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59
160. 죄인이 꿈꾸는 사이 (3) >
***
생각할수록 그럴싸한 아이디어 같았다.
‘카바이트처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성향을 드러내는 놈들이 또 있어.’
대표적으로 토드가 그랬다. 용을 개량하면서 생기는 대표적 문제점이다. 본능적으로 놈들도 끌리는 것이다. 이 가축이 품은 풍부한 생명력에.
토드는 구제가 더 까다로운데, 위협을 느끼면 호수로 숨어 버리곤 했다. 땅을 파서 통째로 얼리면 되는 카바이트와는 달리 토드 잡자고 호수를 끓이거나 통째로 얼릴 수는 없다. 다른 생물까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잠수해서 한 마리씩 잡아 죽여야 하는데, 들리는 것처럼 매우 귀찮은 작업이기에 그냥 포기해 버리기가 다반사.
‘그러니 우리 외엔 누구도 마실 수 없게 조작하는 편이 좋겠다.’
물론 그중에서도 카바이트에게 가장 해로워야 할 것이다. 제일 짜증 나는 해수니까.
‘잠깐만.’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럼, 이 녀석들끼리는?’
그의 목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목장주가 관리하는 드래곤끼리 서로 입질을 하는 케이스가 종종 보고된다. 최악의 경우 드래곤이 다른 드래곤을 먹어 치우기도 했다. 비늘과 가죽, 뼈만 남은 텅 빈 케이지를 발견할 때의 공포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물론 이건 주인의 극단적인 근무 태만과 관리 소홀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는 이 아이디어가 그런 사고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료를 따로 먹이지 않거나 좀 게을리 먹여도, 용이 다른 용을 탐내지 않도록.
‘너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끌리겠지. 특히 드래곤 하트 같은 경우는··· 먹는 순간 획기적으로 수명이 늘어날 정도니까. 본능이라는 건 참 신기해.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하지만 드래곤의 피가 다른 드래곤에게 독으로 작용하게 만드는 건 매우 어렵다. 자기 몸속에 독을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자칫 잘못하면 면역 체계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이건 정신 쪽을 건드려야 해.’
문제는 모든 농장의 드래곤을 그가 직접 관리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복잡한 명령 체계하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 용의 정신을 완벽하게 휘어잡을 수는 없다.
따라서 그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선 훨씬 직관적인 키워드가 필요했다.
‘사랑?’
드래곤은 드래곤을 사랑하기에, 서로 먹을 수 없다는 금언(禁言)을 피에 새겨 두는 건 어떨까?
‘아니,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축의 감정을 100%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위한 계획이다.
용이 모든 용을 항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도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도 한다. 이 짐승들 사이 치정극이 얼마나 치열한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드래곤을 향해서는 식욕을 드러낸다면 결국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관념이 필요했다.
용이 용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
다른 용이 좋든 싫든, 사랑하든 싫어하든. 무조건적으로 입을 대지 못할 이유. 드래곤 하트를 탐하여 멀쩡하게 살아 있는 용을 자기들끼리 사냥하여 먹어 치워서는 안 될 이유.
“······!”
그때,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곱씹으며 검토한다. 정말 가능할까?
미심쩍었다.
‘얘네들 지능으로는 인지하기가 힘든··· 너무 고차원적인 관념 같은데.’
좀 더 오래 고민해야 할 문제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드키엘을 본다. 심심한지 돌바닥에 등을 비비며 긁던 녀석은 시선을 눈치채고는 쏜살같이 달려왔다. 이럴 때 보면 귀신 같다. 크릉거리며 손길을 구걸하는 녀석에게, 원하는 대로 긁어 주는 대신 물었다.
“아드키엘, 가능할까? 너희들이 스스로를 너무도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기기에··· 서로를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을 심어 줄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그리 생각하도록, 도덕을 유전시킬 수 있을까?
