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43
“진천군이야 어찌됐건, 조 도우, 이곳을 조사하다가 금제들의 실마리를 발견하긴 했는데 구체적인 해결 방법은 알 수가 없더군. 좀 도와주겠나?”
창송자이 청의의 노부인에게 정중히 말했다. 그러자 노부인은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이곳의 금제는 대부분 처음 보는 것들이야. 해결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군.”
노부인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길의 끄트머리까지 걸어갔다.
뒤로는 길이 없이 산맥만 있을 뿐이었다. 이곳을 건너가려면 산꼭대기를 넘어가야만 했는데 눈앞의 산은 짙은 안개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조용히 바위를 몇 번 살핀 뒤 시선을 거두고는 한쪽에 가부좌를 튼 채 호흡을 시작했다.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려 두려는 생각이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노부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변화는 갈수록 격렬해졌고 미간은 점점 더 구겨지고 있었다.
“창송자 도우, 정말 여기에 금제가 있는 것 맞나?”
청의의 노부인은 고개를 돌려 창송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산맥에는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일곱 마리의 흉수가 있다네. 전부 12급 흉수지. 저번에 왔을 때는 다른 길로 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결국 산맥을 넘어가지는 못했어. 후에 발견한 이 지도에는 여기에 산맥으로 통하는 길이 있고 통로의 입구가 바로 이곳이라고 되어 있네!”
창송자의 말에 청의의 노부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두 걸음 물러난 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순간 손자국이 허상으로 나타나더니 서로 중첩되면서 매우 복잡한 금제를 만든 뒤 곧장 전방의 바위에 찍혔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지만 내심 심신이 떨려왔다.
금제가 찍힌 바위에는 순간 줄기줄기 파문이 드러났다. 마치 돌을 하나 던져 넣은 호수 같은 형태였는데 기이하게도 물결을 구성하는 것은 세밀한 일련의 주문이었다. 뒤이어 고래(古來)의 기운이 바위에서 느릿하게 발산되었다.
청의의 노부인은 다시 몇 걸음 물러나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그린 뒤 자신의 가슴을 몇 번 두드렸다. 그 순간, 짙은 생기가 어린 일곱 갈래의 검은 기운이 그녀의 칠규로부터 발산되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는 사이 노부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몸을 날렸다.
세 걸음을 박차고 나간 그녀는 곧장 바위 안에 빠져들었고 이에 바위에서 일던 물결이 더욱 격렬해지면서 은연중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창송자 등은 바위 안에서 거대한 동굴 통로가 나타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으나, 그 안쪽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눈빛마저 삼켜질 듯한 어둠이었다.
가장 먼저 바위 속으로 들어간 노부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어서 몸 역시 이상할 정도로 삐뚤어졌고 체내에서는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까지 울려 퍼졌다.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묵묵히 호흡을 가다듬다가 다시 눈을 뜨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몸이 격렬하게 진동했고 동시에 바위의 파문은 배가되었다. 바위에서 피어오르는 오래된 기운은 강력한 힘을 이루어 사방을 뒤덮었다.
연속으로 세 걸음을 걷던 노부인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됐다. 그녀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미간을 두드렸고 그러자 주름 가득한 얼굴에 순간 기이하고 놀라운 변화가 일었다. 주름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육신 역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40대 중년 부인의 몸으로 바뀐 것이다. 아름답다고 할 외모는 아니었지만 성숙한 자태가 물씬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그녀는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쿨럭!”
여섯 번째 걸음을 내딛은 순간, 그녀는 한 움큼 피를 토해내더니 더는 못 견디고 연거푸 물러나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한제의 곁으로 떠밀려 나온 그녀의 용모는 어느새 다시 본래의 노부인으로 되돌아온 채였다.
“구보봉천진(九步封天陣)!”
노부인이 씁쓸하게 외쳤다.
“상고 시대의 기이한 진이지. 나 역시 옛날 책에서만 봤을 뿐, 실제로는 처음 봐. 이 진을 배치한 자는 금제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을 거야.”
“구보봉천진이라⋯⋯.”
한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바위는 노부인이 떠밀려 나온 후 곧장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라 어떤 이상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파손되어 어떤 공격력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봉인의 효과는 처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군. 내 수준으로는 다섯 보까지밖에 나아갈 수가 없어.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으면 몸이 견뎌내지 못할 거야.”
“어떻게 하면 이 진을 풀어낼 수 있지?”
창송자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열 보를 걷기만 하면 자동으로 풀릴 거야!”
말을 마친 노부인은 단약을 꺼내 먹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창송자는 한참이나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를 악물고 한 손을 휘둘렀다. 순간 검은 갑옷이 나타나 그의 몸을 감쌌다. 마기를 발산하는 갑옷에 창송자는 마치 마존(魔尊)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수준에 이 신마갑이 더해지면 어떨지 궁금하군! 조 도우, 진을 열어주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었던 창송자는 바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청의의 노부인은 두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켜 한 줄기 금제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바위에 또 한 번 물결이 일었고 창송자는 곧장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쇄열기 중기 수준인 창송자가 들어서자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그는 순식간에 네 걸음을 걸었다. 그러고는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다가 다시 세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총 일곱 걸음을 걸었을 때, 창송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여덟 번째 걸음이었다.
