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73
혈신자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에 염뇌자는 속으로 차게 코웃음을 쳤다.
“그렇군. 난 한 사람만 불렀지. 그게 누구인지는 지금 밝히지 않겠네. 곧 알게 될 테니…”
그가 말을 마치자 멀리 떨어진 우주에서 한 줄기 은색 빛이 쉭 하고 날아들었다. 그 은색 빛 위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중년인 그는 신공호와 꽤 닮은 모습이었다.
번득이는 은빛은 그를 싣고 염뇌자 일행이 있는 곳에 금방 이르렀다.
“신공!”
그는 도착하자마자 포권만을 하고는 망월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반짝이는 은빛만이 그의 주위에서 맴돌 뿐이었다.
이때, 허공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먼 곳에서 거대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굉장한 속도로 들이닥치는 배 위에는 다채로운 색의 옷을 입은 수많은 묘령의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사이로 긴 웃음소리와 함께 오색찬란한 색의 옷을 입은 백발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앞으로 한 발 내딛어 배에서 훌쩍 뛰어내려서는 염뇌자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나? 오는 도중에 좋은 솥들을 발견하는 바람에 조금 늦었네!”
오색찬란한 옷을 입은 노인의 얼굴은 살짝 불그스름하면서 반들거려 꼭 갓난아이의 피부 같았다. 그러나 그가 가까워짐에 따라 속내를 알 수 없는 귀기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채도인의 눈에 들 만한 솥이라면 절대 범상치 않은 것이겠군.”
향가 노인이 농을 하듯 말했다.
“향 형이 원한다면 이 망월을 처리한 뒤 하나 주도록 하지!”
웃으며 대꾸한 오채도인은 곁에 있는 이들을 한 번 훑어보다가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나천성역 전역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수준 높은 수련자들로 모두 힘을 모아 망월을 잡기 위해 이곳에 모인 상태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도 신공가의 선조는 줄곧 망월만 바라보았다. 흑의의 중년 사내 역시 말이 없었다.
한편, 염뇌자는 덤덤한 모습이었다. 오채도인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지만 그의 눈에 들 만한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저 멀리서 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옷을 입은 그는 겉보기에는 청년 같았지만 짙은 노련함을 품고 있었다.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기운에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발아래에 어떤 법보도 없었으나 마치 땅을 걷듯 성큼성큼 걸어 오는 그의 표정은 침착했다.
망월 근처에 이른 그는 주위에 있는 이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포권을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운자!”
염뇌자가 그를 알아보았다.
백의의 청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시종일관 조용히 옆에 서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전가의 열운자는 상당히 폭력적이라고 했지. 일찍이 어떤 일에 분노하여 열세 개의 수련자 가문을 연달아 파멸시킨 일로 유명해졌을 정도니까.’
열운자를 바라보던 염뇌자의 표정이 순간 변하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저쪽 하늘 가장자리에서 돌연 붉은 빛이 나타나더니 짙은 피비린내 어린 기운이 순식간에 퍼져 나왔다. 뒤이어 요동치던 핏빛 구름이 염뇌자 일행으로부터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응집되더니 순식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와 붉은 눈썹, 새빨간 옷. 그는 염뇌자 일행에 대해서는 본 척도 않고 곧장 망월로 이루어진 수련성을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혈신자!”
그가 나타난 순간, 주위 모든 수련자의 시선이 집중됐다. 열운자와 신공가의 선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혈신자는 망월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그제야 일행들을 훑어보다가 마지막으로 염뇌자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염뇌자 내 손자의 원신을 자네가 가져갔더군. 연맹성역으로의 통로를 뚫고 나면 우리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겠지?”
염뇌자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웃었다.
“얼마든지!”
그때, 이 나천성역 북쪽 구역 안에서는 줄기줄기 전광이 질주하고 있었다. 뇌선전의 인원들이 전부 출동한 듯했다.
영혼의 부름
모든 뇌선전 사자들은 전광을 타고 망월로 이루어진 수련성으로부터 10만 리 떨어진 곳에 이르더니 가부좌를 틀고 둥그렇게 망월을 포위했다.
이들은 모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서로 밀접하게 연결됐다. 순간 전광이 더욱 짙어지면서 망월로부터 10만 리 떨어져 있는 이곳을 전부 봉쇄해 하나의 새로운 구역으로 개편해냈다.
이들로부터 1만 리 떨어진 곳에는 적의와 흑의를 입은 수련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두 개의 봉쇄선을 더했다. 만일의 실수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 ★ ★
한편, 한제는 당연히 바깥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려오는 영혼의 부름을 쫓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솥에 올라탄 한제는 더욱 빠르게 좁고 긴 길을 따라 앞으로 내달렸다. 점차 그의 영혼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커져 나중에는 영혼을 가득 채울 듯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리 와⋯⋯. 이리 와⋯⋯.”
