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95
* * *
유원은 손오공이 얻은 ‘긴고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험에서 얻은 힘과 그 힘을 봉인하고 있는 긴고아.
그리고 그 긴고아를 다룰 수 있는 ‘불경’이 있다는 장소.
“거기 그런 게 있었나.”
“없는 겁니까?”
이야기가 끝날 때에는 식사도 거의 마무리되어 있었다. 대식가인 우마왕은 국밥과 수육을 열 몇 그릇은 비우고 나서야 식사를 마쳤다.
“나도 잘 모른다.”
“아까는 아신다고…….”
“안다고만 했지, 거기 뭐가 있는지는 모르는 게지. 내가 가 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게 뭐냐고 되물으려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천축과 불경이 그렇게 찾기 쉬운 거였다면 아마 진작 손오공이 찾았을 것이다.
“뭐, 녀석이 그걸 그리 애타게 찾는다면 도와줄 방법은 있다만.”
“그럼 도와주십시오.”
“일단 이곳의 일부터 끝내고 말이다.”
식사를 마친 우마왕은 오랜만에 술을 들이켰다.
도깨비들이 담근 술은 디오니소스가 만든 것만큼은 아니어도 꽤 구수한 맛이 있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도깨비들의 술에 우마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귀하고 맛있는 술이더라도 추억에 버무려진 것만큼 값진 건 없는 법이었다.
“그 약속이라는 게 뭐였습니까?”
도깨비왕과의 싸움.
우마왕은 그 싸움에서 승리해 ‘약속’에 대한 대가를 받아 냈다.
“요괴들의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거였다.”
“무덤?”
“옛날에 도깨비와 요괴족의 전쟁이 있었다.”
전쟁.
유원도 알지 못할 만큼 오래 된 이야기였다. 도깨비족에 대한 정보는 탑에서도 아는 이가 많지 않았고, 요괴족 역시 거의 멸종에 가까운 숫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살아남은 요괴는 몇 없었지. 나와 오공이를 비롯해서 말이지.”
“그럼 당신이 태어난 건, 그 전쟁이 끝난 후인 겁니까?”
“당신 말고,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너무 멀어 보이니.”
“……나중에 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이라는 말은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의형제지간인 우마왕과 손오공.
그들 사이에 끼어, 손오공에게 형님 소리를 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러냐?”
다행히도 우마왕은 호칭을 더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원은 그 제안 덕분에 우마왕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도왔는지, 그리고 왜 자신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날 아우로 생각하기라도 하는 건가.’
처음에는 단순히 그가 자신에게 빚이 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천계의 감옥에 갇혀 처형될 예정이었던 우마왕을 살린 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우마왕은 그 후부터 유원을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내가 태어난 건 전쟁이 끝난 후였지.”
우마왕은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도깨비왕은 날 거두어 여기서 살게 했다. 어릴 때야 몰랐지. 내가 도깨비라 생각했고, 한 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가 굵고 몸이 커지니 알게 되더구나.”
스윽-.
우마왕의 시선이 다시금 식당에서 웃고 떠드는 도깨비들에게로 향했다.
“난 저들과 다르다는 걸.”
만 년도 넘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이 세계는 먹을 게 부족했다. 늘 밤이라 온기도, 빛도 부족해 식량이 없고 땅도 좁았지.”
낮과 밤이 바뀌지 않는 세계.
그중 밤의 세계는 요괴와 도깨비들이 사는 세계였다.
“먹을 거에 대한 다툼을 가지고 누가 잘못했다 손가락질할 순 없었다. 저들이 날 길러 준 것도 사실이고.”
원망은 없었다.
살고자 벌인 싸움. 그중 살아남은 건 도깨비족이었고, 요괴족은 멸망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린 요괴였던 우마왕은.
“그런 핏덩어리까지 죽일 필요 있느냐?”
도깨비왕 덕분에 살아남았다.
“살려 두어라. 녀석은 좋은 주술사가 될 것 같으니.”
그렇게 도깨비들의 손에서 자란 우마왕은 탑의 선택을 받아 플레이어가 되고, 랭커가 되었다.
그 이후.
