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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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국, 오령산(五靈山).
영악국 최고 고수인 오령산 천태 노인은 오령산의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태양의 힘을 받으면서 호흡하고 있었다.
잠시 후, 두 눈을 번쩍 뜬 천태 노인은 덤덤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자 어르신을 뵙습니다.”
허공에서 보라색 빛이 언뜻 비치더니 침착한 표정의 한제가 나타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실례했군!”
천태 노인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경솔했지요. 며칠 전 제가 말씀을 어기고 통천탑에 다가가 그 마수를 놀라게 하지만 않았어도 사자 어르신께서 그 마수를 굴복시키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테니까요.”
“괜찮네.”
한제는 천태 노인을 힐긋 바라보았다. 상대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었다. 영변기 후기 수준에서 문정기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했다.
“그 일로 질책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면 죽어가는 이 늙은이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천태 노인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제는 먼 곳을 내다보며 느릿하게 답했다.
“이 지성에 마수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나?”
천태 노인의 눈빛이 굳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자 그의 손에 옥패 하나가 나타났다.
“그런 곳이라면 총 세 곳이 있습니다. 이 옥패에 표시해두었습니다.”
한제는 옥패를 받아 들고 훑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두말 않고 발을 굴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천태 노인은 방금까지 한제가 있던 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두 눈을 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자의 미간에서 살기가 익어가고 있구나. 이번에 그가 향하는 길에는 죽음이 가득할 것이니 누구도 거슬러서는 안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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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북쪽 경계, 1백만 리에 달하는 풀숲 안에 모여 있는 마수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으며 문정기 수준에 상당하는 황수(荒獸)도 있었다. 지성의 몇몇 종파에서는 제자들의 수련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중심 30만 리 범위는 출입을 금하고 있다.
한제는 옥패를 저물대에 챙겨 넣은 뒤 오른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그의 몸은 은빛 섬광으로 둘러싸였다. 그 섬광 안에서 한제는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사다리를 오르듯 걸음을 옮긴 그가 움직인 거리는 총 열 보였다. 이는 지금의 그가 이 술법으로 이동할 수 있는 최대 거리이기도 했다.
마지막 걸음을 옮긴 순간, 한제의 모습은 격렬하게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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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북쪽 경계의 너른 하늘 아래, 갑자기 대량의 은빛 섬광이 나타났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물고기 비늘과 같은 파문이 생겨나더니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잠시 후, 물고기 비늘 같은 파문의 중앙에 눈부신 은색 빛이 나타나 반짝거렸다. 그 빛은 너무도 강렬해, 마치 하늘에 금빛과 은빛의 태양이 동시에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그 은빛 태양 속에서 다소 창백해진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재빨리 숨을 가다듬으며 저물대에서 단약을 꺼내 복용한 후에야 안정을 되찾았다.
그의 뒤에서 은색 빛은 천천히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고 하늘도 천천히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한제는 곧장 보라색 빛이 되어 1백만 리 앞의 우거진 산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의 땅은 한 층의 어스름한 남색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거대한 비석이 땅에 꽂혀 있었고 그 위에는 피처럼 붉은 색으로 살기 가득한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마북계(地魔北界)
비석에 새겨진 네 글자에서는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사방에 기이하고 짙은 바람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한제는 바닥에 내려서서 고개를 들어 비석을 한참이나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 비석 뒤쪽은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지만 신식으로 훑으면 그 안쪽을 명확하게 살필 수 있었다.
안개 뒤로는 끊임없이 이어진 산맥이 있었는데 길이라고는 없었다. 바닥에는 나뭇잎이 두껍게 깔려 있었고 썩는 냄새가 짙게 피어올랐다.
고요하여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빽빽한 숲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끊임없이 확산됐다.
한제는 그쪽을 한참이나 자세히 살피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이 지마북계에서 살육의 선결을 내 것으로 만든다.”
바로 그때, 갑자기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 여러 갈래의 검광이 하늘을 가르며 달려왔다. 그 검광은 각각 색이 달랐고 짙은 법력의 파동으로 미루어 그 주인들은 결코 수준 낮은 수련자가 아닌 듯했다.
“대사형, 이제 도착입니다.”
한 검광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검광의 출현도 한제의 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곧장 지마북계 안으로 들어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모습을 감추고 얼마 후, 비석 아래에 검광들이 도착했고 이내 다섯 사람의 모습을 드러냈다.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로 모두 용모가 빼어나고 영기 또한 상당했다.
“대사형, 방금 이 안으로 누군가 들어가는 걸 봤어요!”
두 여인 중 붉은 면사로 된 치마 차림에 입가에 미인점이 있는 소녀가 조용히 말했다.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준은 결단기 후기에 이르러 있었다.