아드키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는 정말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드래곤은 어려운 단어의 미로를 헤매는 듯 연신 고개를 까딱거리더니 결국 포기하고 콧김을 흥! 뿜었다. 거센 바람이 그의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고,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이마에 거미줄처럼 들러붙는다. 가닥 가닥을 손가락으로 떼어내며 그는 웃었다.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자, 다시 출발하자. 길 잃은 드래곤 찾으러.”
목 아래의 손길을 느끼며, 아드키엘이 만족스럽게 갸릉거렸다.
***
도테스가 상관의 집무실로 급하게 뛰어왔다.
“대표님, 위원회 본부에서 송신한 급보 보셨습니까?”
“지금 읽고 있어요.”
엔델리온의 공주는 부하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한 곳을 응시했다. 본부에서 긴급하게 지시한 내용을 요약하면, 지구 곳곳에 위치한 터미널을 전부 봉쇄하라는 것이었다. 단 한 군데, 뉴욕만 제외하고.
지구의 도약 터미널 중 가장 거대한 그곳만 예외로 둔 이유가 있었다.
“이 차원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파병입니다!”
도테스의 목소리가 파리했다. 그의 깃털은 스산하게 떨렸다.
“아무래도 탈옥범을··· 아시프-666을 조기 색출해서 사살하려는 것 같습니다.”
공주는 어제 마주했던 역외탈세추적대장의 표정을 떠올렸다. 두 장소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부대원들이 전원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을 지었다. 황급하게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간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중간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사령부에서는 뉴욕 터미널을 경유해 대규모의 군인과 장비를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서.
‘잡혀서는 안 되지만, 설마 잡히더라도 사살 처분은 없을 거야.’
그녀는 도테스의 추측을 부정했다. 하지만 친절하게 설명하는 대신 지시를 내린다.
“사령부의 지원 요청 사항도 함께 도착했더군요. 그들이 원하는 그대로 준비하세요.”
지나치게 열심히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덧붙이려다가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참았다.
실제로 수형자 관리와 탈옥범 체포는 그녀의 업무가 아니긴 했다. 전남편과 공식적인 접촉을 하지 않아 온 이유도, 그녀가 수형자와 직접 엮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관계가 관계이니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도테스가 사라진 뒤, 그녀는 인간의 옅은 한숨에 해당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허공에 시선을 둔다.
팟! 파팟!
지구인 몰래 행성 곳곳을 감시하는 위원회의 아티팩트가 수집한 영상이 펼쳐졌다. 수십 년 전과는 달리 이제 다양한 종족들이, 다양한 지성체가 살아가는 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저 수많은 도시 중 어딘가에 숨어 있을까? 아니면 아무도 발을 딛지 않는 오지에?
그것도 아니면 짐작도 못 할 방법으로 이미 다른 차원까지 도주했을 것인가?
델은 들끓는 심려와 걱정을 느꼈다. 일이 어그러진 것에 대해 깊은 책임감도 느꼈다. 사령부의 움직임을 더 일찍 알아차리고 귀띔해 줄 수 있었다면··· 결과가 조금 달라졌을까?
애초에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있었던 걸까?
자괴감에 시달리며, 델은 화면을 응시했다.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관찰하는 시선을 인간들에게 집중했다. 거리의 행인들. 사무실이나 가게, 집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인간만 솎아 낸다.
후회와 애통함 속에서도 그녀는 약간 결이 다른 불쾌함을 느꼈다. 포유류를 볼 때··· 특히 인간종을 볼 때 그녀를 방문하는 감정은 과거보다 옅게 흐려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기억 속의 그를 떠올리며, 추억 속 수많은 장면과 표정을 머릿속에 새기며.
그녀는 민준의 행방을 고민했다.
그리고 되뇐다.
‘당신 같은 이는 그 후로 다시 없었어.’
당시에는 카인이라는 이름을 썼던, 민준을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델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구속한 인간 몸에도 역겨움을 느꼈는데, 정작 그를 볼 때는 그런 반응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델은 영혼을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준을 눈에 담은 순간, 그에게서 환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엔델리온의 공주는 생각했다. 그 순간은 기적과 같았다고.
