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16
그 순간 한제의 머리는 바르르 경련했고 곧장 금빛으로 뒤덮였다. 칠규를 통해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머리로 흘러든 금빛은 유난히 더 포악하게 한제의 머리에 있는 모든 방어막을 뚫으면서 한제의 온몸을 완전히 점거하는 데 성공했다.
한제의 온몸을 뒤덮은 금빛은 격렬하게 번득였고 이에 따라 금궁의 허공에 떠 있는 선조의 오른쪽 눈에서도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영혼 제압!”
상현도는 금빛이 한제의 온몸을 점거하자마자 신식을 펼쳐 한제의 영혼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제의 체내에서 영혼의 파동을 느낀 그는 잔뜩 흥분해 그쪽으로 돌진했다.
“모든 존재는 존재하기에 허무로 변할 수 있게 된다! 영혼, 허무가 되어라!”
상현도의 신식이 울려 퍼진 순간 그가 발견한 한제의 영혼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쯧, 이렇게 약해서야. 남은 기억조차 없군. 선조의 유산에서 발산된 금빛이 너무나 포악한 탓에 이한제의 영혼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던 모양이야.”
상현도는 신식을 펼쳐 금빛에 휩싸인 한제의 몸을 통제했다.
그 순간, 온몸으로 무궁무진한 금빛을 발산하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서는 더욱 밝은 금빛이 쏟아지듯 뿜어져 나왔다.
허나 지금의 한제는 의식을 잃고 상현도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상태였다.
“성공했다! 이한제 이 교활한 놈! 내내 나를 의심하고 버티더니 결국 내게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됐구나! 그나저나 정말이지 강력한 몸이야! 더 많은 향불의 힘을 제련할 수 있겠어! 크하하하!”
한제의 몸을 탈취한 상현도는 두 눈 가득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조의 유산을 완벽하게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이건 내 계획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니까. 이제 두 번째 단계에 돌입해야겠군.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 종족은 선조가 남긴 봉인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 거야! 아아, 얼마나 이날만을 기다려왔던가! 우리 종족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치겠다!”
한제의 몸을 점거한 상현도의 두 눈에서는 밝은 빛과 함께 슬픔이 드러났다. 여태까지 자유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죽음을 맞은 종족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망족(悼亡族)의 해방
“이한제, 날 원망하지 마라.”
뒤이어 작게 한숨을 내쉰 상현도는 다시금 결연한 눈빛을 번득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한제의 몸에서 발산되던 금빛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열 배, 백 배, 천 배, 만 배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타오르는 듯한 이 금빛은 한제의 체내에 존재하는 선조의 수준을 빠른 속도로 폭발시켰다.
만 배 이상 강력해진 금빛이 폭발하면서 한제의 몸은 태양과 다를 바 없어졌다. 덕분에 어둠으로 가득했던 선조의 오른쪽 눈구멍 안 세상은 환히 밝아져 이제 사방을 분간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 극강의 빛은 금궁 상공에 떠 있는 선조의 오른쪽 눈에서부터 널리 확산되면서 금궁을 밝히기도 했다.
오른쪽 눈으로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선조의 머리는 마치 되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무시무시해 보였다.
“왼쪽 눈!”
선조의 오른쪽 눈에서 한제의 몸을 점거하는 데 성공한 상현도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또다시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선조의 머리는 여태 감고 있던 왼쪽 눈도 번쩍 떴다.
탁하고 공허한 왼쪽 눈은 흘러넘칠 듯한 생기를 번득이는 오른쪽 눈과는 전혀 달랐다.
선조의 왼쪽 눈에서는 이내 한 줄기 막대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하늘의 구멍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하늘의 구멍 너머, 지하 궁전의 무너져 내린 붉은 연못 앞 제단 위에서 광인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던 아홉 개의 사슬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그 사슬들은 선조의 왼쪽 눈에서 발산된 흡입력에 이끌리듯 깨진 붉은 연못 아래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이내 사슬은 쩌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허나 선조의 왼쪽 눈에서 발산된 흡입력에 이끌리고 있는 것은 그 사슬들이 아니라 사슬에 얽혀 있는 광인이었다.
콰르릉!
