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19
120. Shock and Terror (18) >
***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고정된다.
최선아는 말한다. 능력이 처음부터 이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예지 능력자가 조우하는 어려움을 그녀도 그대로 겪었다.
“도통 제대로 통제가 불가능했고, 보고 싶지 않은 미래도 많이 봤죠. 쓸모없는 정보도 많았고. 단편적인 장면만 봐서는 의미를 해석하기 힘든 경우도 많았어요.”
“거기서 그나마 의미 있는 걸 추리는 게 내 역할이었소. 물론, 그것만으로도 내게 큰 기회와 이득을 주었지만. 정말 보물 같은 아이지.”
그런 그녀가 완전히 바뀐 계기는 몇 년 전의 테러였다.
처음부터 인간우월주의자들은 그들 부녀에게 테러를 줄기차게 가했다. 인간이 오크에게 입양되었고, 심지어 그 오크가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사실은 그들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열등해야 할 오크 따위가 인간 다수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심지어 인간을 부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 한 가지 이유가 더해졌다.
그녀가 하필 곽도출과 결혼했기에.
연기파 배우 곽도출은 조직폭력배, 비리 국회의원, 동네 건달 등의 역할을 주로 맡는 것으로 유명한··· 오크다.
부녀는 시선을 주고받는다.
“아버지는 내 영웅이었어요. 그런 사람과 닮은 남자에게 끌린 건 어쩔 수 없었죠. 다만··· 껍질 속 내용물은 쓰레기였지만.”
부친이 말렸지만 그녀의 의지로 강행했다.
예지하지 못한 선택, 잘못된 결혼의 말로는 처참했다.
최선아는 허탈하게 웃는다.
“결혼하고 테러를 당하기 전까지 내 능력은 뛰어났어도 지금 정도는 아니었어요. 국가적 규모 사건 사고는 예언하면서 정작 내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는 예지 못 한 거예요.”
미래 시점에서 그 사건을 인지하는 사람 수가 적을수록 예지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능력이 약할수록 이런 페널티는 강해지는 것.
“결혼할 남자가 멍청하고 못돼먹었다는 사실도, 그 남자와 결혼하면 종족차별주의자들을 자극해서 마법 독에 중독당할 거라는 것도 예언을 못 했죠. 이 능력의 단점이 이거예요. 등잔 밑이 어둡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후유증은 치명적이었다.
“선아는 가뜩이나 몸이 약한데 중독된 채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었소.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최고위급 사제가 나서야만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지.”
그런 성직자는 드래곤급의 권력자가 아니면 부리지 못한다. 한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으로도 부족했다.
“생명의 위기가 닥쳐오니 저도 나름 필사적이었어요.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죠.”
목숨이 경각에 달했기 때문일까?
필사적인 본능의 피로였는지 그녀의 예지 능력은 몇 단계 상승했다. 생명의 위기와 마주한 자들의 능력이 상승하는 것은 종종 보고되는 일이다. 덕분에 과거에는 닿지 못했을 영역까지 도달했다.
“덕분에 완성된 퍼즐을 보았어요. 어떤 사람과 엮인 끝에 내가 사는 미래를.”
그 과정의 시뮬레이션을 위해 수백 번, 수천 번 예지를 반복했다.
“오직, 그 사람만이 날 치료할 수 있어요.”
블레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교황급 성직자라는 말인가?”
“본인에게 그런 신성력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런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예지로 본 정보는 제한적이라···. 또, 이상하게 그에 대한 예언은 다른 사람에 대한 것보다 흐리고 불확실해요. 그나마 명확하게 아는 건 이거예요. 그가 내게 흥미를 가지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날 살려낼 거예요.”
오크가 말을 거들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당신의 존재를, 그 ‘검’을 사람들에게 노출해야 해요.”
블레이드는 잠시 침묵했다.
눈앞의 예지 능력자는 자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사실, 그의 알려진 특징은 최판석의 정보망을 통해서도 입수할 수 있었다. 사람을 세뇌하는 능력이 있으며 검을 주로 쓴다는 것.
하지만 그 정체가 검이라는 판단은 예지 능력으로 얻은 정보를 기존 지식과 조합한 결과였다.
“어째서지?”
“내 몸은 완전히 한번 망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 사람이 날 치료하고 살려 내서 내 머릿속 정보를 꺼낼 필요를 느껴야 해요.”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렇게 접근하면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매우 중요한 비밀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숨기고 싶어 하거든요.”
진화된 능력으로, 셀 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반복한 뒤 얻은 확신이었다.
