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66
선강 대륙에서 환생한 옛 벗을 처음으로 만난 한제의 마음속에서는 갖가지 기억과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는 동안 해룡은 맹토종으로 향했다. 그곳은 맹토주와 같은 이름을 가진 종파로 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강력했다.
맹토종에서도 한제는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곳의 선조는 혹여 한제의 심기를 건드릴까 공손하게 지도가 담긴 옥패를 넘겼다.
한제는 지도를 챙긴 뒤 맹토종 역시 신식으로 훑어보았다. 이곳에서도 옛 벗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으나 역시 수확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주일과 청상의 앞날을 축복한 한제는 해룡에 올라탄 채 천주로 향했다.
동주의 몇 안 되는 천존들 중에는 9종 13문의 하나인 천주 천문의 선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나운해와 같은 세대의 천재라고 했다.
다만 그 수준이 천존에 멈춰 있는 그는 일찍이 쌍자 대천존을 따르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후에 일어난 변고로 인해 말없이 쌍자 대천존의 곁을 떠나 천문으로 돌아온 후로 수만 년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9종 13문 중 유일하게 천주에 속한 탓에 천문은 이곳의 패주로 군림해왔다. 또한 다른 종파들과 달리 한곳에 머물지 않고 천주 전역에 열아홉 개의 분종을 둔 채 이 주의 모든 자원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천주의 하늘 위로 한 마리 거대한 해룡이 질주하고 있었다. 한제는 이 해룡의 머리 위에 가부좌를 튼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주에 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이 낮게 깔린 구름과 안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하늘 높이 있어야 할 그것들은 기이한 변화로 인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지면을 뒤덮어 천주를 신비로운 안개에 휩싸인 선경처럼 보이게 했다.
천주의 수많은 산 중 가장 높은 천봉(天峰)의 산봉우리는 하얀 구름으로 뒤덮여 멀리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천문
천봉 근처에서 일어난 왜곡 안에서 나타난 해룡은 하늘을 선회하며 거대한 눈으로 산봉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동시에 녀석은 금존의 수준에 상당하는 위력을 방출해 사방을 뒤덮었다.
녀석의 머리 위에 선 한제는 마치 구름 속의 선인처럼 한 걸음 성큼 내딛어 짙은 구름을 딛고 천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하얀 구름으로 뒤덮인 천봉 꼭대기에 이른 그는 뒷짐을 지고 섰다. 바람이 그의 머리를 흩날리자 뒤에 있던 해룡은 하늘을 맴돌다가 음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이한제라 하네. 천문의 선조를 만나러 왔네!”
한제는 곧 신식을 통해 우렁찬 목소리를 퍼뜨렸다.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울려 퍼진 목소리는 눈 깜짝할 사이 천주의 절반 정도를 뒤덮었다. 이에 천문의 분종과 그들에게 의탁해 있는 다른 종파 수련자들도 순간 심신을 진동시키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천주를 뒤덮은 구름과 안개 역시 순간 사방으로 밀려나면서 한제를 중심으로 반경 수천만 리의 하늘은 말끔해졌다.
천주 내 천문의 주종은 끝없이 이어진 산맥 안에 있었다. 한제의 신식을 담은 목소리가 이 산맥을 훑고 지나가며 발산한 강력한 기운에 땅과 하늘의 기색이 변하고 구름과 안개가 흩어졌다. 그리고 이윽고 거친 삼베옷을 입은 백발노인이 걸어 나왔다.
노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땅과 하늘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밝게 번득이는 눈으로 한참 멀리 떨어진 천봉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소매를 휙 휘둘러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천봉 꼭대기였다. 허공에 생겨난 왜곡에서 나타난 그는 산봉우리 위의 거대한 해룡은 본 척도 않고 곧장 한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1만 척 정도였다.
노인의 시선을 느낀 한제는 금빛 눈을 번득이며 상대와 눈을 맞췄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에서는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인의 눈빛은 마치 억만 개의 바늘처럼 한제의 두 눈을 관통해 그의 체내를 찔러들었다.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더니 두 눈으로 전보다 더 짙은 금빛을 번득였다.
