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07
한제는 신식을 펼쳐 사방을 신중하게 관찰하면서도 점점 더 속도를 높였다.
어두운 우주에서는 줄기줄기 흉수의 기운이 수시로 나타났다. 허나 녀석들은 한제의 신식이 훑는 순간 바들바들 떨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 낯선 성역에서 한제는 경계심을 잔뜩 높였다. 흉수들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칠채도인이 이곳까지 자신을 쫓아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식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면 곧장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제단으로 향해야만 했다. 만약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삶만을 택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지도 못했을 터였다.
한데 몇 시진을 나아가던 한제가 돌연 우뚝 멈춰 섰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그는 곧장 몸을 뒤로 물려 떠나려 했다.
하지만 막 사라지려던 그는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표정은 점점 차갑게 굳어갔다.
그는 방금 전 신식을 통해 수십만 리 너머에서 한 마리 흉수의 시체에 가부좌를 튼 누군가의 인영을 본 상태였다. 일곱 색채의 빛을 번득이며 혼란과 슬픔, 흥분의 빛이 수시로 표정을 뒤덮은 그 인영은 바로 칠채도인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너무도 다른 칠채도인의 모습에 한제는 고민에 잠겼다.
“환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인가? 한데 반산몽보다 수준이 높은 저자가 여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이상한 일인데…”
한제는 갈등에 빠졌다. 우선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채도인의 상태로 보건대 지금이라면 자신을 곧장 쫓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 하나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칠채도인의 환각 안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진정한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칠채도인이 환각에 빠져 있는 것이 절대 반산몽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다른 힘도 개입했을 터였다.
만약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포기해 버린다면 절대로 다시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평생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 틀림없다.
“부귀는 위험 속에서 구할 수 있는 법!”
결심한 듯 눈을 번득인 한제는 이내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평소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동한 끝에 칠채도인의 10만 척 거리에 이르렀다.
주위에는 수많은 흉수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한제는 그중 한 시체의 머리 위에 서서 그 시체를 살폈다.
‘이 흉수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멀리 칠채도인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든 한제는 곁에 있는 수백 척 크기의 흉수 시체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 시체는 곧장 10만 척 밖에 있는 칠채도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한제는 몸을 살짝 뒤로 기울여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대비하면서도 칠채도인을 향해 날아가는 흉수를 관찰했다.
한데 시체가 1천 척 거리에 이른 순간, 칠채도인의 뒤에서 일곱 색채의 빛이 번득였다. 그 빛에 바들바들 떨리던 시체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피도 살점도 심지어 털 한 올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소멸이었다.
‘역시!’
한제는 천천히,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심장이 요란하게 두방망이질 쳤다.
한제는 칠채도인으로부터 1천 척 떨어진 곳에 이르러 멈춰 섰다. 방금 전 흉수의 시체가 소멸된 곳보다 조금 뒤쪽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참 고민하던 그는 이내 이를 악물고는 가부좌를 틀더니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눈앞이 순간 흐릿해졌고 미간에서 떨어진 손은 곧 1천 척 밖에 자리한 칠채도인을 가리켰다.
‘내 꿈이라면 네 환각 속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몽도!’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었고 피를 토해냈다. 흐려졌던 시야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허공에 앉은 그의 모습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하지만 칠채도인의 수준이 워낙 높은 데다가 주위에 둘러진 금제 때문에 한제로서는 꿈으로도 상대의 환각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제기랄.’
한제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생명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법한 기운이 칠채도인의 체내에서 끊임없이 확산됐다.
그의 주위를 맴도는 이 기운에 근처의 흉수들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저 멀리 달아났다. 하늘의 위엄보다도 몇 배는 더 강력한 이 기운에 감히 가까이 다가갈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사방의 흉수 시체들은 그가 환각에 빠지기 전에 죽여 놓은 것들인 듯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던 끝에 혀를 깨물어 한 움큼의 피를 뱉어냈다. 총 아흔아홉 방울로 각각의 핏방울에는 한제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한제는 신중하게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한 방울의 피가 그의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도고 불멸⋯⋯.”
