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10
111. Shock and Terror (9) >
***
“···그렇게 된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위님.”
정팔은 진술을 끝냈다. 상대는 주변 구역을 관할하는 경찰들이었다. 병원 측 신고를 받고 달려온 그들은 범인을 바로 인도해 가지는 못했다.
“용의자는 지금 이민국에서 취조 중이라는 말씀이시죠?”
정팔은 끄덕이며 말한다.
“혹시 이민국 공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할 거면, 제가 요원님께 전달을···.”
경찰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젓는다. 어찌나 거세게 흔드는지 바람이 일 것 같았다.
“아, 아니요! 하하. 저희 그렇게 유도리 없는 사람들 아닙니다.”
그들은 짧게 인사한 뒤 물러났다. 서두르는 투였다. 혹시라도 그가 제안을 행동으로 옮길까 두렵다는 듯이.
이게 경찰들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민국에서 손을 댄 사건에 토를 달아 괜히 분란을 만들기 싫다는 것. 2팀장의 태도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경위님? 잠시 괜찮으십니까?”
고개를 돌리니 최판석의 경호원이 있었다.
의원은 정팔보다 조금 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늙어도 오크는 오크인지 마비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정팔이 진술에 매달린 사이 병실에서 딸을 살피는 중이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누자고 하십니다.”
“네, 갑시다.”
최판석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을 줄 알았던 자식이 기적 같이 살아나자마자 납치 위험에 처하고, 간신히 막아 냈지만 마법 때문에 정신을 잃은 상태.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처럼 심경이 오락가락했을 것이다. 애간장이 타들어 가다가, 간신히 안도했다가, 다시 속이 썩어 문드러지기를 반복했을 터.
경호원이 조용히 밖에서 문을 닫았다. 의원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진술은 끝났습니까?”
“네.”
그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딸을 응시하다가 한 박자 늦게 몸을 돌렸다.
“실례가 많았군요.”
정팔은 깊이 고개를 숙이는 의원 때문에 당황했다.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의원님,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요, 감사의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인사는 형님··· 아니, 요원님께 하셔야죠.”
“취조가 끝나고 오시면 제대로 인사드릴 겁니다. 그분도 그렇지만 경위님께도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늘의 새도 떨어뜨리는 4선 의원이자 여당 내 오크 의원 모임 대표답지 않은 공손한 언행이었다. 그가 얼마나 딸을 아끼는지가 드러났다.
그렇게 몇 번 더 인사와 겸양의 말이 오간 뒤 의원이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주문 외우는 재주는 없지만, 나도 텔레포트 마법진 정도는 구분할 줄 압니다. 그때 나서 주지 않았으면 딸아이는 납치당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박정팔 경위님.”
통성명을 한 적 없지만 정팔은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명찰을 봤을 수도 있고 아랫사람이 일러 줬을 수도 있으니.
“설사 도망쳤더라도··· 요원님이 어떻게든 찾아 주셨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의원은 생각했다. 정말 겸손한 오크군. 그의 상식으로, 이미 공간 도약을 통해 도망친 마법사를 뒤따라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자연스레 형사를 향한 호감도가 상승했다.
“그나저나, 경위님은 이능력자십니까?”
“어휴, 아닙니다.”
의원의 눈에 호기심이 맺힌다.
“그럼 어찌?”
마비 마법이 퍼지는 중에도 멀쩡했던 모습이 선명했다.
“대단한 아티팩트를 구비하신 모양이군요.”
의원의 호부는 독 계열 마법을 완벽하게 방어한다고 광고한 물건이었음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최판석은 일이 마무리된 뒤 마녀 협동 조합에 단단히 컴플레인을 걸 작정이다.
“아, 그게 말입니다. 실은 저도 몰랐습니다.”
“······?”
정팔은 뒤통수를 긁적인다.
“형님께서 저 모르게 손을 써 두신 모양입니다.”
“예민준 요원님 말씀이지요?”
정팔은 다시금 말실수를 깨달았다.
“네, 요원님이요. 저도 그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거친 일을 하니까 눈에 밟히셨나 봅니다. 말도 안 하고 제게 주문 같은 걸 걸어 놓으신 것 같습니다.”
