.
그녀는 아스가르드의 발키리 중 한 명이었다.
‘무슨 동네 깡패도 아니고.’
시비를 걸고 싶어 기회라도 엿보고 있었던 모양.
그리고 유원은 그 시비를 굳이 피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기왕 시비를 걸 거면, 혼자로 되겠어?”
오히려 이 정도 작은 다툼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친구도 더 데려 와라, 꼬맹아.”
빠직-.
발키리의 이마에 힘줄이 생겨났다.
뒤에서는 가드와 리드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달달 떨었다.
심상치 않은 공기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그렇지 않아도 유원의 방문을 주목하고 있던 랭커들은 소란을 금세 알아차렸다.
모여드는 시선과 발걸음.
유원은 그들을 의식하며 생각했다.
‘라그나로크는 결국 오딘의 아스가르드와 수르트의 무스펠하임이 중심이 되어 치러지는 싸움이다.’
힐끗-.
유원의 눈에 눈앞에 있는 발키리와 같은 날개 문양이 새겨진 여러 발키리들이 보였다.
‘결국 그 싸움의 선두에 서고, 발언권을 키우기 위해서는 발키리들의 인정을 받는 수밖에 없다.’
의도치 않게 부여된 랭킹.
그리고 그에 따른 랭커들의 반발과 호기심.
처음에는 그것이 쓸데없고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덕분에, 이런 무대가 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유원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한 황금 성의 분위기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서열 정리부터 해 놔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