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870
주작성종의 마지막 주성은 임도후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우렁찬 연호(*連呼: 연이은 외침)에 어두워진 얼굴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곁에 있던 나오운은 그런 임도후를 힐긋 보더니 몸을 훌쩍 날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한제를 향해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나오운, 성황을 환영합니다!”
그의 눈에는 추종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일찍이 한제가 요령의 땅에서 발휘한 신통력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 모습을 떠올렸다.
봉선 또한 잠시 망설이다가 몸을 일으켜 나오운 곁에서 공손하게 성황을 반겼다.
주성의 주작성종 사람들도 모두 크게 감격해 한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한편, 한쪽에서는 그들과 대조되는 분위기의 무리가 있었다. 임도후와 그를 지지하는 노인 몇 명 그리고 그에게 충성하는 소수의 부족원들이었다.
그때, 임도후가 포권을 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불쑥 외쳤다.
“이한제, 네게 도전하겠다!”
그로서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한제가 주작성황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자신은 주작성황이 될 기회와 희망이 영원히 사라질 테니까.
주작성종에서는 성황이 곧 하늘이며 그에 반기를 드는 자는 성종 전체의 적이 된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 지금 임도후는 주작성종의 규칙에 따라 도전을 한 것이므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그의 우렁찬 외침에 축제 분위기였던 이곳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적막에 휩싸였다. 수많은 눈빛이 임도후와 한제에게 쏠렸다.
한제 뒤에 선 주작성종의 장로들은 싸늘한 눈으로 임도후를 노려보았다. 이들은 한제가 순조롭게 성황이 될 수 있도록 책임지라는 선대 성황의 마지막 명을 받은 자들이었다.
임도후는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고 있노라니 심신이 뒤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내뱉었다.
“성황에 오르겠다는 자가 설마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셈인가?”
그때, 몸집이 큰 노인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임도후와 그 뒤에 선 세 명의 노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임도후, 담도 크구나! 그리고 너희 셋! 정말 전대 성황의 명을 따르지 않을 셈이냐!”
노인은 당시 요령의 땅에 갔었던 쇄열기 수준 장로 중 한 명이었다.
“주 장로 주작성종의 법칙에 따르면 차기 주작성황이 즉위한 당일 주작성종의 사람에게는 성황에게 도전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주 장로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감히 성종의 법칙을 어길 수는 없었던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허나 전혀 불안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 임도후는 떨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지난 3년간 한제의 과거에 대해 적지 않게 들어왔으면서도 코웃음을 쳤는데 막상 상대를 마주하고 보니 그 수준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한데 이상한 건, 한제는 분명 규열기 절정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소문이 모두 거짓이란 말인가?
그때, 한제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 눈빛을 본 순간, 임도후는 가늘게 떨었다. 심장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심지어 그의 뒤에 선 세 노인들의 눈빛도 굳어졌다.
“나는 내게 도전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안에는 극도의 서늘함이 배어 있었다. 특히 요령의 땅에서 그를 봤던 이들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사방을 갈기갈기 찢어발긴 엄청난 힘, 원고 시대로 돌아간 듯한 꿈을 꾸게 했던 신통술 그리고 하늘을 박살냈던 주먹까지!
임도후는 심신이 점점 격렬하게 떨려왔다. 불길함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태였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외쳤다.
“도전하겠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분신과 본체를 갈라놓은 터라 본체의 단단하고 강력한 육신은 갖지 못한 상태였지만 살두성병(撒豆成兵)만으로도 정열기 수련자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쇄열기 초기 수준 수련자와도 맞붙을 만했다.
사실 지금 그에게는 본체가 있든 없든 실력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다만 본체와 합체한 상태라면 강력한 육신과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을 갖게 될 뿐이었다.
“너는 주작성종 사람이니 시신은 화장시켜주마!”
말을 마친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뒤로 허상의 영체 하나가 나타났다.
“구현변(九玄變)!”
영체가 나타난 순간, 주작성종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잔뜩 격앙된 눈빛들이 일제히 한제에게로 쏠렸다.
구현변은 오직 성황만 익힐 수 있는 신통술이었다.
임도후 역시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하지만 곧바로 원한과 분노가 끓어오른 그는 낮은 기합과 함께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온몸에서 발산된 화염이 불타는 파도를 형성하더니 곧 그의 몸을 감쌌고 흐릿한 갑옷으로 변했다.
