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32
* * *
이른 아침.
와삭-.
유원이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창밖은 아직 밝았다. 마계와는 달리 하늘의 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푹 쉬고 나니 몸과 정신이 좀 개운해졌다. 꽤 오랜만에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마왕군에서의 대접 덕분이었다. 유원은 하늘의 도시에 눌러앉아 며칠 휴식을 취했다.
‘오늘 중으로 슬슬 움직여야겠군.’
이번 천마대전을 위해 빠르게 달려왔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쉬지 않고 시험을 치렀고, 결국 천마대전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먹고, 자고. 또 먹고, 또 자고.
그렇게 며칠 시간을 보내니 무겁던 머리도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렇게 여유로운 마지막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웅, 웅-.
식탁 위에 놓아 둔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하르간]키트 위에 떠오른 이름에 유원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이 전화를 받으면, 모처럼 얻은 여유가 박살이 될 것 같아서였다.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울림. 유원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야! 대체 뭔 일이냐?
귀에서 키트를 멀리 떨어뜨려 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르간은 역시나 처음부터 목청을 높였다.
“일은 무슨 일?”
-네 랭킹 말이다. 아직 확인 안 해 봤어?
“랭킹?”
유원이 플레이어 키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끊어 봐라.”
틱-.
서둘러 전화를 끊은 유원이 플레이어 키트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르간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유원의 랭킹이 처음 랭킹에 등록되었을 때.
랭커도 아닌 유원이 랭킹에 등록된 건,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유원의 랭킹이 올라가더라도 하르간은 따로 연락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더 놀랄 거리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대체 랭킹이 어떻게 됐길래…….’
랭킹을 검색해 본 유원은 그답지 않게 잠시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높아져 버린 랭킹 때문이었다.
[김유원 : 53위]53위.
현 올림포스의 왕, 하데스와 고작 2개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랭킹이었다.
제아무리 유원의 실력이 높아졌다고 한들 너무 과한 랭킹의 상승이었다.
이전 유원의 랭킹이 67위였다.
무려 14단계나 높이진 것이다.
라그나로크를 끝냈을 때에도 유원의 랭킹은 지금처럼 치솟지는 않았다.
‘칭호 때문인가.’
어딘가에 소속을 가지고 있다는 건 개인의 힘이 강해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당장 라구엘만 해도 그랬다.
하늘의 재상인 그는 실력은 어중간한 하이랭커 수준이면서도 100위권 안쪽의 랭킹에 위치해 있었다.
권력만 놓고 보면 하늘의 2인자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랭커였다면 높아진 랭킹에 춤이라도 췄을 테지만, 유원은 오히려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걸 느꼈다.
유원의 랭킹 옆으로는 연관 기사들이 떠올라 있었다.
[김유원의 랭킹 상승, 관리국의 오판?] [랭킹의 진실은 실력?] [마왕의 2인자. 김유원의 배후는 마계인가?] [김유원의 행적 분석. 그의 튜토리얼 동기…….]제목만 훑어봐도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몇몇 기사들은 완전히 유원이 마왕에 합류했다고 확신하듯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아 놓은 상태였다.
“하여간 기자 놈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던 유원이었다.
당연했다.
이미 유원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물론, 어떻게 돌아갈지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는 기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고 있었고 그들의 정보에 흥미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침 심심하던 차여서일까.
유원은 자신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을 시작으로 몇몇 주요 기사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
한 기사가 유원의 눈에 들어왔다.
[올림포스 내 세력 다툼. 헤라와 하데스의 갈등?] [선택의 기로에 놓인 헤라클레스. 그 외 아폴론, 아르테미스 남매.] [올림포스의 하이랭커 디오니소스, 올림포스 세력다툼 없어. 올림포스는 이미 안정화…… 진실은?]제우스가 물러난 올림포스.
공석이 된 왕의 자리를 물려받은 건 하데스였다.
그는 제우스를 제외한 올림포스 내에서 가장 높은 랭킹의 랭커였고, 모두가 제우스의 다음 후계로 적당하다 여겼다.
제우스가 숙청되었을 당시, 올림포스 내에는 포세이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삼신을 제외하고서도 올림포스 내에는 그를 위협할 만한 또 다른 하이랭커가 존재했다.
‘헤라…….’
제우스의 아내로, 삼신 다음가는 랭킹을 지닌 하이랭커.
그녀가 올림포스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니.
‘원래 이런 일이 있었나?’
기억을 뒤져 봤지만 없었다.
알고 있던 역사에 변화가 생겨났다.
냄새가 풍겼다.
“하나둘씩 사건을 바꾸다 보면 분명, 어떤 변화가 생길 거다.”
“그럼 그 부분을 파고 들어야겠지. 변화가 생겼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개입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니까.”
아직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확인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럼…….’
화면을 돌린 유원이 다시 하르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수신음.
그리고 아주 잠깐 후.
-무슨 전화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끊어?
잔뜩 화가 난 하르간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미안하다. 금방 확인만 하고 전화한다는 게.”
-랭킹?
“그래.”
-하긴. 궁금할 만하지. 엄청 뛰었더만, 진짜.
