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0
하지만 그는 얼른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한제는 말없이 걷고 있었다. 사실 그는 내심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 뇌광은 그가 사슬에 닿은 순간 육신과 원신에 포함된 천둥번개의 위엄이 그 사슬의 천둥번개와 마찰하면서 빛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처럼 눈에 띄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 한제로서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너무 눈에 띌 경우 원치 않는 문제가 생기기 쉬웠기 때문이다.
‘저 두 사람의 대화에 의하면 이원의 명혼은 저 여인의 가문이 가지고 있다고 했지. 그 가문에서 이원의 목숨을 구해준 데에 대한 대가라고 했어. 하지만 이제 보니 뭔가 더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한제는 이원과 갈 씨 여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무쇠 검을 본 이원은 분명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어쩌면 이원이 스스로 저 여인의 가문에 접근한 것인지도 모르겠군.’
허나 이 무쇠 검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뇌광에 대해 엄청난 저항력을 가졌다는 것 외에 대체 무슨 특별함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서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여인은 한제를 두려워했다. 한손으로 선령을 처리하고 뇌광 사슬을 밟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그녀에게는 공포가 되었다. 더구나 저자에게 자신의 영혼 한 줄기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원수를 진 것도 아니니 함께하는 동안 말만 잘 들으면 목숨은 보전할 수 있을 거야.’
갈 씨 여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편, 여전히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그러는 동안 두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일행은 다른 수련자를 단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여인은 지루한 비행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짜증을 풀 상대가 없었다. 그녀가 여기서 유일하게 짜증을 낼 수 있는 상대는 이원이었는데 지금 그의 뒷모습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째서인지 짜증을 낼 수조차 없었다.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은 모습인데⋯⋯.’
갈 씨 여인은 지난 두 달 내내 이 문제를 고민했으나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했다.
뇌광은 갈수록 짙어졌고 천둥소리도 점점 우렁차졌다. 사슬 위로 흐르는 뇌광의 힘은 마치 뇌수가 뛰노는 듯 사방팔방으로 발산되기까지 했다.
지금 한제는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져 속으로 경계심을 드높였다. 왜냐하면 그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뇌광이 아니라 이 뇌광의 사슬 위에서 전해져오는 진동이었기 때문이다. 이 진동은 사슬을 흔들리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사슬 위로 흐르는 뇌광의 힘이 사방팔방으로 발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무쇠 검의 광막도 언제든 부서질 것처럼 흩어지려는 기미를 보였다. 여인은 약간 당황하며 통제력을 더했고 이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진동은 갈수록 심해졌고 전광에 분노의 기운이 섞여 있는 듯 살짝 닿기만 해도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한제의 눈빛은 한층 신중해졌다. 저 앞에 두려운 존재가 버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선배님, 저는 뇌의 선계에 두 조각을 잇는 뇌광 사슬에 이렇게 격렬한 진동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쪽을 좀 보십시오!”
이원은 좌측 허공을 가리켰다. 그 허공의 끄트머리에는 은은하게 번쩍이는 뇌광이 있었다.
“선배님, 저곳에도 분명 뇌광 사슬이 있을 겁니다. 이곳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이렇게 또렷한 것을 보면 이 진동은 이 사슬만이 아니라 이 구역 대부분에 가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분명 무슨 변고가 생긴 겁니다!”
“돌아가야 해요! 뇌의 선계에 오기 전, 가문의 선조께서 말씀하시길 조각을 잇는 뇌광의 사슬은 한 번도 흔들리거나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사슬이 흔들릴 경우 그 연쇄 반응으로 그 사슬에 연결되어 있는 두 조각의 사이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인의 얼굴은 어느새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미 이원이 가리킨 곳을 눈여겨보고 있던 한제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답은 저 앞에 있다. 이제는 돌아갈 길도 없으니 가보면 알겠지!”
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한제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미 한참을 이동해온 만큼 되돌아가기는 무리였다. 수련자는 언제나 신중해야 하지만 결정을 내린 후라면 용감하게 밀고 나갈 줄도 알아야 했다.
“아가씨, 뇌광의 사슬이 진동하는 것은 저희가 깊이 들어왔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제 물러나기에는 늦었습니다!”
이원이 갈 씨 여인에게 설명하는 동안 한제는 말없이 몸을 훌쩍 날렸다. 그러더니 곧장 무쇠 검을 탄 두 사람을 지나 돌진했다.
그런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지금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었군! 하긴, 문정기 수준으로 음의의 수련자와 싸워 이겼다면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한편, 무쇠 검을 뛰어넘어 허공으로 돌진하던 한제는 곧 눈빛이 굳어졌다. 이동을 멈춘 그는 사슬이 뻗어 있는 전방에 선기를 가득 품은 짙은 안개가 자리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안개는 느릿하게 퍼지고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끝없이 확산되며 온 세상을 모두 가로막은 듯했다.
그 무렵 뒤를 따라온 무쇠 검도 그곳에 이르렀고 이원 또한 그 짙은 안개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표정이 약간 변했다.
“금제입니다!”
한제 역시 이미 그 안개 속에 금제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상태였다.
“풀 수 있겠는가?”
이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한참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금제가 서로 조합되어 있습니다. 뇌의 선계는 천둥번개의 위엄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금제를 설치하기가 쉽지 않은데 대체 누가 저렇게 큰 힘으로 금제를 배치해놓은 것인지…”
이원은 신중한 표정으로 저물대에서 나침반 하나를 꺼냈다. 나침반의 바늘은 경미하게 진동하면서 끊임없이 뱅글뱅글 돌았다. 손가락을 꼽으며 시간을 재던 이원의 눈이 더욱 굳어졌고 그 순간 그가 들고 있던 나침반은 펑 하고 터져 먼지로 흩어져 버렸다.
