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11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그 세 사람이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수준이 높은 덕분이겠지요.”
한제는 다시 1대 주작의 조각상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여전히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매우 맑고 단단한 빛이 가득했다.
“저 역시 안정적인 삶을 원합니다. 죽음이 눈앞을 스쳐가는 수련와 음험한 이들의 수작에 지칠 대로 지쳤지요. 이곳에 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곳이라면 묵묵히 늙어가다가 세 번째 단계에서 수준이 멈춘다 해도 한탄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한제의 두 눈이 한층 밝게 번득였다.
“허나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불확실한 일이고 삶과 죽음이란 누군가가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차라리 그들 셋과 같은 수준에 이르도록 수련하겠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 이한제 역시 할 수 있습니다!”
한제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전신에 녹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천의 환계에서 메아리치는 동안 1대 주작의 두 눈은 가늘어졌다.
“고신의 육신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본원들 역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걸어가겠습니다. 제 수준이 이 상태에서 멈춰버리도록 둘 수 없습니다.”
한제는 1대 주작을 향해 절을 한 뒤 두 발을 굴러 허공에 떠올랐다.
“선배님의 호의에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허나 다섯 번의 천쇠나 파공오지 모두 누군가가 찾아낸,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저만의, 이한제만의 길을 찾겠습니다! 선배님이 하늘을 가리기 위해서 다섯 개의 손가락이 필요하다 하셨지요. 그렇다면 고신의 육체는 손바닥이 될 것이고 다섯 개의 본원이 손가락이 될 것입니다!”
한제의 목소리가 천의 환계에 널리 울렸다.
“저는 이미 하나의 본원을 완성했으니 첫 번째 천쇠를 뛰어넘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섯 갈래의 본원을 전부 완성하면 다섯 번째 천쇠까지 통과한 수련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렇게 저만의 길을 따라 공의 문을 열 것입니다!”
와라!
한제는 허공에 뜬 채 1대 주작에게 포권을 한 뒤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조각상 앞에 있던 붉은 검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굳건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에 1대 주작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제의 왼쪽 눈에서는 화염이 이글거렸고 오른쪽 눈에서는 전광이 번득였다. 허공에 뜬 그는 마치 절대자처럼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완을 되살리는 일은 남에게 부탁할 수 없으니 제 힘으로 하겠습니다! 선배님이 제 벗들을 모두 데려가실 수 없다면 저는 여기 남아 모든 벗들과 함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하나의 선포처럼 온 세상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곳을 떠나는 것을 선인이 되는 일에 비유한다면 한제의 말은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벗들과 함께 선인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잠시 후, 1대 주작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네가 맞는지도 모르지. 좋다, 천의 환계에서의 시험은 통과다. 난 네가 타락의 땅에 있는 어느 황량한 수련성에 주작의 피를 뿌려 화작족을 끌어들일 미끼로 삼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가진 화염의 본원 때문이겠지. 넌 이미 주작을 네 번째로 각성시켰고 허상의 화염도 손에 넣었다. 그러니 배신자인 3대 주작이 화작족에 남겨둔 화염의 본원까지 삼킨다면 네 화염의 본원은 대폭 증폭될 것이다.”
배신의 기억 때문인지 1대 주작의 목소리는 끝이 살짝 떨렸다.
“3대 주작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낸 존재였지만 그 자질만큼은 내가 본 모든 수련자 중 첫손에 꼽힌다. 당시 내게 입은 부상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긴 하나 수준이 매우 높은 데다가 매우 간사하니 분명 퇴로를 마련해뒀을 것이다!”
1대 주작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아무래도 3대 주작은 만만치 않은 상대일 듯했다.
“나는 그가 태고 성신에서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허나 난 이곳에서 떠날 수 없으니 제대로 조사할 수가 없었지. 만약 네가 화작족을 칠 생각이라면 그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화작족 성지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거기까지 말을 마친 1대 주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심을 내린 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것을 가져가거라. 내 삼라염을 응집시켜 만든 것이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3대 주작과 마주치더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터!”
1대 주작의 미간에서 아홉 빛깔의 화염이 회전하더니 아홉 빛깔을 띤 깃털이 나타나 유유히 한제에게로 날아왔다.
“3대 주작의 손에는 우리 주작족의 보물이 있다. 허나 그는 그것을 통제하는 법을 알지 못하지. 그 통제법을 알려줄 테니 가능하다면 빼앗아서 네 것으로 삼도록 해라!”
아홉 빛깔의 깃털을 받아 든 순간, 복잡한 구결 한 줄기가 한제의 영혼 깊은 곳에 새겨졌다.
“그리고 화작족은 최대한 살려두거라. 내게는 큰 쓸모가 있는 녀석들이지. 이제 네가 미끼로 남겨둔 주작의 피를 더욱 진짜처럼 만들어주마. 3대 주작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가짜임을 간파할 수 없을 것이다. 자 이제 떠나라.”
1대 주작의 목소리는 점차 흐릿해지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졌고 조각상 역시 생기를 잃어갔다.
한제는 1대 주작의 조각상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한 뒤 몸을 돌렸다.
★ ★ ★
대제성. 세 번째 향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한제와 1대 주작의 대화는 길었지만 1대 주작의 신통술로 인해 실제로는 매우 짧은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다.
