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41
연혼종 안, 장성한 소년은 천부적인 자질로 여러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이 모든 것은 노인의 그 한 마디 덕분이었다.
노인과 함께하기 위해 그는 고통스러운 수련을 견뎌냈다. 하루하루가 흘렀고 해가 바뀌어갔다. 고통스러운 수련을 거쳐 천도를 깨닫고 화신기에 이른 그는 당시 자신을 데려온 노인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은 그에게 둔천이라는 이름을 하사한 뒤 항상 곁을 따르게 했다.
세월은 또다시 빠르게 흘러갔다. 수명이 다한 스승의 혼백이 혼번으로 들어가기 전 둔천은 그에게 맹세했다. 이번 생을 다해 연혼종을 보호하겠다고… 이 역시 당시 그 노인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나를 따라가겠느냐?
“스승님, 이 제자⋯⋯ 이제 스승님을 뵈러 갑니다.”
둔천은 웃음을 머금은 채 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의 몸에서 수많은 빛이 발산되었다. 이어 보라색과 금색이 어린 빛 한 덩어리가 그의 미간에서 빠져나왔고 존혼번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 빛 덩어리는 존혼번으로 들어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3분의 1에 해당하는 혼백과 10개의 주요 혼백과 네 번째 주요 혼백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혼번이었다.
연혼종의 정통을 대표하는 30척 길이의 거대한 깃발은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한제의 곁으로 날아왔다.
존혼번을 손에 쥔 한제는 둔천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마음이었다. 슬프고 아쉬웠다. 그는 묵묵히 바닥에 꿇어앉아 바닥에 머리를 세 번 찧었다.
“선배님은 비록 제 스승은 아니었지만 제게 진정한 사제지간의 정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이한제, 절대로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한제의 두 눈에 슬픔이 어렸다.
사실 그가 둔천과 함께 지낸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하지만 둔천에게 입은 은혜는 평생 잊을 수가 없을 만큼 크고 깊었다.
“주작, 연혼종을 멸한 네놈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 이한제가 언젠가 네놈을 찾아갈 것이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주작국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바람이 살랑 불어오자 둔천의 시체는 천천히 흩어졌다.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이 소멸했다. 마치 그 사람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 둔천의 모습은 오직 한제의 마음속에만 남아 있었다.
“그를 만난 것은 아주 감사한 우연이었다. 그는 평생 마음에 간직 할 만한 자야.”
사도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오만함이 아닌 아련함이 묻어났다. 당시의 연혼종 친구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잠시 후 한제가 물었다.
어느새 다시 오만한 모습으로 돌아온 사도환이 눈을 번득였다.
“당연히 이 몸에게 어울리는 육신을 찾아야지. 수준을 완전히 회복한 뒤에는 당시 나의 육신을 파괴한 그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죽일 것이다. 만약 그들이 죽었다면 그들의 후손이라도!”
사도환의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일찍이 한제가 그토록 많은 살육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 역시 사도환의 영향이 컸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석주는 이미 제 신식과 융합되어 있어 따로 빼낼 수가 없습니다.”
한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도환이 눈을 부릅뜨더니 호통을 쳤다.
“넌 내가 그 구슬 안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느냐! 그 구슬에 눈이 멀어 내가 너를 어찌할 것 같으냐? 네가 준다고 해도 필요 없다.”
한제는 사도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사도환.”
“왜?”
사도환이 눈을 흘겼다.
“고맙습니다.”
사도환은 침묵했다. 사실 석주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선보(仙寶)를 뛰어넘는 귀중한 보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흉악하고 거칠 것 없는 사람이라도 은혜는 알았다. 당시 1대 주작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주작성을 떠날 기회를 버리고 이곳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정착한 그가 아니던가?
한제와 그의 관계는 약간 복잡했지만 매우 밀접했다. 한제가 자라는 것을 쭉 지켜봐온 사도환의 입장에서 그는 자신의 제자이자 아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석주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도환은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거든 내 육신이나 찾아다오. 이 주작성에 내게 어울리는 육신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신통력은 있으니 적합한 육신만 찾는다면 빼앗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한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주작에게 건풍이라는 제자가 있습니다. 그자의 육신이라면 나쁘지 않을 겁니다.”
신식을 펼쳐 자신에게 맞는 육신을 찾으며 사도환은 고개를 저었다.
“주작의 제자라⋯⋯ 됐다. 1대 주작에게 입은 은혜가 있어서 말이다. 네가 그자를 죽이는 것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내가 그를 죽일 수는 없다. 잠깐, 주작성에 어떻게 이런 육신이 있는 거지? 흥미롭군. 저 동자의 육신은 나를 위해 하늘이 마련해준 것이라고 해야겠군. 아직은 어리니 좀 기다렸다가 빼앗아야겠구나.”
기쁨으로 번득이는 사도환의 시선은 북쪽 끝에 닿아 있었다.
“좋아, 저 동자의 육신을 점찍어 두었다. 주작성 소북염극(小北炎極)의 땅으로 가자. 내 미래의 육신이 그곳에 있어.”
말을 마친 사도환은 몸을 훌쩍 날려 앞으로 향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흡혈 마수를 꺼내 올라탄 채 뒤를 따랐다.
사도환은 고개를 돌려 흡혈 마수를 힐긋 보더니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이건 무슨 마수냐? 어디서 찾은 녀석이지? 나도 한 마리 잡고 싶군.”
