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74
175. Love yourself (1) >
***
슈탄의 엘리트 전사, 솔라다는 머리가 굵어진 후 자의로 거울을 본 적이 드물다. 역겹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아직 이목구비가 자리 잡는 중이라 위안했다. 또래에 비해 두드러지게 큰 머리, 뭉개진 듯한 코, 고르지 못한 비늘, 부정교합에 가까운 턱은 나이 먹으며 달라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3차 성징까지 끝내고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솔라다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년기까지 함께할 얼굴이 그때 완성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전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솔라다는 못생겼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절망하는 대신 노력하기로 결심한 솔라다는 슈탄 남성에게 요구되는 덕목에 충실하여 외계를 방황하며 용병 일을 했다. 슈탄의 이민을 받는 세계는 없었지만 단기 근로 비자를 내어 주고 외계인 노동자로 부리려는 수요는 많았다.
또한 슈탄 남성들은 능력에 비해 저렴한 일꾼이었다. 흔한 말로 가성비가 좋았던 것이다.
‘오? 자네는 웨폰 마스터 능력자군. 좋아, 차원 #41-545에서 오퍼가 왔네. 계약 기간은 5년이고 보수는 이 정도야. 단,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고향 차원으로 복귀 불가능한 조건일세. 어떤가?’
‘좋습니다.’
평균적인 슈탄인의 체력은 트롤을 능가하며 맨손으로 강철을 찢는 근력으로 유명하다. 또한 사냥감은 지옥 끝까지 따라가는 집요함 덕에 용병, 사냥꾼, 해결사로서 환영받았다.
더군다나 솔라다는 웨폰 마스터였다. 트롤 웨폰 마스터가 인간 웨폰 마스터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슈탄 웨폰 마스터는 대다수의 비슷한 종족을 압도해 버린다.
용병계에 발 들인 뒤 솔라다는 쉴 새 없이 일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혼인 청약을 넣었다. 결혼권(結婚權)을 획득한 여성이 부디 자신을 뽑아 주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생각에 웨폰 마스터는 유리한 조건으로 보였다. 재산 축적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슈탄 남성의 우열을 정하는 척도는 재산이다. 무정란 낳는 의무에서 해방되어 편안하게 남은 생애를 보내려는 여인들이 뭘 원하겠어? 그간 고생을 보답받고 싶겠지. 호화로운 삶으로 말이야.’
슈탄이 낳은 무정란 껍데기는 합성금 원료로 쓰인다. 생산되는 금은 겔랑코 차원 GDP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수출품이었다. 그 과업에서 영광스럽게 은퇴한 산업 전사들, 성숙한 여성들이 흡족해할 지참금을 준비해야 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 더 많은 돈을!’
하지만 그는 매년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탈락, 탈락, 탈락.
여성들은 쉽사리 그를 선택하지 않았고 솔라다는 계속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청약 서류에 기입한 그의 재산은 매해 증가했다. 여인들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하기에 절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연이은 탈락.
수십여 년이 흐르고 그는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실패할 리가.
내가 낙오될 리가.
‘어째서? 나는 웨폰 마스터야. 게다가 모은 재산도 많다고!’
그는 차오르는 불안을 자기소모적인 노동으로 달랬다.
솔라다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가혹한 근로의 나날이 이어졌다.
***
슈탄 사회에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킨 소수의 여인들만이 왕국 연합으로부터 결혼권, 다시 말해 유정란 출산 권리를 인정받는다.
그것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피가 튀는 경쟁이었다. 긴 세월 매일 살을 찢는 고통을 견디며 양질의 무정란을 생산했음을 증명해야 하고,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 냈음에도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남자들과 격리된 장소에서 매일 씨 없는 알을 낳는 와중에도 출산 외 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플러스 요소였다.
아이를 낳고 싶은 여인은 완벽한 사람이어야 했다.
마치, 초인처럼.
