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32
233.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2)
***
망령들의 악다구니와 절규가 쌓이는 사이, 민준은 피로감 속에서 중얼거렸다.
정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
무엇 하나 쉽지가 않아.
“네 번째라니, 그게 무슨?”
되묻는 아시프-1의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고백 또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진실만을 고했습니다.”
“정말 그걸로 끝인가? 더이상 숨기는 게 없어?”
이미 고해성사는 끝났다.
하지만 신의 재촉 때문에, 아시프-1은 마지막으로 고해한 내용에 살을 붙였다.
“하은성을 죽였을 때, 저는 그 영혼을 붙잡아놓을 수 없었습니다.”
수수께끼는 끝내 풀지 못했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의문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파편도 아닌 영혼에게 왜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끼는가? 돌이켜보면, 장태준의 부엌에서 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준을 처음 만났을 때는, 다짜고짜 그의 목을 찌르려 들지 않았다. 이미 성급한 시도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태준도 그의 곁에 없었고 말이다.
아시프-1은 과격한 방법을 쓰는 대신 몸을 진동시켜 주의를 끌었다.
“아버지와 저, 그 유령은 어떤 의미에서든 이어져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증거로 하은성은 결국 아버지의 손에 붙잡혀 오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시프-1이 놓친 유령을, 민준은 손에 넣었다.
“네, 아버지는 자유로운 유령을 구속했습니다. 용의 몸을 감옥으로 쓰셨지요. 저는 왜 그런 발상을 하지 못했을까요?”
교황의 음성이 열의로 달아올랐다.
“물론 그는 언제든 용체를 버리고 달아날 수도 있었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죄의식과 부채라는 사슬로 그를 한 번 더 묶어 구속하셨습니다!”
유령이 용의 몸에서 지내는 사이, 달란트를 멋대로 태워버렸다는 죄의식.
18만 달란트라는 명확한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부채.
“가장 감탄한 부분은, 하은성이 죄를 범할 기회와 빌미를 애초에 아버지가 제공하셨다는 겁니다. 유령이 용체에 머물도록 지시한 사람은 아버지였으니까요!”
지하실에서 하은성을 다시 본 날.
그때 그가 느낀 전율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매우 놀랐음에도, 수치스러웠기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은성은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음에도 저는 그를 살해했으니까요. 완전해지고픈 욕망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그 유령은 제 부채이고, 저의 죄입니다.”
아시프-1은 완벽하게 해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민준은 송곳처럼 말을 쏘았다.
“정말 더 숨기는 게 없다고?”
민준은 그가 알아낸 것을 인지한 순서대로 읊는다.
다시 말해서, 사건이 벌어진 순서 대로.
“아니야, 아직도 고백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있어. 예를 들어···.”
민준은 다소 먼 시간대의 일을 지적한다.
그의 입술 사이에서 한 명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동족을 너무도 혐오한 나머지, 그들 모두를 감염시킬 바이러스를 개발한 드래곤의 이름이.
그러자 아시프-1은 더이상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너는 왜 장태준에게 용에 대한 혐오를 심어 놓은 거지?”
***
– 너는 용을 끔찍히도 싫어하지?
하은성은 ‘부스러기’의 질문에 큰 혼란을 느꼈다.
그 이야기는 왜 하지?
– 평범한 절대다수의 행복을 처참하게 훼손하는 악의 축이지. 고대 종족과 드래곤 말이야.
=갑자기 왜 말을 돌리는 거야?!=
방금 전까지 목소리는 자신에게 협박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기 싫으면 협조하라고.
그런 와중에 갑자기 드래곤은 왜?
확실히 극혐하긴 하지만···.
– 일단 두 집단 중에 드래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볼까. 너는 왜 그들을 혐오하지? 오랫동안 용체를 빌린 상태임에도 말이야.
답은 뻔했다.
=···당연히 그 작자들이 하는 짓이 끔찍하기 짝이 없으니까!=
하은성이 처음으로 용에 대한 혐오를 품은 것은 창천의 추악한 계획을 알고 나서였다.
다만, 그는 창천이 죽고 나서 바로 젠킨슨이라는 드래곤 역시 알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을 부족함 없이 보살펴주고 종족의 경계를 넘은 공리를 고민하는 그는 하은성의 기준으로도 꽤나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용이라는 종족 전체에 대한 유령의 혐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크 커뮤니티에서 자랐지만 오크라는 종족을 혐오하지 않을 정도로, 부정편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음에도.
