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17
그러는 동안 세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마족 중 선조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그 셋도 한제에게 대적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준이 봉인된 수백 명의 거마족들을 살핀 후 그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치호의 선택
치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세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로 거마족 소종주(少宗主)로서 명하겠네. 통천진을 열게.”
세 노인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인 후 말없이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세 자루의 거대한 보라색 도끼가 그들의 손에 나타났다.
“서계(西界) 거마천, 개방!”
그중 한 노인이 낮게 외치며 손에 든 거대한 도끼를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결인을 하자 한 줄기의 빛이 쏘아졌다.
순간 온 거마족의 땅이 콰르릉 하고 진동하더니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거대한 검은 빛기둥이 구름을 꿰뚫고 서쪽에서 피어올랐다.
짙은 영력이 순간 사방으로 미친 듯이 확산되었다.
동시에 서쪽에서 또 하나의 검은색 빛기둥이 나타나 하늘을 꿰뚫었고 이어서 세 번째 빛기둥도 모습을 드러냈다.
대지가 진동하면서 수많은 균열이 일어났다. 하나하나의 파문이 그 세 개의 거대한 기둥으로부터 피어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남계(南界) 거마천, 개방!”
“북계(北界) 거마천, 개방!”
나머지 두 노인이 동시에 외치며 손에 쥔 도끼를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남쪽과 북쪽에서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여섯 개의 거대한 검은 빛기둥이 하늘을 뚫고 솟아올랐다. 기이한 소리가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려왔다.
치호는 한제를 쳐다보더니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동계(東界) 거마천, 개방!”
동쪽에서도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세 개의 검은 기둥이 솟아올랐다.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세 개씩 솟아오른 빛기둥은 마치 거마족의 땅을 가두는 울타리 같았다.
열두 개의 빛기둥이 모두 솟아오르자 주변의 모든 거마족이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면서 입으로는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아직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거마족 수련자들도 수준에 관계없이 모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기이한 주문을 중얼중얼 외웠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이하게 하나로 융합되면서 무궁무진한 저주처럼 사방으로 확산되면서 세상이 그 기이한 소리로 가득 찬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또한 그 주문이 이어짐에 따라 열두 개의 빛기둥은 점점 짙은 빛을 발산했다.
사방 10만 척에서 서 있는 사람은 한제와 치호뿐이었다. 둘을 제외한 모든 거마족 수련자들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기이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한제는 애통함을 느꼈다. 일생동안 친우가 거의 없었던 그에게 치호와의 우정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었다.
치호 또한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천우, 이 치호가 자네를 실망시켰음을 잘 아네. 하지만 선조는 우리 거마족의 희망이고 내게는 거마족의 소종주로서의 책임이 있네. 이 통천진의 빛은 우리 선조의 몸으로도 여덟 개까지 견뎌내는 것이 최선이야. 자네의 몸은 우리 거마족 사람들보다도 훨씬 약할 테니 무사할 리가⋯⋯.”
그는 오른손을 꽉 쥐고 한제를 가리켰다.
순간 온 거마족의 땅을 뒤덮은 끝없는 주문 소리가 갈수록 높아졌고 또 갈수록 격렬해졌다. 열두 개의 검은 빛기둥이 진동하면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고 열두 개의 빛이 되어 사방에서 한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한제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치호를 바라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치호, 선계에 갔을 때 자네는 내게 빚을 졌네. 2년 전에는 내가 자네에게 빚을 졌지. 이제 자네와 나 사이에 남은 빚은 없네.”
치호는 아득한 눈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 사이에 빚은 없군.”
한제는 고개를 들어 사방에서 달려드는 열두 개의 빛기둥을 보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치호, 자네는 정말 이것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몸을 훌쩍 날렸다. 순간 그의 손에서 강렬한 힘이 나타나 가장 가까이 있던 검은 빛기둥에 달려들더니 단번에 파괴했다.
쾅!
빛기둥이 부서지면서 맹렬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고 그 회오리바람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제의 몸은 그 충격 아래 수십 척 뒤로 물러났다. 그의 오른손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첫 번째!”
한제는 이원봉과의 싸움에서 3성급 고대신의 육체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했으나 모든 힘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지금, 그의 두 눈은 전의로 불타올랐다.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가 피를 핥더니 두 눈을 번득이며 두 번째 빛기둥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두 번째로 달려들던 검은 빛 역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한제는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두 번째!”
한제는 연이어 몸을 날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하늘에는 수많은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고 빛기둥들에 곧 붕괴될 듯했다.
쾅, 쾅, 쾅, 쾅!
한제는 계속해서 주먹을 날려 빛기둥들을 하나하나 부수어갔고 하나의 빛기둥을 제거할 때마다 손에 흐르는 피를 핥으며 웃었다.
“여덟 번째!”