엔델리온으로 잉태되고, 엔델리온의 영혼을 보유한 그녀가··· 종(種)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든 불가사의한 순간이었다.
민준이, 그녀로 하여금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들었다.
‘어디에 있든··· 제발 무사하기를.’
그녀는 기원과 함께 잠시 눈을 감았다.
***
집 나간 용을 찾습니다.
도시의 시설에서 살던 유년기에 그가 자주 본 벽보 문구다.
그 시절 동족들의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용 농장도 대규모로 발전하기 전이다. 다만 그때도 드래곤은 매우 중요한 짐승이자 식량이었다. ‘먹을 용도 모자란데 집에서 키운다고?’ 그렇게 투덜거리며 아니꼬운 시선으로 쏘아보았던 것 같다.
당시 그들이 얼마나 애타게 드래곤을 찾았을지 그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 한 마리의 드래곤을 이리 오랫동안 수색하며 헤맨 적이 없었다. 기술 수준이 훨씬 낮았던 그때는 몇 날 며칠동안 애써도 못 찾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 안에는 찾아내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던 그가.
“······.”
걷는 속도를 천천히 낮췄다.
“아니, 이 녀석이?!”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설마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불길한 예감이 스멀거린다. 그 느낌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우뚝!
그는 결국 걸음을 멈췄다.
“결계가···.”
젠장, 젠장!
차오르는 자괴감.
스승의 묘 근처로 이어진 흔적을 처음 본 그 순간에도, 설마 하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직접 결계를 쳐 두었고 드래곤이 그 벽을 넘어갈 일은 없다고 판단했기에.
마음 한 켠에 웅크린 불안감은 애써 외면했다. 필사적으로 그 생각을 떨치려고 했다.
사실 그는 스승을 무덤에 안치한 뒤 단 한 번도 이 근처를 찾은 적이 없다. 다시 말하면 그 결계를 유지보수한 적도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찢어졌군.”
용 하나가 드나들기 충분한 크기로 결계가 파손되어 있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의식적으로 성묘를 피하고 외면한 결과였다.
일이 벌어졌으니 결계를 고쳐야 한다. 아니, 일단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드래곤이 정말 위험한 곳까지 들어가거나 뭔가 건드리기 전에 잡아와야···.
“······.”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그는 또 하나의 아주 큰 문제점을 파악했다.
그는, 저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한참을 멍한 정신으로 서 있던 그때.
“크릉?”
아드키엘이 절묘한 방법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쿵! 쿵!
총명한 녀석은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발을 디딘 적 없는 영역이 저 너머에 펼쳐진 걸 알아차렸다. 골드 드래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달려간다. 그리고 결계의 구멍 속으로 쏙,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주인을 향해 짖는다.
“크릉! 컹!”
재촉한다.
거기서 뭐 하냐고, 어서 오라고.
빨리 저 너머를 탐험해 보자고.
피식.
입가에 마른 웃음이 번졌다.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결계 안에서도, 무덤은 이중으로 봉인해 놓았어. 설마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을 거다.’
물론, 제2의 결계까지 파훼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는 벌써부터 최악의 시나리오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짧지 않은 고뇌를 떨치고 그는 결국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영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결계 안을 걸어갔다.
***
“···여기서 잠깐 쉬어 갈까?”
“크릉?”
의아한 듯 아드키엘이 눈을 깜박인다.
그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드래곤이 남긴 흔적의 방향은 일관적이었고 점점 더 무덤과 가까워지기만 했다.
그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멈출 핑곗거리를 꺼낸다.
“피곤하지?”
“···크릉?”
아드키엘은 주인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동의하는 척을 하기로 했다.
드래곤은 주인이 설치한 마법 화로(火爐) 옆에 앉아 뚫어지게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시선을 외면한 채, 주인은 알 수 없는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드키엘은 이미 오늘치 사료를 먹은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긴 산책을 나오면, 그리고 중간에 쉬어 가는 때에는 주인도 빡빡하게 굴지 않는다. 오늘은 특별한 경우다. 그러니 특별하게 사료를 좀 더 요구해도 될 것이다.
