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2
크지 않은 동굴은 네 개의 석실로 나뉘어 있었고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한제는 그 안으로 들어간 뒤 구사평을 바라보았다. 그중 하나의 석실에 들어간 구사평의 표정이 잔혹하게 변했다.
한제는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네 개의 석실에 모두 금제가 걸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의 눈이 왼편에 있는 석실에 닿았다. 그곳을 한참 바라보던 한제는 그곳의 금제가 가장 풀기 쉽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한제는 잔영의 원 하나를 만들어 해당 석실을 향해 쏘았다. 그러자 석실이 우르릉 하고 흔들리더니 돌로 된 벽이 천천히 상승했다. 그 안쪽을 바라보던 한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석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바닥에 원형의 진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 진은 매우 오래된 것 같았지만 진을 이루고 있는 부호와 재료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진은 적어도 수백만 리 밖까지 관통할 수 있는 오래된 전송진임을 한제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진은 오래된 전송진이지. 당시 우리 사부님께서 이 동굴을 발견하셨을 때도 있었어. 석실 안에 있어서 비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아 완벽하게 보존됐지.
하지만 이 전송진을 활성화시키는 데에는 최고급 영석이 필요해. 난 그런 최고급 영석을 본 적도 없네. 그러니 이 진은 여태 단 한 번도 가동되지 못한 셈이지.”
구사평은 고개를 돌려 진을 힐긋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슴은 쿵쾅댔다. 고대 신의 땅에서 빠져나온 뒤 그가 가장 찾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오래된 전송진과 관련된 자료였다. 하지만 기린성 안에서도 그런 자료는 얻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는 완전한 진이 놓여 있었다. 이제 전송진에 관한 자료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는 셈이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이 진의 또 다른 끝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구사평은 손을 뻗어 다른 석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석실 안에는 오래된 책들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 이 안은 텅 비어있지. 그 책들은 당시 내가 챙겨 갔거든.”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으로 만든 결인을 돌로 된 벽으로 쏘았다. 순간 석벽이 열리더니 텅 빈 석실이 드러났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석실 안에는 상고 시대 수련자의 유해가 놓여 있었네. 하지만 그 유해도 지금은 없지. 사부가 단약을 만드는 데 사용했거든.”
말을 마친 그가 다시 결인을 만들어 그 석실을 열었다. 그 안도 역시 텅 비어있었다.
“우리 사부님과 사형의 귀식 중인 원영은 오른쪽 끝에 있는 이 석실에 있네. 두 개의 원영을 자네와 내가 하나씩 갖는 거야. 우리 사부님의 원영은 자네가 갖게. 한제, 자네와 나는 처음에는 서로를 오해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런 오해는 다 풀렸을 거라고 생각하네.”
구사평은 한제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한제는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만약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서 두 개의 원영이 귀식 상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구사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걱정 말게. 그 두 사람의 원영이 귀식 상태라는 것을 난 확신할 수 있어. 게다가 만약을 위해 내가 준비해둔 것도 있지.”
말을 마친 그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에서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향을 하나 꺼냈다. 오른손을 까딱, 하자 순간 향이 타오르며 은은한 향냄새가 풍겼다.
“미심향(迷心香)?”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곧장 그 물건을 알아보았다. 미심향은 일종의 단약 재료로 다른 약초들과 잘 배합해서 사용하면 심신을 안정시켜 외부 마혼의 작용을 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독으로 사용할 때, 외부 마혼의 침입을 받은 상태의 수련자가 그 향을 맡으면 부상이 더욱 심해지고 체내의 외부 마혼은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구사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 이제 안심이 되나? 하지만 이곳에 걸린 금제는 좀 위험해서 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말을 마친 그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한제는 그 석실을 한참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흔들어 잔영의 원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석벽을 가격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마수가 그 안에서 쑥 빠져나와 포효하며 한제를 삼키려 달려들었다. 허나 한제는 침착하게 저물대를 두드려 금번을 꺼낸 뒤 외쳤다.
“흡입!”
순간 금번에서 짙은 검은색의 커다란 손이 하나 쑥 나오더니 그 마수를 잡아채 끌어당겼다.
