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42
창송자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신식을 통해 다급하게 말했다.
방가 노인은 뒤에서 훅 끼쳐 오는 한기에 신식조차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한기로부터 익숙한 무언가를 느꼈다. 두 번째로 칠채계에 들어왔을 당시 저것 때문에 함께 온 동료의 절반을 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신비로운 존재 앞에서 그들은 일반인이 된 것처럼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한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것’을 등진 상태였기에 그 존재를 볼 수도 없었다.
“신식을 펼쳐서도 안 돼!”
창송자는 창백한 얼굴로 신식을 통해 말했다. 입을 뻥긋하기는커녕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 그의 두 눈은 죽은 듯 꼭 감겨 있었다.
한제의 눈에 ‘그자’가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없는 그는 회색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옷 아래의 몸은 반투명했다. 생기 없는 두 눈으로 저 멀리서 느릿한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교룡의 시체 옆에 이르렀다.
한데 무슨 조화인지 그가 다가서자 교룡의 시체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기이하게도 핏물은 전부 그자에게로 흡수됐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생기 없는 눈으로 또다시 느릿하게 걸었다.
일행의 가장 끝에 선 단목 동자는 점점 짙어지는 한기에 잔뜩 긴장한 눈으로 회의(灰衣)의 사내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곁눈으로 지켜보았다.
한데 그때, 회의의 남자가 우뚝 멈춰 서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단목 동자를 바라보았다.
‘헛!’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단목 동자는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두 눈은 멍해졌고 정수리 위에서는 해와 달의 허상이 나타나 맴돌며 회오리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단목 동자의 경지가 실질적으로 구현되었 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표식이 깃들어 있었다. 단목 동자의 신통술을 상징하는 표식들이었다.
허나 한제가 놀란 것은 그 해와 달이 희의의 남자에게로 끌려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의 체내로 녹아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단목 동자의 눈빛은 멍하게 변해버렸고 죽음의 기운이 드러났다.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이었다.
희의의 남자는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단목 동자가 그와 같은 보폭으로 뒤를 따랐다.
이 기이한 광경에 다른 수련자들은 머리털이 곤두섰다. 모두가 숨 쉬는 것마저 잊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희의의 남자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 동안 단목 동자의 머리카락이 스르륵 빠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옷 안의 몸도 점점 투명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의의 남자는 한제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멈춰 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갔고 단목 동자와 함께 점차 멀어져 길 끄트머리로 사라졌다.
사방의 한기가 느릿하게 흩어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창송자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긴 숨과 함께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훔쳐냈다. 그의 뒤에 선 세 사람도 두려움 어린 눈빛으로 긴 숨을 토해냈다.
“저⋯⋯ 저자는 누군가?”
진천군은 여전히 두려운지 가늘게 몸을 떨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잃어버린 자.”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눈빛의 창송자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창송자 이곳은 대체 어딘가!”
청의의 노부인이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날카롭게 물었다. 단목 동자 바로 앞에 있었던 그녀는 그 기이한 광경을 가장 똑똑히 본 사람이었다.
“단목 도우는 경고를 따르지 않았어.”
방가 노인은 아직 긴장이 덜 풀린 얼굴로 부르르 떨며 말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나도 모르네. 칠채계는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일 뿐. 방금 저자를 잃어버린 자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지. 이곳에는 잃어버린 자가 아주 많아. 그들의 나타나면 절대로 꼼짝해서는 안 돼. 신식도! 자칫하면 단목 도우처럼 된단 말이네!”
창송자의 말이 끝나자 한제가 반박했다.
“원래 이곳에는 잃어버린 자가 이렇게 많지는 않았겠지. 창송자 자네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이에 진천군도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송자 자네는 이미 이곳에 두 번이나 와봤다고 했지. 그때마다 일행 중 잃어버린 자가 생겨났겠군.”
창송자는 한참이나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맞아. 방금 그 회색 옷의 사내도 내가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함께 왔던 도우였지.”
그 대답에 진천군이 차게 코웃음을 쳤다.
“허! 그걸 이제야 말하는 겐가?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난 이만 물러가겠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홱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췄다.
창송자는 그를 말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내 안내 없이는 돌아갈 수도 없네. 그나저나 잃어버린 자를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어쨌든 이곳의 가장자리와 내부가 교차하는 곳에 동굴이 하나 있네. 그 동굴의 주인은 자네들도 알고 있을 거야. 1만 8천 년 전 파천종의 대제자였던 사마묵이지!”
한제도 청의의 노부인도 말없이 창송자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마묵은 수준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연단 능력도 뛰어났다네. 이번에 난리가 났던 단약 제조 방법의 주인공 역시 그자이지 않나! 그게 어떤 연유로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동굴이 사마묵의 것임은 확신할 수 있네. 동굴에는 분명 적지 않은 것들이 있을 게야.”
말을 마친 창송자는 옥패를 하나 꺼내 한제에게 건넸고 신식으로 살핀 한제는 청의의 노부인에게 건넸다.
“지난번에 발견한 옥패라네. 덕분에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지.”
창송자는 한제와 노부인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기분이 상한 듯했다.
“조 도우, 앞으로 우리가 흉수를 죽여 얻게 될 것 중 나와 방 도우에게 돌아갈 몫을 모두 자네에게 넘기겠네. 그리고 자네를 초청할 때 말했던 그곳에 들어가면 먼저 열 개의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지.”
“그곳에 들어갈 확률은 몇이나 되지?”
청의의 노부인이 묻자 창송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
“만약 자네와 여 도우가 도와준다면 6할 이상의 확신이 있네.”
