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1
‘엇!’
공은 감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와 한제의 가슴에 닿더니 순식간에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
노인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또다시 껄껄 웃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이제 더는 방해하지는 말아라. 대신 돌려 보내주마!”
노인의 소매에서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와 한제와 이원, 갈 씨 여인까지 감쌌다. 그리고 그 셋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저 무쇠 검도 꽤 낯이 익은데… 됐다, 일단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곁에 웅크리고 앉은 뇌수를 바라보았다.
“훌륭해. 이 뇌수라면 조금만 훈련시켜도 사슬을 끌어당길 수 있을 거야!”
한편, 뇌수는 조심스럽게 그 노인을 살폈다. 심장이 미친 듯 쿵쾅거렸지만 감히 찍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한제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내가 힘을 얼마나 썼지? 흠⋯⋯ 좀 많이 쓴 것 같은데⋯⋯. 그 녀석, 괜찮을까? 뭐, 어쩔 수 없지. 죽는다면 그건 연이 아닌 것이고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나와 연이 닿은 자라는 뜻일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뇌수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한제를 비롯한 세 사람은 노인의 소맷자락에서 일어난 힘에 짙은 안개를 뚫고 쏘아져 나갔다. 귓가에 바람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속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눈앞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들의 몸은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쾅!
이원은 창백해진 얼굴로 한제로부터 1백 척 정도의 거리에 떨어졌고 갈 씨 여인 역시 근처에서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구역질을 해댔다. 육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 때문이었다.
한제는 바닥에 떨어진 순간, 빛의 공이 녹아들었던 가슴팍에서 격렬한 통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통증에 한제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고 몸이 바르르 떨렸다. 체내에서부터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에 육신이 그대로 전부 다 타버릴 것 같았다.
그 무렵, 숨을 고른 이원과 갈 씨 여인은 체내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가는 한제를 바라보았다. 특히 갈 씨 여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한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잠시 갈등하다가 저물대에서 조용히 비수 한 자루를 꺼냈다. 이 검은 비수 주위로는 음산한 혼백이 수도 없이 맴돌았다.
이 역시 그녀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날에는 독극물이 묻어 있어 육신을 녹아내리게 했고 비수에 봉인된 혼백들은 원신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이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런 그녀를 막지는 않았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임을 잘 알고 있는 여인은 이를 악물고 비수를 움켜쥔 채 한 걸음 내딛었다.
한데 그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서 번득이는 것은 전광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화염이었다. 그렇게 화염이 번득이는 눈으로 갈 씨 여인을 바라보며, 한제는 키득거렸다.
“비수라… 좋군. 내게 줄 선물인가?”
갈 씨 여인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는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나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예⋯⋯.”
그리고 얼른 쥐고 있던 비수를 땅에 내던져 버렸다.
한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고 그 눈빛은 맑아져 있었다. 그는 허공을 움켜쥐어 비수를 쥔 채 잠시 살피고는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그 노인이 던진 빛 덩어리는 한제의 체내에서 폭발하면서 엄청난 위기를 안겼고 한제는 지금도 육신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그의 수준이 올라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한제는 이제 자신의 수준이 문정기 절정 돌파를 바로 앞에 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의 고통은 끔찍했다. 그의 자제력이 지난 1천 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 단단해진 상태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다.
“이원, 네가 말한 그곳은 이 대륙에 있나?”
한제의 표정과 목소리가 평소와 같이 덤덤해진 것을 확인한 이원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잠깐 눈을 번득이더니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 대륙의 중심에 가서 관찰을 좀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제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이원이 앞장섰고 갈 씨 여인은 한제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은 듯 얼른 이원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럼에도 등 뒤에서 전해지는 살기등등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한제가 갈 씨 여인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녀가 이원을 움직일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었다. 그 여인이 뇌의 선계에 온 것도 어쩌면 이원과 연관이 있을지 몰랐다.
만약 이원의 목적이 그 무쇠 검일 경우 금제를 이용해 그 여인에게서 검을 빼앗기란 손쉬운 일일 터였다. 그럼에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어떤 이유가 있을 듯했다. 아니면 무쇠 검이 그의 목적이 아니거나…
한제는 말없이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그 노인에 대해 생각했다. 노인이 자신의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을 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했으나, 뇌수를 빼앗아간 데다가 두 번이나 자신을 희롱한 것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었다.
한제는 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금 치솟는 체내의 고통을 애써 참았다.
그가 보기에 자신의 육신으로 녹아든 그 빛 덩어리는 천둥번개로 구성된 그의 육신을 응집시켜 혈육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몸을 형성하려는 듯했다.
한데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혈육이 다 갖춰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이 첫 번째 단계를 돌파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제는 떨리는 마음으로 더 이상 고통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 고통은 완전히 폭발했고 그의 수준은 더욱 빠르게 높아져갔다.
