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69
세 번째 봉인이 풀린 뇌수의 온몸에서 번득이는 전광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시커먼 빛은 녀석의 몸에서 끝도 없이 발산되면서 줄기줄기 검은색 폭풍을 만들어냈고 콰르릉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미친 듯이 확산되었다.
그 무렵, 선위의 몸에서 번득이던 빛은 점차 붉은색을 띠다가 이제 주홍색으로 변했다. 동시에 그 주먹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쾅!
천둥번개가 어린 폭풍은 잔뜩 화가 난 듯 솥 안 전체를 휘저었고 솥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균열이 일었다.
쾅!
선위의 주먹 또한 쉬지 않고 내리 꽂히면서 솥에는 균열이 점점 더 많아졌다.
엄청난 힘이 사방에 몰아치자 뇌도자는 체내의 원력을 미친 듯이 쏟아부었다. 더 이상 원력을 아끼겠다는 생각 따위는 할 여유가 없었다. 그 평생 가장 힘겨운, 사활이 걸린 전투였다.
하지만 그가 원력을 쏟아붓는 속도는 세 번째 봉인이 풀린 뇌수와 신통력을 발휘하는 선위 꼭두각시의 공격을 따라가지 못했다. 더구나 그 순간 한제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오른손을 들어 매섭게 내리쳤다.
“참라!”
콰르릉!
검을 쥐지도 않았건만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뒤흔들렸다. 그러더니 결국 솥이 무너져 내리면서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조각 하나하나에는 검은색 전광이 맴돌았고 이 전광이 어린 조각은 펑펑 소리를 내면서 더 잘게 붕괴했다.
한제는 창백한 얼굴로 연속해서 두 차례의 참라결을 발휘했다. 그의 원신에 남은 원력은 심각하게 부족해졌고 심지어 경지의 수준마저 떨어질 기미를 보였다. 원력이 조금이라도 더 줄어든다면 곧장 떨어져 내릴 터였다.
한제는 휘청거렸으나 원상태로 돌아온 하늘과 땅을 확인한 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굳건히 섰다.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지만 두 눈에 어린 서늘한 빛은 전보다 더욱 짙어져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 뇌도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우웩!”
그는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내고는 곧장 달아나려 했다. 수많은 전투를 치러온 그였지만 이번 전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두려웠다. 상대는 분명 한낱 문정기 수련자에 불과했는데 그 신통력과 법술은 모두 자신조차 이겨내기 버거웠다. 특히 체내의 두 검기는 그의 심신마저 뒤흔들 정도였으니 지금으로서는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도망치는 그를 선위 꼭두각시와 뇌수가 추격하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아버지, 저자가 한 말… 진짜입니까?”
이평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뇌도자의 신식은 이평과 청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평의 체내에 존재하는 두 갈래의 검기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뇌도자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한제는 천천히 몸을 돌려 창백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말없이 아들을 바라보던 한제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평은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해탈의 웃음이었다.
“아버지께서 제가 수련자가 되는 것을 막으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군요. 저와 청희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것 역시⋯⋯ 제가 이미 죽은 존재이기 때문이었군요.”
한제는 전에 없이 슬픈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넌 죽은 게 아니다.”
이평은 고개를 젓고는 맑게 웃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제게 산을 만나면 오르고 강을 만나면 넘듯 세상도 거슬러가라 하셨지요. 감사합니다.”
이평은 진심으로 한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사실 이미 한참 전부터 답을 찾았습니다. 다만 그 답을 마주하고 확인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죠. 제가 왜 수련을 하면 안 되는지, 왜 제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건지, 왜 지난 70여 년 동안 한 번도 병이 난 적이 없는지… 심지어 피곤함을 느껴본 적도 없었지요. 삶의 끝자락에 이르렀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도 몸에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이유를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평은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해탈한 표정이었지만 어렴풋하게 아쉬운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저 이평에게는 어머니가 없습니다. 제게는 아버지뿐이에요. 절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평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
“아… 제게는 흘릴 눈물도 없군요.”