백발노인 역시 경련을 일으켰다. 한제의 눈빛에 깃든 금색의 검 한 자루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검은 짙은 선력을 발산했고 예리했으며 서늘했다. 또한 하늘의 위엄 같은 묵직한 위압감도 품고 있었다. 마치 그 금색 검이 곧장 달려들어 찌르려는 것만 같았다.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무엇인가!”
백발노인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막 천존의 반열에 오른 터라 도우에게 몇 수 배우려 할 뿐, 다른 저의는 없네.”
천문과 아무런 원수도 진 적이 없는 한제는 공손하게 말하며 백발노인을 향해 포권을 했다.
백발노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가늘어진 눈에는 전의가 어렸다. 천존 사이에 목숨을 건 교전이 벌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가벼운 싸움은 흔한 편이었다. 모든 선족을 통틀어 수가 워낙 적은 까닭에 서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싸울 기회가 생기면 거의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싸움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지!”
백발노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곧장 오른손을 들더니 산봉우리 위의 한제를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천봉 위에 쌓여 있던 눈이 일제히 진동하더니 날아올라 한제를 향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눈 폭풍에 담긴 아홉 개의 신통술이 마구 발휘되면서 눈 깜짝할 사이 한제를 잠식했다.
“하하하! 좋군!”
한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주먹을 마주 휘둘렀다. 그의 주먹에도 마찬가지로 아홉 개의 신통술이 담겨 있었는데 모두 역령인이었다.
콰쾅!
우렁찬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자 눈 폭풍은 진동하다가 순식간에 무너져 흩어졌다. 이후로도 굉음은 몇 차례의 메아리를 울렸고 그 안에 섞인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몇 시진 뒤, 끝없는 눈송이 속에서 수만 척 물러난 한제는 오른발을 땅에 디뎌 중심을 잡으며 몸을 멈춰 세웠다.
“대단하군. 덕분에 적지 않은 것들을 얻었어. 고맙네!”
그와 동시에 반대편으로 수만 척 물러나던 백발노인도 겨우 멈춰 섰다.
“이제 막 천존의 반열에 이르렀다면서 주먹질 한 번에 아홉 개의 신통술을 녹여 넣다니,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군!”
수만 척 거리를 둔 채 떨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포권을 하며 미소를 드러냈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한마디를 주고받은 뒤 동시에 몸을 훌쩍 날린 이들은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우렁찬 굉음에 해룡조차 뒤쪽으로 물러나 두 천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7일 동안 총 스물세 차례의 싸움을 이어갔다. 한 차례 싸움이 끝날 때마다 떨어져 앉은 채 체력을 회복하고 방금 전의 싸움을 복기하며 서로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원한에서 비롯된 싸움이 아니었기에 서로 필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도우, 아직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지 않군. 자네와 나의 전력은 서로 엇비슷한 것 같으니 이제 장난은 그만두고 온힘을 다해 싸워보는 것이 어떤가!”
스물세 번째의 교전을 마친 뒤, 멀리 떨어져 앉은 백발노인이 물었다.
“좋지!”
한제는 벌떡 일어나자마자 몸을 훌쩍 날리며 오행 본원의 진신을 소환했다.
분신을 소한한 한제의 전력은 순간 증폭되어 열여덟 개의 신통술을 녹여 넣은 공격에도 맞설 수 있게 됐다.
“본원 진신! 그것도 여러 개의 본원을 융합해 얻어낸 진신이로군!”
노인은 두 눈을 번득이며 한제의 분신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공격에 나선 순간, 백발노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열일곱 개의 신통술을 녹여 넣은 공격을 날렸다.
콰쾅! 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또다시 사흘이 흘렀다.
한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해룡의 등에 올라타 먼 곳으로 떠나갔다.
“모용 도우, 여러모로 고맙네!”
날리는 눈발 속, 떠나는 한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백발노인의 표정은 진지했다.
“저자는 아직 전력을 발휘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저 정도 수준이라면 천존열 시험장에서 몇 번째 층까지 이를 수 있을까?”
백발노인은 한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돌아서더니 몸을 훌쩍 날렸다.
“우리 선족에 천존이 한 명 더 늘어났으니 대천존께 알려야겠군.”
열흘 동안의 교전으로 그도 많은 깨달음을 얻은 상태였다.
