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17
218.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15)
***
가끔은 불같이 악쓰며 화내는 사람보다 분노를 차분하게 표현하는 이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그런데, 지금 엔델리온의 공주는 분노를 분출하기 위해 두 방법을 동시에 쓰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얼굴이 무표정하면 뭘 하나? 등에서 꿈틀거리는 촉수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저건 아마도 강렬한 감정을 느끼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부위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개의 꼬리 같은.
“아··· 들?”
하은성은 조용히 생각한다. 다음 말까지 입 밖으로 꺼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심지어 한두명이 아닌 것 같은데요?’
사실 좀 애매하긴 했다. 빛 속에서 느껴지는 의지는 분명 ‘아들’을 찾고 있었는데, 그는 한 명인 것 같기도 하고 여러 명인 것 같기도 하다. 한 명인 동시에 여럿이라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델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왜 너만 들을 수 있지? 난 거기까지는 느껴지지 않아.”
하은성이 ‘영파’에 대해 설명하려던 순간.
“어?”
비틀!
그는 몸의 균형을 잃을 뻔했다. 다시 넘어지려는 드래곤을 공주가 촉수로 지탱해주었다.
“왜 또 그러는 거야?”
영체감응력이 없는 델은 보지 못했지만, 방금 이 드래곤의 육신 위에는 목에 칼이 꽂힌 인간의 형상이 겹쳐졌다가 다시 사라졌다.
몸과 영혼이 완벽하게 결착되어 있을 때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케, 켁!”
혼이 완전히 분리되기 직전, 육신이 그것을 다시 잡아당겼다.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드래곤은 몇 번 기침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델의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어조였다.
“저··· 방금 강제로 유체이탈 당할 뻔했어요!”
“뭐? 왜?!”
“아마 저 빛 때문인 거 같은데···.”
그때 주변의 사제들 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영혼과 육신이 강제로 분리된다. 하지만 영육이 유리된 순간은 매우 짧았다. 유체이탈 상태로 자기 몸을 내려다보던 사제들은 기겁하며 다시 몸으로 다이빙했다. 그들은 성역에 영혼을 보내 신혈을 훔쳐 돌아올 때처럼 한 명도 빠짐없이 자기 몸을 찾아 돌아갔다.
“나는 왜 괜찮지?”
“공주님은 영혼과 몸의 연결이 단단하시잖아요. 저희처럼 자주 뗐다 붙였다 하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실은 그녀도 노동교화형 때문에 영혼이 분리된 적이 있다. 하지만 횟수로 따지면 저들보다 훨씬 적은 건 사실이다.
“민준이 지금 영혼을 빨아들이기라도 한다는 소리야? 그래서 너희처럼 연결이 헐렁한 사람들은 쉽게 휘말린다고?”
하은성은 자기가 느끼는 대로 말했다.
“저 빛이 노리는 대상은 우리가 아닌데도 너무 가까워서 휘말리는 것 같아요. 지금 요원님이 찾는 건 아··· 들이니까.”
델의 반응을 조심히 살피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저 부름이 영파에 담긴 것도 그렇고, 하필 영혼을 끌어당기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아들은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요.”
“······?!”
“네, 요원님 아들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 그 혼을 여기로 부르는 것 같아요.”
죽은 아들을 찾는 부친의 초혼 의식.
슬픈 일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자신도 죽었기에 하은성은 비교적 담담한 반응이었다.
다만 의문은 느꼈다. 이지를 잃은 망령도 아니고, 완벽하게 이성을 갖춘 자신이나 아직 죽지도 않은 생령(生靈) 상태의 사제들까지 영향을 받는 건 상식 밖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델은 그런 모순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영혼이 된··· 아들?!’
자연스러운 연상으로 델의 머릿속에 어떤 개념이 스쳐 지나갔다.
아시프-666의 창조물. 영혼 상태로 차원 곳곳에 흩어진 파편.
그녀의 입술 사이로 그 단어가 새어 나왔다.
“아시프-1!”
***
부활의 성당에서 강렬한 섬광이 터져나오기 십여 분 전.
민준은 홀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단검으로 변한 아시프-1을 쥔 채였다.
그는 건물 안쪽으로 연결된 회랑을 가로질렀다. 양측 벽면을 따라 오래된 벽화가 장식되어 있었다. 대부분 경전에 기록된 성스러운 사건을 묘사한 종교화였다.
