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33
* * *
열두 가지 과업.
올림포스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였다.
열두 개의 모든 과업을 해결한 자는, 올림포스의 영웅이 된다고.
이름은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었던 건, 헤라클레스에게서였다.
“열두 개의 과업. 그땐 정말 죽을 뻔했지.”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몸통만 한 크기의 술병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꿀꺽꿀꺽 들이켰다.
반은 마시고 반은 흘리는 술. 꽤 취했다 싶어 유원은 그만 마시라 했지만, 추억을 안주 삼은 술판은 쉽게 끝나지 않는 법이었다.
“케로베로스 왕, 히드라, 황금사과……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었지.”
말이 많아졌다.
어지간하면 잘 취하지 않는 헤라클레스였지만 한 번 취하면 말리기가 어려웠다.
이미 지나간 과거사.
하지만 이럴 땐 그냥 들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 제일 어려웠던 건…….”
“하아-.”
의자에 뒤로 몸을 뉘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빨랐다.
‘갑자기 일정이 이렇게 앞당겨진 건 아마도…….’
변수라면 하나뿐이었다.
‘나 때문인가.’
올림포스 부수기.
제우스의 숙청과 뒤바뀐 세력 구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문제들.
제아무리 똑똑하고 아는 게 많은 랭커들이 모였어도 이가 빠진 탑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무너질지까지 알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이렇게 빨리 열두 가지 과업이 시작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 번 통과했던 시험이다.’
하지만 당시 헤라클레스는 지금보다 랭킹이 높았다.
열두 가지 과업을 시작했던 것 역시 헤라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가 원해서 했던 일이었고.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생각은 다 끝났냐?”
아무래도 침묵이 좀 길었던 모양이었다.
하르간의 물음에 유원은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대충.”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왜 나지?”
올림포스 안에는 여러 실력자들이 있었다.
뭣하면 하데스가 직접 움직여도 될 테고, 포세이돈이나 아폴론 남매도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
유원은 확실한 이유를 원했다.
“넌 그래도 헤라클레스 형님과 친분도 있고. 실력도 있고…….”
잠시 머뭇거리던 하르간이 머리를 긁적였다.
“무엇보다, 너한테 부탁하면 뭐든 실패할 것 같지가 않거든.”
그만큼 확실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소리.
확실히, 랭킹만 놓고 보면 현재 유원은 하데스와도 엇비슷한 위치였다.
길드의 수장인 하데스가 움직이는 것보다는 외부인인 유원이 움직이는 게 훨씬 나은 상황.
“보수는 충분히 챙겨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또, 정 하나만 보고 부탁하고 그런 양아치들은 아니라서.”
“얼마지?”
“500만 포인트.”
“500만…….”
엄청난 액수였다.
그만큼 올림포스 측에서 유원의 가치를,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가치를 높게 측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고.
‘그만한 포인트를 얻으면 당장에 할 수 있는 게 적지 않다.’
포인트는 여러 쓰임새를 지니고 있었다.
가치 있는 아이템의 구매, 세력의 확장, 용병, 포인트를 이용한 협상.
500만 포인트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했다.
그 때문에 탑에서는 포인트만 있으면 신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까지도 나돌 정도.
그래서 유원도 살짝 고민이 됐다.
하지만.
“포인트 말고, 다른 걸로 하지.”
“다른 원하는 거라도 있나?”
“아테나의 아이기스.”
“아이기스?”
하르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곤란한 요구였다.
“그건 아테나 누나가 가지고 있는 건데…….”
“정 뭣하면 헤라의 구원도 상관없다.”
“야 인마, 그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하르간이 이를 바득 갈았다.
아테나의 아이기스.
그리고 헤라의 구원.
둘 모두 올림포스를 상징하는 아이템들이었다. 포인트가 있어도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이며, 그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올림포스의 긍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템을 보상으로 요구하다니.
“500만 포인트에 비하면 싼값 아닌가? 아이기스나 헤라의 구원이나, 둘 다.”
“그게 어디 포인트로 환산할 수 있는 물건들이냐?”
“아이기스는 둘째 쳐도, 헤라의 구원은 이제 상관없는 물건이 될지도 모르지.”
하르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제 상관없어진다는 말은 즉, 헤라의 구원이 더 이상 올림포스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곧.
“그렇게 안 만들 거다.”
올림포스의 내전.
혹은, 외부와의 질긴 싸움을 의미했다.
어쩌면 헤라는 우려하는 대로 반란을 준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가능한 그쪽으로 넘어간 랭커와 플레이어들을 다시 이쪽으로 끌어들일 거다. 힘이 약해지면 먼저 포기할지도 모르지.”
“왠지 그렇게 쉽게는 안 풀릴 것 같단 말이지.”
“그런 말하지 마라. 네가 그렇게 말하면 왠지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그러냐?”
유원은 남아 있는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어쨌든 하르간을 만나서 할 이야기는 대충 마무리되었다.
이제 휴식은 끝이었다.
“어쨌든 정해지는 대로 알려 줘라. 아이기스든, 헤라의 구원이든.”
“의뢰는? 받는 거냐?”
“아마도.”
“아마도?”
드륵-.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 확실하게 듣고 싶으면, 그쪽에서도 확실하게 말해 주든가.”
“야야, 이러기냐?”
“정 하나만 보고 부탁하는 양아치 아니라며?”
“…….”
“그럼 난 간다.”
유원이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멀리서 하르간이 머리를 쥐어뜯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히 머리가 아픈 모양.
