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41
이오는 막무가내로 먼저 공격에 나선 한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선을 알고 그 이상 넘어가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운자를 비롯한 그들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좋다. 개인적인 감정은 당분간 묻어두지. 앞으로의 세 개 층에는 훨씬 큰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모두 일곱 번째 층 중앙에서 만나도록 하지.”
이오가 말을 마치자 천운자 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석으로 다가가더니 살짝 눌렀다. 그러자 비석에서는 눈부신 보라색 빛이 발산됐고 지면이 진동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아래로 반짝이는 별이 총총한 우주가 드러났다.
사람들은 하나씩 그 균열로 몸을 던져 사라졌다.
선제의 동굴 일곱 번째 층은 이전의 여섯 개 층과는 전혀 달랐다. 건물 하나 없이 그저 끝없는 화염만이 가득해 마치 또 하나의 다른 세상 같았다.
이곳은 넓지 않았는데 수시로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늘에서는 이따금 화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검은 안개로 뒤덮인 정중앙에는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이 있었다.
지면은 수많은 균열로 갈라진 채 용암 위에 떠 있었다.
한제가 번쩍이는 빛과 함께 나타났다. 한데 사방을 둘러본 그의 얼굴이 차게 굳었다.
‘안 돼!’
이곳의 광경은 옥패의 지도에 나와 있는 설명과는 전혀 달랐다.
어두워진 얼굴로 먼 곳을 내다본 한제는 수천 척 밖에서 나타난 호연이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고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당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한제를 발견하고는 그의 표정을 살피더니 쓰게 웃었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 한제는 이 선제의 동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는데 지금은 그도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완전히 평탄한 곳이구나. 유일하게 솟아 있는 저 화산이 여덟 번째 층으로 이어지는 입구일 것이다!”
호연의 목소리가 그곳의 모든 이들의 귀에 닿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난 허공자의 창백한 얼굴은 주위를 가득 채운 화염과 용암의 뜨거운 열기에도 좀처럼 혈색을 되찾지 못했다.
오른손으로 움켜쥔 가슴팍에서는 수시로 극심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상처에 남은 기이한 검기는 상처가 아무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하고 있었다.
‘천운자 이한제, 그리고 그 검령… 똑똑히 기억해두겠다. 언제고 열 배, 백 배로 되돌려주마!’
그는 어두워진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젠장할, 선제의 동굴마저 나의 앞길을 막는구나. 불의 원력이 이렇게 강한 곳이라면 분명 그 잡종 자식에게는 안방과도 같을 터!’
허공자는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다가 흠칫 정신을 차리더니 심신을 바르르 떨었다.
‘수준이 떨어져서 성격에도 변화가 생긴 것인가? 이런 일에 쉽게 화를 내다니.’
허공자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울화를 억누른 뒤 스스로를 안정시키려 애썼다.
한편, 이오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호연 곁에 이르더니 그녀와 함께 곧장 화산으로 향했다. 천운자 등이 뒤를 따랐다.
아름다운 중년 여인과 호리병 위의 노인, 그리고 흑의의 사내도 동시에 날아올랐으며 허공자도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힐긋 바라보며 훌쩍 몸을 날렸다.
한제는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나아갔다. 자신의 수준이 저들보다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다른 이들을 제치고 앞서가기보다 뒤따르기를 택했다.
잠시후 한제는 분홍색 옷의 여인과 마주쳤다. 한제를 기다리고 있었던 눈치였다.
그녀를 발견한 한제는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빙 둘러서 이동했다. 이에 여인은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자신 또한 한제에게서 신경을 거두고는 화산으로 향했다.
한제는 균열이 잔뜩 인 지면에 남아 있는 선옥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로 미루어 이곳이 아주 오래전에는 분명 선제의 동굴 일곱 번째 층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어떤 변고로 인해 지금은 불바다로 뒤덮인 폐허가 된 듯했다.
전방에 우뚝 솟은 화산을 바라보던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신식을 펼쳤다. 그리고 한참 뒤에 다시 눈을 뜬 한제는 좀 전의 추측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 화산은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신통술을 통해 이곳으로 옮겨둔 것이었다. 실제로 그 화산과 아래의 지면은 질과 구조가 전혀 달랐다.
‘다른 이들도 눈치챘겠지.’
산 아래에 선 한제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는 거대한 균열 안에서 흐르는 용암을 바라보았다.
열기가 느껴졌지만 불편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신이 편안해졌고 심지어 체내의 원력에 활력이 더해지기까지 했다.
‘이곳의 변화가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구나!’
한제는 그 균열 속의 용암에 손을 담갔다. 순간 그 용암 안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불 속성의 원력이 느껴졌다.
그 상태로 한제는 원력을 순환시켜 체내에 회오리를 하나 형성했다. 회오리의 회전에 따른 흡입력은 용암 속 불 속성 원력을 빨아들였다.
‘선제 백범의 6대 신통력 중 세 개는 이미 배웠다. 하지만 청수 사형 말씀에 따르면 나머지 세 개야말로 백범의 정수가 배어 있는 것이다. 그중 첫 번째 신통력은 산붕(山崩)이었다. 살역계에서 청수 사형이 보인 그 신통력은 화산 폭발과 비슷했지.’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불 속성의 원력을 흡수하면서 눈앞의 거대한 화산을 바라보았다.
한편, 그의 오른편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흑의의 사내가 가부좌를 튼 채 한제와 마찬가지로 균열 속 용암에 한손을 담그고는 용암 속 불 속성 원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수시로 한제에게 향하는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적대심이 어려 있었다.