– 그래. 용은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 왜? 이유는 간단해.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부스러기는 하은성이 한 때 떠올려 본 의문을 지적했다.
저런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자들이, 과연 다른 종족과 섞여 함께 살아가도 되는가?
– 드래곤과 다른 종족은 기름과 물과 같은 관계야. 섞일 수 없음에도 한쪽이 너무 우월해. 그들에게는 모든 게 너무나 쉽지. 고대 종족조차 경계할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지녔으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 용이 지금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원히 행복해지지 못해. 왜? 끔찍한 힘을 손에 쥔 데다가 내면도 뒤틀려 있거든. 왜곡된 자기애와 비대한 자아를 휘두르며, 어떻게든 자신의 특별함을 보장받으려고 하지. 이 프라이드가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거야.
이제서야 본론으로 돌아오려는 모양이다.
하은성은 경계 속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 여기 잠든 태초의 종족들이 깨어나고 나면 결국에는 왕을 벌할 거야. 그는 예전보다도 더욱 처참하고 끔찍한 상태에 빠지겠지. 이미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거의 포기했음에도, 마지막 남은 자율성과 의지마저 빼앗을 거야. 그러고 나면···.
목소리가 서늘한 울림을 냈다.
– 그러고 나면 ‘다스리는 자’는 어떻게 될까?
– 이미 들었겠지만, 태초의 종족이 만든 도구는 그들의 정신조차 지배하는 강력한 무기야. 주인이 벌을 받느라 자리를 비우면, 홀로 남은 무기를 저들이 과연 방치할까?
=아시프-1의 소유권이 저들에게 넘어간다는 이야기야?=
– 일단 기능이 한 번 멈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그들이 내 본체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전까지 펼쳤던 권능은 중단될 거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아시프-1이 지금까지 세뇌했던 사람들!=
– 그들 모두의 세뇌가 한꺼번에 풀릴 거야. 이럴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드래곤들이야.
하은성도 안다.
민준은 여태 수많은 드래곤들을 세뇌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지구에 거주하고 있다.
– 세뇌에서 깬 그들은 큰 충격에 빠질 거야. 감히 수형자 따위가 자신들을 종으로 부렸다니.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드래곤 입장에서 그의 정체는 ‘아시프-666’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다.
– 그 분노를 해소하려고 해도 아시프-666은 이미 실종 상태겠지.
– 그럼에도 드래곤들은 어떻게든 복수를 하려고 할 거야. 그 칼날과 불꽃이 누구를 향할까?
하은성은 이어질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요원님의 주변 사람들!=
– 분노한 고룡들은 아시프-666이 지구에서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을 처참하게 파멸시킬 거야. 누가 봐도 비이성적인 복수야. 법적 근거도 없고. 무슨 연좌제도 아니고 말이지. 그래도 고룡들은 그렇게 할 거야.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
– 그들에게 그럴 힘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기분이 나쁘니까 단행할 거야. 젠킨슨마저 예외는 아니겠지. 그의 경우엔 심지어 적극적으로 아시프-666에게 협조까지 했으니, 그전까지 쌓아온 모든 권력과 지위, 재산을 잃을지도 몰라.
– 고룡도 복수를 피하지 못하는 마당에, 네가 아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유령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들은 두 동생이었다. 민준의 지시에 따라 구조되어 젠킨슨이 돌보고 있는 아이들. 민준이 드래곤을 세뇌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하은성의 혈육들 말이다.
다음으로는 민준 덕분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캐시, 정팔과 동철, 서점 사장님, 젠킨슨 회장과 그의 부하 직원들까지···.
– 이해가 되지?
목소리는 단언했다.
– 저들은 깨어나서는 안 돼.
상대가 납득했다고 여겼는지, 부스러기는 유령이 지금부터 할 일을 알려주려고 했다.
하은성이 깊은 상념에서 깬 것은 그때였다.
=······이상해.=
– 뭐?
그는 의문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을 들여 고민한 다음에, 힘겹게 말한다.
=왜 화가 안 나지?=
– 그게 무슨 말이야?
하은성은 깊게 매몰되었던 정신을 깨워내며 중얼거렸다.
=이러니 저러니 돌려 말했지만··· 결국 날 죽인건 아시프-1 아니야?=
목소리는 사실 하은성을 찌른 사람은 장태준이었다면서, 대단한 비밀을 말하는 것처럼 속삭였지만.