아마 이제부터 그는 유원이 말한 대로, 아이기스나 헤라의 구원을 구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닐 것이다.
‘열두 가지 과업이라…….’
헤라가 내린 과업은 모두 열두 가지.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해, 유원은 한동안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기억을 뒤집어야 했다.
‘어디서 제일 시간을 많이 썼었지?’
혹시나 해서 하르간과 대화 도중, 헤라클레스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키트를 통해 문자를 남겨 두었다.
그런데 역시나, 헤라클레스는 키트를 통한 연락을 받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직접 발로 뛰어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술주정이라 생각해 흘려 들었던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유원은 당시의 일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렸다.
“가장 어려웠던 거?”
그래도 다행이었다.
술주정이기는 하지만 퍽 좋아 보였던 헤라클레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유원은 가장 어려운 시험이 뭐였냐고 물었다.
“케리네이아를 찾는 거였지.”
“고민도 안 하는 걸 보니 많이 강했나 본데.”
“아니. 빠르긴 했지만 강하지는 않았어.”
“그럼?”
“잡는 데 오래 걸렸거든.”
당시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지,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암사슴 케리네이아.’
케리나이아.
전설 속에 등장하는 황금 뿔과 청동 발을 지닌 괴물.
말이 괴물이지 케리네이아는 괴물이라기보다는 신수(神獸)에 더 가까운 녀석이었다.
몇 마리 사냥한 적 있는, 아르테미스조차 쉽지 않은 사냥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 둔한 녀석이 잡기엔 터무니없는 녀석이지.’
헤라클레스는 괴력가였다.
높은 랭킹의 하이랭커답게 속도도 제법 뛰어났지만, 그의 스탯은 완벽하게 한쪽에 치우쳐져 있었다.
반면 아르테미스는 민첩함에 있어서는 올림포스에서 최고로 꼽히는 하이랭커.
그런 아르테미스조차도 사냥이 어려웠던 게 바로 케리네이아였다.
‘그게 아마 세 번째 과업이었을 테니까…….’
과업이 시작된 게 며칠 전의 일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히드라를 사냥하고 있을 터.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목적지를 정한 유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 *
어깨에 붕대를 동여맨 채, 헤라클레스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독이 강했다.
‘마지막 머리 때문인가.’
히드라.
9개의 머리와 독을 지닌 괴물.
야마타노 오로치와 늘 비견되던 녀석은 아직까지 누구에게 잡히지 않은 채 존재해 왔다.
야마타노 오로치와는 달리 딱히 도시에 큰 피해를 입히거나 하지 않았던 덕분에 어느 랭커나 길드에서도 토벌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 그 강함이 제대로 열려져 있지 않았는데.
“후우-.”
다행히 헤라클레스는 홀로 히드라를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거대한 산에 파묻힌 녀석의 시체는 아마 영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지익-.
급히 동여맸던 붕대를 찢었다. 피가 조금 흐르긴 했지만, 이미 상처는 거의 아물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상처는 거의 입지 않았다.
이빨 자국 하나.
그게 바로 이번 싸움에서 헤라클레스가 입은 상처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상처 하나가 문제였다.
‘독에 대한 내성이 부족했나.’
독.
그게 바로 히드라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다행히 독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가진 게 몸뚱이뿐이어서 그럴까.
헤라클레스의 무식한 체력은 히드라의 독을 별다른 해독제 없이 견뎌 내고 있었다.
‘쉴 틈이 없다.’
비틀거림도 잠시.
헤라클레스는 곧장 37층으로 향했다.
산과 들판, 딱 두 개만 존재하는 세상.
엘프족과 정령계의 정령들만이 거주하는 그곳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자리에 잠시 주저앉았다.
“후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독이 빠르게 퍼졌다.
휴식이 필요했다.
잠시 자리에 주저앉은 헤라클레스의 눈에 드넓은 평야가 들어왔다.
‘케리네이아…….’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사슴 한 마리.
괴물도 아니고 신수라 불리는 걸 보면 보통 녀석은 아닐 것이다.
그 아르테미스조차도 몇 마리 잡지 못했던 걸 보면 말이다.
“이 녀석은 어디서 찾는다.”
차라리 히드라와 다시 한번 싸우는 게 낫지.
이런 시험은 딱 질색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잠시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 대(大)자를 그리며 드러누웠다.
잠시 몸을 쉴 겸, 머리를 굴려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일찍도 온다.”
스윽-.
헤라클레스의 몸 위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슬며시 눈을 뜬 헤라클레스는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생각보다 훨씬 일찍 왔네.”
그림자의 주인은 미리 헤라클레스가 올 걸 알고 기다리고 있던 유원이었다.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렇다는 건 벌써 네메아의 사자와 히드라를 쓰러뜨렸다는 뜻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답지 않게 유원을 경계하며 물었다.
“누가 보냈냐?”
“올림포스에서.”
“……역시.”
순식간에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잠시 머뭇거리던 헤라클레스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돌아가라. 용건이 뭔진 알겠지만, 들어줄 생각 없으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원은 그리 당황한 눈치가 아니었다.
올림포스와 뭔가를 함께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연락을 받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게 필요할 텐데?”
스윽-.
유원이 인벤토리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거라니.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밖으로 꺼내진 유원의 손으로 향했다.
이윽고.
“그거…….”
헤라클레스는 유원의 손안에 들려 있는 황금 뿔을 발견했다.
“설마, 케리네이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