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43
홍접이 미간을 두드리자 장미꽃이 다시 나타났다. 홍접은 오른손으로 그 장미의 꽃잎 두 개를 뜯어낸 뒤 붉은 기운을 향해 튕겼다.
펑, 펑!
하늘을 뒤흔들 듯한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졌다. 붉은 기운은 움찔하더니 사방으로 폭발했고 홍접은 울컥 피를 토해냈다. 적지 않은 양이었다.
붉은 기운이 잠시 멎은 틈을 타 치호는 눈이 시뻘게질 정도로 미친 듯이 나침반을 조종해서는 그 붉은 기운 안에서 겨우 튀어나갔다. 하지만 아직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장미꽃잎의 폭격 때문에 그 붉은 기운에는 틈이 약간 생겼으나, 그 틈은 마치 거대한 입처럼 나침반을 삼키려 들었다.
쾅!
큰 입이 다물리며 나침반은 다시 크게 흔들렸다. 그 위에 나타난 균열에 치호는 온몸의 힘이 빠질 듯했고 홍접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쾅!
두 번째 충격에 나침반은 거의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홍접은 이를 악물고 장미의 꽃술 하나를 떼어 붉은 기운 쪽으로 튕겼다.
펑, 펑, 펑!
이 소리는 이미 멀어져 있던 한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냉소를 지으며 더욱 속도를 올렸다.
나침반을 삼키려 들던 붉은 기운의 거대한 입은 곧장 사라졌다. 그 틈을 타 나침반은 마침내 그 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유성처럼 잔상을 남기며 북쪽으로 돌진했다.
홍접의 얼굴은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잔뜩 구겨져 있었다. 꽃잎이야 뜯어 써도 저절로 보충이 되었지만 세 개에 불과한 꽃술은 하나를 다시 채우는 데 엄청난 힘이 들었다.
한제는 우뚝 멈춰 뒤쪽을 돌아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된 나침반이 날아왔다. 치호는 멀찍이 떨어진 한제를 보고 쓴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치호 마음속에서 한제의 지위는 홍접을 뛰어넘게 됐다.
치호는 한제 앞에 나침반을 멈춰 세우고는 쓰게 웃었다.
“천우 도우, 일단 올라와서 얘기하세.”
한제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나침반의 동쪽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나침반은 동쪽과 서쪽, 북쪽만 남아 있었다.
“천우 도우, 좀 전의 일은 내 생각이 짧았네. 붉은 기운 외에 그 생물에게 또 어떤 공격 수단이 있나? 우리는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치호가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물었다.
홍접은 싸늘한 얼굴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붉은 기운에서 벗어났다면 당분간은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이제 지도에 표시된 방향대로 가면 되네.”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치호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며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많이 망가진 이 나침반으로 오래 비행할 수는 없었다.
선인의 시체
며칠 뒤, 치호는 지도의 한 지점을 찾고 그 지점으로 빠르게 나침반을 몰았다.
그동안 홍접은 아무 말도 없이 한제가 길을 탐사하게 내버려두었고 치호는 한제의 말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곧장 따랐다.
허무의 공간 속에는 온갖 생명체가 존재해, 요 며칠 동안 한제의 식견도 몇 배는 늘어난 것 같았다. 서사의 기억에 존재하던 각종 기이한 생물들도 직접 볼 수 있었다.
한제가 사전에 위험 지역을 짚어준 덕분에 나침반은 별다른 위험 없이 이동할 수 있었고 목적지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이 공간이 온통 이상한 생물들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벌써 열흘이 넘도록 어떤 위험한 생물도 마주치지 않은 상태였다.
나침반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는 때때로 치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거마족은 본디 주작성 사람이 아니라네. 아주 오래 전 선조들이 주작성으로 이주해 온 거지. 여러 신통력이 자네들과 다른 것도 그 때문이네.”
새로운 사실에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시 며칠이 흘렀다.
한제는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유혼들로 주위를 탐지하고 있었다. 순간, 그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유혼들을 통해 먼 곳에서 수십 척에 달하는 생물을 하나 보았기 때문이었다.
공간을 부유하는 그 생물은 마치 거대한 돌 같았고 보랏빛과 금빛이 번득였다.
“금자석(金紫石)이다!”
한제가 외쳤다.
서사의 기억 속, 성라반을 만드는 필수 재료 중 하나가 바로 금자석이었다. 만약 성라반을 보기 전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덤덤하게 말했다.
“치호, 잠시만 기다리게. 내가 연기 재료 하나를 찾았네. 저것을 가지고 돌아온 뒤에 다시 움직여도 늦지 않을 걸세.”
말을 마친 한제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훌쩍 날렸다.
‘당시 일반인으로 살며 천도를 깨쳤을 때 마주쳤던 천운자 선배가 말하길, 만약 내가 주작성에서 나가 천운성에 이르게 된다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그러면 나를 수련생으로 받아주겠다고 했지. 그의 수준은 분명 문정기였을 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성라반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야!’
한제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한 금자석을 발견한 한제는 그것을 저물대에 챙겨 넣고 돌아왔다.
