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71
한제는 하얀 결정에 바짝 쫓기고 있었다. 그런데 수성의 결정은 속도가 점점 빨라져 어느덧 둘 사이의 거리는 30척도 채 되지 않았다.
한제는 맹렬히 몸을 돌려 수성의 결정을 싸늘하게 노려보더니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후 선력을 불어넣어 내리쳤다. 순간 괴이한 바람이 수성의 결정을 향해 불어 닥쳤다. 바람으로 밀어내려던 것이다.
하지만 결정은 가볍게 바람을 피하더니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몸을 빠르게 물리면서 허공을 움켜쥐었다. 직접 건드리는 대신 신식으로 잡은 것이다. 다행히 탁삼이 보낸 노인이나 운작처럼 연기를 내뿜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에 안심한 한제는 수성의 결정을 한쪽으로 집어던지려 했다.
한데 그때, 기이한 힘이 수성의 결정으로부터 한제의 체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번개와 같은 속도로 한제의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그러자 그 즉시 기이한 부호들이 한제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부호들은 하나하나 번개처럼 한제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한제는 그런 느낌들이 낯설지 않았다. 이는 고대 신의 땅에서 기억의 유산을 전승받을 때 받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나타난 부호들이 번쩍거리면서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처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위엄 넘치는 고고한 남자가 거대한 성라반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칠흑처럼 검은 성라반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거렸고 지나는 곳마다 무너져 내릴 듯했다. 그의 앞으로는 거대한 건물 하나가 우주 공간에 떠 있었는데 그 건물 현판에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선인부(仙印府)
남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멈춰라!”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할 정도로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중년 남자는 당황한 기색 없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새로이 6성 수련국으로 승급한 주작국에서 온 엽무우라 합니다. 수련 연맹의 명을 받들어 주작인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제는 바르르 떨었다. 갑자기 한 줄기 붉은 빛이 그의 발아래에서 갑자기 나타났고 몸에서는 돌연 엄청난 힘이 발산됐다. 그 힘은 발밑에 나타난 붉은빛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쫓아오던 운작은 이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주작인! 천우 저 녀석이 대체 어떻게 주작인의 기운을 발산하는 것인가!”
그 순간에도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아까의 그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위엄이 넘치는 사내는 어느 건물 안에 들어갔다. 그 건물은 무수히 많은 층으로 나뉘어 있는 듯했는데 사내는 3층까지 오른 뒤 걸음을 멈추었다.
“주작인은 낮은 등급의 신통술이자 전승할 수 있는 법술로 주작의 봉호를 전승한 자만이 발휘할 수 있다.”
허공에서 또 한 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붉은 빛을 발하는 결인이 나타나 천천히 실체화했다. 이 결인은 매우 복잡했는데 한제는 이 결인이 선유족의 두개골에 찍혀 있는 문양과 어딘가 비슷함을 느꼈다. 생김새는 전혀 달랐는데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결인은 천천히 남자에게로 날아가 그의 미간으로 녹아들었다. 그 순간, 한제는 미간에 격렬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불로 달군 낙인을 혼백에 찍는 것 같은, 여태 느껴본 적 없는 통증이었다.
“으아아!”
한제는 마치 자신이 엽무우가 된 것처럼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에 한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발아래를 받친 붉은 빛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밝아졌고 그는 더욱 빨리 움직였다.
이를 본 운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저것은 주작의 전승⋯⋯. 어찌 이런 일이⋯⋯? 주작의 허락도 없었고 수성의 심장과의 융합도 없었건만 저 녀석이 대체 어떻게⋯⋯?”
한편, 역시 결정을 뒤쫓던 원숭이도 붉은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이 광경을 주시했다.
한제의 포효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어느새 그는 번개처럼 통로를 빠져나가 궁전 입구에서 훌쩍 날아오르더니 바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순식간에 바다에서 빠져나갔다.
그의 온몸은 붉은 빛으로 완벽히 뒤덮였고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주작의 기운이 사방을 가득 뒤덮었다. 그의 두 눈은 더 이상 맑지 않았고 혼탁함과 갈등의 빛이 가득했다.