길의 시작을 알리는 입구의 그림은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를 묘사했다. 민준이 창조물에게 말했다.
“저건, 너군.”
=아, 그런 모양이군요. 아직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종단의 시조. 최초이자 마지막 교황이 된 그들의 선지자였다.
누구도 생김새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묘사에 충실해야 하지만 얼굴을 공백으로 남겨둘 수도 없기에 화가들은 꾀를 낸 것 같다. 그림 속 얼굴은 사막풍을 막는 두꺼운 천으로 꽁꽁 싸맨 상태였다. 선지자는 황야의 촌부들을 모아 놓고 강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몰려든 세눈박이들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감명받은 표정을 짓고 있다.
민준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다양한 회화 작품들이 보였다. 역사의 시간대 순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선지자가 긍휼한 자들을 먹이고, 치료하고, 되살리는 기적이 묘사되더니 마침내 필멸자 곁을 떠나 승천하는 그림이 눈에 띄었다.
다음으로는 이 행성의 역사가, 종단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기록이 이어졌다. 윰투스는 하은성에게 설명할 때 이 행성의 신정일체화 과정을 ‘평화로웠다고’ 묘사했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참상이 오랫동안 벽면을 채웠다. 저것이 종교화인지 전쟁기록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엘라후-프라가 사제들은 강력한 신성력을 무기로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무너뜨렸다. 참수되는 희생자들의 모습과 구덩이에 쌓이는 시체의 산이 가감없이 화폭에 그려졌다.
민준은 계속 나아간다. 마침내 정복전쟁이 끝났다. 평화를 되찾은 행성의 모습. 수가 늘어난 사제들은 본격적으로 신혈을 채굴했다. 미래를 위한 준비였다. 그전까지 푸르게 묘사되었던 하늘이 점차 황색으로, 잿빛으로 물든다. 속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들의 각성을, 훗날 도래할 진실된 세계를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교인들은 그 도구를 자유로이 사용할 자격을 신으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므로.
마지막으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장면이 표현되었다. 잠든 신들을 깨우는 사제들의 모습. 선지자의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은 화가들은 신의 얼굴마저 천 쪼가리로 가리는 것을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상상력으로 지식의 공백을 채웠다. 그들이 그린 태초의 종족은 ‘세 개의 눈’을 곱게 감은 채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에, 거대한 제단이 있었다.
민준이 이 차원까지 오게 된 이유가.
=저것이군요!=
아시프-1이 울림 깊은 정신파로 말했다.
달란트는 제단에 안정된 상태로 봉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치 않은 서광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감탄하는 그에게, 창조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아들아.”
=···!=
무어라 쉽게 대꾸 못하는 아시프-1에게 민준이 말한다.
“저 제단은 사실상 네가 준비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네가 교단을 만들었어. 그들이 그동안 달란트를 모으도록, 네가 유도했어. 네 덕이야.”
처음 들어보는 치하의 말이었다.
전율을 감추며 아시프-1은 묻는다.
=저것으로 다른 동족을 깨우실 겁니까?=
“아니. 안타깝게도 저 정도로는 충분치 못하군.”
=아아!=
안타까운 탄성.
“너는 너무 빨리 위원회에게 잡혔어. 원래 계획대로면 이 교단 같은 조직을 몇 개 더 만들었어야 해. 레파탐 족과 같은 방법으로 달란트를 훔칠 수는 없어도, 테러 조직이나 해적단, 저항군, 망명 정부 같은 형식으로 운영하려고 했지. 위원회가 이미 채굴한 달란트를 훔칠 수 있는 무력 조직 말이야. 결국 들키지 않고 여태 존속한 건 교단 밖에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잘한 일이야.”
그는 덧붙인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이 달란트는 다른 방식으로 유용하게 쓸 테니.”
