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1
‘만약 저자가 정말 그자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자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 사람을 만난 지 3만 년이 흘렀고 나는 이미 수차례 실패해왔다. 수많은 제자도 이제는 반으로 줄었지. 과연 나의 선택은 옳은 것인가?’
한제를 바라보는 천운자의 눈에 문득 슬픔이 묻어났다.
“화마지!”
한제가 굳은 눈빛으로 외쳤다.
검지 끝에 피어오른 보라색 불꽃은 그의 손을 떠나 순식간에 조헌몽의 자마수와 충돌했다.
화르륵! 쾅!
보라색 불꽃과 빛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융합했고 내부에서부터 미친 듯 흩어지면서 기이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 변화는 금세 멈추었고 곧장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라색 빛의 고리 하나가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튀어나온 빛의 고리에 포함된 마력은 한제의 화마지가 품고 있던 마력보다 몇 배는 강했다. 모종의 기이한 변화 때문인 듯했다.
이를 본 조헌몽은 곧장 뒤로 물러나면서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하얀 구슬을 하나 꺼내더니 교활한 표정으로 가볍게 외쳤다.
“흡수!”
그 순간, 사방으로 확산되던 마력이 우뚝 멈추더니 빠른 속도로 그 구슬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슬은 모든 마력을 흡수했다. 그러더니 하얀색이던 구슬은 칠흑처럼 검어졌고 마치 원혼이 봉인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칠사제, 난 사제와 천운칠자의 봉호를 놓고 싸우고 싶지 않아. 하지만 변형된 마력만큼은 내가 가져야겠구나!”
조헌몽은 구슬을 쥔 채 조용히 웃었다.
그때, 한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자마수를 만들어낸 것은 제가 화마지를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였군요. 그 안의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씀하셨다면 사저를 도왔을 지도 모르나, 이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참을 수 없습니다.”
딱!
한제는 말을 마치는 순간 손가락을 튕겼고 그 순간, 구슬 안의 검은 마기가 흩어졌다. 그러자 마기를 잃은 구슬은 처음의 하얀 색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마력은 한제가 선력을 역화(逆化)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허구였다. 그렇기에 마음 먹은 것만으로도 그것을 흩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역화한 선력을 다른 이에게 줬다가는 상대가 그것을 연구하여 진정한 화마지의 발휘 방법을 알아낼지도 모른다. 사도환에게 세 개의 필살기를 절대 외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기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한편 조헌몽은 싸늘한 눈으로 손에 든 구슬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손에 힘을 주자 구슬에 쩍 하고 금이 갔다.
조헌몽은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칠사제,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마력 한 줄기일 뿐이다. 그것만 넘긴다면 곧장 기권하고 물러나겠다. 허나 그러지 않겠다면⋯⋯.”
한제는 조헌몽을 바라보았다. 그와 그녀 사이에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사실 둘 사이에 묵은 빛은 없었다. 조헌몽의 말을 듣던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넷째 사저, 그 도움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조헌몽은 잠시 한제를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들며 가볍게 외쳤다.
“구전연선결(九轉煉仙訣)!”
무수히 많은 금색 빛이 조헌몽의 몸에서 미친 듯이 튀어나왔고 그녀의 얼굴은 금빛에 뒤덮였다. 매우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금으로 주조된 듯 강렬하게 번득이던 그녀의 손에서 금빛의 선력이 천천히 응집되더니 금색 회오리를 이루어 느릿하게 회전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다섯 바퀴⋯⋯.
총 다섯 번 회전한 뒤 움직임을 멈춘 회오리는 이내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눈을 빛내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는 오른손에 봉인되어 있던 세 번의 회전을 거친 금선력을 급작스럽게 폭발시켜 손바닥에 응집했다. 이내 조헌몽의 그것과 비슷한 회오리가 한제의 왼손에 나타나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이를 본 조헌몽은 흠칫 놀랐다. 이 구전선연결을 그에게 넘긴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건만 그 사이 세 번의 회전을 완성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고작 세 번의 회전이라니, 그 정도로는 내게는 소용없다.”
조헌몽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나 한제는 아무런 반응 없이 체내의 선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중 한 줄기 선력이 왼손으로 끌려와 세 번의 회전을 거친 금선력에 섞여들었다. 그러자 금선력이 맹렬하게 진동하면서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이제 네 번의 회전을 거쳤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체내의 선력 한 줄기를 다시 왼손으로 끌어왔고 금선력이 또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이제 다섯 번이군요.”
한제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는 체내의 극심한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왼손에 응집된 금선력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려 했지만 한제는 놀라운 자제력으로 이를 억눌렀다.
