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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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여전히 허공을 포류하고 있었다. 이미 방향까지 바뀐 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흘러가는 그는 허공의 다른 시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다시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환생을 거쳐 선강 대륙에 태어난 사람도 아직 환생의 과정을 거치는 중인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어쩌면 수백 년이 지난 후에야 태어날지도 모른다.
이들 사이에 시간 차이가 있는 이유는 현라도 알지 못했다.
가장 강한 분신
선강 대륙 서주(西洲)의 어느 일반인 도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어딘가 남다른 이 아이는 예닐곱 살 무렵부터 또래 아이들과 놀 때도 자신을 왕이라고 칭하곤 했다.
만약 다른 아이들이 자신을 왕으로 대접해주지 않으면 곧장 주먹부터 날리기 일쑤였다.
이에 점차 겁을 먹게 된 이웃집 아이들은 아이를 왕으로 대접해주며 놀았다.
어느 해에는 선강 대륙 남주(南洲)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 또한 상당히 비범했다.
일찍이 집과 가족을 잃은 이 아이는 겨우 열 살이 됐을 무렵부터 사기꾼으로 이름을 날렸다.
허나 악명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에 아이는 일찍이 고향을 떠났다. 그 후 이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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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천천히, 그러나 착실히 흘렀다.
현라는 일찍이 도고 일맥으로 돌아가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도고 황존은 현라가 혼자 돌아온 것을 보고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점차 현라가 당시 이곳을 떠났던 이유를 잊어갔다.
이제 이한제라는 이름은 차차 잊혀가는 듯했다. 선강 대륙에서도 동부계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여전히 그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모은미와 선강 대륙의 당산이 그랬다. 귀일종으로 돌아와 이름을 날리고 있는 운일봉도 한제를 기억했다.
그리고…
“캬오오오!”
맹렬하게 포효하는 흡혈마수의 왕도 결코 한제를 잊지 않았다. 이 흡혈마수는 아홉 마리의 동료와 함께 허공에서 선강 대륙의 법칙을 흡수해갔다.
이에 따라 녀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네 차례의 탈변을 거쳤고 그때마다 수십, 수백 배로 커져 이제는 법칙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이제 법칙의 압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캬아아아!”
거대한 포효와 함께 마침내 다섯 번째 탈변을 거친 흡혈마수의 왕은 이 허공을 진동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
이때 녀석의 몸은 마치 안개로 이루어진 것처럼 변해 있었다.
흡혈마수의 왕은 아홉 마리의 동료와 함께 합쳐지더니 무궁무진한 안개가 되어 허공 깊은 곳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한제를 자신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슬픔에 찬 울음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이제는 실체를 잃고 흐릿한 안개가 된 흡혈마수의 왕은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그러나 한제를 발견하지 못하자 녀석은 초조한 듯 그 자리에 멈추더니 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너져 내린 한 덩어리의 안개는 십만 갈래로 나뉘더니 안개로 이루어진 흡혈마수가 되어 십만 개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이 흡혈마수들은 주인을 부르듯 쉭쉭 소리를 내며 탐색을 이어나갔다.
이때, 허공 깊은 곳 어딘가에는 한 구의 시체와 한 구의 관이 표류하고 있었다. 시체의 오른손은 관을 꽉 붙들고 있었다. 마치 그 팔을 잘라내더라도 관을 쥔 손만은 풀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시체가 표류를 시작한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흐른 상태였다. 그리고 점차 이 시체에서는 어스름한 하얀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한제가 두 구의 시체로부터 흡수했던 것과 같은 이 빛은 허공에서 응집된 기이한 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체와 관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손바닥만 한, 안개로 이루어진 흡혈마수가 쉭쉭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녀석은 휙 스쳐가려다가 돌연 몸을 바르르 떨더니 우뚝 멈춰 서서 시체를 응시했다.
“캬오오!”
