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75
176. Love yourself (2)
***
“어서 오십시오! 솔라다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솔라다는 시골 기차역에서 내렸다. 허름한 플랫폼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슈탄이 서 있었다. 그는 공손한 자세로 상대를 맞이했다.
“제 이름은 귤레쉬입니다. 다크바라 님께 말씀은 전해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제가 저택에서 모시겠습니다.”
다크바라는 은신처를 준비해 준 인력소개소장 이름이다.
솔라다는 내심 놀랐다. 오기 전에 예상한 것은 빈 저택에서 홀로 은거하며 자숙하는 나날이었다. 설마 하인까지 붙여 줄 줄이야?
그리고 이어진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저택에 저 말고도 다른 고용인들이 솔라다 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더 있다고?
역에서 해안가 저택까지 이동하는 동안, 귤레쉬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아첨을 늘어놓았다.
“명성은 익히 접해 들었습니다. 파견되는 차원마다 혁혁한 공로를 세우신, 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웨폰 마스터! 정말 부럽습니다. 솔라다 님이야말로 진정 남자다운 슈탄이죠. 저 같은 반푼이들과 달리 말입니다.”
속도 없는 말을 지껄이며 웃는다.
솔라다 귀에는 그것이 비꼬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게 명성이 높으면서 왜 짝도 자식도 없이 혼자 이런 집에 은거하냐는 비아냥 말이다.
“남자로 태어난 이상 전사로 활약해 외화를 쓸어 담는 게 모두의 꿈 아니겠습니까? 저같이 하찮은 일이나 하는 대신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정말 부럽습니다.”
솔라다는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이 동네는 항상 이런가? 안개 말이야.”
“네. 수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요? 바닷가 마을인지라 해무(海霧)가 제멋대로 몰렸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이런 날에는 바로 몇 미터 앞에서 누가 걸어와도 분간 안 될 정도라니까요? 자, 도착했습니다. 솔라다 님.”
귤레쉬가 짐가방을 끄는 사이 문지기가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대기하던 고용인들이 일제히 예를 표했다. 귤레쉬가 경쾌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저희도 겨우 며칠 전 여기 도착했습니다. 오랫동안 비운 저택인지라 쓸고 닦으면서 새 주인님을 기다렸습죠. 아,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 하루 차이로 아주 희귀한 구경거리를 놓치셨습니다. 어제 오셨으면 저희랑 같이 보셨을 텐데 말이죠.”
솔라다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뭘?”
침실로 향하는 그는 어서 물에 몸을 담그고 여독을 씻어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상대가 거의 듣고 있지 않다는 걸 모르는지, 귤레쉬는 계속 지껄였다.
“어젯밤 바다에서 참 기묘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안개가 자욱했지요. 밤이다 보니 시야도 엉망이었지만 그것만큼은 도저히 못 보고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쯤 되니 솔직히 좀 궁금하긴 했지만, 피곤함이 앞선 솔라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귤레쉬는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세상에나, 전 그렇게 큰 번개는 처음 봤습니다. 안개를 뚫고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희한하죠? 보통 번개라는 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종잡을 수 없이 치고 빠지잖습니까? 그런데 그 번개는 계속 한 군데에서 지글거렸어요. 집요하게 서로 끌어당기듯 말입니다. 그렇게 몇십 초 정도 들끓었던가요? 갑자기 홧! 하고 빛이 번졌는데. 그랬더니 그곳에!”
앞서 걷던 귤레쉬가 홱! 고개를 돌렸다. 긴장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제스처 같았지만, 솔라다는 시큰둥했다. 하인은 진지한 표정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그곳에 검은 별이 떠 있었습니다!”
하필 출소 직후라, 솔라다의 뇌가 깨끗한 상태여서 다행이었다. 약이나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면 그만 지껄이고 닥치라고 저 턱주가리에 주먹 한 방 꽂아 넣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대신 솔라다는 성의 없이 물었다.
“검은 별?”
“네! 검은 별이었습니다. 보통의 별은 검은 하늘을 뾰족한 빛으로 찌르면서 반짝이죠. 하지만 그 별은 달랐습니다. 하늘 가득한 섬광을 어둡게 가리면서 자기를 드러내는 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별보다 훨씬 거대했죠. 어떤 사람들은 그게 뾰족한 촉수가 아주 많이 달린 불가사리 같았다고 말하지만··· 제 눈에는 별에 가까웠습니다!”
헛소리군.
침실에 다다른 솔라다는 이 과하게 열정적인 하인을 물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귤레쉬가 다시금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 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원인은 저택 바깥에서 들려왔다.
—!
하인 중 한 명이 내지르는, 모골이 송연한 비명이었다.
***
하은성은 민준을 만난 뒤 그가 이런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보았다.
어떤 일을 직면해도 한 점의 여유를 남겨 놓던 그가 지금, 얼굴 가득 경악의 빛을 떠올린 채다.
숨을 절반 들이마신 채 다시 내쉬는 것도 잊고 석상처럼 굳었다.
