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11
한편, 한제는 속으로 이 상황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 네 사람, 재미있군. 각자 품은 마음도 신통력의 강도도 달라. 이들 중 가장 범상치 않은 것은 서희다. 저 여인의 몸에서는 기이한 느낌이 난다.’
다섯 수련자는 모두 빠른 속도로 구름을 관통하며 나아갔고 머지않아 그들 앞에는 지면에 깊이 파인 고랑이 나타났다.
폭이 약 1백 척에 달할 정도로 큰 고랑은 수만 척 밖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 끝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고랑은 지면에서 자라난 흉측한 입 같기도 누군가의 신통력에 생긴 상처 같기도 했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그 틈을 향해 내려갔다.
한제는 우측에서 내려가면서 틈의 안쪽 벽을 살폈다.
지면에 난 고랑의 벽은 예리한 무언가로 잘라낸 것처럼 매끈했고 손으로 살짝 만져보자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방은 점점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런 어둠은 수련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자 갈래갈래 분리된 고랑들이 나타났으며, 그 수는 점점 늘어갔다.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나뉜 고랑들은 모두 동굴처럼 어두웠으며, 심지어 어떤 고랑들은 선력을 응집시킨 눈으로 봐도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기가 어려웠다.
어느 순간, 두건은 몸을 우뚝 멈추었다. 그러자 일행 역시 허공에 멈추어 섰다.
“도우들, 이 고랑에는 어쩌면 보물들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이런 고랑들은 더욱 많아지겠지. 각자 보물을 좀 찾아보는 게 어때?”
두건은 말을 마친 뒤 몸을 훌쩍 날려 그중 하나의 틈으로 날아갔다.
뒤를 이어 모용탁이 말없이 다른 틈으로 향했다.
“이 사형도 좀 둘러보세요. 수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조의훤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한제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조의훤은 그런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틀어 가까운 고랑을 살폈다. 서희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편, 한제는 아래를 내려가던 중에 고개를 돌려 두 여인이 향한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두 사람, 어째서 이렇게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지?”
한제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거대한 고랑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벌써 한참 동안 아래로 내려왔는데도 바닥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이곳의 바닥은 배이라가 준 수정으로도 살필 수가 없었다. 다만 아래에 있는 큰 복도에 나머지 다섯 개의 입구가 연결되어 있고 그중 하나가 출구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지!”
한제는 결국 더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위에서 묵직한 압박이 전해져 내려와 그를 저지했다.
“허! 과연 그렇군. 이 입구는 들어갈 수만 있을 뿐 밖으로 나가지는 못해. 억지로 이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려 한다면 압박감은 점점 커질 거야.”
그때까지 막연하게 해왔던 추측이 사실로 밝혀지자 한제는 낮게 혀를 차고는 그 자리에 서서 주위를 살폈다. 곳곳에는 수많은 고랑이 뻗어 있었고 그 안은 모두 짙은 어둠에 덮여 있었다.
한제는 그 수많은 고랑들을 훑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아무래도 나보다 앞서 많은 사람이 찾아온 모양이군. 대부분은 텅 비었을 테지. 그나저나 1천 척만 더 내려가면 수정으로 찾았던, 그 건너기 힘들어 보이는 곳이 나올 것 같은데…”
한제가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용탁이 가장 먼저 다가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곁에 섰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불쑥 말했다.
“이 도우, 이곳이 익숙한가?”
한제는 모용탁을 슬쩍 살핀 뒤 말했다.
“여기에서 1천 척 아래로 내려가면 돌벽에 오래된 나무가 자라나 있는 곳이 있네. 아주 이상한 나무이니 모용 도우도 조심해야 할 거야.”
놀랄 만한 상황이었으나 모용탁은 표정의 변화 없이 짧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잠시 후에는 조의훤과 서희가 이어서 두건이 내려왔다. 허나 그들 중 보물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행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제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 맨 뒤에 섰고 모용탁은 그런 한제를 따랐다.
지금 가장 전방에 선 것은 두건이었다.
1천 척은 이 다섯 사람에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를 수 있는 거리였다.
한제는 시종일관 형형한 눈빛으로 우측 아래쪽을 살폈다. 수정을 통해 탐색했을 때 그곳에서 크지도 특이하지도 않지만 엄청난 위기감을 일으킨 오래된 나무를 파악해둔 상태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한제는 아래쪽 벽에 사람 몸통 굵기의 나무가 자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는 뿌리가 사방으로 빽빽하게 퍼져 있었고 그중 반 정도는 허공에 떠 있었으며, 나머지 반은 벽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 나무가 자리 잡은 곳은 교묘하게도 고랑의 벽 위쪽이라서 허공에 뜬 뿌리들이 마치 그 고랑의 입구를 가린 장막처럼 늘어뜨려져 있었다.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비슷한 나무를 일고여덟 그루 정도 봤지만 그중 한제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나무는 처음이었다.
반짝이는 보라색 빛이 그 나무의 뿌리로 가려진 고랑 안에서 번득였다. 신식으로 살필 필요도 없이 눈으로 봐도 그 보라색 빛이 벽에 박혀 있는 비검에서 발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비검에서는 예리한 기운이 풍겨 나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두건은 그 보라색 빛을 본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곧장 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그 비검을 자세히 살피다 중얼거렸다.
“천운패검(天運佩劍)!”
그 말에 조의훤과 서희도 흠칫 놀라더니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허나 한제는 서희가 보고 있는 것이 고랑이 아니라 그 나무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게다가 그녀의 눈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냉기도 흘렀다.