“크으으…”
그의 머릿속에서는 극심한 고통이 거대한 파도처럼 계속해서 몰아쳤다. 한 번의 통증이 지나면 곧장 다음 통증이 이어져 참기 힘들었다. 온몸의 정맥들이 울툭불툭 튀어 올랐고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됐다. 체내에 억눌려 있던 일전의 부상 또한 폭발해버렸다. 하지만 그 붉은 빛은 더욱 거세게 압박해 왔다.
돌연 한제의 머릿속에서 그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작이라는 봉호를 받고 주작성을 끝까지 지키겠느냐?”
청천벽력과 같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한제의 눈이 순식간에 맑은 기색을 되찾았다. 순간, 한제는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주작인을 전승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아직 영변기 초기인 자신이 문정기 수련자들에게도 맞설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싫다.”
한제는 머릿속으로 대답했다. 그의 바람은 주작성의 새로운 주작으로 군림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대답하자 그 위엄 있는 목소리가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한제의 온몸을 뒤덮고 있던 붉은 빛이 흩어지더니 그의 오른손에 들린 하얀색 결정에 응집됐다.
붉은빛이 사라짐에 따라 한제의 머릿속에 나타났던 문양들도 썰물처럼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때, 퍼뜩 정신을 차린 한제가 속으로 외쳤다.
“명혼!”
“하나의 명혼은 다른 하나의 명혼으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가 천천히 흩어졌다. 하지만 한제의 머릿속에는 기이한 문양이 남아 어스름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 문양을 느낀 순간, 한제는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수성의 결정 안에 있는 명혼을 거두려면 다른 명혼으로 교환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명혼이 다른 영물들에 의해 흡수되거나 융합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영물을 죽여 명혼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명혼을 우연히 마주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두 번째 방법을 택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순간, 한제는 해수면 밖으로 튀어 올랐다. 운작이 그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으나, 탁삼의 분리된 의식이 숨겨진 원숭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한제는 완전히 정신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는 만표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됐다. 수성의 결정은 극의 경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또한 극의 경계를 진화시켜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한제는 손에 든 하얀색 결정을 건풍과 류미가 있는 쪽으로 내던졌다.
“받아라! 수성의 결정이다.”
한제가 튀어나오는 순간 주작에게서 받은 법보를 꺼내 공격하려 했던 건풍은 멈칫했다.
그때 갑자기 한제 뒤에서 나타난 운작이 그 결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건풍은 이를 악문 채 저물대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두각시를 꺼내 들었다. 그 꼭두각시에는 수많은 검은 점이 빽빽했는데 점 하나하나에서 검은 빛이 발산됐다. 건풍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고 그러자 그의 얼굴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꼭두각시에 뿌려졌다.
청동 꼭두각시는 건풍이 뿌린 피를 남김없이 흡수하더니 검붉은 빛 한 줄기를 발산했고 그 빛은 점점 확산됐다.
“거기 서라, 운작!”
건풍이 짧게 외쳤다. 붉은 얼굴에 입가에는 피를 뚝뚝 흘리며 이를 악물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건풍의 모습은 악귀 같았다.
수성의 결정을 향해 질주하던 운작은 순간 움찔 멈춰 서더니 긴장한 얼굴로 그 청동 꼭두각시를 응시했다.
“주작!”
운작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 순간, 건풍의 몸이 돌연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에 자리한 일곱 구멍에서 하얀 빛이 튀어나와 청동 꼭두각시에게로 흡수됐다.
건풍은 다소 두려운 표정으로 오른손에 들려 있던 옥패를 부쉈다. 그러자 강력한 힘이 그의 앞에 응집되었다.
펑!
그 힘은 갑자기 폭발했고 그 충격에 건풍은 뒤로 1백 척이나 밀려났다. 그의 눈과 코, 귀, 그리고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빛은 순식간에 흩어졌고 반 정도만 남아 그의 체내로 돌아갔다.
