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0
“영원한 허구의 몸을 가진 이 선계의 영접 사자가 하계 수련자들에게 강림했도다.”
말을 마친 허상은 손을 아래로 해 꾹 눌렀다. 그러자 순간 수만 명에 달하는 대나검종 제자들의 머리 위 상공이 일렁이더니 한 줄기 금빛 광채가 나타나 그곳을 완전히 봉인해버렸다.
축하연에 찾아온 손님들은 그 압도적인 장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는 몇몇 수준 높은 수련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계는 이미 멸망했는데 어찌 이런 술법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저 대나검종 제자들이 저 사자에게 인도되어 간다면 대체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가? 설마 파괴된 선계인가? 아니면 아직 어떤 수련자도 발을 들이지 못한 어떤 곳인가?’
무수히 많은 의문이 그들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동시에 그들에게 있어 천운자는 더욱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리 귀한 중급 선술인 인선술을 어찌 버려진 수련성에서 얻었단 말인가? 분명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다.’
여러 수련자들이 각자 추측을 하고 있던 그때, 능천후가 일갈했다.
“천운자! 자네를 축하하러 온 제자들이거늘 어찌 저 아이들을 공격한단 말인가?”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뱀 모양 선검을 회수했다.
천운자는 여전히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 제자들에게 선계를 느껴보게 하려는 것이니 좋은 일 아닌가!”
그러는 사이에 수만 명에 달하는 대나검종 제자들은 하나둘 떠올라 하늘에 생겨난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능천후는 더욱 어두워진 얼굴로 서서 냉랭하게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대나검종의 마지막 제자까지 완전히 사라진 뒤, 하늘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도 천천히 흩어져 이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천운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온화하게 말했다.
“나의 이 중급 선술에는 어떤 공격력도 없으나 선계가 사라진 뒤부터는 사람들을 그곳으로 보낼 수 있게 됐네.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나 역시 모르지만 말일세.”
“나와 한번 해보자는 건가?”
능천후가 싸늘하게 내뱉었으나, 천운자는 그런 그를 보며 여전히 싱글벙글 웃었다.
“급하게 굴지 말해. 자네 제자들은 석 달 뒤면 여기로 돌아올 걸세. 그때 혹시 제자들 몇 명만 보내줄 수 있겠나? 어디 가서 뭘 봤는지 듣고 싶거든.”
능천후는 한참 동안 말없이 천운자를 노려보다가 이내 차갑게 돌아섰다.
천운자 정도 되는 자가 이렇게 많은 자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천운자가 말한 대로 석 달 뒤에 제자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단지 이런 수작은 능천후 자신의 체면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 자리의 수련자들 중 자질이 뛰어난 이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고 어떤 이들은 방금 본 선술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었다.
한제 역시 방금 본 중급 선술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히 매우 신통한 선술이니 한 번 본 것만으로는 따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됐든 선술에 대한 이해는 한층 더 높일 수 있었다.
인선술로 만들어낸 일체의 허상은 사실 천운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해왔던 것들이다. 다만 그것을 활성화시키는 주문과 수법을 통해 드러냈을 뿐이다. 그러니 그와 비슷한 주문과 수법을 이용하면 유사한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천운자는 선술 시연이 끝나자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의 생일 축하연에 모인 여러 도우들이 증인이 되어주어야 할 일이 하나 있네. 현재 황계와 자계, 두 계열에는 천운칠자의 봉호를 가진 이가 아직 없지. 오늘 이 두 계열의 제자들 중 천운칠자의 봉호를 가질 이를 가릴 걸세!”
그의 말이 떨어지자 모든 수련자의 시선이 곧장 황계와 자계 제자들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시선은 황계로 쏠려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자종이 일곱 계열 중 가장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계에서는 천운칠자의 봉호를 가지고 있던 셋째 제자가 30여 년 전 우주로 나갔다가 실종된 후로 여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침착해 보이는 황계의 여섯 제자 중 가장 마지막 자리에 서 있던 중년 여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천운자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저는 기권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나오자마자 다른 황계의 제자들도 연속적으로 앞으로 한 발 나서며 기권하겠다고 외쳤고 두 사람만 남게 됐다.
남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좀 전에 천운자가 중급 선기를 선물로 하사한 곤붕자였다.
그의 곁에는 노인 하나가 서 있었는데 주름진 얼굴에 다소 왜소했으며, 노란 옷을 입은 모습이 꼭 비쩍 마른 늙은 원숭이 같았다.
그는 황계 일맥의 대사형인 운도자였다. 일찍이 8백 년 전 천운칠자의 일원이었다가 셋째에게 밀려난 그는 이제 천운칠자를 놓고 다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저 온종일 수련에 집중한 채 쉬고 싶었다.
그 역시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스승님, 저 역시 기권하겠습니다. 우리 황계의 천운칠자는 스승님께서 선기를 하사하신 곤 사제가 가장 적합합니다.”
천운자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운도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운동자는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곤붕자!”
천운자가 낮게 외쳤다.
“예!”
곤붕자가 몸을 흠칫 떨며 얼른 앞으로 나섰다.
“너는 황계 일맥의 천운칠자다. 만약 1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유지한다면 네게 하급 선술을 전수해주마. 천운칠자는 우리 천운종의 상징이자 이 천운자의 진정한 직계 제자임을 뜻한다.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잘해낼 수 있겠느냐?”