녀석은 격앙된 감정이 어린 포효를 내지르며 시체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체의 곁에 이른 흡혈마수는 시체의 비쩍 마른 얼굴을 바라보며 구슬프게 울었다. 사람처럼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절규만으로도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사방의 허공을 샅샅이 뒤지고 있던 줄기줄기 안개가 몰려들면서 10만 마리의 흡혈마수가 됐고 한데 응집해 흡혈마수의 왕이 됐다.
“캬오오오!”
흡혈마수의 왕은 붉어진 두 눈으로 구슬프게 울다가 거대한 주둥이로 마치 잠든 사람을 깨우듯 한제를 조심스레 건드려 보았다. 하지만 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흡혈마수의 왕은 몸을 덜덜 떨면서 거친 쉭쉭 소리를 냈다. 지난 몇 년간 목숨을 걸고 진화해 탐색한 끝에 마침내 주인을 찾아냈으나 그 주인이 이미 시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녀석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흡혈마수의 왕은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한제와 그가 붙잡고 있는 관을 휘감은 채 짙은 안개가 되어 먼 곳으로 내달렸다.
녀석은 단숨에 한제와 피천관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어넘었다.
다섯 번의 탈변을 겪는 동안 녀석의 체내에는 선강 대륙의 법칙으로 차있는 이 허공에 대한 흐릿한 기억이 쌓이게 됐다.
그중에는 이곳 어딘가에 주인을 되살릴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어렴풋한 기억도 있었다. 다만 그 위치가 비밀스러워 찾으려면 한참이 걸릴 터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날았을까? 저 멀리 그가 찾아 헤매던 호 형태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마치 뭔가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불규칙적인 모양새의 대(臺) 같은 것으로 길이는 10만 척에 이르렀다. 이 대에서는 하얀 빛이 발산되고 있었는데 그 빛은 한제가 두 구의 시체에서 흡수했던 것과 같았다.
대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한 겹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막은 선강 대륙의 법칙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결과로 한제는 물론 현라조차 뚫고 안으로 진입할 수는 없을 터였다. 오직 선강 대륙의 법칙에서 태어난 선조와 고조, 그리고 그들과 동시대에 태어난 아홉 종류의 기이한 흉수들만이 그 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흡혈마수는 그의 선조가 이런 호 형태의 대에서 태어났던 것을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주인이 일단 이 대 안에 진입한다면 반드시 되살아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흡혈마수는 한제와 관을 휘감은 채 그 막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흡혈마수는 막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한제와 관은 막에 가로막혀 들어오지 못한 상태였다.
막 안으로 진입한 흡혈마수는 곧장 막 밖으로 나가 한제를 휘감은 채 다시 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몇 번을 시도해도 소용없었다.
흡혈마수의 왕은 초조해진 듯 연거푸 쉭쉭 소리를 내며 거대한 주둥이를 휘둘렀고 한제의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대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막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한제의 머리카락은 다시 튕겨나갔다.
“캬오오오!”
흡혈마수는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지르며 대 밖으로 나가 한제의 곁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거대한 주둥이를 축소시켜 바늘처럼 만들어 한제의 몸에 찔러 넣고는 비쩍 마른 한제의 몸에서 한 방울의 피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대로 대를 향해 돌진했다.
“캬아아아!”
막 안으로 반쯤 들어간 순간, 녀석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막에 끼인 것이다. 삼켰던 한제의 피를 뱉어내지 않는 이상 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듯했다.
흡혈마수는 우렁차게 포효하며 어떻게든 막을 관통하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막의 힘은 어마어마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소용없었다.
몇 차례에 시도 끝에 두 눈이 붉어진 흡혈마수는 안개 같은 몸을 곧장 응집했다. 마치 온몸의 정화로 체내에 존재하는 한제의 피를 감싸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뒤이어 녀석은 입을 벌리더니 한제의 피를 토해냈다.
막에 반 정도 들어선 흡혈마수의 주둥이는 이미 호 형태의 대 위에 있었기 때문에 한제의 피는 막 내부로 뿌려졌다. 그러나 한제의 피는 곧장 기화되며 사라져 버리려 했다.