광인을 칭칭 감은 채 붉은 연못 바닥까지 뻗쳐 있던 사슬 중 세 갈래가 순간 파괴됐다. 한제는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던 사슬이 선조의 흡입력에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남은 여섯 갈래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연달아 모조리 부서졌다.
사슬에서 완전히 풀려난 광인은 붉은 연못 바닥의 구멍을 통해 금궁에 들어서더니 한 줄기 금빛을 그리며 선조의 왼쪽 눈으로 끌려왔다.
어느새 선조의 머리 지척까지 다가온 광인은 곧 한제가 그랬던 것처럼 선조의 왼쪽 눈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바로 그때였다. 광인의 흐릿한 허상이 담긴 선조의 왼쪽 눈에서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덕분에 이제 두 눈을 모두 갖게 된 선조의 머리는 완전히 되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선조는 말하라! 우리 도망족(悼亡族)을 해방하겠다고! 봉인을 풀어주겠다고!”
선조의 오른쪽 눈 안에서 한제의 몸을 점거하고 있던 상현도기 벅차오르는 감정을 품은 채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한데 그는 잔뜩 흥분한 터라 체내의 천역주 안에 숨은 한제의 영혼이 이 모든 것을 서늘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상현도의 외침에 선조의 머리는 두 눈으로 금빛을 뿜어내며 내내 닫혀있던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이내 그 입에서는 아주 오래된 기운을 풍기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상현도의 목소리와 매우 비슷했다.
“도망족을 해방한다…”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저자의 계획이었군! 허나 난 처음부터 저자를 믿지 않았지.’
한제는 오른쪽 눈에 삼켜진 뒤로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영혼을 천역주에 녹여 넣어 가짜 영혼을 파멸시킴으로써 상현도를 속이고 그 속셈을 완전히 파악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상대에 대해 약간 탄복하기까지 했다.
‘내 육체로 선조의 수준을 약간 전승하고 그런 내 육체와 광인의 육체를 선조의 두 눈으로 삼았다. 덕분에 선조의 머리는 이제 생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이게 됐어. 어쨌든 그 힘은 선조 자신의 것이니까. 그 후 저자는 선조의 오른쪽 눈에 들어와 어떤 방법으론가 선조 머리의 입을 열게 한 거야! 이를 통해 자기 종족에 걸린 봉인을 완전히 풀 수 있겠지!’
한제는 상현도의 생각을 하나하나 분석해갔다.
‘그 봉인은 선강 대륙 법칙의 인정을 받고 있는 일종의 금제.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법칙을 속여야만 해! 사물(死物)의 법칙은 정해진 규율을 잘 지키지. 어쩌면 그 방법이 정말 통할지도 몰라!’
한제로서는 여태 생각해본 적도 없는 기이한 봉인 해제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직접 목격하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자⋯⋯ 정말 국사인가?’
한제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선조 머리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는 거의 끝에 이르러 있었다.
“종족의 봉인을⋯⋯.”
두 눈에서 발산되는 금빛 덕분에 생기가 넘치게 된 선조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던 국사의 목소리가 마지막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하하하!”
하늘에 생긴 구멍 안쪽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더니 금빛 피 한 방울이 번개처럼 날아들어 선조 머리의 미간에 떨어진 것이다.
선조의 머리는 돌연 바르르 진동했고 금빛 피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눈 깜짝할 사이 선조의 머리를 완전히 뒤덮었다. 역시 금빛 피에 뒤덮인 입에서는 결국 마지막 말이 이어지지 못했다.
“이잇!”
한제의 육체를 점거하고 있던 국사는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이를 악물고 훌쩍 뛰어올라 선조의 오른쪽 눈 밖으로 튀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금빛 핏방울에 가로막혀 거대한 소리와 함께 튕겨지고 말았다.
이어서 선조의 머리가 대대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금빛을 뿜어내는 것이 마치 금으로 주조된 두상 같았다.
“연도진!”
국사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포효했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하늘의 구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 선황은 곧 선조 머리 위에 섰다.
쌍자 대천존 역시 구멍을 통해 금궁으로 쫓아 들어왔다. 두 소녀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고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소녀들은 재빨리 주위를 훑어보다가 선황이 밟고 있는 선조의 금빛 두상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국사, 정말 대단하군! 도비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반조법을 준비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니. 명도 존은 그저 도비의 전승을 성공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도 눈치챈 모양이군. 하긴 그의 도는 고고하고 오만하니까.”
