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20
121. Shock and Terror (19) >
***
설마?!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한 후라이팬이 기겁하며 말했다.
=요원님! 잠시만요. 설마 저걸 직접 손에 쥐실 생각입니까?=
“어.”
=위험합니다! 저 검이 저랑 비슷한 종류라면···.=
후라이팬은 그를 만류했다.
얼마 전까지는 후라이팬 자신도 민준의 정신을 미약하게나마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일 개체를 세뇌하는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난 검은 당연히 더 위험할 것으로 여겨졌다.
=혹시라도 세뇌당하면 어떡합니까! 저를 자꾸 까먹으셨던 것처럼요!=
하지만 민준은 머릿속에 어떤 개념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느끼고 있었다. 내면에서 무언가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움직였다. 확신과도 다르고 예감과도 다른 무언가였다.
찰나, 그것과는 결이 다른 충동이 그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쿵! 쿵! 쿵!
이것이 아시프-1의 파편이 맞다면.
제출해야 한다.
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쓸데없는 짓은 금물이다. 충동적인 행동은 억제한다. 제출해야 한다. 보고. 보고한다. 위원회에···.
으드득!
잇소리 섞인 저음으로 뱉었다.
“···닥쳐!”
사지를 옭아매는 것처럼 억누르던 금언(禁言), 전신 핏줄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파앗!
그에게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아주 짧게 터진 섬광. 그것을 경찰들도 모두 보았고, 가뜩이나 돌처럼 굳어 있던 그들은 이제 호흡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그 상태로 민준은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우웅! 우우웅!
‘기회다!’
검은 흥분했다.
‘잡았다!’
몸이 닿은 찰나.
블레이드는 필사적으로 민준을 세뇌하려고 시도했다.
저자의 정신을 자신의 통제하에 둔 다음, 타깃인 국회의원 스물아홉을 베고 이곳을 탈출할 생각이었다.
예지 능력자의 말에 따르면 저자들은 미래에 이 나라 인류 절반 이상의 삶을 처참하게 유린하고, 빈민으로 전락시키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게 이끌 씨앗이었다. 또한 인외종족에게 가혹한 테러를 가할 미래 범죄자들을 후원할 뒷배였다.
가슴속에 품은 긍지가 선인지 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들의 행동이 낳은 결과가 중요하다. 저들은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이끌 것이다. 그러니 죽여야 한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요원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세뇌가 통하지 않는다.
블레이드가 당황한 사이.
민준의 입술이 열리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군.”
그것을 들은 후라이팬은 어색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그의 정신 표면과 더 깊은 부분을 함께 건드리는 어떤 감각이었다.
어조는 지금까지 알던 민준과는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후라이팬은 자신이 그 낯선 사람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알고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블레이드는.
=그대··· 는?=
에고 소드는 손잡이를 잡은 민준의 정신을 느꼈다.
거대하고, 위대한 정신.
그리고 지금 후라이팬이 느끼는 것 같은 원인 모를 동질감에 휩싸였다.
‘잠깐, 동질감?’
완전히 같지는 않다. 하지만 뭔가 비슷하다.
“······!”
한편, 민준은 내면에서 차오르는 감각에 집중했다.
묵직한 흐름이 빈 곳을 채우고 울림을 터뜨렸다. 한편 메마른 가지에 싹이 돋듯 조각나 있던 기억을 연결시켰다. 먼지 쌓인 기적의 퇴적층이 몸부림치며 뒤틀고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뒤섞었다.
초조함을 참지 못한 블레이드가 물었다.
=왜, 통하지 않는가? 그대에게는?=
그리고.
=난 왜, 그대에게 이런 익숙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오?=
민준은 양손에 든 두 개의 ‘파편’을 바라보았다.
오늘까지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조각끼리 만나면 자연스레 서로 인지하고 동질감을 느낄 것이라고. 그 결과 예단키 어려운 특이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그것을 통해 파편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후보인 후라이팬을 들고 다른 파편으로 추정되는 것을 찾아다녔다.
결과적으로 짐작은 틀렸으나, 그의 행동은 옳은 것이 되었다.
