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39
140.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12) >
***
며칠 만에 돌아온 홍콩은 빠르게 안정화된 상태였다. 민준은 해발 500미터 산꼭대기에 위치한 고급 맨션 발코니에서 생각에 잠겼다.
홍콩 부자들은 복잡한 도심 대신 해변이나 산기슭에 거주하는 걸 선호한다. 중심가에 접근하려면 차량으로 20~30분 넘게 걸렸지만 그들에게는 큰 불편사항이 아니었다. 특히 이 맨션의 주인에게는 더욱 그랬다. 어디로 움직이고 싶으면 텔레포트를 하거나, 드물지만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면 그만이니까.
지금 민준은 고룡 레이먼드 웡의 자택 응접실에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광동연방 수도의 랜드마크가 무너지고, 고룡이 살해된 채 발견되고, 반경 6km짜리 촉수 생물이 등장하는 사건이 발생해도 동북아 금융 허브는 활발히 움직였다.
물론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르지만 멀찍이 산꼭대기에서 응시하는 도심은 평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론 통제와 국가의 강력한 의지가 결합한 결과다. 홍콩은 급속도로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95일 뒤로 다가온 차기 로드 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하느라 기묘한 활기가 돌기까지 했다.
민준은 ICC 빌딩이 터를 본다. 드래곤들이 나선 덕분에 폐허는 아무 일 없던 듯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며칠 전까지 그곳에 뉘어 있던 고룡의 시신이 환영처럼 겹친다. 멀찍이 밀쳐 두었던 애도의 감정이 차올랐다.
“······.”
당장의 복수는 그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룡을 죽인 범인이 위원회라고 단정 지었으니 더욱···.
빠른 시일 내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훗날 민준의 복수가 완료될 때, 로드의 원한까지 얹어 그들 숨통에 칼날을 박아 넣으리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범인이 위원회가 아닐 수 있다니?
‘오늘 그 작자를 만나면 뭔가 단서를 잡을 수 있겠지.’
민준과 켄티우스는 레이먼드 웡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왔지만 상대는 바쁜 일이 있다면서 그들을 대기시켰다. 고룡다운 뻔뻔한 태도였다.
“음?”
그때 민준의 생각이 잠시 끊겼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룡이 드디어 그 면상을 내밀 준비가 되었나?
똑똑.
응접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민준이 기대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켄티우스?”
그는 모히칸 스타일 머리를 분홍색으로 물들인 엘프였다.
얼굴과 팔은 각종 문신이 덮었다. 귀가 여타 종족보다 훨씬 긴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싶었는지 귓바퀴를 따라 피어싱이 가득했다. 결막까지 검게 염색해서 흰자와 검은자 구분이 되지 않는 모양새였다. 혹시 야밤에 가로등 아래에서 마주친다면 상대를 기겁하게 만들 몰골이다.
이름을 불린 드래곤은 상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레오?!”
상대는 홍콩의 밤하늘에서 자주 쇼를 펼치는 관종 드래곤이었다.
홍콩을 영지로 삼은 고룡의 아들.
엘프로 폴리모프한 그는 켄티우스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교류한 사이라고 했다. 발코니에 있던 민준이 들어오자 그에게도 눈인사를 건넸다. 저 또래 드래곤답지 않은 반응이다. 용이 아닌 종족에게는 오만하게 굴거나 무시하는 것이 보통이니까.
“아버지 손님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아, 맞아. 그분이 우릴 불렀지.”
근황을 짧게 주고받다가 레오가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 다른 일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켄티우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뭐···. 어쩔 수 없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약간 불편한 기색이었다. 켄티우스는 레이먼드를 로드의 살해범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 와중 친우이기도 한 용의자 아들과 대화하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 반응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레오가 말했다.
“저기,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나랑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음?”
켄티우스는 고민하다가 민준을 향해 말했다.
“잠시 다녀오지.”
***
레오는 응접실에서 조금 떨어진 방으로 켄티우스를 인도했다. 둘만 마주 앉고 나서 그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정신없을 텐데 이래저래 미안하네. 다시 한번 애도를 표할게.”
아버지를 잃은 그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켄티우스는 큰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정리해야 할 감정보다는 정리해야 할 유산 쪽이 더 중요했다.
해츨링 딱지를 뗀 드래곤들이 거의 그렇긴 하지만, 켄티우스는 유달리 부친에 대한 애정이나 애착이 없었다.
드래곤 로드는 알 속 태아 상태의 켄티우스가 뚜렷한 형태를 띠었을 때,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의 비늘 색깔이 완전하게 자리 잡았을 무렵 모친과 이혼했다. 그 뒤로는 공식 석상에서 마주칠 때 대화를 몇 번 나눈 것이 전부다.
“나는 괜찮다. 그나저나 따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뭐지?”
그러자 레오는 몹시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이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던 켄티우스는 최대한의 인내를 동원해 기다렸다.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던 레오가 드디어 말했다.
“실은 내게 큰 고민이 있는데,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어. 너무 답답해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던 차에 마침 네가 왔다고 해서···. 미안해. 너도 지금 상황이 말이 아닐 텐데.”