그 순간, 흡혈마수는 몸을 날려 온몸으로 그 피를 보호했다.
“캬오오오!”
흡혈마수의 왕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고 찰나의 순간 녀석의 몸은 흩어져 사라질 조짐을 보이면서 눈 깜짝할 사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온몸을 내던져 보호한 덕에 한제의 피는 아주 약간이나마 남아서 호 형태의 대에 안착하게 됐다.
선강 대륙의 법칙에 속하지 않는 외부의 존재가 이 안에 이르러 대 위에 안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한 방울의 피는 한제가 잠든 뒤 그의 시체에 응집되어 있던 하얀 빛이었다.
이는 그가 수련을 해온 2천여 년간 얻었던 것 중 가장 큰 행운이 됐다.
선강 대륙 허공의 이 대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존재는 애초에 많지 않았다. 그런 시도를 했던 이들은 대부분은 사망하거나 정신을 잃었다. 게다가 항상 둥둥 떠다니는 이것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만약 흡혈마수가 다섯 번의 탈변을 거치면서 영혼에 새겨진 어렴풋한 기억을 찾지 못했더라면 이곳을 찾아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녀석이 목숨까지 내걸지 않았더라면 한제의 피는 대 위에 안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남에게 쉽사리 복종하지 않는 흡혈마수를 이렇게까지 길들인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큰 행운은 이곳 출신이 아닌 자 중에서는 바로 이 허공에서 죽거나 잠든 시체이면서 하얀 빛을 발산하고 있어야만 대 위에 올려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빛은 선강 대륙 법칙의 일부로 모두가 발산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이 모든 조건이 채워져야만 지금의 한제처럼 피를 호 형태의 대 위에 올릴 수 있었으니 한제에게는 어마어마한 우연이자 행운인 셈이었다.
그의 피가 올려진 순간, 대는 곧장 그 피를 흡수하더니 바르르 진동하다가 줄기줄기 보이지 않는 파문을 일으켰다. 이 파문이 허공으로 퍼져 나가자 사방에서 하얀 빛줄기가 급속도로 몰려들었다.
흡혈마수는 흥분한 채로 한제의 곁을 지켰다.
콰쾅! 쾅!
갈수록 격렬한 소리가 울리고 대가 진동하기 시작한 이때, 천천히 부드러워진 대의 가장자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대는 마치 아주 살짝 주먹을 쥔 것처럼 가운데가 비어버린 껍데기가 됐다.
껍데기 안에는 피 안개가 떠 있었다. 이 피 안개는 사방에서 몰려든 하얀 빛을 흡수하며 끊임없이 번득이더니 천천히 인간 형태의 허상으로 응집됐다. 바로 한제였다.
계속 응집된 허상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는 이때, 껍데기 밖에서는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한제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한 줄기 힘이 자신의 혈맥 속에 나타남과 동시에 육신을 자양하고 있음을 덕분에 체내에 존재하는 도고의 힘이 회복되고 있음을 느꼈다.
일곱 갈래의 본원도 찰나의 순간 절정의 상태로 회복됐다. 동시에 이 세상에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눈을 뜬 순간, 흡혈마수 왕의 기쁨에 찬 환호가 들려왔다.
뒤이어 한제의 시야에 잔뜩 격앙된 표정의 흡혈마수 왕과 그 곁의 거대한 껍데기, 그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건… 도대체 뭐지?”
한제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차 있었다.
한제는 돌 껍데기를 바라보았다. 육안으로는 그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그 안에 자리한 또 다른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눈을 감으면 자신이 그 돌 껍데기 밖에 있는지 아니면 안에 있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돌 껍데기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 밖에 있는 본체를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기이한 느낌은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이건⋯⋯?”
곁에서 흡혈마수의 왕이 주둥이를 한제의 몸에 비벼대며 기쁨에 차 쉭쉭 소리를 냈다.
흡혈마수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고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안개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몸에는 흘러넘치는 듯한 생기가 가득했다.
선강 대륙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