천운자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넘쳤다.
그 모습을 본 능천후는 달갑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천운칠자라⋯⋯ 흠⋯⋯.”
곤붕자는 철퍼덕 소리가 나도록 땅에 꿇어앉은 뒤 천운자를 향해 절을 했다.
“스승님 말씀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천운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으로 미간을 눌렀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한 덩어리의 노란 빛이 튀어나왔다. 뒤이어 한 덩어리의 노란색 결정이 나타나 그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것은 천운칠자의 봉호를 가진 자임을 증명하는 표지다. 몇 해 동안 폐관수련을 하면서 잘 느껴보도록 해라. 폐관수련을 끝내고 나오는 날 네게 법보를 선물해주마!”
곤붕자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흥분된 마음을 억눌렀다. 자신이 황계의 천운칠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니 꿈을 꾸는 듯했다.
사실 황계 일맥의 여섯 제자는 모두 만만찮은 자들이었다. 게다가 모두 수준을 숨기는 능력이 뛰어났기에 쟁탈전이 벌어진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황계 일맥의 대사형이 있다는 점이었다.
천운자를 스승으로 모신 지 2년이 조금 넘은 자신과 달리 대사형인 운도자가 스승을 따른 지 몇 년이나 됐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허나 운도자는 평소 홀로 지내기를 좋아해 누군가와 쉬이 접촉하지 않았고 싸움을 원치 않았기에 천운칠자 봉호를 놓고 싸울 생각도 없었다.
한편, 상황을 살피던 한제는 천운자의 미간에서 노란색 결정이 나왔을 때 운도자의 눈빛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변했음을 눈치챘다. 순간적이었지만 분명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운도자는 금세 평정심을 회복했다. 만약 한제가 그를 줄곧 주시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그 찰나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한제의 시선을 느낀 운도자가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치자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모든 것을 간파했다는 듯이…
“이제 자계 일맥의 천운칠자를 뽑을 차례로군. 이한제, 조헌몽, 백미, 세 사람은 준비가 되었느냐?”
한제를 향해 시선을 돌린 천운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헌몽
백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말했다.
“기권하겠습니다.”
허나 넷째 사저, 조헌몽은 굳은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칠사제, 나마저 기권한다면 천운칠자를 너무 쉽게 얻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 결전이 이뤄질 날은 바로 오늘이네.”
한데 그 순간, 좀 전에 운도자의 눈에 나타났던 두려움의 빛을 떠올린 한제는 잠시 망설이더니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했다.
“기권하겠습니다.”
한제의 말에 천운자는 흠칫했다. 그의 그런 반응을 보는 것은 한제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천운자는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한제에게 물었다.
“어찌 기권을 하느냐?”
조헌몽의 표정도 싸늘하게 변했으나, 그녀는 한제를 지긋이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천운자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한제가 입을 열었다.
“이 제자의 수준이 부족하여 넷째 사저와 겨룰 수 없기 때문…”
“이한제!”
천운자는 차갑게 노려보며 한제의 말을 끊었다.
“이 천운자에게 그리 나약한 제자는 필요 없다. 마음속에 잡념이 가득한 듯하구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법이다. 1각의 시간을 줄 테니 곰곰이 생각해보아라. 그러고도 기권하겠다면 더는 말리지 않겠다.”
천운자는 차갑게 돌아서더니 운도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에 운도자는 흠칫 놀라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여섯 계열 제자들의 시선이 한제에게 쏠렸다.
당시 자계 출신의 천운칠자였던 손운 이래 한제는 스승의 지지를 받은 두 번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저토록 쉽게 포기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신선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1각이 지났다.
한제는 천운자를 향해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겨뤄보겠습니다.”
천운자는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때, 조헌몽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며 말했다.
“칠사제, 시작하지!”
말을 마친 그녀는 가볍게 몸을 날려 뒤로 수백 척 물러나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후 앞을 가리켰다.
순간 수많은 보라색 별빛이 허공에 나타나 그녀 주위를 불규칙적으로 맴돌았다. 그러다가 그녀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그 별빛들은 모두 오른손 검지로 모여들어 눈 깜짝할 사이 그녀의 오른손을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심지어 그녀의 얼굴마저 보라색 빛이 비추어 기이해 보였다.
“칠사제, 나의 도가 무엇인지 오늘 알려주겠다. 나의 도는 요영(妖影)의 도. 나의 수준보다 높지 않다면 세상 어떤 신통력이라도 한 번 본 것만으로 어느 정도 모방해낼 수 있다. 이 술법은 칠사제의 화마지를 보고 모방해낸 것으로 자마수(紫魔手)라 이름 붙였지!”
말을 마친 조헌몽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때렸다. 순간 그녀의 손을 맴돌고 있던 보라색 빛이 한제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재빨리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려 선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 손가락 끝에 보라색 불꽃이 하나 나타났고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한 마기가 뿜어져 나와 사방을 뒤덮었다.
‘저자가 나의 운수에 부합하는 자일 것인가? 당시 그 사람은 내가 가진 천명의 도에 부합하는 사람만 찾는다면 나 역시 세 번째 단계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천운자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으나, 그 눈은 한제의 오른손 검지에 고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