언제나 포악했던 흡혈 마수조차 사도환 앞에서는 얌전했다. 오히려 슬슬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었다.
사도환은 눈을 부릅뜨더니 번쩍 하고 순간이동을 해 흡혈 마수의 등에 올라서더니 호통을 쳤다.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네놈을 잡아먹을 생각은 없다.”
흡혈 마수는 몸을 살짝 떨며 애처로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빙긋 웃으며 흡혈 마수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리고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미간에 잠시 대고 있다가 사도환에게 넘겼다.
“그곳에 가시면 흡혈 마수 몇 마리는 너끈히 잡을 수 있으실 겁니다.”
사도환은 옥패를 받아들고 슬쩍 훑어보더니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됐다, 필요 없어.”
한제가 그에게 준 옥패에는 고대 신의 기억 속 흡혈 마수를 마주쳤던 장소가 기록되어 있었다. 옥패를 확인한 사도환은 그 거침없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흡혈 마수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한제야, 내가 육신을 찾은 뒤에 이 흡혈 마수를 잠시 빌려주면 어떻겠느냐?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하마. 그냥 연구만 좀 해볼 생각이야.”
“안 됩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그러자 사도환은 다급해진 말투로 말했다.
“죽이지는 않는다니까. 연구를 한 뒤에 더 강해질 수도 있지 않느냐?”
“안 돼요!”
한제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도환은 잡아먹을 듯 한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망할 자식! 내가 뭔가를 원한다고 했을 때 거절하는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었다. 1대 주작의 첩도 마음에 들면 곧장 빼앗았단 말이다. 주고 싶지 않다면 주지 마라. 네놈을 죽여 버리고 빼앗으면 그만이니까!”
주작성 역사상 최강자였다던 사도환의 협박에도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사도환은 애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다 너 같은 녀석을 만났을까? 에휴, 네가 전에 어렸을 때 네놈의 수련을 도와준 것도 탈기법을 가르쳐준 것도 나였다. 몇 번의 위험에서 구해준 것도 나였어! 등 씨 가문의 그 녀석이 너를 추격해 왔을 때에도 그랬지. 그리고 또, 결명곡 밖에서 내가 죽을 위험을 무릅써가며 구해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네가 감히 내게 이리 대하는 것이냐? 그저 이 마수를 연구나 좀 해보자는 건데⋯⋯.”
한제도 사도환이 계속 강경하게 나왔다면 절대 굴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게 진 빚이 너무 크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에 콕콕 박혔다. 결국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빌려드릴게요. 빌려드린다고요.”
사도환은 좀 전까지의 슬픈 기색은 어디 갔는지 껄껄 웃어댔다.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지. 좋아!”
말을 마친 그는 흡혈 마수를 훑어보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 시선에 흡혈 마수의 몸이 어찌나 떨렸는지, 둘은 하마터면 등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 한제가 물었다.
“극의 경계에 대해 아시나요?”
그 말에 사도환의 눈빛이 변했다.
“극(極), 도(道), 시(始) 세 경계 중 극의 경계 말이냐? 어찌 묻느냐?”
세상에서 한제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사도환과 모완뿐이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눈부신 하얀 빛 한 덩이를 꺼냈다. 그 빛에서는 천벌을 방불케 하는 위엄이 느껴졌다. 한제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것은 원영기 수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었다.
사도환은 어이없다는 듯 허 하더니 그 흰색 빛 덩어리를 들어 자세히 살폈다. 순간 그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가 휙 집어던지자 그 빛 덩어리는 곧장 한제의 저물대로 들어갔다.
“네가 어찌 극의 경계를 가지고 있느냐!”
사도환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시 결명곡 안에서 극의 경계가 생겼습니다. 그때 수면 상태이셨으니 알아채지 못하셨을 겁니다. 이후 역외 전장을 떠난 뒤 신식을 통해 극의 경계를 장악했습니다.”
사도환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극의 경계는 굉장히 포악한 물질이다. 수련연맹에서는 극의 경계를 가진 수련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몰살시키지. 저것을 절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주작은 조심해야 해! 알겠느냐?”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극의 경계가 황천승규결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도환은 흠칫 놀라더니 잠시 후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구나. 허나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게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내게는 극의 경계가 없겠느냐? 극의 경계는 수련하기도 매우 어려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하더구나. 네가 그것을 체내에서 분리해낸 것 역시 굉장히 드문 일일 것이야!”
사도환은 제자를 칭찬하듯 말했다.
“일전에 누군가에게서 수성(修星)의 결정이 극의 경계를 진화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수성의 결정이라는 게 대체 뭐죠?”
한제는 지난 수백 년간 깊은 곳에 간직해두고 있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수성의 결정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니⋯⋯.”
사도환의 눈에 복잡한 빛이 어렸다. 긴 한숨을 내쉬던 그가 말했다.
“만약 이 주작성을 떠나려고 한다면 그것을 얻어내야만 하지. 그러지 않으면 그 후에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길 테니까. 그 수성의 결정이라는 것은 수련연맹에서 수련성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아주 잔혹한 물건이야.”
말을 잇던 사도환이 갑자기 눈을 번득이며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저쪽에서 선유족 녀석들이 조령(祖靈)을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구나. 당시 1대 주작이 선유족의 조령수를 통해 기이한 힘을 흡수하는 신통술을 연구해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대충 그랬던 것 같구나. 한제야, 선옥 한 조각을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