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16
2년 전, 육신을 잃은 거마족 선조가 새로운 육신을 강탈한 뒤부터 그의 거취를 알고 있는 자는 없었다.
새로운 몸을 차지하는 과정은 가장 허약한 때이기도 했기에 거마족 선조는 폐관수련 장소를 지난 2년 동안 세 차례나 바꾸었다.
손에 옥패를 쥔 채 세 번째 궁전에 앉아 있는 치호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고 두 눈은 아득했다.
“천우가 설역국의 이원봉을 죽였구나. 내가 아는 천우라면 이제 선조를 노릴 텐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비록 선조의 말이 틀렸을지언정 그분은 우리 거마족의 희망이다. 또한 그분이 행한 모든 것은 다 우리 거마족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천우는 나의 벗이 아닌가?”
치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눈빛이 한층 더 아득해졌다.
★ ★ ★
한제는 이미 거마족 변경에 나타났다. 곧장 거마족의 땅으로 들어가는 대신 변경의 은밀한 산골짜기에서 각종 진법 재료들로 진을 구축해나갔다. 거마족 선조가 보여준 천부적인 신통력에 대적할 방법으로 이 진이 있으면 상대가 자신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 해도 광활한 우주에서 길을 잃지 않고 다시 이곳으로 순간이동을 해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진의 구축 방법은 둔천이 준 옥패에 기록되어 있었다. 한제는 거기에 자신이 만든 금제까지 더해 이 진을 더욱 공고하고 교묘하게 만들었다.
그는 3개월을 들여 진을 완성한 후, 그 안에 힘의 원천 역할을 할 선옥 한 조각을 집어넣었다. 또한 진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수많은 금제까지 걸어놓았다.
작업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어 거마족의 땅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서늘한 빛이 번득이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거마족의 땅 중심지였다.
신식으로 사방을 살핀 그는 단번에 거마족의 땅 반 정도를 훑었다. 자신이 힘들여 찾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의 신식이 강렬한 기세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수많은 거마족 수련자들이 이를 감지했다. 그중에는 좌선을 하던 자도 막 결투를 하려던 자도 있었지만 한제의 신식을 느낀 순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한제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치호 또한 한숨을 내쉬며 몸을 훌쩍 날려 궁전 안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방의 하늘 끄트머리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빛이 나타났고 한제로부터 1천 척 밖에서 거마족 사람들이 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남녀노소가 뒤섞여 있었으나, 모두 하나같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저 먼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수많은 빛들이 속속 나타났다.
이때, 백발이 성성한 어느 거마족 사람이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근처의 거마족 사람들은 얼른 흩어져 길을 터주었다.
“도우는 누구인가?”
노인은 한제로부터 1천 척 떨어진 곳에 서서 호통 치듯 물었다.
한제는 냉랭한 눈빛으로 그 노인을 바라보며 답했다.
“천우!”
그 말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방금 호통을 쳤던 노인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신 후 한동안 한제를 살피다가 물었다.
“천우 도우, 이곳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인가?”
한제는 냉랭한 눈빛을 번득이며 한 마디 가볍게 내뱉었다.
“당신들의 선조를 죽이러 왔다.”
노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한제를 가리켰다.
“미친 자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사실이었군. 천우, 우리 거마족을 설역국과 같게 보는 것이냐? 선조께서 나오실 필요도 없이 내가 너를 죽여주마!”
말을 마친 그는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검은색의 영패 하나가 나타났다. 노인은 영패를 쥔 채 크게 외쳤다.
“거마족 장로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모든 거마족 사람들은 일체의 피해를 두려워 말고 저자를 죽여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영패는 순간 재가 되어 무형의 파문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온 거마족의 땅을 뒤덮었다.
모든 거마족 사람들은 그 파문에 담긴 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의 명에 따라 한제를 포위하고 있던 수백 명의 거마족 사람들은 일제히 기합을 넣었고 그들의 몸을 수백 배나 부풀렸다. 어느덧 거인이 된 그들은 미간을 문질러 거대한 도끼를 꺼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였다.
“죽여라!”
노인은 고함을 치면서 동시에 수백 척의 거인이 되었다. 그는 보랏빛 전광이 번득이는 도끼를 휘둘렀다.
“죽여라!”
사방에서 거마족 사람들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합쳐지면서 하늘을 뒤흔들 듯 울려 퍼졌다.
이것이 거마족이었고 그들의 방식이었다. 일반적인 수련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장로의 명령에 따라 떼로 덤벼들었다. 별다른 말도 필요 없었다. 죽여라,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 엄청난 포효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기가 어려 있었고 포효 자체가 상고 시대의 흉포한 괴수처럼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 흉포한 괴수 역시 한제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살기라면 한제가 훨씬 위였다. 그는 지금껏 살육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고 본체는 더욱 그랬다. 당연히 분신과 본체가 합쳐진 지금의 그는 엄청난 살기를 품고 있었다.
