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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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햇살이 창을 넘어 들어왔다.
해가 중천에 뜬 정오.
판도라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하얀 드레스로 치장한 그녀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평소와 달리 머리를 묶고,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건만 미모가 빛을 발했다.
애초에 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녀로 알려진 그녀였다.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진 아프로디테의 랭킹이 절반은 그녀의 외모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판도라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녀의 외모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 많은 시내에 나가기라도 한다면 이목이 끌리는 건 당연한 일.
더군다나 판도라는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자처하고 싶진 않았다.
“준비 다 했어?”
슬랙스 바지에 겉옷을 걸친 유원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판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원에게 다가갔다.
대부분의 생활을 집에서 해결하는 두 사람이었다.
판도라가 너무 눈에 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지금껏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응!”
“괜찮겠어?”
멈칫-.
유원의 질문에 판도라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사람들이 복작거릴 밖으로 나가는 건 그녀로서도 꽤 오랫동안 고민한 일이었다.
뭐든 처음이 쉬운 사람은 없다.
그건 두 자릿수의 하이랭커인 판도라에게도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차라리 괴물과 싸우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녀에게는 사람과 세상이 더 어려운 상대였다.
“……응.”
아까보다 더 작은 대답.
잘게 어깨가 떨리는 게 보였지만 유원은 애써 그녀를 말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를 언제까지고 이 작은 집 안에 살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나가자, 그럼.”
유원과 판도라가 어깨를 맞댄 채 밖으로 나왔다.
아직 떨리는지 발걸음은 느렸다.
덕분에 유원은 느긋하게 길을 걸으며 한 번씩 힐끔힐끔, 자신의 소매를 잡고 걷는 판도라의 옆을 돌아보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긴 했다지만 눈이나 언뜻 드러난 볼을 보면 그녀가 꽤 신경을 쓰고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조금 어설픈 화장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꾸민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가.’
생각해 보니 이런 적이 없었다.
판도라가 제대로 옷을 꾸며 입은 적도, 화장을 한 적도.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에는 없던 일이었다.
‘예쁘네.’
그러는 와중, 유원은 판도라가 쓰고 있는 마스크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쓴 것이지만, 아무래도 역시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답답해?”
“응.”
“그럼 벗을래?”
“음…….”
잠시 고민하던 판도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래?”
잠시 판도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유원은 인벤토리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속에서 똑같은 마스크를 하나 꺼낸 유원은 그것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이래야 좀 공평하지.”
“어차피 유원은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어차피 다른 사람들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럼?”
“네 기분 때문에.”
그렇게 검은색 마스크를 찬 유원을 옆에서 힐끔거리던 판도라가 입을 열었다.
“악당처럼 보여.”
어딘가 웃음기가 섞인 듯한 목소리였다.
평소에는 어지간하면 잘 웃질 않더니, 밖에 나간다니 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유원과 판도라가 시내로 나왔다.
함께 걷는 내내, 유원은 판도라의 눈을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대체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지.
‘빛나네.’
어린아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판도라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달리 신기한 게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도라의 눈은 마치 놀이공원에 처음 와 본 어린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유원, 유원!”
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판도라.
“저거 봐!”
판도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거주민 한 명이 딸아이에게 솜사탕을 사 주고 있었다.
“구름이 막대기에 붙어 있어.”
“솜사탕이 왜…….”
설마 하는 마음에 유원이 물었다.
“……솜사탕 처음 봐?”
“저게 솜사탕이야?”
설마 했더니 정말 모르고 있었다.
솜사탕.
유원이 살던 지구에서는 물론이고, 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간식이었다.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얼굴만 한 크기의 작은 구름 같은 솜사탕을 발견한 판도라는 꽤 큰 관심을 보였다.
“잠깐 기다려.”
유원은 길에서 파는 가장 큰 솜사탕을 사 왔다.
유원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판도라의 눈은 더 환하게 반짝였다.
“먹어 봐.”
유원은 판도라가 마스크를 벗을 수 있도록 몸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키 차이 덕분에 얼굴이 가려진 그녀는 마스크를 벗고 알록달록한 분홍색의 솜사탕을 감상했다.
“와아…….”
처음에는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판도라는 곧 솜사탕을 손가락으로 조금 떼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지 않아도 단 걸 좋아하는 그녀였다.
고작 설탕을 녹여 만든 것뿐이었지만, 판도라는 처음 맛보는 솜사탕의 폭신한 단맛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판도라는 몇 개나 되는 솜사탕을 더 먹고 난 뒤에야 식탐을 멈췄다.
그리고 그 뒤로.
“유원! 이거 봐! 말 괴물이야…….”
“그건 분장이야.”
“저기 누가 싸우고 있는데 도와야…….”
“공연 중이야. 멈춰.”
“이거 다 공짜래, 유원.”
“무한리필이니까. 잠깐만, 집에는 가져가면 안 돼!”
함께 다니는 동안 유원은 하루 종일 그녀가 모르는 것들을 설명해 줘야 했다.
작은 집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모르는 게 많았다.
사람들 속에 섞여 활동하는 게 처음인 그녀였다.
지금껏 그녀의 세상에서 사람은 유원과 헤라클레스, 손오공 정도가 전부였다.