한데 창송자의 발이 땅에 닿으려는 찰나, 체내에서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그는 왈칵 피를 토했다. 그런 상태로도 그는 이를 악물고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방가 노인은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본 반면 청의의 노부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아홉 번째 걸음을 내딛은 순간, 창송자는 산봉우리와 충돌한 듯 거대한 힘에 부딪혔다.
“쿠웩!”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낸 그는 순식간에 뒤로 쭉 밀려나 바위 밖으로 튕겨 나왔고 그러고 나서도 몇 걸음을 더 물러난 뒤에야 몸을 멈출 수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해보도록 하지.”
한제가 천천히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붕괴
“자네가?”
창송자는 기이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자의 육신은 분명 기이해. 교룡과 싸웠을 정도니까. 그래, 어쩌면 가능할지도…’
생각을 마친 창송자는 본래의 안색을 되찾고는 포권을 했다.
“좋네. 그럼 여 도우에게 부탁하지.”
반면 방가 노인은 속으로 차게 웃었다. 신마갑을 입은 창송자조차 아홉 걸음을 채 걷지 못했는데 저자가 걸어봐야 몇 걸음이나 걷겠는가!
방가 노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제는 조용히 바위를 살폈다. 본래 나설 마음이 없었으나 창송자가 목숨을 걸 정도라면 이곳에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창송자는 더 이상 일행을 안내하려 하지 않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도 대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일단은 나서보기로 했다.
“부탁하네, 조 도우. 진을 열어주게.”
한제는 노부인에게 정중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가 보기에 노부인은 아까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창송자를 들여보내 부상을 당하게 하려는 의도였으리라.
‘보물을 찾지도 못했는데 저자들은 벌써 갈등을 일으켜 서로를 약화시키고 있어. 그 틈에 끼어들려면 나 역시 그렇게 하는 수밖에⋯⋯.’
한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때, 청의의 노부인이 손을 들어 올렸고 그러자 바위 위에 물결이 일어났다.
한제는 곧장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오른손으로 보이지 않는 금제 그려냈으나, 이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바위 안에 들어서자마자 한제는 한 줄기 위압감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특히 전방에서 전해져오는 위압감이 가장 강렬했다.
한제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세 번째 걸음을 옮겼을 때, 사방에서 전해져 오는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전방에서는 저항력이 광풍처럼 불어닥쳤는데 수많은 산이 압박해오는 듯한 힘이었다.
보통의 수련자라면 이런 극심한 압력에 더는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고신의 육신을 가진 한제에게 이 정도 압박감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르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렇게 여섯 번째 걸음을 내딛은 순간, 그 위압감은 하늘과 땅을 흔들 정도에 이르렀다.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이 몸에 다닥다닥 달라붙고 수많은 신통술이 전방에서 불어닥치는 것 같았다.
지금의 한제는 성난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와 다르지 않았다. 얼굴에는 핏기조차 없었고 몸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고도 싶었지만 그 순간 뒤에서도 저항력이 전해지면서 그의 후퇴를 막았다.
한편, 청의의 노부인은 바위 안의 한제를 주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진에 변화가 발생했군.’
창송자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제를 한참이나 자세히 살폈다.
방가 노인은 자신이 여자호를 너무 과대평가한 모양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냉소했다.
‘강한 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똑똑하진 않군. 지금 중상이라도 입었다가는 계속해서 칠채계 안을 나아갈 수 없을 텐데 말이야.’
한편, 여섯 번째 걸음을 딛은 후 한제는 꽤 오래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한참 뒤, 일곱 번째 걸음을 내딛은 순간, 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펑! 펑!
그의 체내에서 연달아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와 살과 뼈가 모두 압박을 받은 듯 피 안개가 뿜어져 나오면서 그의 하얀 옷이 붉게 물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창송자는 놀란 얼굴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청의의 노부인 역시 신중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로지 방가 노인만이 마음속으로 한제를 더욱 비웃었다.
그 무렵, 한제의 몸은 약간 비틀린 듯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른발을 들어 올려 낮은 침음성과 함께 아홉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
펑!
공간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얼굴에는 푸른 핏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왔고 두 눈도 잔뜩 충혈됐다. 하지만 육신만큼은 안정적으로 서 있었다.
창송자는 잔뜩 기대하는 목소리로 낮게 외쳤다.
“여 도우, 이제 한 걸음 남았네!”
한편 청의의 노부인은 낮게 혀를 찼다.
‘진이 변화를 일으킨 이상 저자는 돌아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그때, 한제가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창송자 조 도우. 난 더 이상 힘이 없네. 내가 중상을 입는다면⋯⋯.”
그러자 창송자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 도우, 걱정 말게! 난 약속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순식간에 열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