그렇게 선언한 민준은 제단으로 다가갔다. 성당 가장 깊숙히 위치한 넓은 홀은 제단 말고 다른 장식 하나 없이 휑했다. 허무할 만치 낭비되는 공간의 중심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는 지면에서 살짝 돌출한 금속 단상에 올랐다. 걸음을 딛으며 민준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여태 목격한 것 중 가장 많은 동족들의 고혈이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고대 종족은 지난 몇백 년간 이것보다도 훨씬 많은 양을 훔쳐 왔다. 진정한 도둑은 사제들이 아니라 고대 종족, 그 짐승들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헤아리기 힘든 분노가 치민다. 고대 종족이 달란트를 어떤 식으로 낭비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달란트는 영과 육의 관계에 개입하는 매개다. 그 자체로 물질과 정신의 성질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낸 짐승들은 이걸 고작 몸 갈아타기에 사용했다. 동족의 고혈이 그렇게 허비되었음을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격노가 느껴졌다.
그런 감정을 억누르며 민준은 금속 재질의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부름에 응답하여 지면이 움직였다.
콰르르르!
땅을 가로지르는 균열이 퍼지더니 빗줄기 같은 기세로 빠르게 증식한다. 빗금을 따라 분열된 금속 조각들은 서로 겹치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균열은 2차원적인 변형을 넘어서 다채롭게 움직이고 지면은 잔주름을 만들며 파도쳤다.
잠시 후, 소용돌이가 멈추고. 평평했던 제단 위에는 시린 빛을 내는 기둥이 솟아올랐다.
이제 홀의 내부는 평범한 종족의 시력으로는 사물을 구분 못 할 지경이 되었다. 기둥에서 뿜어나온 강렬한 빛이 공간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민준이 그것에 손을 뻗은 순간.
파아앗!
빛이 범람했다.
넘쳐흐르는 달란트를 민준은 남김없이 흡수했다. 그는 육체와 정신으로 동시에 그 빛을 느꼈다. 이 순간 성당에는 한 점의 그림자도 없었다. 모든 공간이 광원(光源)이 되어 찬란하게 타올랐다.
별빛과 같은 격류가 민준의 정신으로 쏟아진다. 그리고 수형자 안에 이미 거의 남아있지 않던 위원회의 흔적을 마저 불태웠다. 죄인을 통제하기 위한 암시와, 기억을 가리고 은폐하기 위한 도구의 잔재였다. 이미 기능을 대부분 잃은 것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완벽하게 소멸시킨다.
그 과정을 계속하던 민준은 자신의 내면이 완벽에 가깝게 정화되었음을 깨닫는다.
아주 작은 파편, 얼룩에 가까운 찌꺼기를 제외하고.
“······.”
마지막으로 남은 먼지 같은 조각을 응시하며 그는 고민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시프-666이라고 불리던 존재의 자아였다.
수형자 생활을 하며 빚어낸 두 번째 인격.
지난 8백년간의 기억을 소멸시킬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자아는?
‘이것 또한 위원회의 잔재다. 계속 남겨두면 내 족쇄가 되지 않을까?’
고민한다. 한 때 예민준이었던, 그 전에는 카인이었던, 그보다 더 이전에는 차원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수형자의 자아.
그것은 태초의 종족 입장에서는 모욕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치이자 굴욕의 증거였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자로서 행동하고 생각하던 잔재였다.
‘이것마저 태워버릴까?’
태초의 종족은 고민한다.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저것 또한 내 것이다. 내가 겪은 모욕도, 치욕도, 고통도 전부 나의 것이야. 굳이 지울 필요는 없겠지.’
한때 모든 것을 잃어 본 적이 있는 자는 여전히 자신의 소유물에 집착한다.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온 것을 누군가 손대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하물며,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 역시 용납할 수 없었다.
그걸 그대로 존속시킨 채, 태초의 종족은 관심을 돌린다. 그리고는 달란트를 더욱 거대한 빛의 기둥 형태로 만들어 확산시켰다. 그것은 홀의 천장을 뚫고 지붕을 넘어 밤하늘을 관통하며 치솟았다. 성당 바깥 사람들이 빛기둥을 목격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제서야, 태초의 종족은 창조물의 질문에 답했다.
이 달란트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난 이 달란트를, 너를 위해 쓸 거야.”
=······?!=
“이걸 사용해서 네 다른 파편들을 여기로 부르겠어.”
아시프-1은 그제서야 이 빛기둥이 일종의 등대임을 깨닫는다. 변방 차원에 흩뿌려진 자신의 영혼 조각. 그 파편을 부르는 유인등.
태초의 종족은 빛에 영파를 실어 보냈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요.=
아시프-1은 주저하며 묻는다.
