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2
22. 일로 만난 사이 (2)
***
“언니!”
평온했던 실내 분위기를 깨뜨리는 말소리.
갑자기 들려온 그 단어는 짧지만 파괴력이 있었다. 발화가 이루어진 장소와, 상황과, 지칭한 대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실내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
모두의 대화가 멈추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돈 뒤. 드디어 누군가 입을 열었다. 방금 전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호칭을 당한 이였다.
“절 그렇게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을 텐데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평탄한 어조로 말을 흘린 뒤 안경을 치켜 올렸다.
책상에 앉은 채로 방금 갑작스러운 방문객을 맞은 그녀의 이름은 블레어 캠벨. 젠킨슨 회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다. 얼마 전 예민준에게 회장의 친필 편지를 직접 전달한 엘프가 바로 그녀였다.
블레어는 닫힌 문을 통과하여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서 대뜸 ‘언니!’라고 불러제낀 상대를 바라보았다.
“아, 저···.”
블레어에게 보고하던 직원의 표정이 굳는다. 두 사람은 상대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열중하여 서류를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불청객이 직원에게 말했다.
“아, 자기는 잠깐 나가서 차라도 한잔하고 올래? 난 여기서 우리 언니랑 비밀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상관의 표정을 살피니 블레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얕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렸다 다시 닫힌다. 둘만 남은 상태에서 비서실장은 안경을 벗고 눈매를 짓눌렀다.
“회사에서 기초적인 언어 예절은 좀 지켜 주셨으면 좋겠군요. 특히 다른 직원이 있을 때는요.”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 지금까지 들은 척도 안 하는 상대는 과감한 붉은색 정장 차림의 여자였다.
이름은 라리사 안드레예바. 젠킨슨 컴퍼니의 부동산 보안관리 총책임자다.
그녀는 뭐 어떠냐는 듯 어깨를 치켜 올렸다. 이마가 반쯤 드러나게 다듬은 은백 머리칼 아래에는 겪은 세월의 굴곡이 드러났다. 인간으로 치면 중년과 노년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라리사는 책상 위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아, 그대로 담배처럼 생긴 것을 꺼내 문다.
화륵!
손가락에 피어난 핑크색 불꽃. 곧 연기와 함께 달근한 별사탕 향기가 방을 가득 채웠다. 블레어는 눈썹을 찌푸렸다.
“회장님이 아시면···.”
“그 양반 이계 출장 가셨잖아. 없을 때 누려 보는 거지.”
외국도 아니고 다른 세계로 출장을 갔으니 오늘 당장 돌아올 리는 없어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는 역하지는 않았고 다른 직원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지만, 젠킨슨은 그녀가 그것을 피우는 걸 매우 싫어했다. 라리사의 종족적 특성 때문이다.
뾰족한 귀와 아름다운 이목구비, 날씬한 체형까지. 전체적으로 보면 그녀는 엘프로 착각할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바짝 앞에 다가가서 관찰하는 대신 시점을 조금만 줌아웃(Zoom-out)해보면 차이점이 금방 드러난다.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은 그녀의 등 뒤에는 잠자리를 닮은 불투명한 날개가 네 쌍, 곱게 접혀 있었다. 또한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 간의 비율은 블레어와 거의 비슷하나 사이즈에 큰 차이가 있다.
엘프를 대략 5:1 비율로 축소한 듯한 몸.
블레어는 미니 가습기처럼 뿌연 기체를 뿜어 대는 요정족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너무 독한 거 아닌가요?”
요정에게 당분은 마약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그들이 사탕과 케이크 따위에 환장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지금 라리사가 피우는 당초(糖草)는 다른 종족에게 있어서 대마초나 마찬가지다.
라리사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 어때? 불법도 아닌데.”
요정들의 당분 섭취를 금지하는 법률은 없다. 이쪽 세계에 집단 이민을 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몸집이 확연하게 작은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비용이 크게 초래될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모든 시도는 반려되었다. 요정만 모여 살아가는 별도의 구역을 만들어서 몰아넣는다면 비용은 확연히 줄어들겠지만 그것은 위원회의 방식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이 세계에는 요정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전혀 구축 되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라리사가 지구에서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고, 손가락 크기에 맞는 당초를 피우고, 요정 몸을 잘 아는 주치의 진료를 받고, 적당한 크기의 가구로 가득 찬 집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돈이 많기 때문이고, 그만큼 벌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젠킨슨에게 고용되었다. 그 엘더 드래곤은 항상 최고의 전문가만 고용하니까.
결국 보안실장을 맡은 라리사의 전문적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소리다. 비록, 근무 시간 중에도 환각 물질을 들이켜는 약쟁이라도 말이다.
블레어는 복잡한 생각을 끊어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라리사는 몇 분만 맡고 있어도 당뇨병에 걸릴 것 같은 진한 향기를 뱉더니 말했다.