‘주작⋯⋯ 만약 주작을 다시 삼킨다면 내 염룡(炎龍)은 두 번째 각성을 할 수 있을까?’
용암
이곳에는 불 속성 원력이 매우 짙었고 특히 용암 안은 더욱 그랬다.
한제는 대량의 원력이 체내로 흘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원력은 이미 불의 원력에 적응한 원신을 강화했다. 심지어 단약으로도 완전히 치유하지 못한 그의 부상 역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한제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산 안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너무 오래 지체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섯 번째 층 대전에서 치료하던 한 달 동안 한제는 이오에게 욕선욕사(欲仙欲死)라는 독의 해독 방법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허나 그들도 욕선욕사라는 독에 대해 들어본 적만 있을 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이제 사도환의 몸에 퍼진 독을 해독하기 위한 희망은 오로지 선제 청림이나 청상에게 달린 셈이었다.
곧 일곱 번째 층을 떠나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체내의 회오리를 더욱 빨리 회전시켰다. 순간 그의 손을 타고 더 많은 원력이 흡수되었다.
잠시 후, 한제는 용암에서 손을 꺼낸 뒤 몸을 훌쩍 날려 산꼭대기의 입구로 향했다.
이를 본 흑의의 사내도 몸을 훌쩍 날려 화산 꼭대기로 향했다.
흑의의 사내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용암 속 원력을 흡수했다는 사실을 한제 역시 알고 있었다. 특히 상대의 미간에 숨겨진 흑룡의 표식에 한제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한제는 이내 화산 꼭대기에 이르렀다. 그 거대한 화산의 분화구에서 뭉게뭉게 피어 오른 검은 연기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분화구 주변은 다른 곳보다 한층 뜨거웠고 그 근처의 바위는 오랜 시간 부식되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또한 분화구 안쪽은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안에서는 검은 연기가 마치 귀신처럼 피어올랐다.
망설임 없이 앞으로 한 발 내딛은 한제는 한 줄기 유성처럼 곧장 분화구로 달려들었다.
신식을 사방으로 펼치며 거의 직선으로 내리 떨어진 그는 화산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속에서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곳의 열기는 온몸의 모공을 타고 체내로 흡수돼 원력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뒤로는 흑의의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한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한제를 건드리거나 그의 화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제가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한제는 과감하면서도 매섭고 또 교활했다. 심지어 허공자도 그에게 번번이 패배하면서 수준까지 대폭 떨어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신도 이곳에서 불 속성의 원력을 흡수하긴 했지만 온 세상에 존재하는 불을 통제할 수 있는 주작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저자를 삼키기는… 어렵겠군.’
흑의의 사내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한제는 그저 주위의 열기를 흡수하며 속도를 높일 뿐이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열기는 점점 강력해졌고 심지어 화산 내벽의 수많은 균열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균열은 독소가 함유된 듯 어두웠다.
화산의 내벽에는 움푹 패거나 튀어나온 곳이 있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중 툭 튀어나온 바위에 착지했다. 균열이 가득 일어난 이 바위는 어두운 붉은색을 띤 채 검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한제가 그 바위에 착지한 순간, 그 바위 아래쪽에서 대량의 돌조각이 화산 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제는 바위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래에서 솟아오르던 뜨거운 열기가 그의 입으로 빨려들었다. 마치 그가 불바다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뜨거운 열기는 화염이 되어 끝도 없이 한제의 체내로 흡수되었다. 순간 체내의 원력이 가동되면서 그 화염의 힘을 소화했다.
1각 뒤,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본 한제는 차게 코웃음을 치며 다시 이동했다.
한제가 떠난 지 한참 후에야 그 바위에 이른 흑의의 사내는 두 눈이 충격으로 가득했다.
‘이 포악한 화염의 힘을 저런 식으로 흡수하다니, 미친 것인가!’
한제처럼 막무가내로 그 힘을 흡수할 엄두를 내지 못한 그는 그저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만 화염의 원력을 흡수하고는 아래로 향했다.
속도를 높인 한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산 바닥에 가까워졌다. 뜨거운 열기와 새카만 연기 너머로 아래쪽의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산 바닥에 깔린 암적색 용암에서는 이따금 기포가 떠올랐고 그 기포가 터질 때마다 검은 연기와 함께 열기가 피어올랐다.
바다를 이룬 듯한 용암 위쪽에는 화산의 내벽에 끼어 있는 궁전이 있었다.
이전에 지나왔던 여섯 개의 층에서 보았던 대전과 똑같이 생긴 궁전이었으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문이 닫혀 있었다.
대신 그 대문에는 검은 피로 휘갈긴 듯한 복잡한 문자 하나가 쓰여 있었다.
문자에는 하늘과 땅을 뒤집을 듯 포악한 기세와 광기가 배어 있었다.
한데 그 문자를 본 순간, 한제의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저것은 분명 고요와 고마가 속한 고대 일족의 문자였다.
“마(魔)!”
마(魔) 자였다!
그 궁전 밖에는 이오와 호연, 배이라, 그리고 천운자와 허공자 등이 양측으로 나누어 선 채 대전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능천후와 호리병 위의 노인, 그리고 아름다운 중년 여인 셋은 각자의 신통력을 발휘하여 궁전의 대문을 향해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콰르릉!
공간이 붕괴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그 소리는 이곳을 채운 뜨거운 열기에 무너져 멀리 퍼져 나가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한제가 도착하자 허공자의 눈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번득였다.
한제는 이오와 호연 곁에 이른 뒤 멀거니 궁전의 대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