‘왜 저러지?!’
곁에 선 하은성은 공포가 전염되는 것을 느꼈다. 그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사건이 뭘까?
자고 일어났더니 나라가 없어지고, 가족이 없어지고, 친인척이 없어지고, 전 재산이 몽땅 없어지는 정도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대사고가 아닌 이상, 저 남자가 저렇게 경악할 일이?
한편, 그 순간 민준은.
‘젠장, 다 어디 갔어?’
그는 예상치 못한 상실 때문에 얼어붙은 상태였다.
하은성이 정찰을 한 장소에 도착한 뒤 그는 기억과 다른 장면을 보았다. 유령 말처럼 황량한 대지 위 저택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변을 더 살피니, 먼 옛날 거대한 지구(地區)가 존재한 흔적이 있긴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여기를 유적지라고 부르리라.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지? 철저하게 준비해 놓았는데.’
몇 달 전 지구에서 만난 슈탄 공주가 겔랑코의 아름다운 자연을 10여 분간 묘사했을 때 그는 한 귀로 흘렸다.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갈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었고.
하지만 이제 민준은 안다. 그는 여기 처음 온 것이 아니다. 아주 먼 옛날에 이미 와 본 적이 있다.
‘다 어디 간 거야? 어떻게··· 그 결계를 무너뜨렸지?’
주변은 해무가 자욱했고 평범한 사람 눈으로는 지형 분간도 어려웠지만 그의 매서운 시선은 그걸 뚫고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저택에 시선이 닿은 순간.
‘그렇군. 저 집 하나만 남았어. 별것 아닌 건축물처럼 증축했지만, 위장이야.’
그럼 나머지는?
그때였다.
화륵!
“어, 어?! 요원님! 요원님!”
이미 한 번 데어 본 적 있는 드래곤이 기겁하며 멀어졌다.
민준의 동요가 컸는지, 등 뒤에서 델을 묶고 있던 그림자 자락이 통제에서 벗어나 출렁거리고 있었다. 저것을 괴물 형태로 통제할 때는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 뽑아낸 것은 그 괴물을 형성하는 근원. 일종의 원액 같은 것이다.
‘쉿! 진정해요. 그만.’
화르르!
쪽머리처럼 정갈하게 묶어 두었던 촉수 더미가 풀리고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얌전히 있어요. 그렇지.’
그림자는 곧 잠잠해졌지만 민준은 무언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소환을 해제해 버렸다. 그리고 대신 옷자락에서 긴 가죽끈을 꺼냈다. 범죄자를 제압할 때 쓰는 마도구였다.
힘을 불어넣자 끈은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등 뒤 촉수를 묶었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완벽하고 예쁘게 잘 묶지는 못해서 몇 가닥 삐쳐 나왔다. 민준은 일단 그대로 두었다.
“저기로 가자.”
그의 관심은 오로지 저택을 향했다. 더 다가가기 전 마지막으로 일행의 상태를 확인한다. 복장, 오케이. 폴리모프, 오케이. 모두 인상착의를 바꾸고 윰투스는 인간으로 폴리모프까지 했다.
그렇게 다들 완벽하게 변신했지만 딱 한 명, 예외가 있었다.
꿈틀!
가죽끈이 정리 못 한 촉수 몇 가닥이 등 뒤에서 꿈틀거린다. 덕분에 민준은 발모제를 등짝에 쏟아 버린 메두사 같은 형상이 되었다.
‘델···.’
마지막으로 점검했을 때까지 그녀 몸속의 마력은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상태였다. 이미 불완전한 상태로 형태가 굳은 육신은 타인이 외운 폴리모프를 튕겨 냈다.
결국 델은 지금처럼 반인반촉수 상태를 한동안 벗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민준은 이 상황을 해명할 그럴듯한 사연을 구상해 두었다.
“어? 거기 누구요?”
그들이 저택을 향해 다가가자 대문을 지키던 슈탄이 인기척을 느끼고 물었다. 하은성이 염탐한 대로 저곳은 비어 있지 않았다.
민준이 공용어로 대답하려던 순간.
“허, 허어억?!”
솔라다의 저택을 지키는 문지기는 안개 너머 그림자를 보고 온몸의 비늘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정체불명의 일행은 총 셋이었는데, 그중 둘은 평범한 인간 실루엣으로 보였다. 여기 왕국에도 상당수 거주하는 종족이다.
문제는 그 가운데, 제일 앞장서서 걸어오는 자였다.
문지기는 맹세코 지금까지 저런 생물을 단 한 번도 목격한 적 없었다. 안개 속의 그림자 뼈대는 인간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인간의 머리는 한 개다. 저자는 평범한 위치의 머리 말고도 왼쪽 어깨에 상대적으로 작은 머리 하나를 더 달고 있다. 더욱 기절초풍할 형상은 그 등 뒤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이다. 안개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것들은 굵직한 뱀을 연상케 했다.
머리가 둘 달리고 등에는 굵직한 뱀을 달고 다니는 저것은··· 분명···.