정팔은 얼마 전 상록수 서점에서 있었던 일을 안다. 민준이 그곳에 둔 화분에는 레이크필드와 동철도 모르는 강력한 결계 주문이 걸려 있었고, 덕분에 행패를 부리던 망나니 드래곤을 쫓아낼 수 있었다.
그런 마법을 사람에게도 걸 수 있는 모양이지? 정팔은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취조가 끝나면 민준에게 인사해야 할 사람 목록에 자기 자신을 추가하면서 오크는 말했다.
“미리 말이나 해 주면 좋을 텐데, 성격상 그런 거 잘 못 하는 분이라···.”
머쓱하게 웃는다. 그런 정팔을 유심히 바라보던 의원이 말했다.
“서로 형 동생으로 칭할 정도로 친한 사이입니까?”
“네··· 뭐··· 하하.”
의원은 조용히 그 말을 곱씹는다.
민준은 여당의 가장 강력한 스폰서인 레드 드래곤이 벗으로 인정한 자다.
그런 요원이 직접 강력한 주문을 걸어 줄 만큼 정팔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크로서, 또 형사로서 이보다 위력적인 인맥을 찾기 힘들겠군.’
의원은 정팔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사이 조금 알아봤습니다. 구례 경찰서 소속이시라고요? 그럼 관할 구역이 대충 이 정도 되겠군요.”
그는 지역 이름을 몇 군데 입에 담는다.
모두 오크 커뮤니티였다.
정팔에겐 익숙하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 동네다. 골목 구석구석 지도를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다. 하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 특히 오크들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집 안 숟가락 개수도 알 정도.
그의 답을 듣고 의원은 매우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엿들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밖까지 들리더군요.”
의원은 정팔과 요원 사이 대화를 들었다고 고백한다. 정팔은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은퇴 뒤에는 별다른 계획이 있으십니까?”
“들으신 것처럼 일단 정년까지 버티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그 뒤까지는 아직 생각을 못 해봤습니다.”
하지만 최판석은 알고 있다. 경찰 내에서 버티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도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을.
‘판단력이 좋고 종족적인 사명감도 있다. 오크 커뮤니티 내 연고가 확실한 데다가 이민국 인맥까지···. 이 정도면 조건이 완벽해. 또, 김광우가 죽고 그 일파가 일망타진당한 지금 그쪽과 접점이 없다는 건 오히려 플러스 요소야.’
그는 조용히 명함을 건넨다.
“여기에서 오래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받으십시오.”
“아? 네, 네!”
정팔은 당황하며 그것을 받았다. 비어 있는 걸 알면서도 괜히 앞주머니에 손을 스친다.
“저는 명함 같은 게 없어서···.”
“괜찮습니다. 연락할 방법은 내가 아니까요. 조만간 식사나 한번 하지요.”
“아, 네. 영광이지요. 꼭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답하면서도 정팔은 그것이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호감을 산 건 알겠는데, 국회의원씩이나 되는 사람이 한가하게 경찰이랑 밥이나 먹자고 시간 낼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면, 내가 오크 커뮤니티에서 발이 넓으니 선거 운동이라도 도와 달라는 걸지도.’
주변 사람에게 스팸 문자를 돌리고, 역 앞에서 팸플릿을 뿌리고, 유세 차량에서 춤이라도 춰 달라는 걸까?
‘그러고 보니 곧 재보선도 있군. 하지만 내가 그러고 다니면 공무원 윤리 강령에 걸릴 텐데? 에이, 똑똑한 양반인데 나도 아는 걸 모를 리 없지.’
정팔은 깊은 고민 없이 명함을 받았다. 근시일 내 연락이 올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서.
병실 문이 다시 열린 것은 그때였다.
“요원님!”
“아, 형님. 끝나셨습니까?”
민준이 들어오자 뭔가를 태운 냄새와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둔한 오크 둘의 후각에도 느껴질 정도였다. 의원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후라이팬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요원님, 그자는 대체?”
민준은 심문한 내용을 설명했다. 정팔을 의식해서 너무 민감한 내용은 뺀 채로.
그러자 의원의 얼굴은 창백해졌다가, 다시 분노로 들끓어 올랐다.
“곽도출, 그 개망나니 같은 자식이!”