켄티우스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내가 로드에게 별 감정 없던 건 세상 드래곤이 다 알잖아. 말 그만 돌리고, 대체 무슨 문제야?”
시답잖은 주제면 중간에 끊고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로드 살해범을 찾아 드래곤 하트를 상속받을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다. 유년기 친구의 시시한 고백에 시간을 오래 쓸 상황이 아니었다.
레오는 주저하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혼란을 느꼈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일단 더 들어 보기로 한다.
“왠지 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
“당연히 네 몸이 아니지. 폴리모프 풀어. 그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야.”
“아니, 지금 이 엘프 몸 말고.”
레오는 고개를 떨궜다. 그가 그대로 잠시 침묵하자 켄티우스는 가뜩이나 바닥을 보이던 인내심이 더 빨리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참지 못하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던 순간 레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뱀처럼 반으로 갈라진 혓바닥이 보였다.
스플릿 텅(Split tongue).
저건 폴리모프로 조형한 게 아니다. 굳이 멀쩡한 엘프 몸으로 변신한 다음 혓바닥에 피어싱을 박아 구멍을 내고 크기를 점차 늘리다가 결국은 혀끝까지 반으로 쪼개 갈라 버린 것이다. 드래곤 육신일 때는 생채기 취급도 못 받을 상처이며 저렇게 손상시키려고 작정해도 몸이 너무 튼튼해서 어렵지만, 다른 종족으로 변신하고 나면 훼손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생생한 통증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어렸을 때부터 이상했지만 점점 더 이상해지는군.’ 켄티우스가 보기에 저것은 최선과 정성을 다한 자해(自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갈라진 혀를 움직이며, 레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어. 이건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이 껍데기가··· 내 영혼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고. 폴리모프 상태의 의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몸을 말하는 거야.”
그제서야 켄티우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허리를 세우며 바로 앉는다.
“나는 계속 불편했어. 처음부터 그랬어. 이 몸은 진짜 몸이 아니라··· 내 영혼을 가두는 감옥 같은 느낌이야. 벗어나고 싶어. 이건 제대로 된 게 아닌 것 같아. 제대로 사는 게 아닌 것 같아.”
켄티우스의 눈동자가 떨렸다.
“언제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오래됐어.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는 함부로 말하지 못했어. 하지만 더 이상 답답해서 못 참겠어.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어.”
레오는 맥없이 고개를 떨군다. 켄티우스는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정체성의 문제를 말하는 건가?”
그러자 레오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끄덕였다.
“······.”
두 드래곤 사이 침묵이 감돈다.
이윽고 켄티우스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차가운 정적을 깨고 용기를 담아 말했다.
“그렇군···. 참 희한한 일이군. 특히 타이밍 측면에서.”
“뭐가?”
“실은 나도 최근 들어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러자 레오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
“나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뒤늦게 깨달았지. 나 스스로 깨우친 것은 아니고 외부 요소가 견인하긴 했지만···.”
레오는 이제 말까지 더듬었다.
“너도, 너도 그렇다고? 정말?”
켄티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느낌. 이대로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 이사를 가려고 한 순간 깨달았지.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
“그래, 나도 마찬가지다.”
레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외쳤다.
“맙소사! 나는 세상에 이런 드래곤이 나 하나밖에 없을 줄 알았어. 넌 대체 언제부터야?”
“며칠 안 됐다.”
“그때 갑자기 깨달은 거야?”
“그래, 레오.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난 사실은··· 내 진정한 정체성은···.”
켄티우스가 상대의 말을 긍정하며 말을 이으려던 순간.
레오가 외쳤다.
“너도 너 자신이 드래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뭐?
“······?!”
켄티우스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사이 레오가 말을 쏟아냈다.
“어렸을 때부터 이건 말이 안 된다 싶었어. 하지만 아버지에게 이런 이야기하면 욕만 거하게 먹었지. 다들 그러잖아? 드래곤은 위대한 존재다. 드래곤은 아름답다. 드래곤은 우월한 존재다. ···엿 먹으라고 그래! 난 내 몸을 볼 때마다 징그러워 죽겠어. 이 흉측한 뿔, 비린내 나는 비늘, 쓸데없이 질긴 근육, 거기에 눈 뜨고 볼 수 없는 얼굴까지··· 이건 뭔가 잘못됐어! 난 용이 싫어! 내가 용이라는 게 싫다고!”
그런 레오를 보며 켄티우스는 머릿속에서 단어 하나를 건져 냈다.
‘종족 정체성 장애.’
성형 수술을 통해 완벽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하프 오크와는 다르다.
켄티우스가 아는 한, 그것은 멀쩡하게 특정 종족으로 태어나 놓고도 자기 정체성은 다른 종족이라고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다.
예를 들어 멀쩡한 인간이 자기가 트롤이라고 우기며 증명하기 위해 제 다리를 손수 잘라 버리는 식이다. 절단된 자리에서 발이 다시 자라날 거라고 믿으면서.
“······.”
켄티우스는 침음을 흘렸다.