스물넷, 스물다섯…
이제 1대 주작이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한 2대 주작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일곱이야!”
“저자의 육신을 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 죽을 것 같더니 이제 평온해졌어!”
사방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심신은 더욱 진동했다.
한데 그때, 돌연 세 번째 향을 태우는 불이 격렬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 거의 끄트머리까지 타들어갔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향을 따라 내려오던 화염이 한제의 손에 닿을 듯했으나, 한제의 혼백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향이 다 타들어가기 전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시험에 통과해도 이곳에 모인 수련자들은 실패로 여길 터였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세 번째 향의 불이 한제를 삼켰고 결국 끝까지 타버렸다.
“안 나왔어! 실패한 건가?”
“허! 수준이 높아도 소용없군. 결국 시험에는 통과하지 못했으니.”
한제가 실패한 것으로 여긴 사묵자는 비릿하게 웃었다. 허나 그의 표정은 삽시간에 변해 버렸고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운락의 오른손은 결인을 그리는 도중 다시 부러졌다. 이번에는 기이한 힘의 방해를 받아서가 아니라 세 번째 향을 다 태운 짙은 화염 속에서 튀어나오는 두 갈래의 냉랭한 눈빛 때문이었다.
화염 같기도 하고 전광 같기도 한 눈빛이 나타난 순간, 콰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뒤이어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당연히 그는 한제였다. 세 번째 향이 완전히 타들어 가던 순간, 그의 영혼은 육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수련자들을 돌아보며 한제는 오른손을 홱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화염이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한 줄기 강을 이루어 그의 손 주위를 맴돌았다. 그 상태에서 주먹을 꽉 쥐자 화염은 쾅 하고 무너져 내리면서 불똥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제의 왼쪽 눈동자에서는 아홉 빛깔의 화염이 회전하면서 허상의 화염을 형성했고 오른쪽 눈동자에서는 번개 문양이 회전했다. 아홉 갈래의 천둥번개로 둘러싸인 문양은 한제의 눈동자에서 끊임없이 번득였다.
이 순간 한제는 마치 신선과 악마가 합쳐진 존재처럼 보였다. 형용할 수 없는 기세를 풍기는 그의 부상은 순식간에 씻은 듯 사라졌고 영혼을 되찾자마자 그를 불사르던 화염은 체내로 응집되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수련자들은 하나같이 심신이 진동하고 체내가 불살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한제와 눈이 마주친 순간 혼백과 심신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마치 이 세상이 거대한 번개 문양의 소유가 되어 자신의 원신을 파괴하려 한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한제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순간 약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뼛속 깊이 새겨져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두려움으로 남았다.
수만 명의 수련자들은 한제의 눈길을 피해 분분히 고개를 숙였다.
특히 한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거나 그를 얕잡아봤던 이들은 얼굴까지 창백해진 상태였다.
한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의 육신이 불타버리고 원신은 천둥번개에 의해 한 줌 재로 변해버릴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한제는 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수련자에게서 허상의 화염을 볼 수 있었다. 감정의 파동이 격해질수록 그 화염은 더욱 짙어졌다.
한제는 살기를 담은 채 두 손을 힘차게 휘둘렀다.
콰쾅!
온 세상이 뒤흔들렸고 그곳의 모든 수련자들의 몸에서는 허상의 화염이 나타나 끔찍할 정도의 열기를 발산하며 한제에게로 끌려갔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끌려온 화염들은 한제의 주위를 맴돌며 폭풍을 형성했다. 이 폭풍은 점점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이내 광풍이 몰아치며 수련자들은 하나둘 수만 척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외부의 허상의 화염을 응집시켰어!”
2대 주작은 휘둥그레 뜬 두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운락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금의 한제는 그녀가 예측했던 장면 속, 구슬과 바늘 하나를 곁에 띄우고 있던 그 사람과 거의 똑같았다.
허상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 속에서 위로 떠오른 한제의 형형한 눈은 운락을 넘어 사묵자에게로 향했다.
“사묵자 나를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회를 주지. 와라!”
한제는 허공을 움켜쥐어 사묵자를 끌어당겼다.
이것은 도발이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를 향한 도발.
두 번째 단계의 수련자에게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이들이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자 법칙처럼 여겨졌다.
사묵자는 비록 그 수준이 세 번째 단계에서 공사경 중 공열기 초기에 불과하고 2대 주작에게 치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사실 계내와 계외를 막론하고 눈길 한 번만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방금 한제의 도발에 다른 수련자들이 심신이 바르르 떠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도 몰랐다.
“셋째 소제의 수준은 짐작할 수 없는 정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세 번째 단계 수련자에게 도전하다니, 우매하군!”
“게다가 저자는 방금 시험을 치르느라 갖은 부상을 입은 상태일 텐데?”
“한데 난 잘 모르겠군. 수준으로 따진다면야 당연히 상대가 안 되겠지만 소제는 이번 시험에서도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줬으니까.”
“어쨌든 저런 패기를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난 소제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걸?”
한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한편, 한제가 사묵자에게 도전해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운락 대사는 심신이 크게 진동했다.
그녀의 심신에서는 예측에서 나타났던 그자와 눈앞의 한제가 빠르게 뒤섞여 심지어 분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반면 2대 주작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후배가 많은 사람 앞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것! 그게 바로 그가 원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저자의 뺨을 괜히 후려친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