두 눈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이마에 굵은 핏줄이 솟아오른다. 그는 암살 의뢰를 넣은 원흉이 다름 아닌 사위였다는 사실에 격노를 토했다. 이미 죽었지만 당장 부관참시라도 할 기세였다.
그런 의원도 엄밀히 따지면 살인교사죄를 저지른 것이지만 민준은 지금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기로 했다. 사법 정의를 실천하고자 여기 온 것은 아니니까. 설사 기소해도, 청부 업체에 협박당했다면서 교묘하게 빠져나올 것이 분명했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 채 넣은 의뢰이기도 하고 말이다.
거기에 에너지에 낭비하는 대신, 민준은 아무도 없는 곳에 눈길을 던졌다. 병실 구석에는 윰투스가 투명화 상태로 은닉해 있었다. 두 오크는 그가 이곳에 있는 걸 여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민준이 안배해 둔 것.
그와 텔레파시를 주고받던 요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깨울 수 없다고?!’
윰투스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답했다.
=아시다시피 회복 주문은 대상의 생명력을 자극하고 극도로 활성화하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저 여인은 이미 한 번의 치료를 통해 막대한 생명력을 소모하였습니다.=
‘그건 알아. 하지만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깨울 정도는 될 거라고 예상했잖아?’
그런 예측보다도 막대한 생명력이 소모된 것이었다. 당장 그녀를 취조할 수 없다는 걸 안 민준은 윰투스에게 지시했다.
‘넌 계속 이곳에 남아서 이 여자를 지키고 있어.’
=그리하겠나이다.=
그리고 정팔에게 묻는다.
“시체로 발견된 트롤, 경찰에서 뒤를 파 봤지?”
그 역시 청부 업체 소속이라는 걸 안 이상 경찰에서 가게와 거처를 수색했을 것이다.
정팔은 2팀장과 통화한 내용을 설명했다. 이미 김철수에게 털린 뒤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저항 없이 모든 것을 알려 준 것이다.
“깨끗하답니다. 수상할 정도로요. 아마 그쪽에서 먼저 사람을 보내 정리한 것 같습니다.”
“젠장!”
이래서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청부 조직을 털기 위한 단서가 사라졌으니.
‘일단 최선아가 깨어나는 걸 기다려야겠군.’
그사이 자신은 트롤의 거처를 뒤져 보기로 한다. 경찰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지만 자신이 나서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민준은 슬슬 벽에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검이 이곳에 어떻게 흘러들었는지는 알았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에 대한 단서가 전무하다.
그래서 그 검은 어디에 있는가?
‘뭔가, 돌파구가 필요해.’
트롤의 거처에도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면, 그다음은?
‘지금으로서는 다른 수가 없군. 거기부터 뒤져 보는 수밖에.’
여기에 윰투스를 남겨 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그는 친우에게 통신 마법을 보낸다.
하지만 곧 상대가 젠킨슨 타워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신지를 바꿔서 이번에는 레어를 향해 쏘아 보지만 그곳에도 없었다.
‘어딜 간 거야?’
민준은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블레어가 금방 받았다.
-네, 요원님.
“회장님과 연락이 안 되는군요.”
의원과 정팔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가 말한 회장님이 젠킨슨 외 다른 누구를 지칭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 실은··· 지금 좀 사정이 있으셔서.
“이쪽에 호위 인력을 부탁합니다.”
이어지는 말을 들은 의원이 눈빛으로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보냈다.
딸을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 줄 줄이야!
심지어 통화 상대는 젠킨슨 회장을 매우 가까이서 모시는 직원으로 여겨졌다.
사실 민준의 동기는 증거물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집요함이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들 부녀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용건을 전달한 뒤 민준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젠킨슨은 레어와 회사를 오가는 것 말고는 좀처럼 외도하는 일이 없는 중증의 워커 홀릭이다. 아직 용족 회의 일정도 잡히지 않았는데 어딜 간 거지?
그러자 블레어는 이렇게 답했다.
-위원회 지구대표소에 가셨습니다. 아마 일체의 마법 통신이 불가능한 상황일 겁니다.
민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표소? 거기는 왜?”
-새로 부임한 위원회 측 인사 환영회가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 열릴 예정입니다. 그곳에 참석하기 위해 미리 건너가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었다.