하지만 조헌몽이 보기에 한제는 힘든 기색 없이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주작성에서 겪었던 일들은 그에게 명망 있는 문파의 제자인 조헌몽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자제력을 안겨준 것이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조헌몽을 향해 말했다.
“여섯 번의 회전을 거친 금선력을 보고 싶습니까?”
조헌몽은 다소 긴장한 듯했으나,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정말로 여섯 번의 회전을 거친다 해도 내 적수가 되지는 못한다.”
그 말에 한제는 빙그레 웃더니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려 거마족의 도끼를 꺼냈다.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러 손목에 두른 구수권을 내던져 사신차를 소환했다.
“이 두 법보의 힘을 빌려 싸운다면 어떨지요?”
조헌몽은 한참을 말없이 한제를 바라보다가 돌연 피식 웃었다.
“내가 사제를 얕잡아본 모양이군. 기권하겠네!”
말을 마친 그녀는 자계 일맥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데 그때, 갑자기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 한 줄기 보라색 빛이 나타나 미친 듯이 돌진해왔다.
나머지 여섯 계열의 제자들은 눈을 돌려 그 보라색 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허나 천운자는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 보라색 빛은 쉭 소리를 내며 달려오다가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었고 이내 빛이 흩어지더니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샌 그의 얼굴은 홀쭉했고 척 보기에도 날 선 검처럼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어쩐지 능천후의 제자들과 상당히 비슷했다.
한제와 똑같은 보라색 옷을 입은 그는 천운자를 바라보며 포권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자 진도 스승님을 뵈옵니다.”
“저자는!”
백미의 눈빛이 굳어졌다. 조헌몽의 눈에도 복잡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자계의 여섯째!”
“손운 전까지 자계의 천운칠자를 차지하고 있던 자!”
“당시 손운과의 쟁탈전에서 패한 뒤 천운성 밖에서 수련을 했다던데…”
여섯 계열 제자들 사이에서 소란스런 대화가 오갔다.
한편 천운자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진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때맞춰 돌아왔구나. 잘했다.”
“늦지 않을 수 있었지만 오는 길에 흑묵성(黑墨星)을 지나면서 보물 하나를 발견했지 뭡니까. 스승님께 바칠 요량으로 그것을 가져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천운자는 재미있다는 듯 히죽 웃었다.
“어떤 재미난 보물이기에 너의 눈에 든 것이냐?”
진도는 말없이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 각기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총 여섯 개의 꽃잎을 가진 꽃이 나타났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꽃은 난잡해 보이기는커녕 탈속적이고 신비한 느낌이었다.
“바로 이 꽃입니다. 제자의 식견이 짧아 대체 이것이 어떤 꽃인지는 모르겠으나 흑묵성에 있을 때 세 마리 상급 황수(荒獸)가 이것을 두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도는 꽃을 앞으로 살짝 떠올렸다. 그러자 꽃은 둥실둥실 천천히 날아가 천운자 앞에 이르렀다.
천운자는 그 꽃을 보고 한참이나 살핀 끝에 입을 열었다.
“이 꽃의 이름은 칠채유리광(七彩琉璃光)이다. 십 년 만에 뿌리를 내고 백 년 만에 꽃잎을 내며, 천 년 만에 빛을 내고 만 년이 되면 개화한다. 한 번 개화할 때마다 한 가지의 색을 내는데 그렇게 여섯 차례 개화한 뒤 일곱 번째로 개화하면 비로소 일곱 개의 색을 갖지.”
천운자의 설명은 계속됐다.
“이것은 마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련 연맹에서 이것은 93번째 보물로 등록되어 있지. 손 장로 그렇지 아니한가?”
천운자가 손 장로를 향해 물었다.
손 장로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것은 진짜 칠채유리광이군. 다만 아직 일곱 번째 잎을 내지는 못했어. 허나 천운자 자네의 신통력이라면 머지않아 일곱 번째 꽃잎을 피워낼 수 있겠지.”
천운자는 오른손을 들어 그 꽃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꽃은 내가 받도록 하지!”
자계의 여섯째
진도는 자계 일맥의 세 사람을 둘러보더니 혀를 찼다.
“우리 자계 일맥 갈수록 사람이 줄어드는군. 백미, 조헌몽, 잘 지냈나?”
백미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조헌몽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의 생신 축하연에는 올 거라고 생각했지.”
진도는 조헌몽과 한제를 힐끗 훑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시선을 조헌몽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손운은?”
조헌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신식을 통해 진도에게 몇 마디를 전했다. 순간, 진도는 표정이 변해 조헌몽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한제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느릿하게 말했다.
“네놈이 일곱째냐? 이름이 무엇이냐?”
“이한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