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1
양웅의 몸이 떨렸고 호흡 역시 가빠졌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몸의 상태를 원래대로 돌리려 애쓰며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
그러자 한제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주자홍을 여기로 데려오면 네 영혼도 돌려주겠다.”
양웅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고 호흡이 가빠졌다. 한참 뒤에야 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입니까?”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양웅은 두 말 않고 옥패 하나를 꺼내 그것을 이마에 붙인 뒤 뭐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옥패가 몇 번 반짝거렸다. 곧이어 양웅이 내던진 그 옥패는 회색빛이 되어 번쩍거리며 사라졌다.
2각 후, 멀리서 비검이 허공을 가르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착지했다. 주자홍이었다.
비검을 거두고 아름다운 눈썹을 살짝 구기던 그녀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양웅의 곁에 한제가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양웅의 영혼의 정혈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받아 든 양웅은 부끄러운 듯 감히 주자홍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인 채 숲속을 빠져나갔다.
주자홍은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문 채 한참이나 깊은 숨을 들이마시다가 입을 열었다.
“봉란 시조님은, 내 어머니야. 나를 보자마자 이상한 점을 알아채셨고 그래서.”
한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지난 일이니 설명할 필요 없어. 대신 네 도움이 필요해.”
자홍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지도 말하는 거야?”
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향은 아주 먼 곳이야. 지도 없이는 방향을 잡을 수도 없어.”
주자홍은 복잡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불쑥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을 좀 죽여줘.”
“수준이 어느 정도지?”
한제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한 명은 축기 중기, 다른 한 명은 거의 꽉 찬 축기 후기 수준.”
주자홍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좋아.”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응했다.
“그 두 사람은 너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한 명은 마량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시아고 다른 한 명은 시아와 놀아난 주안이지. 지금 가서 바로 죽일 필요는 없어. 떠날 때 죽여도 좋아. 지도는 한 시진 뒤에 꼭 가져다줄게.”
주자홍은 말을 마친 뒤 한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다시 비검에 올랐다.
“마량, 이건 내가 너에게 줄 마지막 도움이 될 거야.”
주자홍은 쓸쓸한 표정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한제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 주자홍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신식을 펼쳐 곧장 시아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지난번에 그녀의 몸에 신식 한 조각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위치를 찾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한제가 발을 살짝 구르자 그의 몸은 곧장 땅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반 시진 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자홍을 기다렸다.
그의 얼굴에 기이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방금 뒷산의 어느 구석진 곳에서 시아를 찾아냈을 때 그녀는 주안과 뒤엉켜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한제는 그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조용히 주안의 몸에도 보름 후 작용할 신식을 심어둔 채 자리를 떠나왔다.
우거진 숲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으려니 주자홍이 아니라 응기 수준의 여자 제자 하나가 다가왔다. 그녀는 우거진 숲 밖에서 이쪽으로 옥패 한 조각을 내던진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한제가 오른손을 뻗자 그 옥패는 곧장 그의 손 안에 들어왔다. 신식으로 그 옥패를 살핀 한제는 그것을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먼 곳으로 향했다.
세 조각의 지도를 합친 한제는 화분국이 속한 주무대륙과 조나라가 속한 대륙 사이에 수마해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조나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곳곳에 마수가 가득하다는 수마해를 지나쳐야만 하는 것이다.
지도에는 수마해에 관련한 설명이 많지는 않았다. 다만 위험한 곳이니 원영기 수련자라고 해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되어 있을 뿐이어다.
게다가 지도에는 수마해가 진정한 바다가 아니라는 설명도 적혀 있었다. 상고시대에 큰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강력한 신선이 법술로 바다의 물을 모두 증발시켜 적들을 몰살시켜 버렸다고 했다.
그날 이후 수마해는 안개로 뒤덮였으니, ‘안개 바다’로 표현하는 편이 더 적합했다. 바다에 살던 수많은 생물들은 오랜 시간 진화를 통해 그 안개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또한 수마해의 특수한 안개는 매년 한 달 동안 바닷물이 됐다가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열악한 땅의 성질 때문에 그곳은 척박했고 영맥도 드물었으며, 살인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면서 서서히 마도를 수련하는 자들의 집결지로 변해갔다. 심지어 높은 등급의 수련국에서 지명수배가 된 자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수마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으로 본래의 이름은 잊혀졌다.
한제는 땅속으로 이동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옥패에 기록된 설명들을 되뇌었다. 그러나 순간, 그는 몸을 떨면서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신식을 땅 밖으로 내밀었다. 상공에 두 갈래의 검광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앞쪽에 있는 여자는 겁에 질려 창백한 상태였고 그녀의 몸은 흔들거리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부드러운 눈썹에 아름답고 요염한 용모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녀는 일전에 만난 적이 있던 낙하문의 이모완이었다.
그녀의 뒤를 쫓고 있는 자는 번지르르하게 치장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이모완을 뒤쫓으면서 큰 소리로 낄낄댔다.
“낭자! 낭자가 소속된 소대의 열세 명은 이미 모두 내게 죽었소. 어디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나 봅시다.”
이모완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깨문 채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다.
청년이 허공에 대고 오른손을 흔들었다.
찌지직
그러자 이모완의 속곳이 찢겨 눈처럼 흰 피부가 드러났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청년은 호쾌하게 웃으며 모완의 찢어진 속곳을 코 밑에 대고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의 두 눈에 음흉한 빛이 번득였다.
