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2
한제는 침착한 눈빛으로 상대를 마주보았다. 진도는 자신의 수준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이곳에 접근하자마자 한제는 그가 문정기 수준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문정기의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는지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네게 그 자리는 걸맞지 않아. 나의 일곱째 사제는 손운뿐이다.”
진도는 차가운 눈으로 한제를 일별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천운자는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님, 제가 이렇게 돌아온 것은 천운칠자의 봉호를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진도는 천운자를 향해 공손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천운자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너희 자계 일맥 중 천운칠자의 봉호를 가질 자격은 일곱째와 너에게만 있다. 누가 천운칠자의 봉호를 차지할 것인지 둘이서 가리도록 해라!”
진도는 차게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 한 걸음으로 단숨에 한제의 코앞까지 이른 그는 오른손을 번개보다 빠르게 휘둘러 결인을 하나 쏘아 보냈다. 그러자 엄청난 기세를 품은 한 줄기 빛이 한제로부터 10척 정도 떨어진 허공에 이르렀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한제는 뒤쪽으로 미친 듯이 밀려났다.
한제는 거마족의 도끼를 휘둘러 진도가 쏘아 보낸 공격에 저항하는 한편 왼손에 응집한 금선력의 일부를 방출했다. 덕분에 그는 수백 척 뒤로 물러난 후에는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한제는 방금 진도가 쏘아 보낸 결인이 자신을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위협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그 힘의 여파만으로도 이토록 멀리 밀려난 것만 보더라도 진도는 분명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허나 한제는 진도 역시 무척 놀란 상태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방금 발휘한 신통력이라면 그 여파만으로로 영변기 중기의 수련자는 최소한 1천 척 밖으로 밀려났어야 했다.
애초에 상대를 위협해 물러나게 함으로써 천운칠자의 봉호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으나, 한제는 수백 척 정도만 밀려났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는 자신과 본격적으로 싸워보기 위해 거리를 벌린 것으로 보이기에 딱 좋은 거리였다.
“포기해라!”
진도는 단호하고도 싸늘하게 외쳤다.
허나 그런 진도를 보는 한제의 눈빛 역시 싸늘하게 변해갔다. 두 눈에는 패기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말없이 왼손에 응집된 금선력을 쏘아 보냈다.
콰드득!
다섯 번의 회전을 거친 금선력은 순식간에 회전하면서 몰아쳤고 그 금선력이 지나간 지면은 깊게 고랑이 파였다.
허나 진도는 눈 깜짝할 사이 자신의 앞까지 도달한 금선력 회오리에 코웃음을 쳤다.
“하! 이 술법은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더니 그는 오른손을 불쑥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미친 듯이 몰아치던 금선력 회오리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도의 오른손 검지 앞에서 멈췄다.
팅!
진도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금선력 회오리는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면서 위력이 더욱 거세졌다. 어느새 여섯 번의 회전을 거친 회오리가 된 것이다.
팅! 팅! 팅!
진도는 멈추지 않고 손가락을 세 번 더 튕겼다. 순간 하늘과 땅을 뒤엎을 듯한 기운이 그 회오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제 그 회오리는 극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홉 번의 회전을 마친 상태였다.
진도는 고개를 들어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대충 휘둘렀다. 순간 아홉 번의 회전을 거친 금선력 회오리가 방향을 틀어 한제를 향해 몰아쳤다.
한제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리를 박차 오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도끼에서 1백 척에 달하는 섬광이 튀어나가 금선력 회오리와 충돌했다. 이에 회오리는 잠시 휘청거리면서 조금 느려졌지만 이내 속도를 회복하더니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침착하게 오른손을 휘둘러 한 줄기 은색 빛으로 달려들고 있던 회오리를 감쌌다. 그리고 더 많은 은색 빛이 그 뒤를 이었다.
그 무렵, 은색 빛으로 뒤덮여 있던 회오리는 이미 30척 앞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허나 파멸적인 기운을 가득 내뿜는 회오리를 코앞에 두고도 한제는 전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밀어닥치던 회오리가 한제로부터 10척 정도로 가까워진 그때, 한제는 가볍게 손짓을 하며 순간이동을 발휘했다.
“대나이(大挪移)!”
허나 순간이동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은색 빛으로 감싸인 회오리였다. 은색 빛이 순간 격렬하게 번득이더니 회오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둘의 결투를 보고 있던 수련자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천운자 역시 흐뭇한 눈으로 한제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진도도 내심 더 이상 한제를 얕잡아볼 수 없게 됐다.
회오리가 사라진 순간, 들고 있던 도끼를 거둔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던 사신차를 가리키며 외쳤다.
“나타나라, 혼수!”
그러자 사신차에서는 불굴의 의지가 하늘을 꿰뚫을 듯 강력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혼수 한 마리가 나타나 차차 실체화되며 격렬하게 포효했다.
“크오오!”
하늘을 뒤흔들 듯한 소리에 혼수를 난생 처음 본 나머지 여섯 계열의 제자들은 전율했다. 불굴의 의지가 담긴 혼수의 포효를 들은 순간, 그들은 한제를 이전보다 한층 더 높게 볼 수밖에 없었다.
천운성의 다른 수련자들 역시 놀란 모습이었다. 특히 높은 수준의 몇몇 수련자들은 혼수를 본 순간 눈빛이 바뀌었다. 심지어 능천후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허공에 뜬 채 진도를 가리키며 낮게 외쳤다.
“저자를 삼켜!”
포효하며 훌쩍 뛰어나간 혼수는 엄청난 속도로 진도를 향해 돌진했다.
진도는 전의가 담긴 두 눈을 번득이며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렸다. 순간, 그의 앞에 한 덩어리의 보라색 빛이 형성되더니 그 빛은 혼수가 달려든 순간 곧장 무너져 내렸다.
