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71
* * *
살라모프는 눈을 떴다.
하얗게 변한 눈동자에는 주위 수백 미터 범위가 한 눈에 보였다. 그는 저층 구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탐색형 플레이어였다.
“사라졌습니다.”
“뭐?”
“사라져?”
살라모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은신인가?”
유원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11층까지 오르는 동안 몇 번의 시험을 치르면서 그의 전투 방식을 본 적이 있던 플레이어들은 그가 근접형 검사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유원과 조금이라도 충돌이 있었던 B팀의 플레이어들에게 물어보니, 유원은 검을 썼다.
은신이 가능하다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은신?”
“그런 스킬도 가지고 있어?”
“어떻게든 찾을 방법은 없는 건가요?”
살라모프는 고개를 저었다.
천리백안(千里白眼)은 숙련도에 따라서 정말 천 리를 내다볼 수 있다고 알려진 희귀 스킬이었다. 이 눈은 웬만한 은신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살라모프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바로 가까이서 시야가 닿지 않는 이상은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보통 은신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럼?”
“정확한 건 모르지만 상당한 수준입니다. 잔상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살라모프의 설명에 팀원들이 깜짝 놀랐다.
천리백안 스킬은 꽤 유명했다. 랭커들도 탐을 낼 만큼 뛰어난 탐지 스킬이었는데, 그 스킬 하나로 살라모프는 저층 구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소문으로는 어느 거대 길드와 이미 계약이 된 상태라고도 했으니, 그의 능력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살라모프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김유원이 암살자였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살라모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암살자들은 주로 긴 칼을 차지 않거든요. 일부러라도 옷도 어두운 색으로 입는 편이기도 하고.”
“그럼 뭔데?”
“아마도…….”
그때였다.
살라모프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흰색이었다.
천리백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다.
“언제 여기까지 왔지요?”
살라모프의 물음에 팀원들이 깜짝 놀라며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잠시 후, 살라모프의 눈이 닿는 곳에서 흐릿한 잔상이 일었다.
“천리백안인가. 꽤 좋은 스킬이지.”
유원이 자리에 나타났다.
살라모프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이 자리에 살라모프가 없었다면 자신들은 꼼짝없이 암살당했을 것이다.
‘뭐야?’
‘암살자 맞잖아?’
다른 플레이어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탓에 유원에 대한 정보는 워낙 적었다. 직접 부딪치지 않고서는 그의 능력을 다 파악하기 어려웠다.
살라모프 역시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허공에 흐릿하게 흔들리는 걸 보지 않았다면 자신도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이 거리에서 천리백안에도 파악되지 않을 정도의 은신 스킬. 이런 게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암살형 전투에 특화된 플레이어인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그게 아니면서 이 정도 은신이 가능하다면…….’
꿀꺽-.
살라모프는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그렇다면, 유원을 잡는 건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인가. 천라지망이라고 하기에는 구멍이 많아.”
유원은 주위를 죽 둘러보았다.
사방에 퍼져 있던 B팀의 플레이어들이 점차 가까워졌다.
넓게 퍼져 있던 천라지망이 좁혀졌다.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상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살라모프의 눈에는 보였다.
사방을 둘러싼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
유원의 머리를 비롯한 여러 급소를 노리고 있는 시선.
수십 개의 스킬과 창, 화살 따위의 무기들.
이 모든 게, 유원을 위해 준비된 무대였다.
“킹과 떨어진 건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를 지키며 싸워서는 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살라모프의 설명에도 유원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한 살라모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유원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지금 내 말 듣고 있…….”
섬뜩-.
등골이 서늘해졌다.
살라모프는 방금 전에 내디딘 발을 다시 물렸다. 유원의 시선은 그제야 살라모프에게로 향했다.
“감은 좋네.”
스칵-.
살라모프는 자신의 발 앞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땅 아래쪽이 베인 흔적이 생겨나 있다. 분명 거리가 열 걸음은 될 텐데, 유원은 그 자리를 베어 낸 것이다.
꿀꺽-.
섣부르게 움직이는 건 금물이었다.
유원과 정면에서 싸울 수 있는 플레이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척, 척-.
숲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무 명가량의 플레이어들.
대부분 유원이 모르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하지만 아는 얼굴도 두 명 정도는 있었다.
‘남궁훈. 로엘.’
훗날 하이랭커가 될 거라 주목받는 남궁세가의 천재와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로엘이었다.
저 두 명 모두 훗날 랭커가 된다. 유원이 얼굴 정도는 기억하는 자들이었다.
“킹을 버리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라…….”
남궁훈은 거대한 중검을 뽑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시험은 버리고, 승부를 선택한 건가?”
묵직한 중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는 남궁훈의 모습은 듬직하기 짝이 없었다. 남궁훈과 로엘을 제외한 다른 스무 명의 플레이어들 역시 B팀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사방에는 거리를 벌리고 유원을 노리는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독 안에 든 쥐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
어찌 보면 스스로 덫에 빠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저벅, 저벅-.
남궁훈은 유원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살라모프보다 더 가까운 거리였다. 남궁훈의 검이 지닌 길이와 그의 실력을 생각해 보면 바로 검이 닿을 만한 거리였다.