한제는 조금의 미동도 없는 눈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쪽에 떠올랐던 영체의 허상이 곧장 그의 오른팔로 녹아들었다. 이어서 한제는 임도후를 향해 손을 뻗고는 허공을 몇 번 두드렸다.
“화분(火焚)!”
그 냉랭한 목소리에는 세상 모든 불의 힘을 장악한 위엄이 어려 있었고 순간 주위의 불이란 불은 모두 그의 통제 아래 들어오게 됐다. 심지어 임도후가 불러낸 불길마저 한제의 부름에 응하려 했다.
그 순간, 임도후의 몸을 감쌌던 갑옷이 휙 튀어나와 마치 한 자루 비검처럼 한제에게 돌진했다.
사실 한제가 자신의 화염까지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임도후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이에 그는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로 만약 단번에 한제를 죽이거나 최소한 중상을 입히지 못하면 끝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허나 그 한 번이면 충분하다!’
한편,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다시 오른손을 들어 임도후를 가리켰다. 구현변의 진정한 위력을 소환하는 손짓에 한제는 오른손이 타오르는 듯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세화원(三世火元)!”
한제의 침착한 외침이 터진 순간, 임도후가 멈칫하더니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쾅!
이어서 그의 몸에서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체할 수 없이 뒤로 밀려났다.
임도후의 눈빛은 충격과 두려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의아함이 더 컸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쾅!
다시 한 번 임도후의 몸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피 안개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혈인(血人)이 되어버린 그의 육신은 갈래갈래 찢어졌다.
“크아악!”
임도후의 원신은 절규하며 다급히 육신을 빠져나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어째서 상대의 손가락질 한 번에 자신의 육신이 붕괴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 곧바로 이어진 쾅 소리와 함께 불과 번개를 녹여낸 듯한 파멸적인 기운에 강타당한 순간, 그의 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방금 도전자 하나를 원신까지 없애버렸지만 한제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그는 그저 구현변의 위력에 만족하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주작성종의 역대 성황들만 배울 수 있는 공법다웠다.
‘어쩌면 번개와 융합하면서 위력이 훨씬 더 강해진 것인지도⋯⋯.’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시선을 돌려 임도후를 따르던 세 노인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쇄열기 초기였고 다른 둘은 정열기 후기였다.
“너희도 도전할 셈이냐?”
한제는 하얀 화염이 이글거리는 오른쪽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며 차게 내뱉었다.
두 정열기 수준의 노인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결국 쇄열기 초기 수준의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노인의 뜻에 따르겠다는 암묵적인 신호였다.
한제를 보는 노인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사실 무척 놀란 상태였다. 두 번의 손짓만으로 임도후를 죽이는 것은 자신도 할 수야 있다지만 한제는 아직 규열기에 불과했다.
‘구현변(九玄變)!’
노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제 곁의 주작성황 사람 중 대부분 장로들의 눈빛은 자신에게 쏠려있었다. 무형의 압박에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황을 환영합니다!”
그 말에 곁에 있던 두 노인들도 한시름을 놓은 듯 포권을 했다.
“성황을 환영합니다.”
뒤이어 이 세 노인을 따르던 주작성종 사람들 또한 공손한 얼굴로 일제히 입을 모아 외쳤다.
“성황을 환영합니다!”
순간 사방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하나가 된 수만 명의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천둥에 비할 법했다.
그러나 한제는 덤덤했다. 모두가 자신에게 공경과 존중을 보였지만 그는 이들 중 여전히 자신에게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는 이가 적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의 수준은 주작성종 사람들이 의아할 정도로 낮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그의 마음이 가 있는 곳은 주작성종이 아니었다.
한편, 한제 외에도 복잡한 마음으로 각자의 생각에 빠진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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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은 한제를 보러 나오는 대신 자신이 머물던 곳에서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련성에서는 한제를 볼 수 없었지만 저 먼 곳에서부터 한제를 우러러보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타산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 뒤에야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두 눈을 감고 좌선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파도는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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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어느 수련성 도시 성벽. 일고여덟 개의 술주전자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한 사내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한제가 있는 곳이 축제 분위기인 것과 대조적으로 노인은 매우 쓸쓸해 보였다. 죽은 이의 그것과 다름없는 눈빛으로 술만 들이켜는 그의 뒤쪽에는 영이가 조용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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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연소성역의 화염 소용돌이 안에서 또 한 사람이 복잡한 심경을 안은 채 계속해서 욕을 지껄이고 있었다.
“살인마 이한제! 어찌 나를 꺼내주지 않고 있는 것이냐! 목을 씻고 기다리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