뒤이어 한제는 두 손을 연이어 변화시키며 잔영의 원을 여러 개 만들어냈다. 잔영의 원이 하나씩 석벽에 닿을 때마다 마수가 한 마리씩 나타났고 그 수가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석실에 걸린 금제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구사평은 미간을 살짝 구기고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저물대에서 다시 네 개의 검은색 돌을 꺼냈다. 그리고 못내 아쉽다는 듯 그것을 힐긋 바라보더니 각각의 석실로 내던졌다.
“한제, 난 그 마수들을 10초 동안만 억누를 수 있네. 서두르게!”
구사평이 소리쳤다.
한제가 손에 쥔 금번을 휘둘렀다. 순간 그 안에서 수많은 금제들이 쏟아져 나와 미친 듯이 석벽으로 돌진했다.
한제에게는 그 석벽의 금제를 단시간 내에 풀 재간이 없었다. 이에 그는 금제를 푸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해 양적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수많은 금제가 일제히 내려치자 순간 석벽에서 수많은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수들은 몸부림치며 그 안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구사평이 던진 네 개의 돌이 내뿜는 은은한 빛에 저지당했다.
그때, 금번의 금제가 석벽에 닿으며 콰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굴의 천장에서 먼지와 돌조각들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동굴 전체가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기미를 보였다.
우르릉! 콰- 쾅!
오른쪽 끝에 있는 석벽의 금제가 열린 순간, 두 갈래의 어두운 노란색 빛이 그 안에서 튀어나오며 동굴 입구 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 두 갈래 빛들은 속도가 늦춰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번쩍이던 빛은 점점 어두워져 거의 흩어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미심향에서 피어오른 향이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였다. 그는 두 갈래의 노란 빛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투명한 원영을 확인했다. 또한 그 허약한 정도로 볼 때 거의 붕괴하기 직전이었고 미심향 때문에 더욱 허약해졌다.
한제와 구사평은 거의 동시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한제의 속도가 좀 더 빨랐다. 그는 두 개의 원영 중 좀 더 굵은 원영 하나를 잡아챈 뒤 두 말 않고 그대로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가 동굴 밖으로 빠져나간 순간, 동굴의 붕괴가 시작됐다. 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구사평은 한제를 향해 포권을 취한 뒤 황망히 달아났다. 한제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겁나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원영을 붙잡은 채 빠르게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허이국 마혼이 빠져나왔다. 원영을 본 마혼의 눈에 탐욕의 빛이 어른거렸다.
한제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허이국은 두려운 듯 온몸을 파들파들 떨더니 순순히 몸을 말고 원영을 감싼 뒤 한제의 신식의 바다로 돌아갔다.
작업을 마친 한제는 고개를 돌려 무너진 동굴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미 저 멀리까지 날아간 구사평도 보았다. 그의 두 눈이 번득였다. 한제는 한동안 저자를 쫓아가 죽일까 고민했으나,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원영 하나는 그의 신식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하나를 더 취한다면 오히려 마혼도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몸을 빼앗길 가능성도 높았다.
한제의 가슴이 요동쳤다. 이 원영을 삼키면 원영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그는 기대감을 꾹꾹 눌러 담은 뒤 빠르게 질주했다.
하루 동안 이동한 끝에 한제는 어느 황폐한 모래땅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태까지 질주하는 데에만 전력을 다한 지금 그를 중심으로 반경 1만 리에는 사람도 짐승도 드물었다. 한제는 발을 살짝 굴러 땅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땅속 2만 척 깊이에 이르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춘 한제는 동굴을 파서는 그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미간을 두드렸다. 허이국 마혼이 곧장 그의 미간에서 빠져나왔다.
마혼은 한제가 힐긋 보자 순순히 몸을 쭉 늘여 그 안에 품고 있던 붕괴 직전의 나약한 원영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제의 곁에 떠올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주시했다.
한제는 눈을 살짝 감았다. 몇 초 후 다시 눈을 번쩍 뜬 그는 결심한 듯 원영을 쥐고 입을 벌려 그것을 삼켰다.