사실 결혼권 신청 자격을 얻는 나이까지 살아남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부터 대단한 일이었다. 이곳 언론에는 절대 언급되지 않지만 슈탄 여성의 자살률은 이 세계 어떤 종족이나 계층, 성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그 힘겨운 관문을 뚫고 가까스로 권리를 얻어 낸 여인들은 그때부터 선택받는 자에서 선택하는 자로 바뀐다. 성공한 그녀들의 평균 나이는 150살 내외다. 그렇기에 슈탄의 혼인 풍속을 살펴보면 성별에 따른 극단적인 나이 차가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대체로 더 젊은 남성을 배우자로 원했기에.
100살 생일을 맞이한 그날 솔라다가 더 이상의 청약을 포기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나이를 먹은 남성이 배우자로 간택되는 일은 없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능력이 좋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왜! 대체, 왜?! 돈이라면 모았어. 지난 수십 년 동안 마음 놓고 발 뻗고 쉰 날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긁어모았어. 그런데 왜 아무도 날 뽑아 주지 않는 거냐?!’
평소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입에 대지도 않던 독주를 한 병 사서 통째로 비운 그날.
허름한 단칸방의 식탁 겸 세면대 앞에 앉아, 취기에 젖어 씩씩거리던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는 의식하여 눈길을 두는 법이 없던 사물이 거기에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는 거울을 본다.
답은 그곳에 있었다.
***
그 뒤 솔라다는 단 한 번도 외계에 파견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모은 돈을 방탕하게 써 버리는 일에 집중했다.
‘어이! 솔라다! 정말 이럴 거야? 일 안 한 지 벌써 1년이 넘었잖아? 자네 같은 훌륭한 인재가 그 능력을 썩히는 것은 종족 차원의 손해···.’
집까지 찾아온 인력소개소장에게, 얼큰하게 취한 그는 외쳤다.
‘젠장, 헛소리하지 말고 썩 꺼지슈!’
‘뭐··· 뭐?! 자네 지금 뭐라고 했어?’
‘종족의 손해? 흥, 이거나 먹으라고 하슈. 난 이제 일 안 해. 누구 좋으라고 계속 노예처럼 일해야 하지?’
다음 말은 속으로 삼켰다. 어차피 결혼도 못 하고, 아이도 못 낳을 텐데.
‘이제 난 돈이나 쓰면서 살 거야. 이젠 나 자신을 위해 살 거라고!’
그 선언은 충격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모범적인 슈탄 남성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성은 근검절약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끈기 있어야 한다. 다른 세계에서 끊임없이 외화를 벌어들여 적금으로 묶어 둬야 한다. 극악의 환율을 자랑하는 달란트 대신, 교역 상대 세계의 화폐를 말이다. 언제 결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날이 올 때까지 엉뚱한 곳에 쓰지 않고 계속 저축하는 것이 좋다.
이 긴 문장을 슈탄식으로 요약하면,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자네, 설마 정기 적금을 건드릴 건가? 하지만 그건 결혼 자금으로 묶여 있을 텐데···.’
‘젠장! 오늘 은행 가서 다 깨고 왔어. 이자는커녕 위약금까지 물고 말이야! 미친 새끼들. 사기꾼 새끼들. 그거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물려줄 자식도 없이 늙어 죽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그렇게 살지 않겠어. 다 쓰고 죽을 거야! 흥청망청!’
그리고 솔라다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같은 결정을 내린 늙은 남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술과 마약에 빠졌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니 세상에는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솔라다가 연애마저 포기하지 않은 것은 애초에 그런 개념이 슈탄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혼 여성과 미혼 남성이 서로 격리된 장소에서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는 말이다.
자질구레한 사고를 치고, 행패를 부리고, 왕실을 모욕한 혐의로 감옥을 몇 번이고 오가는 사이 그는 더욱 나이를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나니짓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과 관심을 바란다.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깊은 좌절을 느끼며, 절망감은 종종 사회 규범을 무시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퇴행하여 수치심에 무감각해진다. 자신은 사회의 ‘기준’을 충족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온갖 저열한 짓도 할 수 있다고 정당화한다.