한제는 중얼거리며 체내에서 도고의 힘을 가동해 미간 앞에 떠오른 핏방울에 응집시켰다. 한제의 원신도 한 줄기 깃들어 있는 핏방울은 투명한 상태라 멀리서 보면 마치 수정 같았다.
한제 체내의 도고의 힘과 융합된 이 피는 눈부신 붉은 빛을 번득였고 한제가 일으킨 바람을 타고 앞으로 날아갔다.
남은 아흔여덟 방울의 핏방울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응집해 붉은 빛 고리를 형성했다.
수정 같은 핏방울은 그 빛 고리의 보호 아래 곧장 칠채도인에게 접근했다.
1천 척 안으로 들어간 순간, 아흔여덟 방울의 피로 이루어진 붉은 빛 고리가 그대로 와해되면서 소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한 방울, 도고 불멸의 피뿐이었다. 사실 나머지 아흔여덟 방울은 애초에 이 한 방울을 위한 보호막에 불과했다.
이 핏방울은 순식간에 수백 척을 날아갔다.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움직이는 동안에도 수천 번 이상 소멸됐지만 그때마다 도고 불멸의 회복력으로 빠르게 회복됐다.
어느새 접근한 핏방울이 칠채도인으로부터 반경 1백 척 안으로 들어선 순간, 도고 불멸의 회복력조차 소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더니 극히 일부만 남았다.
남은 것은 너무도 적은 양이라 육안으로는 거의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안에 담긴 원신도 끊임없이 소멸함으로써 한제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핏방울은 완전히 흩어지기 직전에 마지막 1백 척을 지나 칠채도인의 미간에 찍히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한제의 원신 일부는 칠채도인의 몸에 닿은 후였다.
1천 척 너머에서 지켜보던 한제는 그 찰나의 순간 두 눈을 감으며 낮게 외쳤다.
“몽도!”
동시에 한제의 심신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야에 잡혔던 모든 것은 사라졌고 그 대신 일곱 색채의 빛이 나타나 그의 심신을 저 깊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결과로 한제가 이르게 된 곳은 하늘도 땅도 구름도 모두 일곱 색채의 빛으로 이루어 칠채의 세계, 불쑥불쑥 솟은 수많은 산맥 중 하나의 정상이었다.
한제는 멍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칠채도인의 환각이구나!”
그는 이내 조심스레 신식을 펼치며 몸을 훌쩍 날렸다. 아래로 대지가 휙휙 지나쳐갔다.
한동안 하늘을 날던 한제는 돌연 몸을 우뚝 멈추더니 어딘가를 살폈다. 저 앞의 산맥 위, 가부좌를 튼 채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칠채도인이었다.
그의 주위로는 주먹만 한, 화염처럼 보이는 빛의 공 아홉 개가 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불새가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이 아홉 개의 태양은 다름 아닌 칠채도인의 수준이자 법보였다.
“산몽⋯⋯ 생각났다. 네 이름은… 반산몽이었지.”
칠채도인이 중얼거렸다.
칠채를 놀라게 하다
한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이한 표정으로 칠채도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칠채도인의 말을 들을 수 있었지만 칠채도인은 어째서인지 자신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한 듯했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한제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번득였다.
‘이중 환각인가?’
잠시 후 한제는 조심스레 칠채도인 쪽으로 향했고 머지않아 1만 척 거리에 이르렀다.
한제는 무언가 결심을 내린 듯한 눈으로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고 저물공간에서 귀면기를 꺼냈다.
이 혼번의 구체적인 사용 방법도 알지 못했고 아직 완벽하게 제련하지도 못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신의 신식을 녹여 넣은 상태였다.
가부좌를 튼 그는 전방을 향해 깃발을 날렸다. 깃발은 그 안에 든 신식을 통해 통제되면서 한제의 몸을 뒤덮은 채 앞으로 날아갔다.