“디테일한 내용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노출될 리스크를 피하려 하니 억만금을 약속해도 불가능해요. 나 같이 연고도 없는 사람 한 명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에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내가 당신을 손에 쥔 채 나타났다가 떠들썩한 사건을 만든 다음 혼수상태에 빠지면, 그는 무조건 내게 호기심을 품게 돼요.”
고위 성직자가 잘 통제된 상태로 발한 신성력은 망가진 몸을 건강한 상태로 돌려놓는다.
그 과정에서 부서진 뼈와 근육을 다시 맞출 뿐만 아니라, 몸을 오염시킨 마법 독 역시 깨끗하게 정화할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가지 더.”
그 계기가 될 ‘떠들썩한 사건’은 이미 구상해 두었다.
최선아에게는 죽여야 할 사람이 있다.
“나는 남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테러를 당했어요. 시한부 처지가 되었구요. 내 선택이었던 건 알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지경이 된 날 두고 외도했죠.”
죽어가는 아내를 팽개치고 다른 여자와 배를 맞춘 남편.
“그것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어요. 결국엔 나를 죽여 달라는 암살 의뢰까지 넣었고.”
블레이드에게 설명한 그녀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곽도출과 내연녀를 죽이는 것. 그리고 자신을 치료할 수 있는 누군가의 이목을 끄는 것.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방법을 그녀는 예지 능력으로 찾아냈다.
하지만 블레이드는 의문을 품는다.
‘곽도출이 본사에 의뢰를 넣은 건 최선아가 마법 독에 중독된 뒤일 텐데. 그래도 예지를 못 한 건가? 아니면 미리 알고서도···.’
어차피 죄지을 걸 알았다면, 그러기에 충분한 악한 본성을 품은 것을 알았다면··· 그 죄를 범할 때까지 일부러 방치한 것인가?
‘결국 죽일 죄를 범할 사람이라면, 죽이는 게 맞으니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최선아가 단언했다.
“치정 살인으로 눈길을 끄는 동시에 살인 혐의를 벗으려면 당신이 노출되어야 해요.”
모순된 개념의 연결이었지만 최선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의원이 말을 얹었다.
“사람 홀리는 검의 존재를 경찰이 알 필요가 있소. 그리고 입증까지 해야 하지.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를 세뇌하는 방식이 제일 좋지 않을까 싶소. 선아가 그 연놈들을 죽인 건 당신에게 세뇌당한 상태에서 저지른 짓임을 인식시키고 무혐의로 만드는 거지.”
블레이드는 고심 끝에 동의했다. 최선아를 살리는 계획에 참여하기로.
일단 상대가 뛰어난 예지 능력자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만약 배신한다면, 지구 최고의 암살자로 꼽히는 그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처단할 것이니 허튼 생각 하지 말라고 엄포한 뒤였다.
그러자 최판석이 말했다.
“그럼, 다음 안건을 이야기해 봅시다. 당신이 이 나라에 와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 다른 의뢰에 대해서.”
블레이드가 흠칫했다. 그는 곽도출 말고도 국회의원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의뢰주 신상은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
“설마?”
최판석이 웃었다.
“맞소. 그것도 내가 넣은 의뢰지.”
단순한 미끼는 아니었다. 예지 능력자의 안배는 하나의 행동으로 여러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수많은 점을 연결시킨다.
“한 명을 죽이는 김에, 나머지 스물아홉도 죽여 주지 않겠습니까?”
부녀는 블레이드가 그래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지진이 멎었다.
최판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병상의 딸을 바라보았다.
“몸은 어떠냐?”
최선아는 애써 웃으며 답했다.
“좀 놀랐지만 괜찮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몸 상태는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그 정도냐?”
“네. 독에 중독되기 전 상태와 비교해도 지금이 훨씬 나은걸요?”
그녀는 여전히 레드 드래곤이 소유한 대학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민준이 이민국에게 의뢰한 철통같은 경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처음같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젠킨슨은 FM주의자 비서가 과한 조치를 취한 것을 알고 경비 인력을 재조정했다. 지금 수준으로도 최판석은 만족스러웠다.
제아무리 세계 제일의 청부업자 조직이라고 해도, 이 정도 경호망을 뚫고 딸의 목숨을 노리지는 못할 것이다.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자꾸나. 여기보다 안전한 곳은 없으니.”
“그런데···.”
최선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왜 그러니?”
그녀는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양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말씀해 주지 않으실 건가요?”
최판석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다, 선아야. 말할 수가 없구나.”
지금 상황은 기억을 잃기 전의 딸과 블레이드, 자신이 모여 협의를 한 결과였다.
그녀를 치료할 열쇠를 쥐고 있다는 ‘그 남자’에 대해 최선아는 이상할 정도로 불확실하고 흐릿한 예지만 반복했다.