치호는 그 재료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지만 한제는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 ★ ★
또 한 달여가 지났다.
한제는 끊임없이 주위를 살폈지만 더는 어떤 재료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데 갑자기 나침반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수많은 균열이 생겨나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동시에 강한 저항력이 솟아올라 세 사람을 나침반에서 밀어냈다.
“도우들, 나침반의 손상이 너무 심해 더는 날 수가 없네. 이제 직접 날아야 해. 다행히 거의 다 왔으니 속력을 높이면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걸세.”
치호가 쓰게 웃으며 오른손을 휘두르자 나침반은 작아져 그의 저물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사흘이 지나, 그들은 저 멀리서 땅 덩어리를 보게 되었다. 선계 조각의 첫 번째 층이었다.
땅은 작은 풀조차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였고 군데군데 움푹 팬 구덩이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하늘은 수많은 공간의 균열로 가득했고 때때로 몇몇 균열이 하나로 이어졌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무너진 건물의 잔재도 이따금 보였다.
“여기가 바로 시오 시조께서 상세히 설명해주신 그 첫 번째 층이라네.”
말을 마친 치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신식을 펼친 뒤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사방을 둘러보다가 불쑥 물었다.
“치호, 그 옥패에 그려진 조각이 중첩되어 있다면 몇 번째 층에 있는 것인가?”
며칠 동안 한 마디도 없던 홍접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멍청한 소리! 당연히 두 번째 층이지! 이 선계에서 두 개의 조각이 중첩되는 것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것인가?”
한제는 냉랭하게 말했다.
“하늘의 딸이라더니 참 무식하군!”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무식하다는 말을 한제에게만 두 번이나 듣게 되자 홍접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허나 치호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분명 두 번째 층이네. 허나 우리 시오 시조께서는 그 아래에 세 번째 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신 적이 있지.”
다소 민망해진 홍접은 살기어린 눈만 번득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면 한제는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허나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전부터 그는 누군가가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 느낌은 그의 수준과는 관련이 없었다. 오랜 시간 한제가 많은 사람을 죽여 오면서 생긴, 위기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에서 비롯된 느낌이었다.
“찾았다! 따라오게!”
치호가 앞쪽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곧 세 사람은 동북쪽의 어느 곳에서 멈추었다.
“바로 여기야. 시오 시조께서는 당시 매화 문양의 기호와 함께 탐지할 수 있는 술법을 남겨 두셨지.”
치호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어느 깊은 구덩이 옆에 착지했다.
고개를 숙인 한제는 사방의 구덩이를 둘러보았다. 과연 매화 형상이 남아 있었다.
치호는 몸을 훌쩍 날려 그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홍접은 한제를 한 번 노려본 뒤 치호의 뒤를 따랐다.
한제는 신식으로 구덩이를 살폈지만 그 끝은 감지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 역시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세 사람이 구멍 안으로 사라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롱박을 든 중년 남자가 그 구덩이 옆에 나타났다. 그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더니 손을 흔들어 보탑 하나를 꺼냈다. 하얀 옷의 여인의 시체도 다시 나타났다. 사내는 그 시체를 끌어안았다.
“정아, 저 녀석들은 허탕을 치게 되었구나. 그 선옥으로 만든 관은 일찍이 내가 만들어놓은 보탑이거늘. 허나 안타깝게도 그 선옥의 관은 수천 년 전 너에게 적지 않게 흡수되었지. 정아, 걱정 말아라. 내가 더 많은 선옥을 찾아주겠다. 세 번째 층에도 선옥은 있을 테니까.”
말을 마친 그는 여인의 미간에 입을 살짝 맞췄다.
한데 바로 그때, 돌연 그의 표정이 변하더니 두 손을 흔들었다. 여인의 시체와 보탑이 동시에 사라졌고 사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한 차례 들려오더니 균열들이 연결된 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이 주름져 쪼글쪼글한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른 속도로 그 공간의 균열에서 빠져나왔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군. 망할 곳 같으니. 거의 모든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 다녔는데도 선인의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어.”
한숨을 내쉬며 하늘에서 내려온 그는 중년 남자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안녕한가.”
중년 남자는 미간을 팩 구겼다. 주작성에서 온 사람 중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이 노인이었다. 노인의 경지는 그와 같은 영변기 중기였다.
하지만 그는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도 이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주작성에는 영변기 수련자가 많지 않았기에 모든 영변기 수련자는 다 알고 있을 거라 여겼기에 무척 의외였다.
그는 노인을 힐긋 본 뒤 몸을 돌려 깊은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허, 나는 신경 쓰지도 않는군. 저렇게 무례하다니!”
노인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중년 남자가 뛰어든 깊은 구덩이를 힐긋 바라보았다. 막 그곳을 떠나려던 순간, 노인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고 사방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죽음의 기운! 그래, 죽음의 기운, 선인의 시체가 풍기는 냄새다. 난 절대 틀리지 않아! 분명 여인의 시체다. 하하, 여인의 시체가 더 좋지, 더 좋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