한편, 두건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그 고랑 안의 비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내가 아는 검이군. 나의 스승, 천운자의 검이야. 스승님은 총 일곱 자루의 패검을 가지고 계시면서 그것을 천운칠자에게 각각 하나씩 나눠주셨지. 다만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총 세 개의 패검이 그 주인과 함께 실종됐어.”
여기까지 말을 잇던 그는 한제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사제, 허은이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허은이 있었을 때 난 천운종의 일반 제자로 적계에 들어가지도 못한 상태였지. 하지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네. 저 검은 분명 허은이 천운칠자에 등극한 뒤 스승님께 받았던 자계의 패검이야!”
한제의 눈빛이 고랑 안에 박힌 비검에 닿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건은 모용탁과 조의훤, 서희를 향해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모용 형, 조 사매, 서 사매, 이 비검은 우리 천운종 자계의 패검이네. 부탁하건대, 저 검은 우리 이 사제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나? 이 사제는 천운종 자계의 제자라네. 그러니 이 사제가 저 검을 가진다면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으며 이 사제는 자계에서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하게 되겠지.”
두건이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용탁의 눈빛은 냉랭했지만 미묘한 빛도 함께 스쳐갔다. 허나 그는 언제나처럼 짧게 답했다.
“좋을 대로…”
조의훤과 서희 두 사람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두건은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사제, 저 패검은 자네가 속한 자계의 것이니 난 탐하지 않을 것이네. 그렇다고 다른 자가 가져가는 것도 허할 수 없어. 저 패검은 자네의 것이야! 난 그저 당시의 허은이 그랬던 것처럼 자네가 저 패검 본연의 위력을 마음껏 활용해주길 바랄 뿐이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두건을 바라보았다. 두건은 어떤 수상한 낌새도 없이 진중한 눈으로 한제를 마주봤다.
“그렇다면 고맙습니다.”
한제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의 눈에 비친 두건은 마치 졸렬한 장난을 치는 아이 같았다.
‘나를 세 살짜리 꼬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한편, 두건은 한제의 미소에 문득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사실 그는 한제를 얕잡아보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한제는 반쯤 폐허가 된 별에서 천운성으로 올라온 촌뜨기였다. 만약 엄청난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어찌 천운자의 제자가 됐겠는가!
그는 이전에 이곳에 한 번 와봤지만 입구로 직접 들어온 것이 아니라 신식을 넣은 꼭두각시를 조종해 들여보낸 것뿐이었다. 한데 꼭두각시는 나무의 공격을 받았고 이를 본 두건은 놀란 마음에 오랫동안 이곳에 발을 들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모용탁 등을 만난 후에야 다시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그는 다른 일행들이 저 평범하게 생긴 나무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계획을 자신 있게 밀어붙이기로 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굽은 칼을 꺼냈다. 칼은 검은 빛을 번득이며 훌쩍 튀어나가 곧장 고랑 안으로 진입하더니 단숨에 그 비검을 뽑아 한제에게 돌아왔다. 그 나무가 반응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일이 있는 곳
한제는 보라색 빛을 반짝이는 비검을 손에 쥐었다. 그러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검을 쥔 손에 선력을 불어넣었고 그러자 검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반짝이던 보라색 빛 역시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것은 천운패검이 아니라 그저 보통의 철조각에 불과했다. 누군가를 꾀어 고랑 안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끼였을 뿐이다.
“허허! 이 사제, 내가 물건을 잘못 본 것 같네.”
두건은 덤덤한 표정의 한제를 마주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허나 한제의 눈빛은 더없이 싸늘했다. 그는 일평생 자신을 해하려 한 자를 용서한 법이 없었다. 이 잔혹한 수련계에서 무르게 구는 것은 곧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리며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괴이한 바람이 나타나 그대로 두건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건은 표정이 급변하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사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어지간한 문정기 중기 수준의 수련자보다도 강한 한제의 공격을 아직 영변기 수준인 두건이 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휙 하고 불어온 괴이한 바람은 천운자가 준 구명 옥패를 가진 두건을 죽일 수는 없었으나, 그의 몸을 오래된 나무가 있는 쪽으로 밀쳐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그 순간, 나무는 귀를 찢을 듯한 웅웅 소리를 내더니 무수히 많은 손가락 크기의 날벌레가 되어 용솟음쳤다. 사실 이것은 나무가 아니라 대량의 날벌레들이 뭉쳐서 이룬 눈속임이었다.
이 날벌레들의 색은 각기 달랐고 구름처럼 용솟음치면서 현란하게 색을 변화시켜 육안으로는 고랑의 벽과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눈앞을 어지럽혔다.
날벌레들은 다섯 무리로 나뉘어 일행들에게 달려들었다.
두건의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그는 이 날벌레들의 무서운 위력을 알고 있었다. 당초 그가 들여보낸 꼭두각시가 이 날벌레들의 공격에 육신과 혼백까지 순식간에 뜯어 먹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저물대에서 천운자가 준 구명 옥패를 꺼냈다. 이 옥패로는 총 세 번 목숨을 구제할 수 있는데 두건은 일전에 이미 한 번 사용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두 번의 기회만 남아 있었다.
옥패에서 일곱 빛깔 광채 한 갈래가 튀어나와 두건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러자 모든 날벌레가 한데 모여들어 두건의 몸을 꽁꽁 감쌌고 이에 일곱 빛깔 광채에서는 사각, 사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건은 다급하게 외쳤다.
“살려주게, 모용 형! 살려주게!”
모용탁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인을 그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선력이 검은 기운으로 그의 손에 응집되었다. 이윽고 모용탁이 그 손으로 허공을 때리자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손바닥이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두건을 감싸고 있는 날벌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