핵심은 파편 두 개가 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조각들이 누구에 의해 수집되어, 누구의 손안에 모이느냐는 부분이었다.
그는 오래 묵은 질문을 떠올린다.
위원회는 왜 아시프-1의 파편에 그런 고액의 현상금을 걸었는가?
전 차원계에 그런 파편이 몇 개나 뿌려졌는가?
위원회는 수형자들이 그 파편을 몇 개나 찾아오든 모두에게 같은 현상금을 지불할 것인가?
‘모두 쓸모없는 질문이었어.’
그는 이것들을 그 누구에게도 반환하지 않을 테니까.
파앗!
다시 한번 아름다운 빛이 산란한다. 단순히 거리를 좁힐 때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던 검과 후라이팬은 이제 공명하고 있었다.
그 매개가 된 것은 민준이었다.
민준의 몸을 통해 연결된 순간 파편이 서로를 인지한 것이다.
그는 후라이팬에게 말했다.
“한때 네가 내 정신 속에 발자국을 남겼지. 이제는 모두 메워졌지만, 잠시라도 흔적을 남긴 건 잘못된 것이었어. 원래 너희들은··· 내게는 그럴 수 없어. 애초에 그럴 수 없게 태어났거든. 그 사실을 나조차 잊고 있었기에 잠깐이나마, 제한적으로라도 그럴 수 있었던 거야.”
그들을 바라보며.
“잘못된 일이었지. 그러니 이제 너희 중 누구도 내 정신에 지문을 남길 수 없어.”
민준은 이유를 설명한다.
“왜냐면 내가···.”
두 파편은 경직 속에서, 조용한 기대감을 담아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게드윅은 긴장 속에서, 아찔한 걱정과 함께 상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겠다, 게드윅.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대위원님.”
게드윅은 동족 카바이트 출신 대위원에게 안건을 보고하고 재가를 청하러 들른 참이었다. 다행히 그의 건의는 받아들여졌다.
허락을 받은 그는 확인하듯 말했다.
“아시프-666을 대상으로 한 고강도 세무 조사를 즉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결정은 위원회 본부에서 구체적으로 조율된 뒤 조세징수사령부로 전달될 것이다.
대위원은 대답 대신 몸을 덮은 갈색 털을 살랑거린다.
‘휴, 잘 풀렸다.’
게드윅은 그제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대위원 앞에 서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다시 깨어난 자들’로 분류되는 이들임에야.
아득한 고대에, 종족 모두의 결의로 시작된 깊고도 오랜 잠을 견딘 자들. 기나긴 시간을 넘어 다시 눈뜬 역사의 산증인들.
현대에 돌아온 뒤에는 위원회의 뿌리가 되고 달란트의 채굴법을 정립한 역사적인 인물들. 그중 한 명을 게드윅은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예를 올리고 물러나려던 게드윅이 문뜩 묻는다.
그가 오랫동안 궁금해하던 질문이었다.
“혹시 제가 올린 다른 안건은···.”
위원은 제스처로 의지를 분명하게 표했다.
거부하며,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아시프-666을 중심 차원으로 소환하자는 건의? 거기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반대하는 대위원들이 아직 존재한다.”
엔델리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네도 알다시피, 세무 조사면 모를까··· ‘재배치’와 관련된 건은 대위원들 결의가 필요하지.”
카바이트는 그동안 생각하던 것을 조심스럽게 읊는다.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아시프-666의 퇴직금은 5백만 달란트가 넘습니다.”
“정확히는 5,124,990달란트지.”
상대가 죄수의 퇴직금을 작은 단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게드윅은 놀랐다.
그래서 의혹이 더욱 깊어졌다.
“액수가 큰 만큼 위험한 범죄를 저질렀겠지요?”
대위원은 침묵으로 다음 말을 재촉한다.
“고작 800년 전 일임에도 관련 기록이 모두 삭제되어 저는 그 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만··· 그런 자를 계속 변방만 돌게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노동 교화 기간도 너무 깁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같은 죄수 인식 번호 하에서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역을 이어간 적이 없다.
아시프-666을 제외하고는, 본래 종족이 단생종이든 장생종이든 간에.
“······.”