“며칠 전 ‘B-39’ 구역에 들어온 물건들 말이야.”
블레어는 순간 긴장했지만 노련하게 감췄다. 계속 말을 해 보라는 듯 재촉한다.
“거기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대체 뭐야?”
라리사의 업무에는 금고지기의 일도 포함된다. 엘더 드래곤의 두 번째 레어나 마찬가지인 젠킨슨 컴퍼니 북한산 창고에는 극도의 관심을 요하는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B-39 구역은 해당 창고의 일부다.
“무슨 일이죠?”
“언니한테 물어봤자 답이 안나올 것 같긴 했는데··· 우리 비늘 달린 노인네는 언제 돌아오시나?”
“······다음주 정도에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블레어는 애매호하게 답했다.
“흐음, 그럼 좀 골치 아파지겠는 걸.”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십니까?”
요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마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B-39에 ‘그것’들이 입고되고 나서, 북한산 창고 주변에 누군가 깔짝대기 시작한 흔적이 있어.”
“······!”
“나 아니면 못 찾았을 거야. 지운 흔적이 깔끔해도 너무 깔끔해.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제대로 교육받은 애들 짓이야.”
영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요정족, 그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가 한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해당 구역에 보관된 물건들의 정체다. 회장이 지금 지구를 비운 사유는 그것 중 일부를 위원회와 어떤 방식으로 언제 공유할지 담판 짓기 위해서니까.
“경비를 보강해야겠군요.”
“응, 내 생각에 우리 애들만으로는 모자랄 수도 있어.”
“그 정도인가요?”
“심상치 않다니까. 이렇게 깔끔하게 왔다 간 애들은 처음 봐. 요 며칠은 그냥 간만 본 거고, 노리는 게 있다면 곧 본색을 드러낼 거야. 하필이면 회장님이 지구를 비운 그 날부터 흔적이 시작되는 것도 이상해. 그 양반 스케쥴··· 극비잖아?”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뜻.
“하지만, 어떤 정신나간 자들이!”
생략된 뒷말은, 어떤 미친 놈들이 엘더 드래곤의 안마당을 탐내겠냐는 것이었다.
“감당할 자신이 있으니까 얼씬거리는 거 아니겠어? 그럼 더 위험한 거고.”
끄응, 고뇌가 섞인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블레어의 머릿속에 한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현재 B-39 구역에 보관되어 있는 그것들은 한 때 속초에 있었고, 북한산으로 이동되는 과정에서 어떤 요원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아니, 아직 일러.’
아직 징후가 발견되었을 뿐인 상황에, 북한산 창고와 같은 예민한 장소를 계약 요원에게 맡기기엔 꺼림칙했다. 그곳에는 절대로 밖에는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가득하다. 에이스 중의 에이스라고 불리는 요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일단 회장님께 보고하고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그 사이, 창고 주변의 경비를 충원하도록 하지요.”
블레어가 제안한 충원 규모를 보고 라리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정도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내부에 회장님이 직접 펼친 결계까지 감안하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제 결정권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니까요. 나머지는 회장님 결재를 받고 진행하겠습니다. 아마 금방 회신 주실 거에요. 이계 출장 중이라도 통신이 완전히 두절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젠킨슨 회장의 답이 돌아온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
캐시는 얼떨떨한 정신 속에서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부축을 받으면서 들어온 노인. 아무리 낮게 잡아도 70대··· 혹은 80대? 그런 사람이 민준을 향해 언니라고 불렀다.
언니? 잠깐만···. 언니? 왜 언니? 어째서?
머릿속이 헝클어진다. 노인의 반가운 표정과 기쁨 가득한 눈빛은 여전히 민준에게 고정되어 있다. 사람을 착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 그녀를 보며 민준은 혀를 찼다.
‘타이밍이 고약했군.’
그녀의 떨리는 눈빛은 많은 말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 망상이 더 커지기 전에 민준은 싹을 잘라야겠다고 판단했다.
“설마 착각하는 건 아니지?”
“아, 네?”
요즘 애들은 모르겠지. 충분히 착각할 만도 하다.
한편, 상대의 그 호칭 때문에 민준은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오만식 선생?”
남자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네! 기억하시는군요, 선생님!
민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방금처럼 선생님 소리 붙여 주니까 그래도 낫네요. 이렇게 사람들 많은 데서 다짜고짜 옛날처럼 부르면 어떻게 합니까? 오해들 하시게.”
그러자 노인은 당황했는지 부축을 하던 중년 여인에게 속삭이듯 묻는다. ‘아가, 내가 아까 뭐라고 불렀길래 그러냐?’ 며느리로 보이는 여인이 작게 답하자 오만식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아,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옛날에 부르던 습관이 되어서···.”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일로 만난 사이였지만, 당시 꽤 친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남성 화자가 가깝게 지내는 연상의 남자를 ‘형’ 대신 ‘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언어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니까.