결과적으로 이래야 살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작 그의 정체는 명확하게 알지 못했고 사건의 흐름 곳곳에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남자가 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몰랐다.
조각조각, 미래 정보에 대한 불완전한 파편만 머릿속에 흩뿌려진 상황이었기에 부녀가 머리를 맞대고 그것들을 이었다.
최판석은 생각했다.
‘설마 그 요원이 바로 예지 속의 남자였을 줄이야.’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그의 배경을 알고 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연유로 엮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레드 드래곤 젠킨슨이 친우로 인정한 남자였다.
기억을 잃기 전, 최선아는 예지를 통해 단언했다. 그 남자와 마주치기 전에 자신의 기억을 모두 지워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의 수는 모두 파국으로 이어졌다.
그 말에 따라 블레이드는 그녀의 몸을 완전히 망가뜨리기 전 민감한 정보를 담은 기억을 깨끗하게 삭제해 버렸다.
“하지만··· 불안해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니 도출 씨가 죽어 있는 것도 모자라서··· 심지어 제 손으로 죽였다니···!”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그런 양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최판석은 굳게 무언가를 다짐했다.
‘오히려 잘된 거다.’
위로하듯 말을 건넨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건 누군가 꾸민 짓이야. 넌 요사스러운 아티팩트에 홀려 넘어갔을 뿐이고 살인마는 그 검이다. 너는 이 상황에 휘말린 피해자란다.”
그렇게 안심시키며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네 죄는 이렇게 사해지는 거야.’
최선아는 과거에 스스로 계획하고 범한 모든 것을 잊었다. 또한, 곽도출과 하프 엘프를 죽일 때도 비록 그 손으로 목을 쳤으나 정신은 블레이드에게 조종당한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최선아의 영혼은 무고하며 결백하다.
죄를 범한 기억이 없고, 의식도 없이 죄를 범한 그녀를 벌할 수 있을 것인가?
최판석은 확신했다.
‘오히려 잘된 거야. 넌 그런 것까지 모두 기억할 필요가 없다. 괜한 죄의식에 몸을 떨 필요도 없어.’
최선아의 정신은 죄를 저지르기 전 결백한 상태로 남는다.
대신 최판석이 기억할 것이다.
혹시 딸이 미래 정보를 토대로 과거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도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자, 몸이 괜찮으면··· 부탁해도 되겠니?”
깨어난 후 첫 요청이었다.
최선아는 눈물을 훔쳐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 시뮬레이션한 결과, 최선아가 볼 수 있었던 ‘그녀가 생존하는 미래’의 가장 뒤 시점은 지금 이 순간이었다.
서울에 지진이 발생한 즈음.
‘결과적으로 모두 잘 풀렸다. 선아는 완벽하게 회복되었고 무혐의로 처리될 것이며 레드 드래곤의 입김 하에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어. 곽도출과 상간녀는 죽었고, 인간중심당 쓰레기들 중 기필코 죽여야 할 놈은 죽였어.’
최선아에게 테러를 가하여 중독시킨 집단과 연관이 있다고 파악된 한 명은 무조건 죽여야 했다.
남은 스물아홉은··· 예지 대로라면 ‘그 남자’의 충실한 종이 되었을 터.
‘예지 속에서, 그는 결국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잡았다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알수 없다는 거야.’
블레이드가 요원을 세뇌하고, 그 요원이 다시 그 스물 아홉을 통제한다면 그 이상의 해피 엔딩은 없다.
의원 서른 명을 모조리 죽여 버리면 올해는 국회 상황이 매우 순조롭겠지만 문제는 그다음 해다. 어차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질 것이고 공백은 메워질 터.
그러니 더 좋은 옵션은 그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을 잃기 전 최선아가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가 손잡이를 잡은 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예지가 불가능했다.
이제는 몸 상태가 회복되었고 시간이 충분히 흘렀으니 달라졌을지도.
최판석은 기대감 속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최선아가 눈을 다시 떴을 때.
“······?!”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최판석은 당황했다.
“서, 선아야. 왜 그러니?”
수양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마치, 끔찍한 악몽이라도 꾼 듯한 표정이었다.
***
민준은 검 앞에서 잠시 침묵했다. 후라이팬은 여전히 감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중이다.
‘뭐야? 아무것도 모르겠어?’
후라이팬은 드물게도 풀이 죽은 정신파를 흘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조각’을 보면 뭔가 느껴질 것 같았는데···. 지금 아무것도 와 닿는 게 없습니다.=
민준은 짜증을 느꼈다. 설마 허탕을 친 것인가?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가.
“잠깐만.”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
민준은 아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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