이평은 씁쓸한 얼굴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저는 아버지와 평생 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떠납니다.”
한제의 눈에 담긴 슬픔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아들의 몸에 담긴 원망의 기운을 몰아내려 애썼지만 결국 이평이 이미 한참 전부터 죽어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반인의 삶은 매우 짧았다. 원영(怨嬰)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처음 이평을 맡았을 때, 아들에게 남은 것은 약간의 혼백뿐이었다. 이 혼백마저도 원망의 기운에 싸여 있어 윤회의 굴레로 되돌아가지 못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그것이 원영의 근본이었다. 그러니까 류미가 한제에게 준 것은 그 한 줄기의 혼백일 뿐이었다.
그 혼백은 수행을 할 수가 없었고 수행을 해서도 안 됐다. 수행을 시작하면 원망의 기운은 발작을 할 것이고 그런 혼백은 정말로 연기처럼 흩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평이 한제의 눈을 속이고 수행할 수도 없었다. 그의 몸은 한 줄기의 검기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능천후의 검기 하나는 이평의 육신을 이루었고 나머지 하나는 혼백을 보호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평이었다. 그의 성장 역시 사실은 법술로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70여 년 동안 아이에서 노인으로 자라난 이평은 한제의 법술의 산물이었다.
“네 약속은 지켜질 게다. 날 믿어라.”
한제가 조용히 말했다.
이평은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청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버지, 청희한테 이만 가라고 좀 해주세요.”
그는 고개를 돌려 청희를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희, 다음 생이 있다면 내게 윤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내가 꼭 당신을 찾을게.”
청희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이평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 청희… 그럼 이만⋯⋯.”
이평의 눈에는 아쉬운 기색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청희와 함께 아버지의 곁에 남고 싶었다. 영원히⋯⋯.
돌연 그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산골 마을에서 보낸 19년 동안 매일 마시던 쓰디쓴 약.
“아버지, 약이 너무 써요.”
그 기억이 떠오르자 이평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그는 매일 밤 아버지가 신통술로 자신의 체내에 남은 원망의 기운을 걷어주는 것을 힘겹게 마신 탕약이 체내로 들어가 검기로 만들어진 육신에 흡수되지 않고 영혼에 섞여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또한 한 줄기의 금빛 검기에 불과한 자신의 몸을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감싸고 있는 또 하나의 금빛 검기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어렸을 때 종종 금빛 세상에 관한 꿈을 꾸었는데⋯⋯.”
이평의 두 눈이 감겼다.
그의 육신은 금빛으로 번득이며 한 줄기의 검기가 되더니 한제의 곁을 맴돌았고 뒤이어 또 하나의 검기가 나타났다. 지면에는 하얀 빛 덩어리만 남아 얌전히 떠 있었고 그 안에는 검은색 빛 한 줄기가 교차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한 줄기 원망의 기운이었다.
한제는 한참이나 그 빛 덩어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가볍게 매만졌다. 그러자 검은색 빛은 흩어져 사라졌다. 한 번의 윤회를 경험한 아이의 원망의 기운을 한제는 마침내 모조리 제거한 것이다.
한제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는 마치 당시의 그 갓난아이를 대하듯 조심스럽게 빛 덩어리를 쥐었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자 빛 덩어리는 흩어져 사라질 듯했지만 한제는 손을 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손을 푸는 순간 원망의 기운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평이 윤회의 굴레로 돌아갈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평아, 네 약속은 꼭 지켜질 것이다!”
한제는 빛 덩이를 자신의 미간에 집어넣었다. 미간으로 들어간 빛 덩이는 천역주 안으로 들어가 모완의 원영 곁에 안착했다.
“오늘부터 네 어미는 모완이다.”
한제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버님⋯⋯.”
청희는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녀의 눈에 담긴 슬픔은 한제에 비해서도 결코 적지 않았다.