오만식 역시 몇 십 년 동안 저 단어를 입에 올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 앞에 민준이 나타나자 그 옛 추억과 습관이 잠깐이나마 다시 살아난 것이다.
“아니,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십니까? 아주 똑같습니다.”
민준 역시 늙은 모습으로 나타나 재회했다면 실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와 변함없는 얼굴을 보자 자연스레 말이 잘못 튀어나온 것이다. 캐시도 그 설명을 듣고 오해를 깨달았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점잖은 말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캐시는 그 대화 속에서 ‘고성학원’이라는 키워드를 건져 냈다. 옛날에 함께 일했던 직장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뭘 하고 지냅니까?”
오만식의 표정이 아주 약간 경직되는 것을 예민준은 놓치지 않았다.
“그냥 작은··· 연금술 공방 하나 굴리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 오선생은 연금술이 장기였죠.”
“예민준 선생님은 여전히 마법을 가르치십니까?”
“가르치는 것은 관뒀고, 요즘은 외계인 잡으러 다닙니다.”
“······네?!”
마지막 말은 그의 기력이 약해서 크게 울리지 않았을 뿐 톤만 보면 비명과 같았다.
그를 부축하던 여인도 당황했고 캐시 역시 약간 놀랐다.
저 말이 그렇게 기겁할 일인가?
“아니, 제가 늙으니까 귀가 어두워서··· 지금 하신 말씀을 잘못들은 것 같은데.”
“아마 제대로 들었을 겁니다. 저, 지금 요원으로 활동합니다.”
그러자 노인은 벌린 입을 도저히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는 망령이 난 것처럼 사람을 앞에 두고서도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아니, 요원이라니··· 예민준 선생님이 요원이라니. 이 점잖으신 양반이··· 쥐새끼 하나 때려잡지 못할 분이 그런 거친 일을··· 세상에나, 맙소사.’
분위기가 묘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자 곁에 선 여인이 조용히 그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노인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아! 실례가 많았습니다.”
허둥지둥, 뒤늦게 생각이 미친 듯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느긋하게 안부라도 나누면 좋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바로 3층에 약속이 있어서···.”
두 사람은 헤어지기 전 명함을 교환했다. 노인은 예민준의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한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요원이라니!’ 그러다가 다시 한번 여인이 눈치를 준 뒤에야 천천히 몸을 숙여 인사를 한다.
“앞으로 제가 살날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다시 뵙고 차라도 한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 최고의 인격자를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최고의 인격자라는 단어를 듣고 곁에서 캐시가 ‘헉!’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쟤가 정말.’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겠군요. 그럼, 오선생도 건강하십시오.”
“아, 저···.”
대화에 끼어든 것은 오만식과 함께 하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민준의 명함에 꽂혀있었다.
“이민국 전속계약요원이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저도 들어 봤어요.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모든 계약요원 중 이민국 요원을 최고로 친다고···.”
“아, 뭐.”
사실이긴 했다.
그의 표정을 살피며 여인이 망설이다가 묻는다.
“저, 그렇다면 혹시 개인이나 기업 의뢰도 받으시나요?”
오늘이 무슨 날인가?
전남규 변호사에게 거절의 말을 돌려줬을 때처럼 비슷하게 대꾸하려는 순간.
“아가야.”
오만식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너, 지금 뭣 하는 거냐?”
이번에는 민준도 약간 당황했다. 여인을 바라보는 오만식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싹 바뀌어 있었다.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
여인이 항변하듯 말했다.
“아버님, 하지만.”
“그쯤 해라.”
목소리에는 묵직한 위엄이 담겨 있었다. 바로 직전까지 민준의 말 때문에 쑥쓰러워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다.
“······.”
그러더니, 다시 본래의 얼굴로 돌아가서 민준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얼떨결에 민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를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며 민준은 생각한다.
‘3층이라··· 아까 트롤 변호사도 거기에 볼일이 있다고 했는데.’
그리고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고약한 꼴을 당했다며, 의뢰를 받아줄 수 있냐는 문의를 했다.
‘흐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그냥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절묘하다. 전남규는 오만식을 위해 이곳에 온 것 같다.
‘잠시만. 그 변호사, 장태준도 담당했잖아.’
그런 부호의 유언장을 작성할 수준의 변호사라면 평범한 고객은 받지 않을 터. 그는 흘깃 보고 말았던 오만식의 명함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회사 이름이 낯익은 것 같아서 잠시 머리를 굴려 본다.
그 상태로 몇 초 뒤. 민준은 피식 웃었다.
‘작은 연금술 공방? 저 양반은 여전히 겸손이 지나치군.’
옛 인연을 생각하면 마음이 살짝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나, 도움이 필요 없다고 본인이 말하는데 이쪽에서 오지랖을 부릴 필요는 없는 법. 명함을 앞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자.
“······민준 씨?”
그곳에는 캐시가 설명을 기다리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