“폴리모프로는 해결되지 않아. 충족되지 않는다고. 난 이 몸을 영원히 버리고 싶어. 드래곤이 아닌 어떤 종족이라도 좋아. 다른 종족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켄티우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난 네가··· 드래곤임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심심하면 홍콩 밤하늘을 누비며 자신의 육신을 과시하는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모두가 레오를 단순한 관종 드래곤으로 여겼다.
“심리학자들과 상담해 보니 이건 일종의 정서적 퇴행이라고 했어. 이 몸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 가치를 고의로 떨구는 거라고. 고귀한 드래곤의 몸을 상품 전시하듯이 공공장소에 내거는 거지. 위대한 용족이 광대 짓을 하는 거야. 아버지를 열받게 하기는 충분했지. 하지만 그럴 의도라기보다는, 일종의 발악에 가까웠어.”
켄티우스는 한숨을 삼켰다.
이 새끼, 진짜 또라이였잖아?
진성으로 미친놈··· 나 같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드래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켄티우스, 너도 같은 고민을 해 왔지? 뭔가 방법이 없을까? 용의 육신을 버릴 수 있는 방법 말이야.”
그는 켄티우스를 향해 연달아 물었다.
“너도 나랑 같다며. 넌 그런 충동 느낀 적 없어?”
“아, 아니··· 난··· 좀 다른 종류다.”
“다르다니? 어떻게?”
켄티우스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
“허억!”
서울 모처에서,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예언 능력자는 눈을 떴다.
그녀 곁을 지키던 오크가 물었다.
“이번에도 똑같은 미래를 보았니?”
최선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녀를 보는 최판석 의원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요 며칠 사이 예지를 시도할 때마다 동일한 미래 시점만 보고 있었다. 민준이 지시한 대로 시뮬레이션을 정교하게 조율하던 중에 발생한 돌발 사태였다.
그들은 당황했다. 이 상황에는 큰 문제가 여럿 있었다. 일단, 최판석을 세뇌한 상대가 원하는 장면이 맞는지 가늠을 할 수 없다. 미래를 묘사하는 그림이 너무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시점이 너무 근미래였다. 나흘 전부터 미래시(未來視)가 고정되어 닻을 내린 그 시간대는 지금으로부터 95일 뒤였으니까.
“···으으윽!”
그녀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아났다가 수그러들기를 반복했다. 잔상에서 빠져나온 최선아가 간신히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4일 전 그때 미래를 뒤바꾸는 큰 사건이 발생한 것 같아요. 거기에 저도 휘말려서··· 지금 같은 미래만 계속 보이는 것 같구요.”
“이번에도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가는 장면만 보이더냐?”
최선아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좀 더 또렷했어요.”
4일 전 기준으로는 99일 후 미래였던 그 장면이 점차 선명해지고 있었다.
최선아는 묘사했다.
“용을 보았어요.”
예전에는 희미하게 보였던 얼룩들이 이번에는 드래곤이라는 걸 이해할 정도로 정밀하게 조각되었다.
“많은 용을 보았어요. 수없이 많은 용들을.”
최선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용들이 줄을 지어 어딘가로 가고 있었어요. 차례차례, 한 명씩.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요.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기꺼이 그곳으로 가요. 스스로 움직여서 다가가요.”
그 끝에는 세상을 모두 덮을 만큼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출렁거리며 범람하는, 주변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거대한 어둠이.
“오늘은 알 수 있었어요. 제가 본 그것, 그 그림자의 정체는 용들의 주(主)··· 드래곤들의 주인이었어요.”
그 광경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다는 듯이 예언자는 몸을 떨었다. 그녀가 본 것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공포로 물든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잇는다.
“행렬 끝에서 기다리는 검은 그림자가 연신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뻗으면서··· 그 혀로 용들의 뇌를 뭉개고 있었어요!”
“······?!”
오크는 말문을 잃었다.
“한 마리씩··· 차례대로··· 계속해서··· 결국은 그 자리에 줄을 서 있는 용들 모두··· 그들의 뇌를 전부··· 그 검은 혓바닥으로···.”
“······.”
“······.”
오크는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예시를 해석해 보자면···.”
미래 예지의 결과가 항상 직관적인 형태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미래의 모습이 지극히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영상으로 표현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따라서 의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언하라는 지시를 내린 그의 주인에게는 최대한 정리된 형태로 보고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집중한다.
“보통 미래의 영상에서 그림자는 숨어 있는 존재,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누군가를 의미하지.”
“그리고 ‘혀’는 ‘말(語)’을 의미해요. 뇌를 뭉갠다는 건 이지를 흐리고 정신을 탁하게 물들인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요.”
오크와 예언자는 미래 풍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할 생각이 없었다.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굴하고 먼지를 털고 윤곽을 갈아서 진짜 의미로 조형한다.
“용은 말 그대로 드래곤일 수도 있지만, 거대한 권력을 지닌 집권층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그럼 일차적인 해석은··· 남들 시선을 받지 않고 은밀히 움직이는 존재가 말로써 권력자들을 현혹하고 꾀어 지배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군요. 앞으로 95일 뒤에요.”
“그래. 하지만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꿈속에서 본 것과 느낀 바를 더 말해 다오.”
부녀의 토론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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