우마왕은 다시 도깨비들의 나라로 돌아와, 요괴들의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요청에 대해.
“날 이겨 봐라. 그럼 널 이 나라의 왕으로 인정해 줄 테니. 그럼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도깨비왕은 실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다.
도깨비왕.
모든 도깨비들의 정점에 있으며, 하이랭커조차 벌레처럼 여기는 힘을 지닌 존재.
그런 도깨비왕의 제안은 실로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왕은 됐고, 약속이나 지키시오. 그때 가서 다른 말하지 말고.”
우마왕은 그 제안을 잊지 않았다.
“완전히 잊을 수는 없더구나. 내 종족을 죽인 도깨비들과 살아가면서, 그들의 무덤조차 외면할 수는 없었다.”
수백 번의 도전 끝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우마왕은 후련한 얼굴로 말했다.
“뭐, 어쨌든 이걸로 일단 끝나긴 했구나.”
만 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하던 숙제였다.
그것을 오늘 처리했으니, 저리 개운한 얼굴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넌 여기 어쩐 일이냐? 예지안 때문이냐?”
“그것도 겸사겸사.”
“겸사겸사라는 건 다른 일도 있다는 뜻이구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지안은 얻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얻을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 생각하고 있던 스킬일 뿐.
반드시 얻어가야 할 건 아니었다.
“실력 있는 주술사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것도 여럿이.”
“그래? 그런 거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만.”
“예, 그렇지 않아도 당신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면 생각해 보마. 이래 보여도 비싼 몸이다.”
유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게도 형님 소리가 듣고 싶은 걸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괜스레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부탁합니다, 형님.”
어차피 자신보다 족히 만 년은 더 산 요괴.
마음에 없는 형님 소리 한 번이 뭐 그리 어려우랴.
유원의 말에 우마왕이 껄껄 웃었다. 아무래도 형님이라는 한 마디가 꽤나 기쁜 모양이었다.
“오냐. 알겠다. 이번에는 이 정도로 만족하지.”
“도와주는 겁니까?”
“그래. 그래도 다음에는 그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거였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한다는 듯, 우마왕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형님’이라는 두 글자로 우마왕의 협조를 얻어 냈다. 예상치 않던 호재였다.
당장 이번 도깨비왕과의 싸움에서만 하더라도 우마왕은 힘에서도, 그리고 주술에서도 도깨비왕보다 한 수 앞선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
‘주술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렇게 식사 자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여기 식당은 웬 더러운 냄새가 이렇게 나?”
식당에 들어온 도깨비 무리가 유원과 우마왕을 향해 술주정을 부려 대기 시작했다.
“식당이 다 지들 거라도 되나. 인간이랑 요괴 냄새 때문에 코가 썩겠어. 안 그래?”
“맞다. 여기선 술도 못 먹겠네.”
“야, 야! 다른 데 가자, 다른데.”
“카악, 퉤!”
일부러 목청을 높이고 침을 뱉는 등, 진상을 피운다. 유원이 그들을 노려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우마왕이 손을 붙잡았다.
“도깨비왕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조건을 내걸었을 것 같으냐?”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우마왕의 만류에 유원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밖으로 나가는 도깨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왕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저 새끼 저거, 내가 언젠가 일 낼 거라고 했지?
-수호 도깨비들 말로는 실력이 장난 아니라는데.
-장난 아니기는. 왕께서 늙고 병 드신 탓이지, 뭐.
뒷담화가 꽤 노련했다.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모양.
그렇게 멀어져 가는 도깨비들의 뒷모습에 우마왕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괜히 너까지 휘말리게 한 것 같구나.”
“요괴를 싫어하나 봅니다.”
“좋은 기억만 있던 건 아니다. 내가 도깨비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난 후, 갑자기 태도가 달라진 도깨비들도 많았으니까.”
다름에 대한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곳도 역시 마찬가지.
“혼내 줬습니까?”
“그럼 어디 당하고만 있었겠느냐.”
“덜 혼낸 것 같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니 잊어버린 것이지.”
만 년이라는 시간은 그만큼 긴 시간이었다.
