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6
“마 사제,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야.”
양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른 초반인 그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 어렸다.
자홍
한제는 세 사람을 한 번 훑어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쪽에서 쫓아오던 유혼들은 한제를 보더니 모두 우뚝 멈춰 섰다.
한제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신식으로 파동을 일으켰다.
“물러가라!”
유혼들은 잔뜩 겁에 질려 단 하나도 남김없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자홍은 순간 멍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던 그 생물들이 어째서 저렇게 달아난 걸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았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설마 저 끔찍한 생물들이 마량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어찌됐든 마량이 살아났다는 마음에 전신전 제자들은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
양웅은 남아 있는 전신전 제자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았다. 그는 사방을 돌아보더니 다급히 말했다.
“저것들이 또 언제 우리를 공격해올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전송진(傳送陳)으로 가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
자홍은 몇 번 몸서리를 친 뒤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마량에게 말했다.
“마량, 우리 뒤를 잘 따라와야 해. 절대 저 생물들이 달려들게 해서는 안 돼. 잘못하면 곧바로 혼이 빠져나가버리니까.”
이때, 또 다른 전신전의 제자가 못 견디겠다는 듯 말했다.
“그만 떠들고 당장 이동하자고! 안 가면 나라도 갈 거야!”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앞으로 튀어나갔다. 한제는 마량의 기억을 통해 그 자의 이름이 임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웅도 그 뒤를 바싹 따르며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자홍은 한제를 힐끗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조심해.”
말을 마친 그녀도 몸을 날려 뒤를 따랐다.
한제는 여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발을 구른 그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들의 뒤에 따라붙었다.
세 사람을 구해준 것은 계획 때문만이 아니라 마량이 자홍에게 가진 마음 때문이었다. 몸을 빼앗은 만큼 최소한의 보답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자홍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이동하는 동안에도 신중을 기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영력 보충을 돕는 약을 먹는 동안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홍은 약을 한 알 더 꺼내 한제에게 주었다. 한제는 손에 들린 환약을 바라보다가 문득 석주를 떠올렸다. 석주를 담근 물약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영력 보충 약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조롱박을 비롯해 수많은 보물이 들어 있던 저물대는 등화원의 손에 완전히 소멸된 후였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신식으로 석주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피로 연결된 비검도 자신의 영혼에 녹아 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살필 때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을 나가면 외부와 단절한 채 수련에 집중할 곳을 찾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역외 전장 안의 수련자들은 지난 며칠간 붕괴 현상이 조금 느려졌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들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웠으니 말이다.
그 이상한 생물이 영혼을 삼키고 육체를 미라처럼 만드는 것을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붕괴로 소멸되는 쪽을 택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역외 전장에는 총 네 개의 대형 전송진이 있었다. 오직 옥패를 가진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한제에게는 그중 어느 진을 택하든 똑같았다.
현재 한제에게는 조나라의 신물이 없으니 진을 통해 조나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따라서 일단 마량이 살고 있었던 화분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이는 그가 자홍을 비롯한 세 사람을 구해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들이 가진 옥패 중 하나를 빼앗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소표와 갈양을 찾아 그들의 옥패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 둘은 반드시 죽여야 할 자들이었다. 마량의 복수 때문이 아니라, 그 둘은 진짜 마량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환을 남겨둘 수는 없었다.
전송진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한제는 마량의 기억을 근거로 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 역외 전장 안의 모든 유혼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해놓았다.
유혼들은 한제의 눈과 귀가 돼 두 사람을 발견하는 즉시 그에게 그 소식을 전해줄 예정이었다. 만약 마지막까지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그 둘은 이미 죽었다는 뜻이리라.
일주일간 쉬지 않고 날고 있는 중이었다. 자홍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이상한 생물이 그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곧장 날아왔다가도 멈칫하더니 곧장 뒤로 돌아 달아났다.
언젠가 한 번은 이상한 생물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자홍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생물이 자홍과 부딪힌 그 순간이었다.
“아악!”
생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느낀 것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서는 그대로 그렇게 도망을 쳤다.
세 사람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의심이 들었다. 그들의 의혹은 자연스레 한제에게 향했다. 다만 자홍은 물어보려다가도 결국 입을 다물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일단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물어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물어볼 수 없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지금 상황에서 괜히 마량, 그러니까 한제에게 미움을 샀다가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두는 한제를 등진 채 눈빛을 번득였다. 그러다가도 곧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금세 돌아오곤 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 여정은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전송진이 가까워지면서 부근에는 점차 수련자가 늘어갔다.
한제는 미리 신식을 펼쳐 전방에 놓인 전송진에 사람들이 몰려 진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흰색 빛의 장막이 전송진을 덮어 보호하고 있었고 진 밖에는 대량의 미라가 떠다녔다.
이들은 모두 진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던 수련자들로 사방에 가득한 유혼들은 그 미라들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송진 안에서 긴장된 눈빛으로 밖을 살피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 한 포기에도 잔뜩 불안해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보호막 밖을 배회하던 유혼들이 빛의 장막 근처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눈치 채고는 한시름 놓았다.