“크르릉?”
바닥에 앉아 침묵하는 그를 향해 걸어가더니, 드래곤은 앞발을 주인 오른쪽 무릎 위에 턱 얹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아드키엘은 혼란을 느꼈다. ‘이 양반이 오늘 왜 이래?’
이럴 사람이 아닌데. 항의의 의미로 한 번은 더 갸릉거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아, 미안. 깜박했네.”
허공에서 사료 그릇을 꺼내 아드키엘을 이 행성에서 가장 행복한 드래곤으로 만든 뒤, 그는 풀밭 위에 누워 버렸다.
그가 응시하는 어둑한 하늘에는 별의 바다가 펼쳐졌다.
그중 유달리 밝은 광원들은 사실 행성이 아니라 인공위성임을 그는 알았다. 자신을 위해 행정부에서 준비한 경호 체계의 일부다.
저들에게 드래곤의 행방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는 곧 머릿속에서 그 옵션을 지웠다.
진작에 정부 측에는 자신이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절대 전원생활의 평온을 깨지 말라고 명령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긴 세월 안달이 난 상태다. 이쪽에서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면 자기들끼리 축포를 터뜨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그 끈을 잡고 늘어질 것이다. 그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얹고, 그의 음성을 조금이라도 오래 듣기 위해서.
상상만 해도 피곤했다.
그리고 애초에, 훼손된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결계가 건재하니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침묵 속에서 별을 헤아렸다. 문득 스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늘 유달리도 자주 스승에 대한 회상에 잠기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족은 사람이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된다고 생각했어.
그가 어렸던 시절에도 동족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는데, 스승이 어렸을 때는 더 심했을 것이다. 아마 평균 수명이라는 게 존재하던 시절일 수도 있다. 평균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죽음을 겪어야 했던 시기.
스승은 그 시대에 태어난 인물 중 가장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이었다.
그런 스승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첫 만남을 떠올린다.
-네가 좋겠구나.
용치기 중에서도 가장 존중받는 자의 후계자 자리.
그는 당시 왜 시설의 아이들 중 자기가 뽑혔는지 이해 못했다. 그러자 스승이 물었다.
-용을 기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 것 같으냐?
시설의 교관들을 떠올리며 그는 이렇게 답했던 것 같다.
‘용들이 내 명령에 잘 따르게 만들 수 있어야 해요.’
-명령에 잘 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용이 나를 무서워하고 존중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 방법도 맞지만, 제일 좋은 건··· 용이 너를 좋아하게 만드는 거야. 당장의 회초리와 매질이 없어도 네 명령에 자발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용이 네 말을 따르는 것을 지극한 행복으로 느낄 수 있도록.
스승은 깊은 울림이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네게는 그런 자질이 보이는구나. 넌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랑받을 아이야.
그렇게 확언하던 스승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는 자문한다.
언젠가 동족은 죽음의 굴레를 초월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는··· 완벽한 영생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스승을 떠올리며 그는 또 한 번 은은한 슬픔을 느꼈다. 잔잔하고도 은은한···.
은은한···.
“젠장!”
아니, 그 슬픔은 절대 옅지도 고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애써 긴 세월 유지했던 자기 최면의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슬픔을 느꼈다. 속을 갉아먹는 그리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심저를 쓸고 할퀴었다.
‘스승은 충분히 오래 살았어.’
과연 충분했을까?
‘이미 죽었어. 돌이킬 수 없어.’
정말, 돌이킬 수 없을까?
함께했던 시절 다음에는, 스승이 작고한 뒤 정신이 나간 채 살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 당시 일은 반쯤은 기억나고 나머지 절반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바랐다. 스승이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완성될 완벽한 영생 시스템에 합류할 수 있기를.
‘이미 지난 일이야.’
미련을 떨치려고 노력하며 그는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깊디깊은 슬픔 속에서 기억 속의 그녀를 추모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