도깨비들 역시 랭커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 나이가 먹을수록 강해졌고, 그 힘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어릴 적 우마왕을 괴롭히다 되레 얻어맞았던 도깨비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우마왕을 어떻게 해 볼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그때 까불던 녀석들이 수호 도깨비니 뭐니,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저런 동네 양아치가 되기도 하고 세상이 많이 변하더군.”
“요괴를 싫어하는 녀석들이라면 요괴족의 무덤을 만드는 것도 반대하겠습니다.”
“역시 넌 오공이와 다르구나.”
손오공이었다면 아마 이런 간단한 것도 눈치채는 데 한참 걸렸을 터.
대화가 편하다 싶어 우마왕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맞다. 그랬지. 그래서 도깨비왕 역시 나에게 그런 내기를 제안한 것이고.”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말이야.”
그렇게 재미있다는 듯, 우마왕은 자신에게로 모여든 도깨비들의 시선을 즐겼다.
“아마 며칠 동안 피곤한 일이 좀 있을 거다.”
그 반응에 유원은 한숨을 뱉었다.
조용히 잘 지나갈 거라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형님 소리는 취소해야겠습니다.”
“아니, 왜냐?”
“덕분에 괜한 싸움에 휘말리게 된 거 아닙니까.”
“너무 속단하진 말거라. 어쨌거나 이걸로 도깨비왕은 내 편이 된 것이니. 별일 없이 지나갈 수도 있느니라.”
“글쎄요.”
유원은 방금 전, 우마왕을 향해 경멸 어린 표정을 짓고 사라진 도깨비를 떠올렸다.
“아닐 것 같습니다만.”
* * *
무너진 성 대신 도깨비왕이 머물게 된 거처는 근방에서 가장 번듯한 기와집이었다.
도깨비왕은 달빛이 들어오는 기와집에 머물며 작은 술상을 펼쳐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도깨비왕의 앞.
“재고해 주십시오!”
쾅-!
한 도깨비가 찾아와 도깨비왕을 향해 머리를 박았다.
“이 땅에 어찌 요괴 따위의 무덤을 만드십니까? 그것은 요괴와의 싸움에서 죽어 간 선조 도깨비들의…….”
“양반아.”
“예!”
부름에 고개를 들어 올린 도깨비.
그는 머리 위로 환하게 웃는 상의 탈을 올려 쓰고는, 반대로 잔뜩 울상이 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지, 양반, 선비, 백정을 비롯한 열 개의 탈 중 하나를 하사받은 도깨비 중 한 명.
양반탈, 귀각의 청에 도깨비왕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럼 나보고 한 입으로 두말을 하란 말이냐?”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약속은 약속이다. 술 맛 떨어지게 하지 말고 얼른 꺼져.”
도깨비왕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이미 앞에서 몇 번씩 반복됐던 축객령에 귀각은 힘없이 뒤돌아섰다.
저벅, 저벅-.
도깨비왕의 거처를 나선 양반탈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갑작스레 몸을 돌린 양반탈의 눈이 포유류의 것처럼 날카로워졌다.
“무슨 볼일이지?”
“워, 워. 진정해라.”
귀각과 마찬가지로 탈을 머리 위로 올려 쓴 도깨비.
백정탈 귀백이었다.
“싸우러 온 거 아니다. 살기부터 좀 거두지 그래?”
“싸우자는 게 아니면 네가 먼저 내 앞에 나타날 일이 뭐가 있다고?”
“식당에서 우마를 봤다.”
“우마왕을?”
“제깟 놈이 왕은 무슨.”
백정탈의 말에 양반탈은 말을 아꼈다.
제깟 놈이라고 부르기에 우마왕의 실력은 상당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 주술에 관한 실력에서만큼은 도깨비왕을 넘어선 상태였다.
“그런데? 뭘 어쩌겠다는 거지?”
“이 땅에 요괴 놈들의 무덤이 생기게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처음이군.”
“뭐가?”
“우리 둘의 의견이 같은 게.”
양반과 백정.
둘은 오래전부터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늘 칼부림만 해 대던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우리 둘로는 턱도 없다.”
“안다.”
백정탈의 눈이 휘어졌다.
소름 끼칠 만큼 섬뜩한 눈동자가 번뜩였다.
“하지만 둘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