“천(天)급 중품 금제입니다. 뇌의 선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9999개의 응고점에 영물의 혼을 금제의 눈으로 박아 놓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크게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세상 만물을 멸절시킬 수 있을 만한 금제입니다!”
바로 그때, 멀리 떨어진 안개 속에서 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한 노인이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노인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는데 다름 아닌 뇌광의 사슬 한 가닥이었다.
“여기까지 오다니, 과연 나와 연이 닿은 자로구나! 마침 네놈을 찾으러 가던 길이었는데 고맙게도 제 발로 찾아오다니, 좋군!”
한제의 안색이 곧장 어두워졌고 노인의 손에 들린 뇌광의 사슬을 봤을 때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천둥번개의 원신과 육체를 가진 자신도 저 사슬은 그렇게 마음대로 손에 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위에서 발산되고 있는 전광에도 선뢰의 힘이 깃들어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쥘 수 있겠는가.
한제는 노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 노인이 말한 ‘연이 닿은 자’가 자신일 리는 없다는 생각에 한제는 이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허나 이원 역시 무척 놀란 듯했다. 그는 한제의 표정을 본 후에야 한제가 그 노인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혼란에 빠졌다. 그렇다면 상대가 말한 ‘연이 닿은 자’가 정말 자신이란 말인가.
이원은 포권을 하며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는⋯⋯?”
허나 노인은 이원을 힐끔 노려보다가 한제를 가리키며 꽥 소리를 질렀다.
“모르는 척 마라, 이 녀석아! 너 말고 누가 있겠느냐? 이리 오너라!”
한제는 굳은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선배님을 뵌 적이 없건만 어찌 연이 닿은 자라고 하십니까?”
노인은 한제를 몇 번 훑어보다가 웃었다.
“허허, 벌써 잊은 것이냐? 내가 만들어놓은 금고의 통로에서 7일 만에 빠져나왔으니 나와 연이 닿은 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 순간, 한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말없이 노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의 짓이었군요. 한데 어찌 그런 일을 하신 겁니까?”
노인은 짜증이 난 듯 인상을 팍 쓰더니 한 걸음 다가오며 한제에게 손을 뻗었다.
“쓸데없이 말이 많구나! 내가 연이 닿은 자라 하면 그런 것이다!”
한제는 본능적으로 몸을 물렸다. 마치 본능이 원신에 대고 외치는 듯했다.
‘도망쳐야만 한다!’
허나 노인은 킬킬 웃으며 앞으로 뻗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이 허공의 공간 반경 10리가 폭풍과도 같은 힘으로 뒤덮였다. 너무나 강한 그 힘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원력이 배어 있었다.
그 손짓 한 번에 한제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정신술에 걸린 듯 노인이 움켜쥔 손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러나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혀끝을 깨물고 피를 꿀꺽 삼켜 정혈 안에 포함된 선력을 체내로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노인에게 붙잡히기 직전, 몸을 꽉 조인 힘이 약간 풀어졌고 그 순간 한제는 요령의 땅에서 만난 노인에게서 배운 도주용 신통술을 가동했다. 그리고 먼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도망쳤다.
“허! 과연 내가 점찍은 놈답군. 기이한 방법으로 도망을 치는구나!”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뻗었던 손을 거두어 이번에는 허공을 내리쳤다.
방금 한제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한 힘은 그가 가진 힘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고 이번에는 그 두 배에 달하는 힘을 들인 상태였다. 그의 손이 허공을 내려친 순간, 허공이 왜곡되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끊임없이 파문을 일으켰다.
“역전!”
노인이 낮게 외쳤다.
눈 깜짝할 사이 온 허공이 휘청하더니 모든 방향이 뒤바뀌어 버렸다. 한제가 도망치던 방향도 바뀌었다.
‘헛! 이게 무슨…?’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한제는 자신이 노인과 겨우 30척 정도 거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노인의 힘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연소
“왜? 이제 도망 안 가느냐?”
노인이 한제를 보며 웃었다.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쉬더니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제 수준이 부족하여 선배님이 원하시는 바를 충족해드리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노인의 시선이 한제의 저물대에 닿았다.
“괜찮다. 네가 도울 것은 없다. 하지만 네 저물대에 들어 있는 저 뇌수는 내게 도움이 되겠구나. 잠시 빌려다오. 다 쓰고 나면 돌려주마.”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어떻게 자신의 저물대에 들어 있는 뇌수에 대해 알아차렸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어쩔 수 없이 노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뇌수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포효를 내지를 새도 없이 곧장 노인의 손에 붙잡혔다.
“은각뇌수로군. 훌륭해! 난 이놈뿐만 아니라 이곳에 들어온 모든 뇌선전 사자들의 뇌수들을 손에 넣을 것이다. 당분간 이곳의 모든 뇌수는 내 것이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뇌수는 놀란 듯했지만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한제로서는 뇌수가 그토록 겁에 질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떠날 채비를 하는 노인을 보던 한제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선배님 같은 분이 어찌 후배의 것을 마구잡이로 가져가기만 하십니까?”
노인은 우뚝 멈추고 한참이나 한제를 살피더니 껄껄대며 웃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가상하다는 눈빛이었다.
“보상을 달라? 재미있군.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노인은 한제를 잠시 더 살피다 피식 웃었다.
“수준이 아주 엉망진창이구나. 천둥번개의 원신과 육체라니, 그게 무엇이냐? 내가 도와주마!”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곧장 대량의 먼지가 손에 응집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주먹만 한 빛의 공으로 바뀌었다. 노인은 뒤이어 빛의 공에 숨을 훅 불어넣더니 손을 휘둘러 한제에게로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