여기저기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강건한 상반신에는 얇고 빽빽한 줄무늬가 번득였고 미간에서는 세 개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거마족 사람들의 주문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점점 더 괴이해졌다. 그들의 몸은 어떤 규칙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치호는 허탈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거마족의 선조조차 여덟 개의 빛기둥을 이겨내는 것이 한계였다. 물론 그것은 육체가 버텨낼 수 있는 한계일 뿐이었고 술법까지 더한다면 선조는 열두 개의 빛기둥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부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한제는 다시 주먹을 휘둘러 단번에 세 개의 빛기둥을 붕괴시켰다. 그는 마치 상고 시대의 마신처럼 온몸에서 마혼의 화염을 피어올리고 있었다.
“치호, 마지막 빛줄기를 잘 봐두게!”
한제의 웃음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빛줄기가 순간적으로 그에게 가까워졌다.
허나 이번에는 주먹조차 휘두르지 않고 낮게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그의 몸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백 척이 넘는 거인이 되었다.
쾅!
마지막 빛기둥은 한제의 가슴을 때린 후 흩어져 사라졌다. 한제의 거대한 몸은 세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크게 포효했고 그 기세에 하늘의 구름과 통천진은 흩어져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3성급 고대신이 낼 수 있는 힘이었다.
“치호, 자네와 나 사이에 남은 빚은 없으니 거마족을 모두 봉인하겠네.”
한제가 거대한 팔로 하늘을 가리키자 순간 생사윤회의 축이 나타나 무수히 많은 회색 기운을 내뿜었다. 그 회색 기운들은 모든 거마족 사람들의 몸을 꿰뚫었다.
“앞으로 거마족에 원영기 수련자는 존재할 수 없다. 누구든 결단기를 돌파하고 싶다면 먼저 나의 동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들에게 내리는 벌이다.”
한제가 내뱉은 말은 하늘의 위엄처럼 거마족의 운명을 결정했다.
분신과 본체의 결합, 3성급 고대신과 화신기 후기 수련자의 이 결합은 실로 어마어마해, 영변기 수련자라 해도 선력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한제에게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고대신이 가진 위력이었다.
이전처럼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그를 귀찮게 굴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주작성의 모든 수련자 특히 주작은 한제가 자신의 장기말이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을 터였다.
주작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주작산의 존재로 인해 한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류미의 출현은 자신을 대상으로 한 음모가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넘길 수 없었기에 한제는 드디어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드러냈다. 그는 장기말이 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가 이렇게 모든 힘을 폭로하고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심지어 주작이라 해도 자신의 이 모습이 고대신임을 알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주작성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진정한 십억존혼번을 얻은 뒤에는 곧장 천운성으로 움직일 계획이었다.
치호는 비참한 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고꾸라져 쓰러졌다. 그가 중심이 되었던 진이 파괴되면서 반작용으로 중상을 입은 것이다.
이때, 거마족의 땅 변경에서는 보라색 옷을 입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이 광경을 지켜보며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중얼거렸다.
“이것이 네 진정한 실력이었구나. 이한제, 보아하니 스승님께서 너를 얕잡아보신 모양이다.”
★ ★ ★
거마족의 땅 북쪽 평원 1만 척 깊이에 자리한 온통 수정으로 이루어진 동굴 안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하고 있었다.
순간 두 눈을 번쩍 뜬 그가 사방의 동굴 벽을 관통하는 듯한 눈빛으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그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이한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이 육신에 완벽하게 적응한 뒤에 직접 찾아가주마. 네가 우리 거마족을 봉인한다 해도 내가 적응만 끝마치고 나면 그런 봉인 하나 푸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말을 마친 그는 다시 눈을 감고 호흡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그의 저물대에서 어스름한 검은 빛이 피어올랐다.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가 한제에게서 빼앗은 검이 쑥 빠져나왔다.
그 검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기운이 형상을 갖추더니 허이국의 모습을 이루었다. 두 눈이 새빨개진 허이국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주인님,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그 녀석이 느껴집니다. 저는 저 녀석에게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있습니다. 저를 풀어주시면 당장 가서 저자를 요절내겠습니다.”
거마족 선조는 허이국을 훑어보았다. 지난 2년 동안 허이국과 꽤 오래 접촉한 그는 이 지능이 뛰어난 검혼을 상당히 신기하게 여겼고 꽤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 마음은 이해하나 나의 적응이 끝난 뒤에 나서도 늦지 않는다.”
허이국은 얼른 표정을 바꾸어 아부하듯 실실 웃더니 굽실거리며 감격스럽다는 듯 말했다.
“역시 주인님께서는 제 마음을 잘 알아주십니다. 저는 주인님께 평생 충성할 겁니다. 한데 주인님, 나중에 이한제 녀석을 죽일 때 제가 마지막 일격을 날려도 될까요?”
거마족 선조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대체 저자가 너를 어떻게 대했기에 이리 깊은 원한을 가지게 된 것이냐?”
허이국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그 망할 녀석은 저를 마구 혹사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불러내 욕을 하고 괴롭혀댔습니다. 그렇다고 주인님처럼 흡수할 영석을 자주 준 것도 아니지요. 주인님, 반드시 마지막 일격을 날릴 기회는 제게 주십시오.”
거마족 선조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알았으니 급하게 굴지 마라. 이제 나는 폐관수련을 마저 해야 하니 돌아가 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