그러자 노부인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송자는 뒤이어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조 도우가 말했던 곳은 칠채계의 내부에 있네. 아주 위험한 곳이지만 그만큼 수확도 크겠지. 내가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그곳에는 8급부터 13급 흉수의 혼이 봉인되어 있을 게야. 이번에는 약재도 준비해 왔으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대량의 단약도 만들 수 있겠지. 여 도우가 동의한다면 자네 역시 나보다 앞서 열 개의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겠네.”
한제는 생각에 잠겼다. 창송자의 의도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저런 심계를 가진 수준 높은 수련자라면 절대 쉽게 목표를 공개할 리 없었다.
“여 도우, 일단 자네를 화무(化霧) 흉수가 있는 안전한 곳 몇 군데로 안내하고 그곳에서 거둔 원정은 전부 양보하겠네. 그리고 사마묵의 동굴에 있는 물건에는 내 절대 손도 대지 않을 거야.”
이윽고 한제도 창송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창송자는 만족한 듯 씩 웃더니 방향을 파악한 다음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구보봉천진(九步封天陣)
한 시진쯤 이동했을 때, 안개로 휩싸인 심연이 하나 나타났다.
창송자는 더욱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심연의 안개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서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대량의 선옥이 저물공간에서 튀어나와 주위를 맴돌다가 창송자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펑, 펑 소리를 내며 가루로 부서졌다. 그 순간…
“쿠오오!”
안개 속에서 낮은 포효와 함께 거북이 같은 흉수가 나타나 가루가 된 선옥을 빨아들였다.
“방 도우!”
창송자가 다시 한 번 선옥을 꺼내 가루로 만들며 외치자 방가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 안개 속으로 돌진했다.
거북이 흉수는 고개를 돌려 방가 노인을 힐긋 보고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선옥 가루를 빨아들이는 데 집중했다.
한제는 번득이는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가 노인이 돌아왔고 창송자는 또 한 번 선옥을 꺼내 부수며 느릿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1만 척이나 물러난 뒤에야 그는 선옥을 부수어 뿌리는 행위를 멈추었다.
“얼마지?”
창송자가 방가 노인을 향해 물었다.
“3천이 좀 안 되네.”
방가 노인은 망설임 없이 저물대를 하나 꺼내 한제에게 건넸다.
“화무 12급 흉수 중에는 선옥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지. 그런 녀석들에게 선옥을 미끼로 삼으면 원정을 얻을 수 있다네.”
말을 마친 창송자는 곧장 방향을 틀어 안개로 뒤덮인 곳곳을 찾아갔고 그런 방식으로 엄청난 양의 선옥을 소모한 대가로 2만 개에 달하는 원정을 거두었다. 그제야 창송자는 다시 좁은 오솔길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가자고. 더 많은 원정을 거둘 수 있을 걸세. 이전에 거둔 양으로 따져보자면 최소 6, 7만 개는 될 거야.”
그 말을 들으며 한제는 좀 전의 유해 곁에서 찾은 옥패의 내용을 떠올렸다.
‘깨달아라. 천도의 수감자는 생을 거듭하며 수많은 벌을 받아야 한다. 깊은 지옥에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얌전히 수련의 길을 기다려라.’
옥패에 적힌 것은 단 하나의 구절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의미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보자면 여러 의미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제는 창송자가 이미 예전에 동굴과 유해들을 적지 않게 찾아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희귀한 법보와 공법, 혹은 정보가 든 옥패도 손에 넣었을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게까지 이곳을 잘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산맥 아래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는 내내 창송자는 매우 신중했다. 그 너머로는 간단한 지도 한 장이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직접 가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다른 길을 따라 이동했고 그 길에서 이 지도와 더불어 놀라운 정보를 얻은 바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며칠을 걸었고 화무(化霧) 흉수들을 피해 움직이던 이들은 점차 산맥 깊은 곳에 이르렀다. 어느새 앞에는 마지막 산맥만 남게 됐다.
청의의 노부인은 덤덤한 얼굴로 오로지 앞만 보며 걸었다. 한제는 그 노부인을 관찰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성이 조라는 것 외에는 없었다.
굳이 하나를 덧붙이자면 노부인이 창송자의 뒤를 따라 걷고 있긴 하지만 그녀의 발이 내딛는 곳은 매우 현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는 비록 대부분이 세월의 흐름 속에 무너지고 붕괴하긴 했어도 금제가 매우 많았는데 노부인은 항상 금제들 사이의 공백이나 가장 약한 부분만 골라 디딘 것이다. 한제가 금제에 있어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일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전방의 길이 끊겼다. 그러자 창송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잠겼다.
하늘은 일곱 가지 빛깔로 뒤덮여 있어 밤낮의 구분이 불가능했다. 세상의 원력이 형성한 파동이 느릿하게 하늘로 퍼져 나가며 시선을 끌었다.
한제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산맥 너머에 닿아 있었다. 안개로 가려진 하늘, 원력의 파동은 그곳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었다. 이 원력의 파동 속에는 영혼을 뒤흔드는 느낌이 포함되어 있었다.
“진천군의 역수종 신통력이군.”
창송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참 후에야 하늘에 나타난 원력은 점점 흩어져 사라졌고 먼 곳의 안개는 잠잠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더는 어떤 파동도 전해져오지 않았다.
“진천군의 운이 나빴던 모양이군. 말을 듣지 않더라니, 이리될 줄 알았지. 칠채계에서는 절대 마음대로 나갈 수 없어. 이미 지나온 길도 수시로 바뀌지. 이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마음대로 들어왔다 나갈 수 없어.”
방가 노인은 차갑게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