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1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
흠칫 놀란 구사평을 앞두고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구사평은 굳은 표정으로 한제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방금 본 것과 같은 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북이 위에 서 있는 노인이 고개를 들어 욕을 지껄이고 있었다.
구사평은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입을 열어 한 마디 말을 겨우 내뱉었다.
“진법인가?”
한제는 뱃머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방금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배가 방향을 돌린 그 순간, 마치 미세한 한 층의 파동이 그 제수의 네 다리에서 방출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법이 아니야. 이건 금제다.”
잠시 후, 한제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구사평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쓴 웃음을 지었다.
“자네와 나의 수준이라면 저렇게 수준이 높은 자가 일부러 금제를 걸 필요도 없지 않나?”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식을 사방으로 펼쳤다. 제수 위의 노인이 이유도 없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뭔가가 있다.
그 노인은 욕을 하느라 지쳤는지 다시 조롱박 안에 든 것을 마신 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동시에 그의 시선이 구사평의 배에 닿았다.
그가 오른손을 쥐자 순간 구사평의 배는 빠른 속도로 노인 앞으로 끌려갔다.
구사평은 얼른 공손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혔다.
“구사평, 선배님을 뵈옵니다.”
노인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날 아느냐?”
구사평은 흠칫 놀라며 얼른 입을 열었다.
“저는⋯⋯.”
“날 모르는데 어찌 나를 선배라고 칭하느냐? 내가 그리 늙어 보이느냐? 내가 세 살이었을 때부터 이야기를 해주겠다. 몇 천 년에 달하는 나의 역사를 다 듣고 나면 너도 나를 알게 되겠지. 내가 세 살이었던 그해에는⋯⋯.”
노인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구사평은 아무 불평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잠시 말을 멈춘 노인은 조롱박에 든 것을 한 모금 마셨다. 조롱박은 이미 비어 있었다. 이에 노인은 입가를 훔쳐내더니 중얼거렸다.
“오늘 할 이야기가 이렇게 많을 줄 알았다면 더 많은 술을 준비했을 텐데… 너희 둘, 나랑 같이 술을 가지러 가자. 가는 동안 내가 75살이었던 그해의 일에 대해 들려주마.”
구사평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자신의 저물대에서 몇 동이의 술을 꺼내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선배⋯⋯ 아⋯⋯ 제게 술이 좀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드시지요. 술을 가지러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노인은 희색을 띈 얼굴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구사평의 손에 들려 있던 단지가 사라졌다.
한제는 줄곧 아무 말도 없었다. 노인의 수준을 파악할 수도 없는 데다가 그는 애초에 다른 사람과 잡담을 하는 데에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구사평에게 맡겨두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노인이 그들의 앞길을 막은 데에는 분명 어떤 목적이 있을 터였다. 한제는 줄곧 그게 뭘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점차 이 일은 분명 천벌이나 최근 일어났던 각종 살인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제는 노인이 자신들을 가로막은 것은 구사평이 때문이 아니라 한제 자신 때문일 거라고 직감했다.
노인은 단지를 열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웃었다.
“잔운과로 빚은 좋은 술이군. 훌륭하다. 녀석, 제법 내 비위를 맞출 줄 아는구나. 어디, 내 제자가 되어 볼 테냐?”
한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런 말을 까닭 없이 할 이유는 없었다. 분명 도모하는 바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구사평으로서는 영문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좀 전까지 노인은 주절주절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나불댔을 뿐이다. 구사평이 보기에 눈앞의 노인은 정신 나간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 자가 어찌 제자를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는 한동안 주저하며 목에 뭐라도 걸린 양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서야 쓴웃음을 지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는⋯⋯.”
노인은 또 눈을 흘기며 말했다.
“싫으냐? 그럼 됐다. 거기 너는 내 제자가 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노인의 시선은 한제에게로 옮겨왔다.
한제는 침착했다. 그는 이미 상대의 시선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는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미 문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어느 문파?”
노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한제가 보기에는 그 눈에 분명 한기가 깃들어 있었다. 한제는 노인이 노리는 사람이 자신임을 확신했다.
“조나라의 대산파입니다.”
한제는 침착한 표정으로 여전히 공손하게 답했다.
노인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웃음기는 더욱 서늘해졌다.
“사흘 동안 수천에 이르는 결단기 수련자들을 죽였더구나. 아주 수완이 좋아!”
그 말이 나오자마자 구사평이 굳어진 얼굴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의 표정은 침착했으나, 그는 심장이 덜컥했다. 순간 수많은 생각과 노인이 나타난 뒤부터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들이 분분히 스쳐지나갔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더욱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선배님을 스승으로 모시기를 원합니다.”
노인은 흠칫 놀란 듯 한동안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어린 서늘함이 천천히 흩어졌다. 잠시 후 그는 껄껄 웃더니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의 금제가 한제의 미간에 찍혔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좋다. 역시 똑똑하구나! 널 제자로 받아주마. 따라와라.”
그가 만들어낸 금제는 한제의 체내에 들어온 뒤 거대한 연꽃으로 피었다. 그리고 한제의 경맥을 가지로 혈관을 잎으로 피를 양분으로 삼아 그의 체내에 자리 잡았다.