“지금까지 한참 동안 공석이었잖습니까. 이렇게 갑자기?”
방 안에 틀어박혔던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이런 중요한 소식까지 놓치고 있었다니!
민준은 물었다.
“그래서, 누가 왔습니까?”
블레어가 대답한 순간.
“······!”
민준의 몸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
점심 시간에 민준과 정팔의 방문을 받은 뒤 캐시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업무를 재개했다.
상사의 일에 후라이팬까지 가세하여 머릿속이 매우 복잡했다.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녀는 이민국에 들러, 예전 같으면 민준이 관심을 보였을 사건을 몇 개 받았다. 서류를 정리하니 산더미 같았다. 요즘 상관이 좀처럼 일을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는 항상 ‘일하기 싫어 죽겠다’라고 한탄하면서도 막상 착수하면 일에 미친 사람처럼 굴던 그가 말이다.
‘설마 이대로 은퇴하려는 걸까?’
민준은 45년생 광복둥이다. 인간으로 치면 꽤 많은 나이. 쿼터 엘프 수명은 가늠하기가 힘들지만, 절대적으로 긴 시간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수십 년간 이어진 노동에 지쳤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돈이 궁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썩어 나게 많겠지. 버는 것에 비해 소비가 매우 검소한 편이니까.
‘민준 씨가 은퇴하면, 나는?’
오늘 정팔과 함께 나간 것도 이민국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건 때문으로 보였다.
요즘 이런 일이 잦다. 분명 비서는 캐시인데, 그녀를 거치지 않고 정보도 공유해 주지 않는 일이 늘어났다.
‘이제 나는 필요 없어진 걸까?’
깊은 생각에 빠질수록 우울해지기에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상사가 지금은 다른 데 정신이 팔렸지만 언제 다시 일에 복귀할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하여 준비해 놓는 것이 그녀가 할 일이었다. 평상시의 그로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준비한 서류를 사무실 위에 펼치고, 보기 편하게 메모와 인덱스를 남기던 찰나였다.
딩동-!
‘벌써 끝나고 돌아왔나?’
캐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가 다시 시들었다.
그라면 벨을 누를 리 없지. 마음이 혼잡하니 판단도 흐려지네. 스스로 질책하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문 앞에 서 있는 이는 왜소한 체격의 여인이었다. 상대는 캐시를 보더니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예민준 요원님 계신가요?”
캐시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계세요. 미리 약속을 잡으셨나요?”
“아뇨, 그냥 왔어요.”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캐시는 의아해하면서도 딱딱한 말투로 말한다.
“죄송하지만 요원님은 관외(館外) 의뢰는 거의 받지 않으세요. 더군다나 약속 없이 찾아오시면 스케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하···.”
“아, 오해하셨군요. 아니에요.”
“네?”
“의뢰하러 온 거 아니에요. 그냥,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왔어요.”
캐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민준 씨랑 아는 사이신가요?”
그의 좁은 교우 관계는 훤히 꿰뚫고 있었다. 캐시가 모르는 지인이라면 꽤나 오래전에 알던 사이라는 뜻.
선생 시절 알고 지냈다는 오만석처럼 말이다.
“네, 예전부터 알았죠.”
방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답했고, 캐시는 머릿속에서 그녀의 추정 연령을 순식간에 40세 정도 올려 잡았다.
귀가 뾰족하지는 않으니 쿼터 엘프인가 보군.
“오늘 안 돌아오실 수도 있는데요.”
“아, 그래요?”
그녀는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너무도 풀이 죽은 듯하여 캐시는 주저하면서 덧붙였다.
“그럼, 제가 전화를 한번 해 볼게요. 들어와서 기다리시겠어요?”
그러자 여인은 언제 침울했냐는 듯 화색이 되었다.
“네, 감사합니다.”
방문객을 소파로 안내한 뒤 캐시는 차를 준비했다. 물을 끓이면서 묻는다.
“전화를 안 받네요. 10분 정도 있다가 다시 해 볼게요. 혹시, 민준 씨랑 같이 일하던 분이세요?”
그러자 단발머리의 여인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웃음으로 그 표정을 지워 냈다. 묘하게 안정적인 미소였다.
그러더니 캐시에게 답했다.
“···네, 함께했죠. 일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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