그때, 청동 꼭두각시가 녹아내리더니 팔팔 끓어오르면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허공에 모여들어 서서히 인간의 형상이 됐고 머지않아 주작성의 최강자인 주작이 나타났다. 허나 그는 늙고 노쇠한 것이 아니라 젊고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사제, 내기도 점점 끝이 보이는군. 나는 건풍의 목숨을 통해 여기 나타났지. 너를 직접 처단하기 위해서!”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수성의 결정이 그의 손으로 휙 날아들었다. 이어 주작이 이마에 가져다 대니 결정은 그의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흥! 내가 사형을 겁낼 것 같소?”
운작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는 문양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미 한 번 내게 패했던 것을 잊었느냐? 그러지 않았다면 당대의 주작은 내가 아니라 사제였겠지. 하하하!”
주작은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대량의 붉은 안개가 확산됐다. 그 안개는 끓어오르듯 요동치며 운작을 포함한 반경 10리를 감쌌다.
건풍과의 전투
드디어 운작과 주작의 결전이 시작됐다.
그 붉은 안개 속에서 빛이 번쩍이고 뭔가가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폭발할 듯한 기운이 일었다. 법력의 파동이 맹렬하게 일어났고 불길이 치솟았다. 그러나 안개 바깥에서는 상황을 또렷하게 살필 수가 없었다.
한데 붉은 안개가 확산되던 순간 해수면에서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훌쩍 뛰어올라 그 붉은 안개 안으로 뛰어들어 자취를 감춘 사실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붉은 안개 바깥에는 총 다섯 명이 남아 있었다. 건풍, 류미, 무태, 자심, 그리고 한제였다.
건풍은 주작의 기이한 법술로 인해 방금 대량의 수명을 잃고 무척 허약해진 상태였다.
사실 건풍을 처리하겠다는 주작의 계획은 무척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건풍이 어렸을 때부터 주작은 줄곧 그럴 계획이었다. 그가 건풍에게 다른 이들의 경지 하나하나를 삼켜 그들이 깨달은 천도의 경험을 깨닫게 한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그가 방금 건풍에게 사용한 법술은 사실 역대 주작들이 줄곧 비밀리에 연구해 온 것이었다. 그 청동 꼭두각시는 4대 주작이 최고의 철로 수만 번의 제련을 거친 끝에 만든 도구로 이 법술의 관건이었다. 후대 주작들의 끊임없는 연구를 거친 끝에 수성의 결정이 겪은 일련의 변화를 통해 그 꼭두각시는 수명을 뽑아내어 응결시킬 수 있는 신통력을 갖게 됐다.
다만 이 법술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었고 꼭두각시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 법술은 성공률이 다소 떨어지고 수십 년 정도의 수명을 얻게 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그 수십 년의 수명을 얻기 위한 대가 역시 막대했다. 또한 지금 주작은 생기가 넘쳐 보이지만 이는 임시적인 현상일 뿐이고 실상은 힘이 다 빠진 상태에 불과했다.
이런 배경은 알지 못했지만 건풍은 주작에 대한 원한이 하늘을 뒤덮을 듯했다.
‘까딱했다가는 그 늙은이에게 완전히 흡수될 뻔했군.’
건풍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런 원한마저 잊게 만드는 위기가 눈앞에 찾아왔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류미와 건풍을 훑더니 말없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십억존혼번이 그의 손에 나타나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냈다.
“너희 둘에게는 받아내야 할 빚이 있지.”
한제가 손에 든 십억존혼번을 휘두르자 무수히 많은 혼백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하늘을 뒤덮였다. 혼백들은 마치 검은 회오리바람처럼 허공을 휘저으며 곡성을 냈다.
“융합!”
한제가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외치자 혼백들이 즉각 모여들더니 영변기 후기 수련자보다도 훨씬 강한 여섯 개의 혼백이 됐다. 그 중에는 기린 마수의 잔혼도 포함되어 있었다.
건풍의 눈빛이 두려움과 분노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