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10
화신기 수준의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곽형일, 이 두 분은 검각(劍閣)의 장로이시다.”
말을 마친 그는 옆으로 물러나며 곽형일을 향해 눈짓을 했다.
곽형일을 얼른 한쪽 무릎을 꿇고 방금 전보다 더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영변기 초기 수준의 두 노인 중 한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키가 작았는데 그중 키 큰 노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어나서 답해 보아라. 요금과는 네가 발견한 것이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곽형일은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밀려난 채 줄곧 아무 말도 없이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는 천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요금과는 제 친한 벗인 저 여인의 동문이 발견한 것입니다. 허나 그 요금과는 마수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터라 마침 그쪽을 지나고 있던 제게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검각의 두 장로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키가 작은 노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낭자 낭자가 보았다던 요금과가 총 몇 개나 되지?”
천령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상대의 번개와 같은 눈빛에 어쩔 수 없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략 1백 개 정도는 됐습니다.”
“1백 개!”
키 작은 노인의 두 눈이 번득였다.
“요금과 1백 개라면 그것을 지키고 있는 마수들은 분명 막강하겠지. 네 동문들의 힘으로 그것을 얻기란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천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그녀 곁에 서 있던 하얀 옷의 사내가 화가 난 듯 입을 열었다.
“우리 동문들은 갖은 노력을 들였다. 여러 선배들의 희생으로 겨우 찾아낸 요금과인데 너희 대나검종이⋯⋯.”
“그만!”
천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소리쳤다.
사내는 성난 얼굴로 깊은 숨을 몇 번 들이마시더니 고개를 홱 돌리며 입을 다물었다.
곽형일은 잠시 망설이다 공손하게 말했다.
“장로님, 천령은 제 벗이니 이번에 요금과를 손에 넣으면 저 여인에게도 하나 줄 수 없겠습니까?”
키가 큰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물론 하나 정도는 줄 수 있지. 하하하! 자 이제 앞장서라!”
속으로 한숨을 내쉰 천령은 마음이 복잡했다. 이제는 그녀가 길을 안내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패악한 대나검종에 문파까지 화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것은 대나검종의 장로였다.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만 해도 그녀는 그녀가 속한 문파의 대장로보다 몇 배는 더 강했다. 대나검종에 비하면 그녀가 속한 문파는 보잘것없었다.
‘곽형일, 내가 너를 믿은 것이 잘못이로구나.’
천령은 속으로 욕지기를 삼키며 곽형일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이내 이를 악물더니 앞장서 지마북계로 진입했다. 그녀의 동문인 하얀 옷의 사내가 역시 분노를 억누르며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대나검종 일행까지 지마북계 안의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자 거대한 비석 앞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 ★ ★
지마북계의 풀숲으로 이루어진 산에 이른 한제는 뒷짐을 진 채 지면에서 3척 정도 높이에서 느릿하게 날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살육 선결을 발휘할 경우 일어날 갖가지 변화와 생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낙인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한데 그가 조용히 날아가고 있던 어느 순간이었다.
파밧!
주위에서는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앞에 어두워지더니 어스름한 빛이 번쩍거림과 동시에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와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무척 빨라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의 코앞에 이르렀다. 검은 안개로 뒤덮인 그것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훅 느껴졌다.
허나 한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그 검은 안개로 뒤덮인 그것이 달려들던 순간 손가락 하나로 허공을 살짝 두드렸을 뿐이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날카로운 기운이 그 검은 안개 속으로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한 줄기 회색 기운이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됐지만 그 기운은 너무나 옅어 밖으로 발산되자마자 반 정도는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한데 그 미약한 기운이 훑고 지나가자 검은 안개 속에서는 벌레의 날갯짓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흩어져 사라졌고 그 안에서 주먹만 한 작은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은 마수는 사지라는 것이 없었고 그저 커다란 입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 입에는 이빨조차 없었지만 강력한 산기(酸氣)가 그 입에서 발산됐다. 그 산기를 품은 침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이때, 한제의 손가락이 곧장 마수의 몸을 찔렀다. 그리고 손가락 끝을 살짝 움직이자 작은 마수의 몸은 곧장 터져나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작은 마수가 있던 곳에서 나타난 회색 기운이 한제의 손가락을 맴돌았다.
“살육 선결을 이용하면 살육으로 생기의 힘을 얻는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 회색 기운이 생기라는 건가?”
한제는 자신의 손가락을 맴돌고 있는 회색 기운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한제는 계속해서 신식으로 먼 뒤쪽에서 접근하고 있는 대나검종 일행들을 살폈다. 덕분에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었다.
한제는 그들이 말하는 요금과라는 것이 뭔지 알고 싶었다. 또한 대나검종에 호감보다는 반감이 컸던 그는 영변기 초기 수준의 두 노인을 살육 선결을 위한 이번 여정의 대상자로 결정했다.
산맥 사이를 날고 있는 한제의 오른손 검지에는 이전보다 몇 배는 늘어난 회색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이제 이 회색 기운은 실 뭉치처럼 그의 손가락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중이었다.
지마북계 안에는 마수의 수가 분명 적지 않았다. 허나 그중 한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없었다. 만약 요금과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지 않았다면 그는 진즉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가 강력한 마수에게 살육 선결을 시험했을 것이다.
어느 날, 한제는 화신기 수련자의 수준에 상당하는 마수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 순간, 짙은 회색 기운이 그 마수의 미간으로부터 나와 한제의 손가락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꾸웨엑!”