한제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모완을 뒤쫓고 있는 청년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결단기 중기였다. 그는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염 요괴가 쳐들어오기 전에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것뿐이었다. 더구나 이모완과 한 번 스치듯 보고 만 사이에 불과했으니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할 필요도 명분도 없었다.
그가 막 떠나려는 순간, 이모완을 뒤쫓던 청년이 불쑥 고개를 숙이더니 냉큼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 갈래의 검은색 빛이 한제가 숨은 곳을 내리쳤다.
“토둔술로 숨어 있는 녀석이 있었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나와 봐라.”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검은 빛이 땅을 공격하던 순간 훌쩍 뛰어올랐다. 이모완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고 순간 희색을 띄며 소리쳤다.
“당신이군요! 나 좀 도와줘요!”
그러는 사이, 그녀의 발을 받치고 있던 비검이 방향을 틀어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의 곁으로 다가왔다.
청년은 다시 웃으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앞쪽에 일고여덟 자루의 비검이 나타나더니 급속도로 회전하며 한제와 모완에게 달려들었다.
그 비검 중 한 자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제를 노렸고 그나마 이모완을 노리는 한 자루는 급소를 피해 공격하고 있었다. 음흉한 생각으로 가득한 청년은 모완을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모완의 팔을 잡아챈 뒤 날아드는 검을 피해 다시 땅속으로 숨어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토둔술은 상고시대의 신통한 법술 중 하나로 꼽혔던 만큼 분파와 지류가 많이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한제가 익힌 것은 최소한 속도만큼은 매우 빨랐다. 따라서 이모완을 이끌면서도 속도는 이전에 비해서도 느려지지 않았다.
청년이 얼굴을 구기더니 비검을 통제해 땅을 푹푹 찔러댔다. 그러면서 파동을 지면에서부터 땅속으로 전달했다. 한제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의 표정은 더욱 심하게 구겨졌고 이내 전력을 다해 한제를 뒤쫓았다.
그는 분명 결단기 수준의 수련자였지만 그의 장기는 속도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축기 수련자의 비검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지만 빠르기로 유명한 5행의 은둔술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의 거리는 자꾸만 벌어졌다.
이모완을 돌아본 한제의 눈빛은 무정했다. 이모완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자신 때문에 상대가 괜히 이 일에 말려들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입술을 꼭 깨문 그녀가 변명하듯 빠르게 말했다.
“저 사람은 선무국 쌍수문(雙修門)의 장로예요. 내가 천리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품위 떨어지는 일도 무릅쓰고.”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한제가 눈빛을 번득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리단을 가지고 있다고?”
한제의 눈빛에 이모완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굉장히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천리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자신을 구해준 눈앞의 사람에게 그녀가 유일하게 걸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녀와 같은 화분국 사람이었다. 선무국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그나마 같은 나라의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훨씬 나았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녀가 말했다.
“완제 천리단은 아니에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반제품이죠.”
한제의 눈빛에서 욕망을 읽어낸 그녀는 눈가가 약간 붉어진 채 얼른 해명에 나섰다.
“낙하문의 천리단에 완제품은 없어요. 다 반제품이에요. 하지만 반 시진 정도면 완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천리단이 완성품이 되면 저장하기가 불편하고 1년 안에 복용하지 않으면 약효가 크게 떨어지거든요.”
한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원래는 먼 길을 돌아 수마해로 가려고 했는데 청년과 갑자기 맞닥뜨리는 바람에 지금은 화분국 국경 쪽을 향하고 있었다.
한제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화분국의 산봉우리로 가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고수도 많고 여기서부터 그리 멀지도 않으므로 도착하기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쌍수문의 장로라는 자가 그들이 거기까지 도망치게 둘 것인지는 차치하고 산봉우리에 도착한 뒤 모완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천리단에 대해서 모른 체할 가능성도 있었다.
두 번째 선택지는 화분국 국경으로 가는 것이었다. 시간을 계산해보면 화염 요괴들은 이미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중일 터였다.
한제는 망설이지 않고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그때, 청년은 포기하지 않고 한제를 뒤쫓고 있었다. 상대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것을 본 그는 분노하며 저물대에서 수정 나뭇잎 하나를 꺼내 앞쪽으로 내던졌다. 그 나뭇잎은 바람을 맞으면서 크게 부풀더니 10척 이상의 길이로 커졌다. 청년은 그 나뭇잎을 타고 한손으로 결인을 하며 낮게 외쳤다.
“질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뭇잎은 앞으로 힘차게 내달렸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잔영이 남을 정도였다.
수마해(修魔海) (2)
한제와 청년 사이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모완의 얼굴은 더 창백해졌다. 그녀는 청년에게 따라잡히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화분맹이 모여 있는 산봉우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한제를 원망했다.
하지만 그런 원망도 속으로만 삭일 뿐 밖으로는 조금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괜히 상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버려질까봐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진이 파괴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는 대략 세 시진이 지났다. 소식을 접하기 전부터의 시간까지 따진다면 지금쯤 화염 요괴들은 이미 선무국 국경쯤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 한제는 신식을 통해 저 먼 곳에서 빽빽한 붉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을 듯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상공에서 추격 중인 청년도 그 붉은 구름을 보고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방향을 돌려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화분국이 선무국을 침략한 이유가 저 멀리서 빽빽하게 몰려오고 있는 화염 요괴 때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화염 요괴들의 속도는 매우 빨랐지만 한제의 토둔술 역시 속도로는 밀리지 않았다. 한제와 화염 요괴가 스쳐지나간 순간, 둘 사이의 거리는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화염 요괴들을 본 이모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