다행히 하르간은 크게 불쾌해 하지 않았다. 유원이 이렇게 전화를 끊는 게 한두 번도 아닐뿐더러 그 역시 다른 목적이 있었다.
-랭킹도 확인 안 하는 거 보니, 우리 소식도 모르고 있겠네?
하르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마침 올림포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려던 유원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시작이었다.
“한창 기 싸움 중인가 보던데.”
-기 싸움 수준이 아니야. 지금…….
잠시 끊어진 목소리.
갈등이 키트 너머로 느껴졌다. 머리가 굴러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싶어, 유원은 천천히 하르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니, 아니다. 일단은 만나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냐? 우리 쪽에서 찾아갈게.
아무래도 무언가 도움을 청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올림포스에는 태양마차라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 있었으니까.
“내가 지금 어디 있냐면…….”
* * *
하르간이 유원을 찾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네 시간이었다.
아침을 먹고 통화를 했는데, 점심을 먹을 때쯤 도착한 것이다.
유원은 숙소 밖 카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손님이 거의 없이 한산한 카페에서는 딱히 시선을 의식할 만한 것도 없었다.
“일찍 왔네.”
“두 층밖에 안 떨어져 있었으니까.”
“앉아, 일단.”
드륵-.
하르간이 유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텅 빈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그가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색하네. 여기 마족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이젠 다들 익숙해져야지. 같은 길드가 됐으니.”
“정말 아무 문제없는 거냐?”
“물론, 당장은 디아블로의 명령 때문에 별일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 무슨 문제가 터져 나올지는 아무도 몰라.”
“위험하네.”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문제였다. 천마대전이 시작된 후부터, 그렇게 정해졌던 거지.”
“진짜 별일이 다 생기네…….”
원래라면 입이 떡 벌어지며 놀랐어야 할 일이었다.
올림포스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싸움이 바로 천마대전이었다. 어쩌면 기간토마키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싸움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천마대전을 유원이 끝내 버렸다.
황당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싶었다.
‘이런 게 처음도 아니고.’
올림포스를 개편하고, 삼귀자를 무너뜨렸다. 라그나로크를 일으켜 무스펠하임을 무너뜨렸고, 이번엔 천마대전을 마무리했다.
이젠 정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하르간이 도착하자 유원이 미리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하르간의 것은 커피보다는 달달한 음료였다.
“아무튼 축하한다. 랭킹이 오른 거. 그리고 드디어 한 자리에 안착한 거.”
“안착 안 했다.”
“응?”
“오보야. 기자들이 이상한 소릴 한 거다.”
“……오보라고?”
무슨 소린가 싶어 하르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기사에서는 분명 마왕의 2인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게 아니고선 유원의 파격적인 랭킹 상승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작 본인인 유원이 그게 아니라고 하니.
“뭐, 네 말이 맞겠지. 네가 이런 걸로 거짓말할 녀석도 아니고.”
하르간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앞으로 허리를 숙인 하르간은 아무튼, 이라며 대화의 주제를 전환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대충 들은 것 같고. 요즘 올림포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있는 거지?”
“디오니소스는 별일 아니라며 인터뷰했던데.”
“그걸 믿는 건 아니지?”
“설마.”
다행이라는 듯하르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별일이 생겼다.”
급격히 심각해진 얼굴.
올림포스가 어수선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하르간이 이렇게 심각하게 반응하는 건 유원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정말 헤라 때문이냐?”
“그래.”
최근의 일을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하르간은 고개를 저으며 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포세이돈 큰아버지를 등에 업은 건지, 아니면 다른 올림포스 내의 랭커들을 많이 포섭한 건지는 모르겠어. 최근 헤라께서 하데스 큰아버지를 견제하는 모양이야.”
“어쩌면 길드 바깥의 힘이 개입한 걸지도 모르지.”
“그런 거면 최악이지. 길드 안쪽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을 테니까.”
“헤라클레스는? 뭘 하고 있지?”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한 문제였다.
거인 학살자 헤라클레스.
그는 제우스가 없는 올림포스의 최고 전력이자, 천외천의 힘을 지닌 하이랭커였다.
더구나 라그나로크에서 이그드라실의 가지로 만든 곤봉을 얻은 그는, 단신으로 올림포스와 대적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헤라클레스 형님이 도와주신다면 우리도 걱정할 게 없지. 아니, 애초에 그 형님 때문에라도 헤라께서 이런 짓을 벌일 수 없었을 거고.”
하르간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게 문제다, 그게…….”
정작 하르간이 유원을 찾아온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무슨 내막인지, 헤라클레스 형님께서 연락이 안 돼.”
“연락이?”
“그 형님 실력에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랭킹도 그대로 있으니까.”
맞는 말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유원도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헤라가 제우스와 다시 손을 잡는 게 아니고서야, 헤라클레스를 위협할 만한 수단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우스는 현재 100층에 올라가 있는 상태.
헤라와 손을 잡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럼 뭐가 그리 걱정이지?”
“문제는, 우리가 파악한 걸로는 뭔가 헤라께서 내기를 제안했다는 모양이야.”
“내기?”
그 말과 함께, 하르간이 유원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열두 가지 과업. 아무래도 그걸 받아들인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