유원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니 확실히 알겠다.
남궁훈.
그가 B팀을 이끄는 실질적인 우두머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남궁훈은 유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뭐가 말이지?”
“본의는 아니지만 내게는 좋은 팀이 있다. 하지만 그대에게는 그렇지 않지.”
랜덤으로 배정된 팀.
하지만 그 팀의 격차는 나도 너무 났다.
남궁훈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상황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이건 시험이니까. 그대는 분명 뛰어난 플레이어지만, 그 실력만큼 운이 따라주지는 않는 거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시험을 포기하게. 이런 식으로 승부를 보고 싶지는 않아.”
유원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시험을 포기하라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싶더니만, 고작 이런 말이라니.
“듣던 것보다 말이 많네.”
유원은 검을 들었다.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보인 것이다.
남궁훈은 한숨을 쉬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상황은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검을 들어 올리는 남궁훈.
미리 말을 맞춰 둔 건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개입하지 않았다.
일대일의 상황.
“흐음…….”
유원은 그런 남궁훈을 보며 씩 웃었다.
역시 성격은 나쁘지 않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격은 변함없군.’
남궁훈은 냉정한 성격이었다.
실리적이며, 판단력이 뛰어났다. 그러니 그렇게 빠른 속도로 탑을 올라 랭커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남궁훈은 비겁하지 않았다.
실리적이면서도 비겁하지 않다. 때문에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가능하면 유원과는 일대일로 싸우고 싶어 했다.
그리고 유원은 이런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굳이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훗날, 남궁세가에서 큰일을 해야 하기에.
“난 몇 명이든 딱히 상관은 없는데.”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척-.
유원이 남궁훈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부웅-.
남궁훈의 검이 궤적을 그렸다.
쩌엉-!
두 사람의 검이 부딪쳤다.
묵직한 중검.
아래로 내리찍는 검의 힘이 심상치 않았다. 유원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봐라.’
남궁세가의 검은 무겁다.
그건 유원도 알고 있었다.
전생에는 유원도 10층의 시험은 남궁세가에서 치렀으니까.
‘물건은 물건이군.’
고작 11층의 플레이어 주제에 이 정도 힘이라니.
스탯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후웁-!”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남궁훈이 연달아 검을 뿌려댔다.
검이 무겁다 하여 꼭 느리리라는 법은 없다.
남궁훈의 검이 그랬다.
그의 검은 빠르게 움직이며, 동시에 모든 검에 힘이 실려 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이 정도 힘을 싣는 건지.
싸움을 지켜보는 플레이어들은 넋을 놓고 싸움을 구경했다.
‘무공에 있어서는 확실히 천재다.’
유원도 천재라는 소리는 많이 듣고 살았다.
하지만 무공에 있어서는 남궁훈만 못했다.
‘괜찮네.’
슈악-.
쩡-!
남궁훈의 검이 위로 떠올랐다. 눈이 크게 떠지며,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힘이……!’
저릿-.
순간적으로 검을 놓칠 뻔했다.
남궁세가의 검은 무겁다. 남궁세가의 제왕검형(帝王劍形)은 그저 검을 쥐는 것만으로도 사방을 짓누르는 힘을 지니고 있어, 그 묘리는 자연스레 남궁훈의 검에도 깃들었다.
그런데…….
‘뭐냐, 대체.’
쩡-!
다시 한번, 남궁훈의 검이 뒤로 밀려났다.
순간 검과 검이 부딪친 순간, 두 발이 지면에서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격차였다.
‘내가 힘에서 밀린다니.’
으득-.
이를 악물며 눈을 번뜩였다.
남궁훈의 검에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산과 같은 거대한 힘이 남궁훈의 검에 실렸다.
“후웁-!”
그 순간.
[대천사의 가호가 몸에 깃듭니다.] [힘이 상승합니다.] [체력이 상승합니다.] [몸이 가벼워집니다.] [마나 회복력이 빨라집니다.]검에, 남궁훈도 예상하지 못한 거력이 실렸다.
꽈아앙-!
유원의 검과 남궁훈의 검이 부딪쳤다.
작정하고 내리쳤음에도 유원의 검은 역시나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훈은 그것보다 방금 전 떠오른 메시지가 먼저 떠올랐다.
고개를 돌리자, 로엘의 손끝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칵-.
두 개의 검이 교차하며 두 사람의 간격이 벌어졌다. 남궁훈은 로엘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지?”
분명 처음에는 자신이 일대일로 붙어 보겠노라 말했는데.
“버프를 받고 그 정도면, 승부는 이미 끝난 거 아닌가요?”
방금 전의 버프는 로엘의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모두 버프를 걸어 주고 있었다. 남궁훈과 유원의 싸움이 끝났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남궁훈은 이를 악물었다.
아직 다친 곳도 한 군데 없었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끝나긴 뭐가 끝났…….”
“저쪽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요?”
“뭐?”
화륵-.
남궁훈은 고개를 돌렸다.
화끈한 열기가 얼굴을 타고 전해졌다.
꽤 뜨거운 불이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건 정작 열기가 아니었다.
‘저 불은…….’
유원의 주위에 떠오른 보랏빛 색상의 불.
남궁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아그레아의 던전.’
남궁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