일각 후, 영혼을 통해 들려오는 부름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콰르릉 하고 온몸에 울려 퍼졌다. 그때, 한제는 자신을 부른 그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한제는 온몸을 바르르 떨었고 두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그의 앞에는 1백 개가 넘는 촉수들에 얽매인 갓난아이가 있었다.
허나 그 아기의 몸집은 수백 척이 넘을 정도로 거대했고 두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상태였다. 짙은 생기가 끊임없이 체내로부터 망월에게로 흡수되고 있었다.
여덟 개의 반점이 그 갓난아이의 머리 부분에서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중 실체를 갖춘 반점은 하나도 없었다.
회전하던 그 반점들은 기이한 힘을 이루었지만 그 힘 역시 계속해서 촉수들에게 흡수됐다.
한제는 찬 숨을 들이켰다. 그의 심신은 전에 없을 정도로 강력한 충격에 뒤흔들리고 있었다.
“고대 신의 아이!”
한제는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고대 신 서사의 기억에 의하면 아이의 미간에 자리한 반점이 허상인 상태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 아이의 아버지가 8성급 고신으로 그 8성급 고신의 힘을 아이의 체내에 물려주었을 경우였다.
두 번째 이유는 눈앞의 아이가 고대 신의 아이가 아니라 성년이 된 8성급 고대 신인데 중상을 입거나 일찍이 모종의 급격한 변화를 겪은 경우였다.
그 중상, 혹은 급격한 변화로 성년이었던 고대 신이 퇴화하면서 천천히 아이의 형태로 되돌아갈 경우 미간의 반점이 허상으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정말 두 번째 이유 때문이라면 그 고대 신의 힘은 어디로 간 거지?”
한제는 착 가라앉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중점적으로 살핀 곳은 백 개가 넘는 촉수였다. 끔찍하고 두려운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이 망월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망월은 고대 신을 삼켰고 그를 통해 이런 신통력을 갖게 된 거야!”
한제는 두려움에 살짝 몸을 떨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동시에 짙은 슬픔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랐다. 이 슬픔은 영혼에 존재하는 본체로부터 기인하고 있었다.
너무나 짙은 슬픔이 그의 육신을 가득 채웠고 한제는 그 슬픔에 완전히 잠식되고 말았다.
“나의 가족⋯⋯.”
미약한 목소리가 한제의 원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 목소리는 고대 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한 일반인을 순간적으로 폭삭 늙게 할 수 있을 만큼 짙은 노련함이 배어 있었다.
한제는 눈빛을 굳히며 촉수로 뒤덮인 고대 신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네 영혼 속에 내 가족의 기운이 있어. 하지만 짙지는 않구나⋯⋯. 진정한 가족을 이곳에 불러와 내게 남은 마지막 유산을 받을 수 있게 해라⋯⋯.”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떤 뒤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넌 고대 신의 아이인가? 아니면 성년이었다가 퇴화한 고대 신인가?”
“나는⋯⋯.”
고대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 그 순간, 그의 몸을 에워싸고 있던 수많은 촉수들이 폭주하듯 미친 듯이 그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모든 촉수가 불룩 부풀어 올랐다가 빠르게 흡수됐다.
허나 이는 고대 신의 아이를 감싼 촉수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모든 촉수에 동시에 나타난 일이었다. 이에 생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던 사람들은 분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 돌발적인 변화에 한제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곧장 솥으로 돌아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솥 안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한제를 감쌌다.
펑! 펑!
무언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면서 비쩍 말라붙은 사람들은 하나둘 무너져 내렸고 그들의 마지막 생기는 촉수에 흡수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망월의 체내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외부에 불가사의한 변화가 일어난 듯한 상황이었다.
이 진동이 격렬해짐에 따라 망월의 체내 곳곳에서 음울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소용돌이 바깥에 엎드려 있던 작은 망월들 역시 분분히 고개를 돌리고는 빠르게 튀어나갔다. 이 순간 망월의 체내 곳곳에서 작은 망월들 역시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 작은 망월들은 길이가 10만 척에 이르는 거대한 여덟 마리의 망월을 따라 바깥쪽으로 돌진했다.
이때 망월로 이루어진 수련성 밖 풍(風), 우(雨), 뇌(雷), 전(電) 네 개의 선계 아래 존재하는 4대 성역에서도 보기 드문 큰 전투가 발발한 상태였다.
나천성역 안에서 거의 최고 수준에 이른 일곱 명의 수련자와 망월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다.
망월은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 격렬하게 포효하며 전투 체제를 갖췄다.
망월의 몸에서는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촉수들이 하늘거렸고 두 눈에는 처음으로 경계심이 생겨났다.
망월의 지능은 인간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강렬한 위기를 직감했다. 아주 오랜 세월 느껴보지 못한 위기감이었다.
언젠가 우주 속을 떠돌던 중 어느 지역에서 더 이상 들어서지 말라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목소리에는 엄청난 힘이 깃든 듯 망월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많이 흐릿해졌지만 당시 느꼈던 위기감만큼은 여태까지도 또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