선황은 상현도를 보며 감탄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투로 말했다.
“아마 너는 내가 이한제를 끌어들인 것이 명도 존의 분노를 끌어내 더욱 오랫동안 버텨내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했겠지. 그가 오래 버텨줄수록 연도비가 반조법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너는 나에게 이한제를 끌어들이게끔 했고 내가 그 말에 따랐다고 생각해 기뻤겠지. 한데 내게 너의 계획을 정말로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가?”
선황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에는 거만함이 어려 있었다.
“당시 너는 내게 이한제를 죽이라고 종용했다. 그게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느냐? 내가 너의 꿍꿍이를 모를 거라 생각했겠지? 이한제의 육신을 탈취하는 데 눈이 벌겋게 달아 있는 너의 속셈을! 허나 난 그를 죽이지 않고 너를 위해 준비해두었지!”
선황은 거만한 표정으로 발아래의 선조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서는 세상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 이한제를 네가 원하는 대로 조금씩, 서서히 이곳 조성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었지! 국사 네놈이 자신의 꾀에 속아 넘어가는 우스운 꼴을 보고 싶었거든!
쌍자 대천존이 나를 막는 동안 이한제와 연도비를 선조의 두 눈으로 삼고 도망족(悼亡族)의 특수한 술법으로 선조의 입을 통해 종족의 봉인을 해제하려 했겠지. 이 모든 사실을 정말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어리석구나. 크하하하!”
선황이 호탕하게 웃었다.
쌍자 대천존은 진지한 표정으로 선조의 머리를 응시했다. 두 소녀는 드물게도 두려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것도 매우 깊은 두려움을…
한편, 선조의 오른쪽 눈 안, 한제의 육신을 점거한 국사의 안색은 창백했고 두 눈은 경악과 불신의 빛이 번득였다. 이 모든 것을 선황이 알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의 체내, 천역주에 숨어 있는 한제의 영혼은 더없이 덤덤했다.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자신의 육체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군. 이자는 국사처럼 보이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그게 아니라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흥미롭군.’
한제는 그대로 천역주에 영혼을 숨긴 채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선황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국사, 난 너의 모든 계획을 알고 있어. 그런데 너는? 내가 정말 연도비에게 선조의 힘을 이어받게 할 거라 생각하나? 내가 이한제를 지하 궁전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그저 명도 존을 자극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틀렸어! 너의 추측은 모두 틀렸다! 이 세상에서 내 계획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 너도 이한제도 그 어떤 대천존도 불가능하지.”
선황은 비릿하게 웃었다.
“나의 계획은 처음부터 이 선조의 머리였다! 이 머리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 되살릴 수 없었다. 그저 이곳에 산봉우리로 존재한 채 선족 구역 천외 흉수 일흔두 마리의 영혼을 제압하고 있었지. 허나 실은 선족 최강의 법보다. 내게 아무런 위험 없이 선조의 수준을 완전히 이어받게 해줄 존재지. 엄밀히 말해 전승이 아니라 상속이다!”
이어진 선황의 말에 국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허나 선조는 죽었고 시체는 그를 죽인 미지의 존재에 의해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그중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머리뿐이었어! 난 오랜 세월 고민해왔지만 끝끝내 이 머리를 되살릴 방법은 찾아내지 못했다.
한데 네게서 희망을 봤지. 넌 나를 실망 시키지 않더군. 당시 네게 약간의 암시만을 주었을 뿐인데도 선조의 머리가 입을 열게 할 방법을 마련해냈으니 말이야. 아주 잘했다, 국사. 훌륭해! 크하하하!”
선황은 크게 웃으며 선조의 머리를 밟고 있는 오른발을 한 번 크게 굴렀다. 그러자 선조의 머리에서 발산되던 강한 금빛이 선황을 휘감았다.
“이것만 있으면 난 가장 강한 대천존이 된다! 쌍자 감히 이런 나와 더 맞붙겠느냐?”
선황은 오만한 눈빛으로 쌍자 대천존을 보며 짧게 외치더니 곧장 소녀들에게 달려들었다.
한데 그때였다. 그녀들 뒤로 보라색 태양이 나타났다. 이어서 그 태양으로부터 발산된 보라색 빛이 두 자루 검영이 되어 선황에게 돌진했다.
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