원영이 그의 몸으로 들어가자 고신결이 곧장 돌아가며 마치 거대한 맷돌처럼 원영을 완전히 짓이겨 거대한 영력을 방출하게 했다. 이 영력은 순간 한제의 경맥 하나하나를 관통했다.
한제는 곧장 고신결의 진행을 멈추었다. 이 원영의 영력이 몸을 단련하는 데에만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흘러넘치는 듯 풍족한 영력은 그의 통제 아래 경맥을 따라 빠르게 흘러서는 모두 금단으로 흘러들어갔다.
그의 금단은 순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으며 색도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 표면에 한 줄기의 균열이 나타났다.
원영을 맺을 조짐이 천천히 그의 체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허나 바로 그때, 그의 신식의 바다에서 극의 신식으로 이루어진 번개가 처음으로 한제의 통제에서 벗어나 멋대로 움직였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신식의 바다를 벗어나 한제의 체내에 있는 금단을 내리쳤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 통제를 하고 조절을 해도 극의 신식은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번개에 적중한 금단은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 폭발은 한제의 체내에서 진행된 까닭에 금단에서 방출된 영력은 한제의 경맥을 따라 미친 듯이 흘러들었고 원영을 삼킨 후 생성된 영력과 격렬하게 부딪혔다.
이렇게 두 개의 영력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힘은 순간 한제의 경맥에도 영향을 미쳤고 한제 체내를 미친 듯 휩쓸었다.
한제의 몸은 펑 소리와 함께 연달아 터져나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그는 몇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안색도 창백해졌다.
그는 몸부림을 치며 겨우 일어나 앉았다. 두 눈에 힘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한참 후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두 눈을 감고 자신의 체내를 살펴보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비통한 웃음이었다.
“극의 신식⋯⋯ 극의 신식⋯⋯.”
한제는 시뻘게진 두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금단은 완전히 폭파된 것이 아니라 손톱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일찍이 한제는 극의 신식의 존재가 원영기에 오르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방금의 상황을 통해 한제는 자신이 원영기에 오르는 데 가장 큰 난관이 바로 이 극의 신식이라는 것을 똑똑하게 깨달았다.
한제는 이 모든 것이 대체 무엇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알고 싶었다. 왜 원영을 맺으려는 순간에 극의 신식은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금단을 공격한 것일까?
그는 씁쓸한 마음으로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몸을 관조했다.
★ ★ ★
사흘 뒤, 눈을 번쩍 뜬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동굴을 떠난 뒤 곧장 빠른 속도로 주변에 있는 성을 찾았다.
★ ★ ★
보름 후, 한제는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성의 시가지를 한 번씩 돌아본 상태였다. 물론 연기각에는 가지 않았다.
허나 어디서도 극의 경계에 관한 조금의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한제는 각종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구사평이 있었던 동굴의 석실을 떠올렸다. 그 책들은 죽간 형태였다. 이는 그것들이 매우 오래된 책이라는 뜻이었다. 만약 법력의 파동이 조금이라도 그것에 미치면 곧장 불타버려 사라지기 때문에 옥패에 탁본을 뜰 수도 없었다.
한제는 빠르게 몸을 날려 구사평이 있었던 동굴로 질주했다.
극의 경계의 종점 (3)
닷새 뒤, 한제는 그 황폐한 땅에 도착했다. 그는 지금 그곳에 구사평이 있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만약 상대가 그의 앞길을 막으려고 한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구사평은 원영을 얻었지만 겨우 보름이 지난 지금 벌써 원영기에 이르렀을 가능성은 없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몸을 가라앉혀 땅속으로 들어간 한제는 빠르게 상대의 동굴을 찾아냈다. 동굴 밖에 걸려 있는 금제는 한제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박에 그것을 풀어버린 한제는 순조롭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신식으로 동굴을 한 번 살핀 한제는 구사평이 지금 그 안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책들이 들어 있는 석실로 향했다. 그 석실을 보호하고 있는 금제는 약간 까다로웠지만 세 시진 뒤에는 석실에 들어가 있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힌 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