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09
110. Shock and Terror (8) >
***
마법사를 사로잡은 뒤 민준은 빈 병실에서 심문을 시작했다. 본래 최선아의 내면을 먼저 읽어 볼 생각이었으나 순서가 바뀐 것이다. 마법 물질에 중독당해 기절한 그녀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는데, 윰투스의 힘이 회복되길 기다리나 자연스럽게 정신을 차리길 기다리나 시간이 비슷하게 걸릴 것 같았다.
“날··· 죽여라.”
마법사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입 속의 독극물은 제거한 상태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흉흉한 눈빛이었다.
예상했지만 해피 버그는 통하지 않았다. 뇌에 뭔가 조치를 취해 둔 것이다.
민준이 물었다.
“넌 뭐야? 어디에서 보냈지?”
“······.”
“최선아를 왜 노린 거냐?”
“······.”
요원의 질문에 침묵으로 대응하던 마법사는 곧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민준은 손에 피 묻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다. 고문실 비명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할 만큼 마모된 인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평화롭게 심문하고 있었다. 자신 같으면 대뜸 손가락 몇 개 자르거나 이빨 몇 개 뽑고 나서 시작했을 것이다. 기선 제압의 의미로.
하지만 민준은 묵묵히 선 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 후라이팬은 대체 왜 계속 들고 있는 거지?’
고민하는 그에게 민준이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것을 듣던 마법사는.
‘······!’
곧 어떤 가능성에 착안했다.
‘설마!’
깨달은 직후, 그는 머릿속에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맥락을 찾기 힘든 잡동사니 같은 사념이었다. 논리와 개연성 없는 망상이 범람했다. 마법사는 그런 식으로 중요 정보를 표층 의식에서 밀어냈다.
그러자 민준이 쳇, 혀를 찼다.
“눈치는 하나는 빠른 새끼일세.”
그를 훈련시킨 자들은 마인드 리딩 같은 희귀하고도 위협적인 이능력을 알고 있었다. 민준은 자신이 경솔했다는 걸 깨달았다. 고문하는 흉내라도 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요원은 후라이팬에게 묻는다.
‘어때? 이 상태로는 무리냐?’
=으음··· 죄송합니다, 요원님. 이래서는 흙탕물 속 모래알 찾기나 마찬가지라서.=
“그래?”
=잡스러운 것이 너무 많아 원하는 정보만 골라 건져 내기 힘듭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조금이라도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저자와 접촉하는 편이 좋습니다.=
‘손에 묶어 놓을까?’
=기왕이면 뇌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붙여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정신을 보호하는 저항과 장벽이 두텁습니다. 그걸 무너뜨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심리적인 방어막이라.
민준은 단검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고문이 도움이 될까?’
=병행하는 편이 낫기는 하겠지요.=
민준은 후라이팬을 들고 다가갔다. 마법사는 눈을 질끈 감고 필사적으로 잡생각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쉬이익!
그림자가 퍼져 나가 남자의 목을 휘감았다.
“크읍!”
검은 물결은 그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뒤로 꺾었다. 그러자 그는 앉은 채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가 되었다.
구르르!
그림자가 그의 입술 사이로 파고든다.
“읍! 읍!”
마법사는 저항했지만 힘을 이겨 내지 못했다. 출렁이는 그림자가 입을 억지로 벌렸다. 두둑! 턱뼈가 뽑히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남자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다. 정보를 얻어내고자 하는 자가 대상의 턱을 뽑거나 혀를 자르는 일은 없다. 진술이 더 어려워지니까 당연한 일.
그러니, 상대는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닌 게 분명하다.
내면이 간파당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머릿속을 헝클어뜨리던 그때, 민준이 후라이팬을 들어 올렸다. 손잡이 대신 금속 테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리고 마법사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쑥!
“쿠웩!”
민준은 뒤집어 든 편수(片手) 후라이팬의 긴 손잡이를, 마법사의 입 안에 쑤셔 박아 넣었다.
“큽! 우욱!”
눈에 경악과 불신을 담은 채 마법사가 몸부림쳤다. 하지만 후라이팬은 입 안에 꽂힌 채 그의 성대를 짓눌렀다. 마도구가 감탄했다.
=호오! 꽤 과감한 플···.=
민준이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답했다.
“닥쳐.”
후라이팬을 마법사의 뇌 가까운 곳에 접촉시키는 한편, 고문 도중 튀어나올 비명 소리를 경감시키는 일석이조의 조치였다. 겸사겸사, 괴로움에 못 이긴 놈이 자기 혀를 다 씹어 버리는 것도 막고 말이다.
진술할 이의 입을 후라이팬 손잡이로 틀어막은 채, 흑마법사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 시작해 보자고.”
그리고 주저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허벅지를 관통당한 마법사는 짐승과 같은 비명을 질렀다. 소음은 손잡이에 막혀 제대로 터져 나오지 못했다.
지루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
우웅! 우우웅!
몇십 분 뒤, 후라이팬이 진동했다.