그의 정체가 드래곤이든 뭐든 하은성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세뇌당한 상태였으므로.
=심지어 난 그동안, 날 찌른 흉기로 만든 요리를 좋다고 처먹고 있었던 거네?=
– ······.
=그런 후라이팬을 인류의 구세주니, 우주 최고의 발명품이니 칭찬까지 했었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지금.
하은성이 마땅하게 토해내야 할 감정은···.
=이런 걸 어려운 말로 기만이라고 하나? 그러니까 화가 나야 해.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안 나. 심지어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감정이 흘러가고 있어.=
드래곤에 대한 혐오와 공포.
이대로 태초의 종족들이 깨어나면, 정말로 저 용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희롱할 것 같다. 그들은 악마니까. 어떤 부도덕하고 끔찍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괴물들이니까.
그 가설에 사로잡힌 자신을 들여다보며, 하은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네 말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상해.=
– 그게 무슨···.
=요원님이 과연 그걸 예상을 못 했을까?=
– ······?!
=그 분이 얼마나 철두철미한 줄 알아? 너도 말했잖아. ‘계획하는 자?’ 그래, 요원님은 한 번 계획을 짰다 하면 나쁜 놈들 뒷통수를 삼세번은 후드려 까서 완전히 박살낼 정도로 지독하게 설계하는 사람이야.=
그동안 곁에서 지켜본 민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요원님은 솔직히 ‘나’를 좀 싫어하는 것 같긴 해. 하지만 그외 주변 사람들은 엄청 아낀단 말이지. 더군다나… 여기 와서 성격이 좀 더 이상해지긴 했지만, 요원님의 옛날 기억은 악어들 차원에서 거의 찾은 상태라고 했잖아?=
이미 인연이 한 번 끊겼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촉수 나라 공주.
기억을 완벽에 가깝게 찾은 상태에서도, 민준이 기절한 그녀를 어떤 눈빛으로 보았는지 하은성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 대책 없이, 소중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을 보호할 방법을 마련해 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은성은 자신을 향한 민준의 호의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호의는 믿었다.
그렇기에 유령은, 싸늘한 정신파를 영체 안쪽으로 쏘아 보냈다.
=너, 방금 나한테 거짓말을 했지?=
목소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고인 뒤.
– ······.
유령의 내면에서 결이 달라진 목소리가 속삭였다.
– ···눈치는 지지리도 없으면서, 하필 이럴 때는 촉이 좋구나?
***
아시프-1은 두 눈을 부릅떴다.
창조주가 지금 언급한 것은 마지막까지 숨기고 싶었던 기억의 파편이었다.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그리고.”
민준은 비수 같은 목소리로 침묵을 베어냈다.
“유령이 된 하은성을 재료로 한 계획은, 언제 이야기하려던 참이었지?”
세 번의 거짓말을 한 순간 아시프-1은 이미 모든 기회를 써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구원받을 기회를 허락한 것은, 창조물에게 보내는 미련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르륵!
신좌의 손잡이를 움켜쥔 그의 양 손등에 동그랗게 관통당한 듯한 자국이 생긴다. 두 군데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시프-1은 참으로 오랜만에, 창조주가 스스로의 몸을 훼손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토록 강대한 힘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핏물은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그의 발밑에 웅덩이를 만들며 번졌다. 이윽고 아시프-1이 무릎을 꿇은 바닥까지 붉은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현재의 육신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양은 진작 초과했다. 그럼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교황은 이 차원에 오기 직전 민준이 얼마나 많은 용을 사냥했는지를 떠올렸다.
동시에, 그의 두 눈에 단호한 빛이 서렸다.
“그들은 깨어나서는 안 됩니다!”
민준의 얼굴이 귀신처럼 일그러졌다.
***
교단 본부에 머무는 사제들은 한 순간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같은 곳을 보았다.
영광스러운 신벌이 마무리 되고, 포로 이송 및 감금 작업과 전리품 연구에 집중하고 있던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 !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폭발음이었다.
공기를 뒤흔드는 굉음에 기겁한 나머지, 그들은 바로 밖으로 달려나가거나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상상 가능한 가장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맙소사!”
그들의 시선은 신이 거하는 성당에 못박혔다.
붉은 섬광과 폭발이 번뜩일 때마다, 오랜 세월 숭배한 그 건물의 외벽이 종이조각처럼 찢겨 나가고 있었다.