문지기는 비명을 질렀다.
“마··· 마귀다아아앗!”
***
비명을 들은 솔라다는 짐을 풀기도 전에 다급하게 대문으로 뛰어왔다. 긴 시간 수감 생활을 겪고 약과 술에 취한 인생을 살았음에도 제일 먼저 도달한 것은 그였다. 한때 명성 높았던 웨폰 마스터다운 반응이었다.
그리고 솔라다는 경악한 하인이 가리키는 곳에서 기이한 존재를 목격했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키메라?!’
착각이다. 다시 보니 아니었다. 평범한 슈탄의 시력은 인간과 다를 바 없지만 웨폰 마스터의 신체 능력은 궤를 달리했다.
‘남자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업고 있군.’
그런데 업힌 여인의 몰골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고민했다. 어쨌거나 당분간 저택의 주인은 솔라다다. 어찌 대응할지는 그가 결정할 일.
“더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멈추쇼.”
안개 속 인간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그중 여인을 업은 남자가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솔라다는 말한다.
“···그 여인은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유?”
하반신에 다리 대신 촉수가 달린 여자.
남자는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답했다.
“보시다시피 상태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잠시 쉬어갈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슨 일을 당한 거냐고 물었슈.”
“끔찍한 술수에 당했습니다. 마법입니다.”
“마법?!”
그럼 원래는 멀쩡한 인간 여자였다는 소리다. 나름 산전수전 겪어 본 솔라다는 금방 어떤 단어를 떠올렸다.
“저주! 저주에 당한 건가?”
“네, 그렇습니다.”
“그럼 범인은 분명!”
웨폰 마스터의 시선은 안개를 뚫고 남자의 표정에 닿는다. 그는 매우 분하다는 듯 입술을 질끈 씹고 고개를 떨궜다. 두 눈은 복수의 열의로 타오르고 있었다.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악독한 흑마법사가 이런 무시무시한 저주를···.”
“흑마법사!”
솔라다가 천둥처럼 외쳤다.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하인들이 휘청거리거나 엉덩방아를 찍는다.
흑마법사라니!
멀쩡한 사람들을 제물로 삼고 고통을 주고 고혈을 쥐어짜는 그들은 대부분의 차원에서 범죄자 신세다. 외계 용병으로 활약한 솔라다 역시 그들의 악독함을 잘 알았고 떠올리기만 해도 치를 떨었다.
그의 생각에 흑마법사는 사람으로 태어났되 사람으로 분류해서는 안 되는 몹쓸 것들이다.
“척추를 통째로 뽑아서 엉덩이골 사이 쑤셔 박아도 모자랄 그 잡것들이 근처에 돌아다닌다고?!”
그렇게 고함을 지르며 하인을 본다. 귤레쉬는 자기도 여기 온 지 며칠 안 돼서 모른다며 손을 휘저었다.
‘젠장, 언제 한번 주변을 둘러봐야겠군. 자숙하러 내려온 거라지만 앞마당에 그런 놈을 두고는 발 뻗고 잘 수 없어!’
용병 시절 흑마법사를 향해 쌓은 원한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저들을 향한 의심이 점차 희미해진다. 설마하니 고의로 저런 저주를 연출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부상자 흉내를 내고 싶었으면 훨씬 상식적이고 그럴싸한 방법이 많을 테니까.
하반신을 촉수로 만드는 저주라니, 정신병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짓거리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무슨 관계요?”
진실은 때로 지나치게 많은 설명을 요구한다. 민준은 훨씬 단순하고 직관적인 답이 뭔지 알았다.
“제 아내입니다.”
솔라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는.
“흑마법사랑은 어쩌다 엮인 거유?”
“제 처를 납치해서 제물로 쓰려다가, 저희에게 역습을 당하자 도망치면서 최후의 발악으로 이런 끔찍한 저주를···.”
“다른 마법사라면 몰라도, 흑마법사라면 가능한 이야기지. 산 채로 회를 쳐서 죽여도 모자랄 새끼들!”
“맞습니다. 천하에 상종을 해서는 안 될 잡것들이죠.”
대화가 다시 끊기고 민준은 슈탄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조건 저택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그러나 저 죄 없는 원주민들을 대뜸 몰살시키거나 억지로 쫓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옛날 일도 생각나고 말이다.
그렇다고 양보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그는 솔라다의 대답을 조용히 기다린다. 그의 선택이 많은 것을 바꾸게 될 것이다.
자, 어쩔 테냐. 대답은?
“흠.”
솔라다는 시선을 남편과 아내에게 차례로 보낸다. 그가 평생 노력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관계를 저 두 인간은 손에 넣은 것이다.
성공한 결혼.
솔라다가 답했다.
“아픈 부인 때문에 애닳는 사내를 내치는 건 안 될 일이지. 들어오슈.”
민준은 그제서야 희미하게 웃었다. 솔라다의 눈에 그것은 안도의 미소로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염치없습니다만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내에게 죽이라도 끓여서 먹여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부엌을 좀 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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