민준은 마도구를 입에서 뽑아낸다. 마법사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으으··· 으으으···!”
화륵!
민준은 손에 묻은 피를 모두 태워 내는 동시에 손잡이도 소독했다. 부러진 채 박힌 이빨과 잇몸 조각, 피와 침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런 뒤에야 그 부분을 잡고는 말한다.
“대충 다 캐냈나?”
=더 이상은 나올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확답을 받은 순간 마법사를 기절시킨다.
“이 새끼, 뭐야?”
=일단 소속은 말이죠.=
민준은 예상했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에이브람스 헬퍼 서비스?”
한창 위세를 떨친다는 살인 청부 업체.
그래 봤자 민준 귀에 들린 적 없는 걸 보면 그리 대단치는 못할 터다.
“걔네들이 국회의원 딸을 왜 납치하려는 거야? 암살도 아니고.”
=아··· 사실은 암살과 납치 양쪽으로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아서 벌인 짓은 아니라는군요.=
“외부 의뢰가 아니면, 내부적인 지시가 있었나?”
=네, 그럴 동기가 있었습니다.=
후라이팬은 여전히 경쾌함을 잃지 않은 어조로 설명한다.
=이 회사에서 암살과 납치 말고 내세우는 서비스가 또 하나 있는데 말입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고객이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타깃을 죽이거나 납치해 달라고 요청할 때, 반대로 그 타깃에게 카운터 오퍼를 제시한다는군요.=
‘당신을 죽여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까?’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목적은 타깃과 협상을 해서 원 의뢰인이 동원할 수 있는 돈보다 큰 금액을 뜯어내는 것.
민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뻔하디뻔하군.”
=이번에도 그런 케이스입니다. 곽도출이 의뢰를 넣은 것이 시작점입니다. 자기 아내를 죽여 달라고 했다네요.=
“아니, 잠깐만. 뭔가 엇갈린 거 아니야?”
결과적으로 죽은 사람이 곽도출이긴 한데, 그는 암살자가 아니라 부인 손에 의해 죽었다.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람피운 건 그 새끼 아니었어?”
정팔의 설명에 따르면 파국 원인을 제공한 건 남편 쪽이었다.
그러니 아내가 먼저 의뢰를 넣으면 모를까, 왜 남편이?
=재산 문제가 아닐까 추측하던데요?=
“······.”
민준은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최선아의 부친은 4선 의원인 동시에 내로라할 거부다. 귀책 사유를 제공한 곽도출은 그대로 갈라서면 쥐뿔도 없는 빈털터리가 될 터.
하지만, 이혼 전에 아내가 유명을 달리한다면?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였군.”
=그래서 업체에서는 최판석 의원에게 카운터 오퍼를 날렸다고 합니다. 당신 가족 중 한 명을 살해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고요. 돈을 내면 반대로 그 의뢰인을 죽여 주겠다고 한 거죠. 아무리 주판알을 튕겨 봐도 곽도출보다 의원 쪽에 뽑아 먹을 게 많아 보였던 겁니다.=
하지만 의뢰를 누가 넣었는지, 구체적인 타깃이 누군지는 일체 알려 주지 않았다고.
“그것까지 모두 알려 줬다간 최판석이 업체에 돈 내고 역공작을 의뢰하지 않았겠지. 알아서 자력 구제에 나섰을 거야. 그걸 예상하고 입을 다문 거군?”
=정확합니다. 최판석의 힘으로 곽도출 하나 묻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설마하니 사위가 딸을 죽이려고 의뢰했다고는 상상도 못 한 눈치였답니다. 워낙에 그 전에도 살해 협박을 많이 받아서 그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 거죠.=
고뇌하던 최판석은 거금을 내고 헬퍼 서비스의 오퍼를 수락한다.
의원도 나름의 정보망을 통해 이들의 명성과 평판을 확인한 뒤였다.
=사기는 아닌 거로 판단했을 겁니다.=
이런 경우 일이 완수된 뒤 최초 의뢰인 정체를 포함한 모든 것을 공개한다고 하니 믿기로 한 것.
그가 송금한 뒤 헬퍼 서비스의 ‘본사’는 적절한 킬러를 파견하려고 했다. 이능력자도 아닌 곽도출은 쉬운 타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변수가 발생한다.
=거기 고용된 킬러도 실력과 성과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뉜다는데요, 그중에서도 파트너 등급 킬러가 이 임무에 관심을 보였다는군요.=
그런데 그 킬러가 여러모로 특이한 자였다.
=그쪽 세계에서는 나름 전설적인 암살자라는데요?=
민준은 또 한 번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표현이었기에.
=혼자 오랫동안 일하다가 최근 이 업체에 합류했는데 그 정체가 같은 킬러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알려진 적 없고, 더 중요한 건 실패한 적도 없다는군요. 천(千)의 얼굴을 가진 암살자라는 말이 돌 정도로 변신에도 능하고 자신에 대한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답니다. 심지어 인터폴에서도 이자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서 수배 내리지 못한 상태라는군요. 그나마 알려진 것은 주로 검을 쓴다는 것 정도라고···.=
그때 민준의 두 눈이 커졌다.