지금 그의 몸은 화염에 타오르고 있는 듯했고 심지어 가까운 거리에서는 그의 육신에서 타닥타닥 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모든 불순물이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이원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나, 미간에서 금제의 빛이 미미하게 번득였다. 이 금제를 통해 그는 본래 더욱 많은 신식이 있어야만 발휘할 수 있는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한제 체내의 상태를 똑똑히 확인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한제에게 향했던 신경을 거두었다. 한제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이번 여정은 더욱 순조로울 것이다. 다만 진정한 음의의 경지에 이르게 둘 수는 없었다. 한제가 진정한 음의의 경지에 이른다면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꾸물거려서는 안 되겠군!’
이원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한 달 뒤, 대륙의 중심에 이른 이원은 머릿속의 그림과 대조하듯 자세히 사방을 한참이나 살핀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두 조각을 관찰한 결과 그 금제가 있는 곳의 대략적인 방향을 파악했습니다. 이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원은 한없이 공손하게 말했고 한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도록.”
방향을 확인했으니 이동 속도는 확연히 빨라졌다.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원도 속도를 높여 이 조각의 동쪽 가장자리를 향해 나아가다가 다시 한 번 뇌광의 사슬이 자리한 허공으로 진입했다.
다시 세 달이 지났을 때, 네 개의 조각을 지나 도착한 곳에서 이원은 구름을 뚫고 높이 솟은 산봉우리를 굳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여기입니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산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산이었다.
은빛 용과 같은 전광들이 구름층 사이에서 번득이며 산봉우리를 따라 오르내렸고 그때마다 천둥소리가 먹먹하게 메아리쳤다.
한제는 그 산, 정확히는 산의 혼으로부터 태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갈 씨 여인은 기이한 눈빛으로 산을 바라보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자신의 앞에 선 이원에게로 돌렸다. 이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이전에 느꼈던 그 익숙한 감정이 하나둘 다시 느껴지기 시작하다가 이내 폭발했다. 그 순간, 갈 씨 여인은 뭔가를 떠올린 듯 두 눈에 한제를 볼 때보다도 훨씬 더 짙고 강한 두려움이 담겼다.
그때, 이원이 몸을 돌리더니 의미심장한 눈으로 갈 씨 여인을 마주보았다. 그 눈빛에 여인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깨달은 듯 침착해져 있었다.
“이름 없는 산입니다. 안에는 많은 금제가 걸려 있는데 지금껏 이 산의 모든 금제를 풀어낸 사람은 몇 없지요.”
이원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갈 씨 여인은 여전히 말없이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산이 그녀에게는 익숙했지만 그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가지!”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이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 걸어 나갔다.
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천둥소리는 더욱 강렬해졌고 전광이 줄기줄기 내리꽂히는 것 역시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산에는 본래 길이 없었으나 뇌의 선계가 여러 차례 열리는 동안 많은 사람이 금제를 풀어내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길이 하나 있었다.
갈 씨 여인은 이원의 뒤에 붙어 멍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작 알아봤어야 했어. 이 뒷모습… 가문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 그건 그저 그런 전설이 아니었던 거야!’
여인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해갔다. 그녀는 이 이원이 왜 자신의 가문에 나타났는지 이제 명확하게 이해했다. 모두 상대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어 온 것이다.
여인은 심지어 자신이 이번에 뇌의 선계에 들어오는 것을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원이 모종의 방법을 쓴 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시조께서는 알고 계셨겠지.’
그렇게 생각해야만 말이 된다. 수만 년 전, 가문의 선조 한 사람이 들어간 이후로 그들의 가문은 지금껏 뇌의 선계를 금지 구역처럼 여기지 않았던가! 한데 이원이 등장함으로써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그녀의 가문에서 뇌의 선계에 사람을 들여보낸 것은 수만 년 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동행한 것은 이원 하나뿐이었다.
‘선조께서 내게 뇌의 선계에 들어가라 하신 것은 속죄를 위해서였어. 그래서 내게 가문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보를 주신 거야. 이원이 내게 저자가 가져간 영혼의 한 자락을 되찾아 주겠다고 한 것도 결국 내 영혼이 불완전하면 제물로 바칠 수 없기 때문이겠지.’
이제 모든 상황을 파악한 여인은 쓰게 웃었다.
검의 자루와 끝
한편, 한제는 산봉우리에 들어온 이래 여인이 급격한 심경 변화를 보이며 뭔가 생각에 빠져드는 것과 표정이 변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인을 지나 이원의 뒷모습에 이르더니 미묘하게 냉소를 지었다.
‘역시 이원 저자는 처음부터 일부러 나를 끌어들인 것이로군. 금제를 사용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테지.’
심지어 이전의 모든 일도 그의 계획에 포함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한제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간교한 꾀를 쓰는 자를 절대 그냥 봐주지 않는 한제는 당장 이원을 처치할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에 따라 예리한 칼날과 같은 체내의 살기를 발산시켰다.
이원이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네. 자네와 만난 것은 나의 계획이었으나 뜻하지 않은 우연도 따라주었지.”
이제 한제를 부르는 호칭까지도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한제 역시 당황한 기색 없이 물었다.
“이 산의 깊은 곳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거지?”
이원은 구름층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뻗은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났다.
“이곳에는 나의 주인님이 계시지.”
한제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때 이원이 몸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는 산을 오르기 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