경련을 일으키던 마수는 짧은 비명을 남기며 땅에 푹 고꾸라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한 줄기 검은 번개가 달려들더니 흡혈 마수의 흉측한 모습이 한제의 눈앞에 드러났다. 녀석은 거대하고 예리한 주둥이를 쓰러진 마수의 몸에 꽂아 넣더니 마수의 내단과 피, 살, 그리고 정수를 모두 빨아들였다. 땅에 남은 것은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마수의 유해뿐이었다.
흡수를 마친 흡혈 마수의 몸에서 흰색 빛이 몇 번 번쩍였다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녀석의 솜털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러자 흡혈 마수는 상당히 기쁜 듯 쉭쉭 소리를 내며 날개를 퍼덕이면서 한제 앞에서 빙빙 돌았다.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화신기 수준 이상의 마수들을 죽일 때마다 한제는 흡혈 마수를 꺼내 마수의 내단과 정수 등을 흡수하게 했다. 흡혈 마수의 생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였다.
흡혈 마수는 흡수를 통해 삶을 이어갔으며, 세상에 녀석이 흡수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또한 많은 것을 흡수할수록 더욱 강해졌다.
한제를 따른 이래 흡혈 마수가 흡수한 내단과 단약이 몇 개인지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덕분에 화신기 수준에 상당하는 마수라도 녀석 앞에서는 겁을 먹기 마련이었다.
한제가 앞으로 한 발 내딛어 허공에 떠오르자 흡혈 마수가 재빨리 날아들어 그 발을 받쳤다. 그러더니 산맥 깊은 곳으로 곧장 날아갔다.
한참을 이동하던 중, 한제의 안색이 급작스럽게 변했다. 흡혈 마수는 주인의 마음을 눈치챈 듯 곧장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꼼짝도 않은 채 한제의 지시만을 기다렸다.
한제는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요금과를 찾은 모양이군.”
그의 의중을 알아차린 흡혈 마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마치 한밤중의 혼백처럼 기척 없이 남쪽으로 날았다. 녀석의 두 눈이 피에 굶주린 듯 붉은 빛으로 번득였다.
한제는 줄곧 흡혈 마수가 지난 며칠 동안 겪은 변화를 주시했다. 매번 녀석에게 마수의 내단과 피, 정수를 흡수하게 할 때마다 녀석의 몸은 흰색 빛을 번득였다. 한제는 흡혈 마수가 지금 수준을 돌파할 중요한 단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 돌연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거대한 수련성을 빽빽하게 뒤덮은 수많은 흡혈 마수가 예리하고 거대한 주둥이를 휘두르며 도깨비불과 같은 눈빛을 번득이는 장면이었다.
구여충(九黎蟲)
대나검종 일행은 천령을 따라 쉬지 않고 줄곧 빠르게 이동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맞닥뜨린 마수들은 영변기 초기 수준의 두 장로가 단숨에 처리했다. 자신의 문파라면 갖은 힘을 다해야 겨우 처리했을 마수를 간단히 물리치는 두 장로의 모습을 보며 천령은 더 없이 씁쓸해졌다.
그녀는 이제 요금과 하나를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편 곽형일은 상당히 애를 쓰고 있었다. 끊임없이 천령에게 말을 걸며 둘 사이를 원래대로 회복시키려 하는 그의 노력에 천령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대나검종의 강대함을 직접 확인한 이상 속이 썩어 문드러질지언정 척을 질 수는 없었다.
곽형일의 사백인 화신기 수준의 노인은 여기까지 오는 내내 틈 날 때마다 음흉한 눈으로 천령의 전신을 훑었다.
전체적으로는 평안한 여정이었다. 강대한 마수들을 맞닥뜨리더라도 대나검종의 두 장로가 처리했기 때문이다.
허나 사실 이곳에 들어선 이후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두 장로였다.
그들이 이 지마북계에 들어오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 여정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막 들어왔을 당시에는 어떤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금방이라도 사람을 으스러뜨릴 듯한 압박감이 사방을 둘러싼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감지하지 못한 듯했지만 대나검종의 두 장로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계속해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나 두 사람의 신식에 걸리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 지마북계의 깊은 곳에 진입하기도 전이니 상식적으로 황수가 나타날 리는 없지. 하지만 너무나 또렷한 느낌이야. 어째서일까?”
일행의 뒤에서 이동하던 두 장로는 신식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이 지마북계에 변고가 발생했을는지도 모르지. 신식으로 몇 번을 훑어도 걸리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정말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이라면 상대는 우리 둘이 해결할 수 있는 자가 아닐 거야.”
“정말 기이한 곳이네. 할 일만 마치고 곧장 떠나야겠어.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힘들어질 테니까. 무거운 산 하나가 머리 위에서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냅다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고…”
“자네도 그런 충동이 드는 겐가? 이전에 마수를 죽였을 때 나 역시 통제하기 힘든 그런 충동을 느꼈다네. 이보게, 석방. 이건 분명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차라리 지금 당장 떠나는 것이 어떻겠나?”
키 작은 노인이 두 눈을 번득이며 신식을 통해 말을 전했다. 그러자 키가 큰 노인, 석방은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앞선 후배들을 바라보며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신식을 통해 말했다.
“이미 너무 멀리 왔네. 사흘 정도면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세!”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후 말없이 속도를 높였다.
한편, 대나검종 일행이 떠난 자리에 흡혈 마수에 올라탄 한제가 기척 없이 나타났다. 한제는 그들이 떠난 자리를 덤덤한 눈빛으로 훑어보다가 여유롭게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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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검종 일행은 위기감을 느낀 두 장로의 재촉에 속도를 냈고 사흘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한 곳에 불과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이르게 됐다.
천령이 앞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