아니.
‘제우스도 있었나.’
제우스.
판도라에게 아자토스의 기억이 담긴 상자를 주고, 그녀를 오랫동안 올림포스의 지하 감옥에 가둔 녀석.
그 녀석의 행동으로 인해 판도라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모르고 살아왔다.
‘다음에 만나면 한 대 때려 줘야겠네.’
그렇게 유원이 언젠가 제우스를 만나게 될 날을 생각하고 있던 때.
“유원, 유원!”
꽈악-.
판도라가 유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저거 봐.”
“저거?”
유원의 시선이 판도라의 고개를 따라 움직였다.
바글바글한 인파 속.
사람들이 모여 내기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1층에 방문한 상위 랭커와의 승부! 플레이어와 거주민 가릴 것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짜릿함을 경험해 보십시오!”
큼지막한 모자와 지팡이를 손에 들고 수금하는 중년 남자.
그리고 그 남자에게 손을 내밀며, 게임에 참가를 희망하는 플레이어와 거주민들.
유원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재밌어 보여?”
“그건 아니야.”
“그럼?”
“…….”
대답이 없는 판도라의 모습에 유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내.
‘아.’
유원은 판도라가 원하던 걸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거 잘한다고 했지?”
“응.”
“그럼 여기서 꼼짝 말고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봐.”
스윽-.
판도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유원이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 걸어갔다.
“금방 따 올 거니까.”
랭킹에서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랭커를 가리켜, 세상은 ‘상위 랭커’라 부른다.
랭커 중에서도 특별한. 영향력 과 실력, 업적을 인정받은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런 점에서 시어릭은 상위 랭커에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의 능력은 환각. 속임수. 음모. 거짓.
대부분이 전투보다는 상대를 속이고, 교란시키는 능력에 특화되어 있었다.
‘아스가르드를 너무 얕잡아 봤어.’
상위 랭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명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사기꾼 시어릭.
명예롭다기보다는 모욕적인 이명이었다.
그럼에도 시어릭은 자신의 이름을 그리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아스가르드 상대로 사기를 치며 날려 먹은 자신의 돈을 아깝게 여길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샥, 샥-.
시어릭은 뒤집어진 10개의 컵을 빠르게 섞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메시지를 감상했다.
[1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머저리 같은 놈들 덕분에 밑천 만들기는 쉬워서.’
한 번 도전할 때마다 100포인트.
상품에 눈이 멀어 도전하는 바보 같은 손님들을 보며, 시어릭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래층의 플레이어에게 ‘랭커’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달콤한 꿀과 같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랭커는 선망의 대상이며, 멘토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랭커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 시어릭에게, 사람들을 현혹시켜 돈을 뜯어내는 것쯤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대충 여기서 좀 버티면서, 100만 포인트 정도 모아서 가면…….’
저벅-.
그렇게 시어릭이 컵을 뒤집어 섞으며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하던 중.
“구슬이 있는 곳을 맞추면 되나?”
검은 머리의 남자가 시어릭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또 왔군.’
남자의 말투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시어릭은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로 기분을 드러낸다면, 애초에 사기꾼이라는 이명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컵을 섞을 테니, 구슬을 찾아내시면 됩니다.”
시어릭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다음 도전자를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렸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첫째. 마구잡이로 섞인 10개의 컵 중, 구슬을 찾는다.
둘째. 찾았을 시, 첫 번째 상품을 받거나 11개의 컵으로 다음 게임에 도전한다.
그렇게 도전을 거듭할수록 상품은 커진다.
“처음은 그럼 가볍게…….”
샥, 샤샥, 샤샤샥-.
시어릭이 손을 움직였다.
반투명한 컵을 빠르게 섞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오오…….”
“손이 안 보이는데?”
“난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넌 봤어?”
“저쪽인 것 같은데.”
“난 완전 반대로 봤는데?”
“이 무식한 것들아. 가운데잖아.”
사람들의 여론이 전부 갈라졌다.
있어 보이는 척, 구슬의 위치를 확신하는 사람들과 전혀 모르겠다며 두 손 두 발 다 드는 사람들.
시어릭은 일부러 한 번씩 구슬의 위치가 보이도록 손을 써, 계속해서 다음 도전자가 나오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차피 확률은 10분의 1이다.’
사람의 심리는 단순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으로 구슬을 쫓아 위치를 맞추는 게임처럼 보이겠지만, 실상 이 자리에 시어릭의 손을 눈으로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도박.
10개의 컵 중, 하나를 찍는 것뿐.
팍-.
빠르게 컵을 섞던 시어릭이 손을 멈췄다.
“규칙은 대충 아시지요?”
위이잉-.
시어릭의 붉은색 눈동자가 눈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중, 구슬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컵 하나를 골라 주시면 됩니다.”
유원은 구슬이 들어 있는 컵을 빤히 바라보았다.
넓은 테이블 위에 깔려 있는 컵들 가운데. 유원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시어릭의 얼굴 위였다.
“밑장빼기군.”
당황한 얼굴의 시어릭.
짜증 섞인 표정의 유원이 단언하듯 말했다.
“여기 구슬 같은 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