의문을 표하는 중간 간부를 유심히 바라보던 대위원은 말한다.
“자네 걱정이 무언지는 알겠어. 그 염려는 아무래도 아시프-666의 죄목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더 커진 것 같군.”
중간 간부는 동의했다.
많은 수형자들이 그렇듯 아시프-666에 대한 정보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매우 심했다.
대위원이 묻는다.
“자네가 아는 가장 악독한 범죄자는 누구이지? 생존 여부를 떠나서.”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아시프-1 아니겠습니까?”
“맞네. 그의 죄목이 무엇이던가?”
“테러였습니다.”
위원회가 경험한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
그를 기억하는 모두의 뇌리에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남긴 장본인.
최초의 수형자.
“그럼 아시프-1이 테러를 저지르려고 했던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위원회입니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충분한 답도 아니군.”
“······?!”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사실을 대위원은 정정해 주었다.
“그가 노린 대상은 ‘모두’ 였네.”
위원회 공용어로 ‘모두’를 뜻하는 단어는 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단어가 지칭하는 범위가 말 그대로··· 너무 넓기 때문이다.
카바이트는 되묻는다.
“우리 모두라면, 모든 고대 종족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는 감출 수 없는 떨림이 묻어 있었다.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아시프-1은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품은 것이었다.
아무리 대단하고 강력한 테러리스트라도 그런 능력은 갖출 수 없다. 말 그대로 전능(全能)에 가까운 능력자가 아니고서야···.
그런데 이어지는 대위원의 말은 기절초풍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아니네. 말 그대로, ‘모두’야.”
“······?!”
“아시프-1은 우리 모두를 무(無)로 되돌리려 했어.”
“대위원님, 설마 지금 지칭하신 것이··· 차원계의 모든 생물입니까?”
“자네의 상상력을 생물에 국한하지 말게.”
게드윅은 자신이 숨 쉬는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런 테러는 불가능합니다!”
“자네의 감상과 판단, 상상력의 한계에 대한 평가는 미루도록 하겠네. 어쨌든 아시프-1이 테러를 저지르고자 한 대상은 말 그대로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었어.”
대위원은 다음 말을 속으로 삼킨다.
엄밀히 말하면 아시프-1이 거짓으로 판단한 모든 것이 테러의 타깃이긴 했으나, 카바이트 입장에서 해석하면 전 차원계의 모든 존재로 치환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
“그런 악독한 범죄를 꾀하고 실현하고자 한 범죄자도 죄목이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되어 있네. 하지만 아시프-666의 죄목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중간 간부가 고심 끝에 대꾸한다.
“설마 아시프-1보다도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까?”
“더 흉악하다라··· 표현이 지나치게 애매하군. 악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퇴직금을 책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죄목을 공개하고 숨기는 것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네.”
대위원은 부하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
“자, 한 번 더 생각하자고. 왜 공개하지 않겠는가? 질문의 본질에 집중해 보게.”
게드윅은 곧 답을 도출해 냈다.
“그 죄목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는 순간, 새로운 위험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까?”
“정확하네.”
대위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하지. 수형자 번호가 검거 순으로 매겨지기 때문이야. 그래서 아시프-1과 아시프-666을 비교할 때 전자가 더 오래된 존재라고 착각하기 쉬워. 하지만 그렇지 않다네. 인과가 거꾸로 연결될 수는 없으니.”
“인과라니요···?”
“어차피 자네도 곧 에반쥴급으로 승진할 터이니, 이번 기회에 그의 비밀을 알려 주지.”
게드윅은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다.
방금 대위원은 공언한 것이다. 자신이 곧 다음 단계로 승진할 것이라고.
저 위치에 오른 존재가 약조한 이상 반복될 리는 없다. 카바이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를 향해, 까마득한 과거부터 존재해 온 위대한 동족이 말했다.
“아시프-666의 죄는···.”
담담한 어조로 비밀을 털어놓는다.
“사상 최악의 범죄자를 창조한 것이라네.”
***
민준은 손에 들린 두 파편에게 말했다.
먼 간극을 채우는 듯한 울림이었다.
“왜냐면 내가, 너희들을··· ‘너’를 만들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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