영혼이 빠르게 이동하며 차원벽을 넘을 때 저항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해도 우주의 구석구석에서 출발해 모이는 데에는 까마득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지름길을 이용하면 돼.”
=지름길이요?=
“이곳의 추종자들이 달란트를 회수할 때 어떻게 차원을 넘나들었지?”
=태초의 종족이 잠든 그곳으로 영혼만 보내서··· 아!=
“그래. 우리가 잠든 그곳은 모든 차원과 연결되어 있지. 애초에 그렇게 만든 거니까.”
창조주는 다른 영혼 파편들을 전부 ‘채굴장’으로 모은 다음 한꺼번에 여기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태초의 종족은 위를 본다. 저 높은 지점, 빛기둥의 끝에 검은색 균열이 열리고 있었다.
윰투스가 영혼 상태로 엘라후-프라가를 드나들 때 하은성이 본 균열을 몇백 배, 몇천 배 확대한 규모였다. 빛기둥은 그것을 관통한다.
=저를 먼저 완성시키려 하심은.=
아시프-1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미,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이곳을 향할 때 내비친 창조주의 고민.
앞으로의 행보.
“일단, 청소를 할 거야.”
태초의 종족은 담담히 계획을 읊는다.
오늘 봤던 벽화처럼, 시간 순서대로.
“죽을 자들은 죽고, 벌 받을 자들은 벌을 받아야겠지.”
지금 언급하는 대상은 고대 종족이다.
“그리고 다른 자들은···.”
태초의 종족이 깨기 직전과 직후의 시간대에 고대 종족은 전부 알맞은 방식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민준의 동족은 결국 다시 잠들어야 할 운명이었다.
또한 세상에는 태초의 종족과 고대 종족만 살아가지 않는다. 미래에 이곳에 남겨질 다른 지성체들을 어찌할 것인가?
긴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이 또다른 카바이트가 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다시 잠든 우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모두를 가축으로 만들지 않고도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나는 이곳, 교단에서 그 답을 보았어.”
많은 사제들이 세뇌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태초의 종족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움직였다. 민준의 동족들에게 ‘선의’를 표하고 실행했다.
아시프-1은 묻는다.
=······모든 지성체를 엘라후-프라가 교인 같은 존재로 만드시려는 겁니까?=
그 말인즉.
=당신은 모든 지성체의 신이 되려는 겁니까?=
그들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르친다. 태초의 종족에 적대하는 일을 악으로, 죄로 인식시킨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의지로 죄로부터 멀어지도록 유도한다.
종교라는 이름의 규율을 만든다.
민준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용치기, 목자(牧者)로 여긴다. 길 잃은 용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직접 지도하기도 했고 때로는 똑똑한 용에게 위임하기도 했다.
앞으로 하려는 일 역시, 옛날에 했던 일의 영역을 좀 더 확대하는 것뿐이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였다. 방금 전 실험을 해 보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곳에서 그 한계도 보았지.”
=…펠릭스!=
그는 오늘 스스로의 의지로 신을 섬겼으나, 끝내 자신의 의지로 숭배를 거부한 자를 보았다.
“극단적인 선택은 부작용을 수반하지.”
태초의 종족은 결정이 점차 굳어지는 걸 인지했다.
“그러니 한 가지 방법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어. 두 방안을 적당히 겸하면 될 것 같군. 그러니 일단 너부터 부활시켜야 해.”
세뇌와 종교.
종교와 세뇌.
두 가지 무기를 모두 활용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아들아, 네 힘이 필요해. 자유를 행사할 자격이 없는 자들의 마음을, 그들의 정신을 다시 창조하기 위해서.”
잠시 고민하다가 덧붙인다.
“아니, 이 단어는 적합하지 않겠군.”
창조라는 말에는 본래 없었던 무언가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있다.
“지금 하려는 일은 본래 존재하던 재료로 새로운 과정을, 절차를,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지. 마음이 작용하고 기능하는 방식을 새로 설계하겠다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는···.”
생각을 더듬다가 선언한다.
“그래. 차라리 ‘발명’이 맞겠군. 우린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적합한 형태로 재발명(Re-invention)해야해. 그들의 마음을.”
그 순간, 빛기둥의 끝에서 무언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