한제의 원신은 혼번에 감싸인 상태로 허공을 가르며 칠채도인을 향해 쏘아져 나간 셈이 됐다.
칠채도인의 상공에 이르렀을 때, 한제는 깃발을 확 펼쳤다. 그 위에 그려진 귀신 얼굴은 점차 한제의 얼굴로 변해 칠채도인의 멍한 시야에 잡혔다.
그 찰나의 순간, 한제의 눈앞은 어두워졌다. 동시에 칠채도인의 두 눈은 곧장 그를 끌어들였다.
“들어가!”
한제가 명령을 내리자 귓가에서는 콰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에게 익숙한 동시에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을 채운 어둠은 모종의 기이한 힘에 억지로 찢기더니 그 너머로 무너진 누각이 가득한 세상을 보여주었다. 어딘가의 종파 같았다.
익숙한 웃음소리는 회색 옷을 입고 같은 색의 머리를 길게 기른 한 중년 사내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척 준수한 사내의 두 눈에서는 서늘함과 오만함이 함께 어려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전방의 거대한 누각을 무너뜨렸다. 무너져 내린 누각에서는 낮은 고함과 함께 일곱 색채의 빛이 튀어나왔는데 그 빛 안에는 분노에 찬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흠!”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한 순간,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는 바로 한제의 저물공간에 든 조각상의 주인, 진정한 칠채선존이었다.
한편, 모습은 조금 낯설지만 그 웃음소리와 목소리만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회색 옷차림의 중년 사내는 다름 아닌 광인이었다.
광인의 뒤로는 붉은 염룡 한 마리가 춤을 추며 방자한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고 옆쪽에는 청의를 입은, 사환처럼 보이는 대머리 소년이 서 있었다.
대머리 소년은 약간 마른 편이었지만 두 눈을 험악하게 번득이며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 상대 역시 한제에게 낯익은 자 바로 4대 장군 중의 청룡장군이었다.
사방 곳곳에서는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라 매우 혼란스러웠다. 고투를 펼치고 있는 수련자들 중에는 4대 장군 중 나머지 세 사람과 원고 팔비도 있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졌으며 누각들도 하나하나 부서져 내렸다.
하늘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어났고 그 사이로 불어닥친 서늘한 바람이 곳곳을 얼어붙게 했다.
이 광경에 한제는 엄청난 충격에 넋을 놓고 말았다.
광인에 맞서던 칠채선존은 피를 뿜어내면서 튕겨나가더니 고통과 광기에 찬 표정으로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반산몽, 반산로! 너희가 어찌 나를 배반한단 말이냐! 내 너희를 그토록 잘 대해주었건만 어째서! 내가 손에 넣은 이 파편 때문에 우리가 함께해온 1만 년의 세월을 무시하는 것이냐?”
칠채도인의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반산몽, 나와라! 난 돌아오는 도중에 너의 기습을 받고도 너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었다. 내가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느냐? 아느냐 말이다! 한데 이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 나를 죽이려 하다니, 비열하고도 잔인하구나! 그리고 연도비! 고귀한 신분으로 수많은 아내를 가진 네가 내 아내였던 반산몽을 마음에 품었음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칠채선존의 눈은 광기로 번득였고 목소리는 피를 토하는 듯했다.
광인, 즉 연도비는 거만하고 도도한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몸을 유혹한 건 그 여인이다. 이몸은 남의 여인에는 관심 없어. 이곳에 온 것은 그저 네가 얻었다는 그 파편 때문이다. 그것만 내놓는다면 곧장 떠나마. 더는 너와 네 아내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
“파편? 그것을 원하느냐? 허나 오늘 너희 중 누구도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칠채선존은 붉게 변한 두 눈을 번득이며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면서 상공에 거대한 회오리가 나타났는데 그 안에는 거대한 눈이 하나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