그녀가 바라본 늠름하고 당당한 외모의 중년 사내는 푸른색과 흰색이 뒤섞인 옷을 입은 채 긴 머리는 푸른 끈으로 묶었으며, 등에는 질박해 보이는 장검을 하나 매고 있었다.
그는 소녀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본디 금지된 곳이 아니니 적지 않은 문파의 사람들이 수련을 하러 이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지. 그러니 신경 쓰지 말거라. 우리는 사백(師伯) 일행을 기다렸다가 함께 들어가자꾸나.”
“그래, 곽 형은 대나검종의 제자잖아. 누구든 알아서 비킬 걸?”
스물 후반쯤의 남색 옷을 입은 청년이 알랑거리듯 웃으며 말했다.
나머지 한 여인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을 원망 어린 눈으로 흘겨보았다. 특히 곽 씨 성의 중년 사내를 향할 때에는 그 원한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좀 전의 소녀보다 훨씬 아름다운 이 여인은 허리춤이 남색 실로 엮은 우아한 나비매듭으로 장식된 새하얀 면사 치마를 입고 있었고 먹처럼 검은 머리에는 비녀가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피부는 분을 바르지 않았는데도 옥처럼 맑고 하얬다. 눈에 가득한 원한의 빛만 아니라면 훨씬 아름다울 것 같았다.
흡혈 마수의 진화
곽 씨 사내는 여인의 원한 가득한 눈빛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빙그레 웃으며 온화하게 말했다.
“천령 낭자 안심하게. 그대의 동문들에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요금과(耀金果) 하나는 꼭 챙겨줄 테니.”
천령이라 불린 여인은 살기 어린 얼굴로 곽 씨 사내를 노려보다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대나검종의 명망을 이렇게 저급한 수단으로 삼을 줄은 상상도 못했군. 이 천령이 정말 눈이 먼 모양이야. 자네를 이렇게도 잘못 보았으니!”
곽 씨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세상에 귀한 것은 기회와 인연이 닿아 세상에 알려지는 법. 요금과는 우리 사숙께 큰 쓸모가 있을 것이네. 낭자가 먼저 도움을 청했으니 나 역시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한편, 지마북계 안으로 진입한 한제는 번개처럼 빠르게 내달렸다.
“대나검종이라⋯⋯. 흥미롭군. 주일 선배의 종적을 찾기에 아주 좋은 기회야. 그나저나 요금과라는게 대체 뭐지?”
사실 요금과는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닌 연기(煉器) 재료였다. 이 열매를 사용하면 금속 속성의 물건은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열매를 많이 사용할수록 그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소문에 의하면 대나검종의 능천후가 등에 매고 다니는 네 자루 허상의 검은 대량의 요금과를 이용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요금과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며, 덕분에 능천후의 검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요금과는 세상에 존재하는 원금(元金)으로 만들어지는데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던 원금이 뿌리내린 곳에서 자라났다.
이 열매는 일단 자라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보통의 야생 나무와 똑같아 분간할 수 없지만 성체가 되면서 변화하여 대량의 금속 속성의 기운을 띤다.
열매가 익은 뒤부터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의 기간은 저마다 다른데 짧을 때는 몇 호흡을 하기도 전에 떨어졌고 길 때에는 몇 개월이 이어지기도 했다.
열매가 익으면 금속 속성의 영수(靈獸)는 그 열매가 자연히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곁에서 지켰다. 열매가 시들어 떨어지면 나무의 뿌리로 녹아들어가 금영근(金靈根)이 되는데 금속 속성 영수는 이 금영근을 통해 더 많은 지능과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제는 여전히 요금과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은 신식을 통해 대나검종 일행을 계속해서 살피기로 했다.
곽 씨 일행이 지마북계 비석 아래 도착한 지 두 시진가량 지나자 저 멀리 하늘 끄트머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세 갈래의 붉은 빛이 엄청난 기세로 다가왔다.
콰르릉!
세 갈래의 빛은 바람을 가르며 비석 아래에 도착하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사방으로 퍼져 나간 그 기세에 먼저 도착해 있던 일행 중 곽 씨 사내를 제외한 네 명은 수십 척 밖으로 밀려났다. 핼쑥해진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파문이 훑고 지나가자 거대한 비석 아래 방금 도착한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셋 모두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검은 옷에서는 짙은 검기가 느껴졌다. 등에는 모두 한 자루의 질박한 보검이 매여 있었는데 그 검에서 흘러나오는 위엄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 중 하나는 화신기 후기, 둘은 영변기 초기 수준이었다.
곽 씨 사내는 세 사람을 본 순간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얼른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
“6대 제자 곽형일, 사숙을 뵈옵니다.”
그가 인사를 올린 사람은 세 명의 노인 중 화신기 수준의 노인이었다. 노인을 바라보는 곽형일의 얼굴에는 깊은 존경심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