한제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데 이 제자는 여기 있는 도우의 일을 좀 도와주기로 약속을 해둔 상태입니다. 그러니 며칠의 시간을 좀 주십시오.”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구사평을 주시했다. 구사평은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더니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선배님, 분명 저희는 약조한 일이 있습니다. 양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노인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한 달의 시간을 주마. 한 달 뒤 수마해에 있는 아무 성의 연기각을 찾아와 미치광이 손 씨를 찾는다고 해라. 그럼 내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으니.”
말을 마친 노인은 다시 한 번 한제를 힐긋 바라보더니 껄껄 웃으며 제수를 부려 먼 곳으로 떠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사평은 한참 지난 후에야 두려움이 어린 눈으로 한제를 힐긋 보았다. 그리고 노인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한제, 배의 속도를 좀 더 높이겠네. 아마 이틀 후에는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금제에 관련된 일들은 모두 자네에게 맡김세.”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의 꼬리 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허이국 마혼과 두 번째 마혼이 빠져나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동시에 금번도 그의 앞에 머물렀다. 한제는 금번을 조종해 그 금번의 영향이 자신의 몸만 감싸도록 했다. 이어서 금번이 만들어낸 검은 안개 속에서 한제의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우, 난 이틀 동안 폐관 수련을 해야겠으니 방해하지 말아주게.”
구사평은 곧장 그러겠다고 답하고는 배를 모는 데 전념했다. 속도가 좀 더 빨라졌다.
★ ★ ★
이틀 뒤, 두 사람이 탄 배는 황량한 산맥에 이르러 있었다. 고개를 돌려 폐관 수련을 하고 있는 한제를 힐끔거리던 구사평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를 방해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얌전히 기다렸다.
몇 시진 후, 한제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금번이 요동을 치더니 빠르게 수축하여 작은 깃발로 돌아간 뒤 저물대로 들어갔다.
한제의 안색은 약간 창백해진 상태였다. 노인이 걸어놓은 연꽃금제(蓮花禁制)는 그다지 치밀하지 않아 한제는 이미 일부분을 풀어놓은 상태였다. 완전히 파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다만 이 금제의 작용에 대해 한제는 지난 이틀 동안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이 금제는 한제의 위치를 파악하는 작용을 했으며 그 범위는 굉장히 넓었다.
구사평은 한제가 폐관 수련을 마친 것을 보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제, 이 아래가 바로 그 동굴이 있는 곳이네.”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몸을 훌쩍 날려 배에서 벗어나 허공에 떴다.
구사평이 오른손으로 만들어낸 결인을 쏘자 배는 빠르게 줄어들더니 손바닥만 하게 변해 그의 저물대로 들어갔다.
구사평은 아래로 내려가 주위를 한동안 살피다가 산맥 중간쯤에 있던 돌로 된 대(臺)로 다가갔다. 그가 손을 흔들자 그곳에 있던 한 조각의 돌이 금단의 기운을 분출하더니 밝은 빛을 번득였다.
이어 다시 한 번 손을 휘젓자 그 돌은 곧장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구사평이 두 손으로 그린 결인이 연달아 그 돌에 쏘아졌고 순간 그 돌은 빛을 사방으로 뿜어대며 천천히 산 쪽으로 날아갔다.
그 돌이 산에 가까워질수록 물결 같은 파문이 산에서 나타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파문 안에서 반원 형태의 동굴이 드러났다.
구사평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한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제는 곧장 신식의 눈을 번득이며 그 물결 같은 파문을 바라보았다. 이어 두 손을 빠르게 움직여 잔영의 원을 세 개 만들어낸 그는 그중 하나를 파문 쪽으로 내던졌다.
그 순간, 산에서 퍼져 나오던 파문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수많은 돌기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 돌기는 끊임없이 요동을 치며 작아지기도 했고 커지기도 했다.
한제는 눈도 깜짝 않고 두 손을 빠르게 흔들며 잔영의 원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그때, 갑자기 파문 속의 돌기 하나가 부서졌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잔영의 원 하나를 얼른 그쪽으로 쏘아 보냈다. 하지만 곧이어 더 많은 돌기들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한제는 두 손을 바쁘게 놀려 잔영의 원들을 부서진 돌기들을 향해 빠르게 날렸다. 그러나 갈수록 부서지는 돌기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한제의 속도가 따라잡지 못했다.
줄곧 긴장된 표정으로 곁에 있던 구사평은 조급한 마음에 저물대를 두드려 검은색 돌 열 개를 꺼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연이어 그 돌들을 두드리다가 그중 하나를 날렸다.
그 돌은 한제가 미처 공격하지 못한 돌기에 떨어졌다. 그는 몹시 아까워하는 눈치였으나, 곧 다시 신중하게 두 손을 놀려, 한제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돌기가 나타날 때마다 그 돌로 대신 해결했다.
그 광경을 본 한제는 눈을 번득이더니 속도를 늦춰 구사평이 처리하도록 돌기들을 일부러 몇 개 남겼다. 결국 구사평이 열 개의 돌을 다 쓴 뒤에야 한제는 다시 두 손을 빠르게 놀려 연이어 잔영의 원을 쏘아댔다.
이윽고 쾅 소리와 함께 산에서 퍼져 나오던 파문이 중간에서 벌어지며 길을 드러냈다. 구사평은 희색을 띄며 빠르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제도 곧 뒤를 따랐다.
극의 경계의 종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