★ ★ ★
눈 깜짝할 사이 50년이 흘렀다. 일반인에게는 일평생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수련자에게는 잠시에 지나지 않았다. 허나 이 50년 동안 선강 대륙 대륙에서는 하나의 전설이 이어지고 있었다.
동주와 남주 사이에서 돌고 있는 전설에 따르면 백의백발의 어느 천존 수련자가 금존 수준의 해룡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서주로 이동한 그는 서른 개가 넘는 주를 돌아다니며 천존 수련자와 맞붙었다.
서주에는 대천존에 포섭되지 않은 자와 평소 폐관수련에만 몰두하는 자를 합해 거의 1백 명에 이르는 천존이 있었다. 그리고 남주는 동주보다 천존이 훨씬 더 많았다.
동주는 선족의 다섯 구역 중 두 번째로 많은 천존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쌍자 대천존의 분열로 인해 이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한편, 전설의 주인공은 낙운주(諾雲洲) 낙운종(諾雲宗)의 천존 선조, 해낙주(海洛洲) 도덕문(道德門)의 천존 선조, 구마주(九魔洲) 마천도(魔天道)의 천존 선조, 영용주(靈龍洲) 도일 대천존 휘하의 항도 천존, 그리고 산릉주(山凌洲) 무봉 대천존 휘하의 적봉 천존과 싸웠다.
매 전투는 하늘과 땅을 뒤흔들 정도로 요란하여 하나의 전설이 됐고 사람들의 입에 하나의 이름을 오르내리게 했다.
백발 천존! 한제의 이름을 아는 자는 매우 적었기에 그는 백발 천존이라 불렸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백발 천존이 1백 회에 달하는 도전을 하고 다니는 동안 패배한 적은 20여 차례에 불과했다. 이 충격적인 전적에 그의 이름은 더욱 유명해졌고 결국 북주와 서주, 심지어 중주에까지 퍼져 나갔다. 선족 내의 거의 모든 천존이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백발 천존이 어마어마한 전력을 가졌음을 알게 된 셈이다.
백발 천존의 마지막 전투는 남주 산해주(山海洲) 해자 천존과의 교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후로 그는 몇 년간 두문불출했다.
“백발 천존이 산해주에서 해자 천존과 싸웠을 때, 바다가 무너져 내리고 하늘이 붕괴했지. 당시 나는 마침 산해주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하늘을 뒤덮을 듯 몰아치던 어마어마한 풍랑과 그 안에서 보일 듯 말 듯했던 백발 천존의 인영을 본 적이 있다고!”
산해주에는 각 종파 수련자들이 모여 거래를 하는 시장이 있었다. 그중 한 도시의 어느 술집, 도포 차림의 노인이 술을 퍼마시며 말을 이었다. 곁에서는 네댓 명의 수련자가 노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발 천존은 패배하고 말았지.”
노인은 마치 백발 천존과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라도 한 것처럼 애석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해자 천존은 이미 거의 약천존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습니까? 백발 천존이 제아무리 강해도 그런 해자 천존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죠!”
곁에 있던 청년 수련자가 냉소하며 지적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남주는 도일 대천존 덕분에 많은 천존을 보유하고 있지. 게다가 도일 대천존은 강제로 천존을 포섭하는 분이 아니야. 그러나 남주의 천존들은 도일 대천존 휘하에 있든 아니든 1백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도일종의 강연을 들으러 가지. 동주의 천존들이 남주로 이주한 것도 그 때문 아닌가? 어쨌든 백발 천존이 그토록 요란한 행각을 벌인 것은 도일 대천존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겠지. 그분 휘하에 들어가고 싶은 게야.”
그때, 노인 주위에 모여 있던 네다섯 명의 수련자 중 부채를 든 한 중년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도일 대천존이 백발 천존을 포섭하려 했을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내가 듣기로는 도일 대천존은 50여 년 전 이미 백발 천존을 포섭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던데?”
검은 도포 차림의 노인이 주위 사람들을 훑어보며 끼어들었다.
“하, 그런 일도 있었단 말인가?”
크지 않은 이 술집은 수련자를 위해 준비된 공간인 터라 음식을 팔지는 않았다. 대신 이 집의 술은 맛이 좋아 많은 수련자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