콰릉!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도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옷은 곳곳이 찢어져 넝마가 되었다.
혼수는 강력한 충격에 수백 척 뒤로 밀려났지만 곧 몸을 한 번 털어내며 포효하더니 다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사신차에 매인 사슬들이 팽팽해졌다.
“크하하! 꽤 훌륭한 짐승이로구나! 재미있어!”
진도는 전보다 더욱 짙은 전의가 맴도는 눈을 번득이며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더니 넝마가 된 상의를 찢어버린 뒤 반라가 된 몸으로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그의 손에 검은색의 긴 밧줄 하나가 나타났다. 그 밧줄은 어떤 생물의 힘줄이라도 되는 듯 비린내를 훅 끼쳐왔고 거칠고 흉악한 기운도 느껴졌다.
“이것은 어느 요사스러운 수련성에서 홀로 5백여 년을 살아온 용의 몸에서 뽑아낸 힘줄이다. 네놈이 이것도 피할 수 있는지 보자!”
말을 마친 그는 마치 한제는 보이지도 않는 듯 앞으로 한 발 나서며 혼수를 잡으려 했다.
“크오오!”
혼수는 포효하며 몸을 휘둘러 용의 힘줄을 피한 뒤 진도를 한입에 집어삼키려 했다.
“크하하! 그래, 나를 더 재미있게 해다오!”
진도는 광기어린 웃음을 지으며 몸을 훌쩍 날렸다. 용의 힘줄은 그의 주위를 맴돌다가 순간적으로 혼수의 목을 에워쌌다. 그 순간, 진도는 혼수의 머리 위에 서서 손에 용의 힘줄을 매섭게 잡아당겼다.
“자 어떻게 도망칠 생각이냐?”
그 무렵, 한제는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허공에 결인을 그리더니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다섯 번째 봉인, 해제!”
그 순간, 한 줄기 검은 빛이 결인을 그린 한제의 오른손에서 튀어나갔고 동시에 용의 힘줄에 묶여 있던 혼수의 거대한 몸이 바르르 떨렸다. 그 뒤를 이어 혼수의 두 눈에서 전에 없이 흉악한 빛이 번득였다.
“캬오오! 크아아!”
맹렬히 고개를 든 녀석은 미친 듯이 포효했다. 그 포효 속에는 불굴의 의지와 수없이 오랜 시간 동안 억제되어 있다가 마침내 풀려난 전율이 뒤섞여 있었다.
한제는 사신차를 손에 넣었던 당시에 그 사용법도 알게 됐으나, 지금껏 그의 수준이 부족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자칫하면 오히려 사신차에게 잡아먹힐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봉인을 풀기 전에도 막강했던 사신차의 다섯 봉인을 다 풀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도 없었다.
오늘은 그가 처음으로 사신차에 걸린 다섯 개의 봉인 중 하나를 풀어낸 날이었다. 다만 지금의 수준으로도 첫 번째 봉인을 풀 수만 있을 뿐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가 만약 사신차를 회수하지 못한다면 결국 사신차의 반격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변기 중기에 이른 한제는 내심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토록 신중한 그가 봉인을 푼 것은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봉인이 풀리자 혼수가 내뿜는 기운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사신차에 돋아 있는 예리한 가시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 가시들은 꿈틀거리면서 빠르게 자라나더니 이전보다 몇 배는 더 흉측하게 변했고 검은 빛으로 번쩍이기까지 했다. 그 검은 빛들은 쇠사슬을 따라 혼수에게로 흡수됐다.
“카오오!”
혼수는 계속해서 포효했고 순식간에 몸이 몇 배로 불어나 이제는 1천 척이 넘어갔다.
녀석은 땅을 밟고 서더니 몸을 한 번 거세게 흔들었다. 그러자 혼수의 체내에서 미친 듯이 발산된 검은 빛이 일제히 진도에게 달려들었고 진도의 표정이 변했다.
한 손에 용의 힘줄을 쥔 진도는 다른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하나하나의 보라색 빛들이 그의 체내에서 나와 사방으로 떠올랐다.
쾅! 쾅! 쾅!
돌진해오는 검은 빛들에 의해 보라색 빛들은 하나하나 무너져 내렸고 그 충격에 진도는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팟!
검은 빛으로 번득이는 혼수가 몸을 한 번 흔들자 그 거대한 몸은 전부 검은 빛으로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곳에 남은 것이라고는 사냥감을 잃은 용의 힘줄과 그 한쪽 끝을 쥔 서 있는 진도뿐이었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검은 빛들은 줄기줄기 허공을 선회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 진도로부터 수천 척 떨어진 곳에 응집되어 혼수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첫 번째 봉인이 풀린 뒤로 혼수는 더 이상 이전처럼 직접 삼키려 들기만 하지 않고 일종의 신통력까지 발휘했다.
진도는 굳은 얼굴을 펴며 몸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더니 탐욕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면 나의 사제가 될 자격은 있는 듯하군. 허나 그런 자격에는 대가도 따르는 법이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제는 오만한 진도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너는 내 사형이 될 자격이 없다.”
그 말에 진도는 한 방 먹었다는 듯 한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재미있는 사제로군. 허나 짐승 따위와 싸우는 것은 시간 낭비지. 사제만 잡아들인다면 저 짐승도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 자 내가 네놈의 사형이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똑똑히 보아라!”
말을 마친 진도는 몸을 훌쩍 날려 한 줄기 잔영을 남기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는 문정기 수련자였다. 한제는 자신이 맞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비록 지더라도 저자를 비롯해 이곳에 모인 모든 자에게 자신이 쉬운 상대가 아님을 보여줘야 했다.
문정기 수련자와의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