그때 균열에서 알게 된 사람 중 하나가 한제에게 소표와 갈양이 이미 죽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저물대를 한 유혼이 가지고 오는 중임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린 유혼 하나가 멀리서 빠르게 접근해왔다. 주자홍 등은 그 유혼의 등장에도 처음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점점 다가오자 두려운 기색으로 한제를 힐끔거렸다.
세 사람 바로 앞까지 다가온 유혼이 멈추더니 세 개의 저물대를 자리에 두고 방향을 돌려 날아갔다. 한제가 손을 흔들자 저물대가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한제가 눈을 번득이더니 떠나려던 유혼을 바라보며 불쑥 외쳤다.
“잠깐!”
유혼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다시 방향을 돌려 덜덜 떨었다.
한제는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 그 유혼 앞에 섰다. 그가 삼킨 유혼이 얼마나 많은지는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한제는 눈앞에 있는 그 유혼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제가 이전에 삼켰던 유혼들은 사실 일종의 신식 상태로 존재하는 생명체였으며 일정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태생적으로 모든 것을 삼켜대는 본능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유혼은 달랐다. 녀석의 몸은 좀 더 복잡했다. 녀석이 삼킨 영혼들이 소화되지 않은 것처럼 체내에 깊은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어느 정도 이상 쌓이다보니 체질까지 변한 모양이었다.
한제는 눈을 빛내며 녀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 유혼의 몸에서는 꿈속 공간에서 보았던 사도환의 원영과 같은 느낌이 풍기고 있었다. 원영과 그 유혼 사이에 모종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자를 죽여!”
한제는 오른손으로 임두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 ★ ★
자홍을 비롯한 세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특히 임두는 창백해진 얼굴로 다급히 물러났다. 유혼은 한제의 명을 받자마자 두 말 않고 임두에게 달려들었다.
임두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력을 냈지만 미처 멀리 달아나지 못한 채 겁에 질려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자신이 유혼보다 빠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사 요행히 이 자리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해도 다른 전송진을 무사히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는 황급히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 저는 마량과 어떤 친분도 없었습니다. 동문으로 지내는 몇 년간 나눈 말도 몇 마디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선배님의 노예라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은…”
임두가 다급하게 말을 하는 사이 유혼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한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유혼이 우뚝 멈추었다.
임두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으나, 그는 땀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공손하게 바로 서며 말했다.
“선, 선배님은 분명 상급 수련국의 고수이시군요. 이 임두가 선배님의 노예가 될 수 있다면 영광일 겁니다. 절대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하고는 그 손으로 이마를 둘렀다. 순간 반짝거리는 피구슬 하나가 미간에서 솟아나와 한제에게 둥둥 떠갔다. 임두는 긴장되는 듯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손을 휘둘러 그 피구슬을 쥐고는 양웅을 바라보았다.
임두는 한제가 피구슬을 손에 쥐는 것을 보고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자신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임두는 총명한 사람으로 마량이 이상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 채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아는 마량은 이미 죽었고 누군가 그 몸을 빼앗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자와 떨어지는 순간 유혼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제가 유혼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한 그 순간, 임두는 자신이 진실을 간파했음을 상대에게 들켰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영혼의 정혈을 상대에게 넘기며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이 일견 비굴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우 총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상대가 정혈을 가졌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의 영혼은 뿔뿔이 흩어져 버리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훌쩍 몸을 날려 한제 곁으로 나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비검으로 양웅과 주자홍을 겨누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한제의 노예가 된 이상 노예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양웅은 쓰게 웃더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임두가 한 것처럼 이마를 쳤고 그의 미간에서도 정혈이 솟아나와 한제에게로 향했다.
사실 그도 임두 못지않게 빨리 마량의 상태를 눈치 챘다. 그러다가 임두를 죽이려는 모습을 본 순간, 모든 것을 깨닫고 상대의 노예가 되기를 택했다. 상대는 분명 상급 수련국의 선배가 분명했다. 유혼마저도 겁에 질려 떨게 만드는 고수와 만나게 된 것이 과연 우연일지 운명일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자홍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홍, 너는?”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자홍이 조용히 물었다.
“선배, 마량의 몸을 빼앗았을 때 마량은 살아 있었나요?”
말을 마친 그녀는 침착하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제를 바라보았다. 사실 이는 그녀가 마량의 모습을 한 그에게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순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한제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툭 내뱉었다.
“죽어 있었다.”
자홍은 한시름 내려놓았다.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따지고 싶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 아닌가?
그녀도 서슴없이 자신의 정혈을 내주었다.
마혼(魔魂)
한제는 입을 벌려 눈앞에 떠 있는 세 개의 정혈을 흡입했다. 신식에 세 개의 미약한 빛이 떠올랐다. 이제 한제가 원한다면 저들의 영혼은 흔적도 없이 흩어질 것이었다.
사실 지금껏 그는 조금도 뭔가를 숨기려 한 적이 없었으니, 마량과 가까운 사람이라면 이상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게다가 유혼마저 덜덜 떨게 한다는 것만 보더라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채기란 어려운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