“아버님, 저와 평은 황천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를 데려가주세요. 혼백이 되어서라도 평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아버님, 이는 당시 아버님께서 제게 하신 약속이기도 합니다. 제게 평생 평과 함께 있으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청희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잠시 후, 한제는 자리를 떠났다. 그의 곁에는 청희의 불회(不悔)의 혼이 함께했다.
멀지 않은 곳에는 뇌수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주체하지 못한 채 몸을 떨고 있는 뇌수는 허공에 떠오른 한제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한제의 모습은 지는 해 아래 점차 변해갔다. 머리는 더 이상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굽은 등도 천천히 곧게 펴졌다.
석양 아래 다시 모습을 드러낸 70년 전의 한제가 허공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한 번의 윤회가 끝났다⋯⋯.
두 번째 선위
한제의 검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두 눈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했다.
윤회의 굴레에서 순환하고 있는 것은 이평만이 아니었다. 한제도 그랬다.
체내의 수준이 문정기 초기를 돌파하여 문정기 중기에 이르러 있었고 일반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얻은 깨달음으로 경지는 문정기 후기에 이르렀다. 선옥만 충분하다면 한제는 자신이 진정한 문정기 후기 수련자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음양이의의 경지, 그중에서도 양의의 수련자에게는 이길 수도 있지만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전투 때마다 원력의 소모도 클 거야. 이미 내 원력은 너무 낮아진 상태이니 더 이상 소모해서는 안 돼. 음의의 수련자에게는 아예 적수도 되지 못할 테니 마주친다면 곧장 도망쳐야겠지.”
한제의 눈에 고민의 빛이 담겼다.
“수련의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 사이의 고랑은 결코 쉽게 넘을 수 없군. 내가 진정한 문정기 후기에 이른다 해도 원력이 없다면 음양이의의 경지에 이른 수련자에게는 적수가 되지 않아! 어떻게 원력을 얻을 수 있을까?”
허공을 타고 오른 한제는 염운성의 위쪽의 강한 바람이 부는 구역을 지나 우주로 진입했다. 그리고는 신식을 통해 뇌도자를 추격하고 있는 선위 꼭두각시와 뇌수를 찾아 뒤쫓았다. 그의 뒤에서는 뇌선전의 뇌수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선옥을 확보하는 것. 동시에 원력을 얻을 방법도 궁리해야겠어.”
한제가 결심한 듯 눈을 번득였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성라반을 꺼내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 줄기 은색 빛이 되어 질주했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뇌선전의 뇌수는 흠칫 놀라더니 전광이 되어 쫓아왔다. 한제 역시 진즉 뇌수가 쫓아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은빛이 격렬한 소리를 내며 무지개처럼 우주를 갈랐다.
잠시 후, 한제의 눈에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귓가에는 연달아 펑펑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만신창이가 된 채 전광이 번득이는 두 손으로 선위 꼭두각시와 결투를 벌이면서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고 있는 뇌도자의 모습이 보였다. 곁에서는 세 번째 봉인이 풀린 뇌수가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뇌수의 뿔에서는 더욱 강력한 전광이 번득였고 창백하게 질린 뇌도자의 얼굴에 절망의 빛이 나타났다.
그 와중에 멀리서 다가오는 한제를 발견한 뇌도자의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이미 체내의 원력도 거의 다 써 버린 상태로 여기서 더 소모할 경우 수준이 떨어져 이번 생에는 더 이상 양의의 수준에 이르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그는 한제가 가진 두 갈래 검기에도 큰 두려움을 느꼈다.
한편,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뇌도자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그는 반드시 뇌도자를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상대는 뇌선전의 사자였으니 도망치게 둔다면 앞으로 큰 골칫거리가 될 터였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일곱 자루의 보검을 꺼냈다. 검들은 곧장 튀어나와 칠성검진을 이루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곧장 뇌도자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