“검?”
=네. 그래서 그쪽 세계에서 불리는 별명이 블레이드(Blade)랍니다. 좀 유치하긴 합니다만.=
“계속 이야기해 봐.”
=본사에서도 이 양반을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다나 봐요. 어차피 한국에서 맡길 임무가 하나 더 있었던 상태라, 그냥 둘 다 해결하고 오라고 보냈답니다. 그런데 이 작자가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멋대로 굴기로 유명했지만 그래도 일에 지장을 준 적은 없다는 그 킬러가 큰 사고를 쳤다.
그것도 두 가지나.
그중 첫 번째는···.
=원래 최선아가 그런 식으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면 안 되는 거였다고 합니다.=
곽도출을 죽이는 훨씬 좋은 방법이 많을 것임에도 킬러는 최선아를 ‘조종’하여 그의 목을 날려 버렸다. 역의뢰를 넣은 고객의 딸이자 최초 의뢰의 타깃이었던 그녀를 말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다. 근처에 돌아다니던 아무 오크나 하나 골라도 됐었을 텐데.
더 치명적인 실수는, 현장에 증거까지 남긴 것이다.
=원래 흉기를 포함한 모든 증거를 감쪽같이 현장에서 숨겨 버리는 것이 그 킬러의 특기였는데··· 이번에는 실패한 것이지요.=
여기까지 들은 민준은 슬슬 그 ‘전설적인 킬러’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터폴이 그를 체포하지 못한 이유도.
“두 번째 사고는 뭔데?”
=본사에서 그 킬러에게 원래 맡기려고 한 임무 있잖습니까? 그게 한국의 국회의원 한 명을 처리하는 거였답니다.=
민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설마?”
=네, 오늘 시신으로 발견된 그 의원이라고 하는군요.=
미등록 웨폰 마스터에게 살해당한 국회의원.
그도 헬퍼 서비스의 타깃이었던 거다.
“그럼 그놈들 입장에서는 의뢰 성공이잖아? 죽였으니까. 그게 왜 사고야?”
=이번에도 처리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난이도가 매우 높은 임무였다고 하는군요. 그 의원이, 대체 뭘 그리 걱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능력자를 몇 명이나 고용해서 24시간 경호를 유지하고 있었답니다.=
따라서 암살자 입장에서도 은밀하게 침입하여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블레이드라는 작자가 이번에는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한국 지부의 킬러를 조종했다고 하는군요. 그동안 그와 본사가 연락을 주고받는 매개체 역할을 했던 자를요. 결국 타깃은 죽였지만 한국 지부 킬러도 사망했습니다.=
후라이팬은 마법사가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인물을 민준에게 보여 주었고, 민준은 사념파 속에서 익숙한 트롤의 얼굴을 확인했다.
담뱃가게를 운영하던 미등록 웨폰 마스터였다.
‘저 트롤이 청부 업체의 한국 내 연락책이었다?’
민준은 망자의 기억을 떠올린다. 지폐와 담배를 주고받던 두 사람.
‘저 남자와 접선했을 당시 최선아는 이미 조종당하던 상태라고 보는 게 맞겠군. 본사와 연락하기 위해 그 트롤을 찾아갔던 거겠지.’
블레이드가 직접 움직이는 대신 최선아를 앞세운 이유를, 민준은 알 것 같았다.
‘남은 의문은 이거군. 왜 갑자기 이상한 짓을 연달아 벌이지? ‘검’을 경찰에 노출하고, 의뢰인 딸을 도구로 써먹고, 동료를 조종해서 죽여 버리는 건··· 거의 광기에 가깝잖아?’
갑자기 미쳐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그래서 본사는 영문을 모른 채 일단 블레이드를 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갑자기 팀킬을 당했으니까요. 그리고 최선아를 납치하려고 한 건, 타이밍 때문입니다. 그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직전 하필 이 임무에 관심을 보였잖습니까?=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민준처럼 그녀에게서 사소한 단서라도 캐내려고 한 것.
하지만 그녀가 오늘내일하는 상황이라 손을 대지 않고 기다렸다. 역의뢰주인 최판석 의원에게 결과 보고도 미뤄 둔 채.
그러다가 그녀가 오늘 기적처럼 회복하자 일단 납치를 꾀한 것이다.
민준은 짧은 고민 후에 결정을 내렸다.
“그 청부 업체 놈들을 한번 털어 봐야겠어.”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최선아의 내면부터 읽은 다음에 말이야.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조종당한 것에 불과한지··· 아니면 뭔가 더 숨겨 놓은 것이 있을지 봐야겠어.”
물론 의원이 보는 앞에서 그 딸내미 입에 후라이팬 손잡이를 물릴 수는 없고, 최대한 비밀스럽게 캐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병실로 돌아온 민준은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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