“너희 선조가 폐관수련하고 있는 곳을 말하지 않으면 모두 죽일 것이다.”
애초에 거마족 중 치호 외에 한제가 호감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한제는 경지의 힘을 동원했다. 순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어 기이한 힘이 천지를 뒤덮는가 싶더니 생사윤회의 축이 상공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고대신의 허상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허상의 고대신은 두 손으로 생사윤회의 축을 쥐었다. 순간 온 세상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 광경뿐이었다.
“봉인!”
한제는 무정하게 내뱉었다.
그 순간, 생사윤회의 축에서 무수히 많은 회색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 기운들은 번개처럼 빠르게 돌진해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는 거마족 수련자들의 체내를 꿰뚫었다.
가장 먼저 나섰던 거마족 노인은 안색이 크게 변해 이를 악물며 도끼를 휘둘렀다. 한제는 곁눈으로 그 노인을 힐긋 본 뒤 외쳤다.
“꺼져!”
그 한 마디에 노인의 몸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고 원신도 불안정해졌다. 그러나 크게 기합을 넣어 신통력을 발휘한 그는 원상태를 회복한 뒤 다시 달려들었다.
한제는 주먹을 쥐어 빠르게 휘둘렀다.
펑!
노인은 피를 토하며 수십 척 밀려나 어느 거마족 위에 떨어졌다. 노인 아래 깔린 거마족 역시 피를 토해냈고 둘은 수백 척이나 더 뒤로 밀려난 뒤에 겨우 멈추었다.
허나 그 순간, 두 갈래의 회색 기운이 그들을 쫓아 체내를 꿰뚫고 들어갔다.
“천우, 그만 하게!”
멀리서 비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냉랭했던 한제의 얼굴이 살짝 누그러졌다.
“치호.”
치호는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한제 앞에 나타났다. 그는 주위의 수백 명 거마족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 모두 미간에 옅고 깊은 두 개의 흉터가 나 있었다. 이미 모두 수준이 봉인된 듯, 그들의 몸에서는 아주 작은 영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또한 그들의 잔뜩 굳은 얼굴 너머로 경악과 두려움이 드러났다.
치호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해갔다.
“천우 자네, 이 치호를 친우로 받아주려는가?”
한제는 치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평생 친우는 치호 자네가 유일하네.”
치호는 한제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 치호를 친우로 여긴다면 당장 우리 거마족 땅에서 떠나주게!”
한제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치호, 내가 이들의 목숨을 앗지 않은 이유를 모르는가?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은 하지도 않았을 걸세.”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더 많은 거마족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사방을 빽빽하게 감싼 그들은 묵직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치호는 씁쓸함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로 한참을 고민했다.
“천우, 자네⋯⋯.”
한제는 치호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치호, 거마족 선조가 있는 곳을 말하게. 그자만 찾으면 다른 거마족 사람들은 살려주겠네.”
“감히!”
“미친놈!”
악에 받친 목소리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뒤이어 보라색과 붉은색이 섞인 옷을 입고 미간에는 검은색 도끼 문양이 찍힌 세 명의 노인이 빽빽한 무리 속에서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출현에 위압감은 더욱 짙어졌다.
한제는 그들을 힐긋 살폈다. 셋 모두 화신기 후기 절정에 이른 자들로 체내에는 약간의 선력도 맴돌고 있었다. 영변기에 이를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천우, 난 거마족의 대장로 천목이네. 자네에게 오늘 도전을 할까 하네.”
그중 한 노인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한제는 노인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노인네를 상대하기엔 시간이 아깝군.”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치호를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노인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한제를 노려보다가 돌연 큰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순간 웃음을 뚝 그친 그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앞으로 한 발 나섰다. 그의 손에는 군데군데 보라색 빛이 번득이는 거대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도끼를 쥔 노인은 크게 기합을 넣으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거마족에는 법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매우 적었다. 대부분은 신체를 강건하게 단련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한제는 맞서 돌진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쾅!
거대한 타격음과 함께 노인은 수십 척 뒤로 밀려났다. 핼쑥해진 얼굴 너머로 경악이 드러났다. 남은 두 노인의 안색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치호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선조께서 계신 곳을 모르네. 천우, 그만두게. 우리 거마족은 자네의 적이 아니야.”
한제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싸늘한 목소리로 치호에게 말했다.
“치호, 그자가 훔쳐간 나의 비검만 가져다준다면 곧장 떠나겠네.”
치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한참이나 갈등한 끝에 맥없이 말했다.
“선조께서 폐관수련을 하고 계신 곳을 아는 사람은 없네. 하지만 통천진(通天陣)을 열어 선조와 연락할 수는 있지. 천우, 선검을 되찾으면 최대한 빨리 떠나주겠나?”
한제는 치호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