솔라다에게 그 기준은, 성공을 판별하는 척도는 결혼이었다. 모아 놓은 돈이 얼마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직감했다. 자신은 더 이상 엘리트가 아니라고.
그래서 결심했다. 낭비와 방탕을 부도덕의 극치로 간주하고 일하지 않는 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이 사회에서, 오로지 말초적 쾌락을 위해 살기로. 어차피 잃을 것이 없지 않은가? 그리 생각하자 주변의 비난이 두렵지 않았다.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은 이미 포기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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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다, 이건 마지막 기회일세. 한 번만 더 수도에서 사고를 치면 왕실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공공장소에서 공주들을 큰 소리로 모욕한 건··· 정말 큰 실수였어. 그나마 지금까지 공로를 인정받아 이 정도에 그치는 거야.’
몇 번째인지 셀 수 없는 감방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솔라다에게, 옛날 인연을 맺은 인력소개소장이 찾아왔다.
‘당분간 수도를 떠나 있게. 자네를 위해 은신처를 준비해 두었네. 시골 해안가에 있는 별장이야. 술과 마약을 멀리하고 거기서 머리를 좀 식히고 오게.’
솔라다는 슈탄 왕국 변두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소장이 거기 마련해 준 집은 8백 년 전 종족 전쟁 시절에도 정체불명의 유적지 취급을 받았다는 곳이다. 그런데 전란을 겪고 몇 차례 소유주가 바뀌면서 거대 유적지를 구성하던 대부분 것들이 암시장에 팔려 나가고 이제는 초라한 편린만 남았다는 모양이었다.
내부 집기와 장식품은 물론 기둥, 벽돌까지 값나가는 것은 애초에 전 주인들과 도굴꾼들이 뜯어 팔아 치운 덕분에, 지금은 후대에 증축하여 역사적 가치가 전무한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다고.
그 설명을 복기하며 솔라다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마치, 나와 같군. 아무짝에 쓸모없는 누더기만 남은··· 누구도 찾지 않는 폐가라니.’
솔라다가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이 기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섰고 창밖이 캄캄해졌다. 검게 칠한 듯한 창문은 조명을 반사하며 객실 안을 선명하게 비췄다. 마치 까만 유리로 만든 거울처럼. 그러자 암전된 표면에 늙은 슈탄 남자가 맺혔다. 유리에 비친 그는 몹시 우울하고도 무기력하게 보였다. 솔라다는 욕설을 이빨 사이로 흘리며 눈길을 돌렸다.
***
“신이시여··· 신··· 신이시여···!”
해안가와 맞닿은 어느 숲속.
배경지식이 없으면 관계를 쉽게 추측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
일행은 총 네 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은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다.
하나씩 면면을 살펴보면 일단 기절한 드래곤이 있다. 동공이 풀린 채 바닥에 쓰러진 용. 호흡을 보니 숨통은 붙어 있으나 생명력은 조금씩 사그라드는 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영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육신은 결국 차갑게 식을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 저 용체에는 주도권을 쥔 영혼이 없다.
그리고 또 한 명, 기절한 여인이 있었다.
의식이 붙어있는 나머지 둘은 그녀를 둘러싸고 보살피는 중이다. 각각 인간종으로 보이는 남자와 눈이 셋 달린 창백한 피부의 종족이었다.
검은 머리의 남자가 물었다.
“어때?”
델의 손을 잡고 집중하듯 눈 감고 있던 사제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금처럼 작게 변신했다고 하나 본래 섬 하나를 덮을 만큼 거대한 존재이다 보니 생명력의 그릇도 어마어마한 것 같습니다.”
윰투스의 힘으로는 이게 한계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들은 민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전처를 바라보았다.
델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촉수를 파르르 떨고 있다. 지금 그녀는 완벽한 인간의 모습도, 반경 6km에 달하는 본체의 모습도 아니었다.
‘폴리모프도 완벽하게 못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거지.’
고민에 빠진 그의 귓가에 이질적인 짐승 울음소리가 들렸다. 대기의 밀도 역시 어제 그들이 있던 곳과 미묘하게 달랐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흐릿하게 떠 있었고, 인간이면 불쾌함을 느낄 정도의 눅눅한 습기가 피부에 휘감겼다. 흐드러진 꽃나무 사이로 작은 새가 네 장의 날개를 펼치며 뛰어올랐다.
민준은 몇 달 전 지구에서 범죄 행위를 꾀하다가 체포된 공주를 기억한다. 위원회 본부로 이송 도중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 슈탄인. 민준은 지금 그녀가 묘사했던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차원 도약은 성공했다.
일행은 지금 다른 세계에 와 있다. 지구에서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웃 차원.
‘거기까진 좋았는데.’
도약 도중 델의 컨디션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민준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옛 고룡들도 버텨 낸 도약인데, 엔델리온이 어째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들이 차원을 넘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해발 10킬로미터 상공이었는데, 그 순간 의식을 잃어가던 델은 서서히 추락하려는 기미를 보였다. 그대로 땅을 들이박았다면 대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폴리모프 주문을 외웠다. 원래 인간으로 변신하려 한 것 같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한 탓에 좀 불완전하게 마무리되었다. 가까스로 영창을 마친 후에는 기절해 버렸고.
그 결과.
“신이시여···!”
델은 떨리는 입술 사이로 같은 말을 반복하여 흘린다.
간절하고도 가냘프게.
‘델···.’
민준은 상체는 인간, 하체는 촉수 형태로 변신해 버린 전처를 쉽게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윰투스는 신성력을 흘리기 위해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안쓰러운 투로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끊임없이 신을 찾는군요. 엔델리온이란 종족은 정말로 신실한 자들인 모양입니다.”
“······.”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 문장의 뜻과 쓰임새가 욕설로 변했음을 아는 민준은 오해를 굳이 정정하는 대신 델을 회복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혼수상태에서도 계속 욕을 뱉는 걸 보니 정말 힘든 모양이었다. 윰투스는 애처로운 듯 델에게 속삭였다.
“당신이 믿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당신의 믿음이 그 마음에 응하여 평안을 되찾았으면 좋겠군요.”
“···휘감는, 촉수여!”
그때였다.
“쿨럭!”
곁에 있던 드래곤이 깨어났다. 영혼이 돌아온 용체는 몇 번 더 기침하며 쿨럭거리더니 유체이탈하여 본 것을 민준에게 보고했다.
“찾았어요. 말씀하신 방향으로 가다 보니 바다랑 맞닿은 곳에 정말 큰 저택 같은 것이 하나 있던데요?”
그 말을 들은 민준은 안도했다.
“그래, 없어졌을 리가 없지.”
하지만 직후, 유령의 말에 이상한 부분이 있음을 깨닫는다.
“잠깐만. 저택 하나라고?”
왜 하나지?
“네. 주변은 온통 휑하고 집 한 채만 생뚱맞게 거기 있던데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의문에 매달릴 시간은 없었다. 민준은 계속 지금처럼 야외에 델을 방치하는 대신, 제대로 된 곳으로 가서 간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동하지.”
화르륵!
그의 몸에서 그림자가 뿜어져 나와 델을 감쌌다. 민준은 그것을 여러 가닥 밧줄처럼 엮은 다음 전처를 묶어 등 뒤에 업었다. 그러자 윰투스도 챙겨 온 여러 개의 관 같은 것을 차곡차곡 겹치더니 짊어졌다.
‘음, 이건 곤란하군.’
민준은 곧 문제점을 깨달았다. 등에 업힌 델의 하반신 촉수가 축 늘어져 땅에 끌린 것이다. 이대로 걸으면 지면에 쓸려서 문제고 날아도 깃발처럼 펄럭여서 델이 힘들 것이다.
그는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했다.
쉬이익!
그림자가 손처럼 움직여서 델의 촉수를 매듭짓듯 묶었다. 그러자 그녀의 하반신이 쪽머리처럼 둥글고 단정하게 정리되었다. 민준이 말했다.
“가자.”
혼미한 목소리로, 델이 힘겹게 중얼거렸다.
“별을··· 휘감는··· 촉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